소설리스트

시골촌놈인 줄 알았는데 천재작가였다-94화 (93/216)

94화. 논란

멀리서 봐도 눈에 띄는 은색 머리카락을 가진 여성은 긴장되는 듯 연신 핸드폰을 바라봤다.

핸드폰에는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여성이 노래하고 있었는데, 그게 마음을 진정시키는지 이어폰을 끼고 한참이나 가만히 노래만 듣고 있었다.

여성은 노래를 들으며 댓글 창을 확인했다.

-정말 제임스 작가님이 쓰신 가사로 부른 노래인가요? 노래가 너무 좋아요!

-음률이 너무 아름다워요. 이야.....

-목소리가 너무 좋으세요!

-사랑해요 누나. 결혼해주세요!

대부분의 댓글들이 아름다운 목소리를 칭찬하고 있었다.

그중 가장 눈에 보이는 댓글은 이거였다.

-제임스 작가님 작사에도 재능이 있는 거 아닌가요? 처음 가사를 듣자마자 눈물이 왈칵 나왔어요!

ㄴ저도 그랬어요..... [블랙 & 월드] 팬이라면 알겠지만 에나와 케이가 만나는 부분이 생각나더라고요.

-진짜 제임스 작가님 정말 완벽하세요! 얼굴 빼고.

ㄴ동양인 얼굴을 잘 모르나 본데 못생긴 편은 아님. 그냥 평범보다 조금 준수하신 편임.

-줄리아드 스쿨에 다니는 학생이 프로듀싱했다고 하네요. 제임스 작가님이 적어주신 가사를 보고 영감을 받았다고 해요. 근데 엘리나 님은 대체 무슨 연이 있어서 제임스 작가님을 만나셨는지......

제임스 작가가 적었다는 가사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됐다.

그 때문인지 구독자가 1만이었던 엘리나의 채널이 한순간에 구독자 20만을 넘겼으며, [블랙 & 월드 : 만남]이라 올린 영상의 조회 수는 벌써 300만이 넘어가고 있었다.

‘후우......’

당시에 만났던 짧은 만남이 일생일대의 기회가 되었고, 영상 속의 그녀는 기회를 잡아 날아오를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건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엘라 스튜어트. 정신 차리자.’

지금을 위해서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던가.

‘이게 마지막 기회야.’

이제 슬슬 신인배우라고 하기엔 늦은 나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알바를 하며 꿈을 연장하고 있지만 변변찮은 기획사에서만 연락이 오고 있었다.

생활비가 부족하다 보니 이제는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었다.

이번 한 번의 오디션에 엘라는 목숨을 걸 생각이었다.

‘그냥 변변찮은 기획사라도 들어갔어야 했나?’

엘라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기획사에 들어가면 여러 가지 제약이 생긴다.

그 제약이 싫기에 지금까지 기획사에 들어가지 않은 것이었다.

‘오늘 오디션......’

오늘 오디션은 그 어떤 오디션보다 힘들 것이다.

미션 컴퍼니의 작품답게 한눈에 봐도 쟁쟁한 배우들이 오디션을 보러 왔고, 하나같이 다 유명 작품에 출연했던가, 기획사에서 밀어주는 배우들이 대부분이었다.

오늘 오디션을 보러 온 사람들 중에서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겠는 건 자신밖에 없었다.

“오디션을 시작하겠습니다.”

이어폰을 끼고 있던 엘라의 귓가로 오디션의 시작 소리가 들려왔다.

***

이번 영화에선 주연과 조연 그리고 단역 배우들의 수가 정말로 많이 필요했다.

다만, 가장 중요한 주연은 주인공 에나와 조력자인 케이 단둘뿐이다.

“에나의 역할로 두 명을 뽑을 생각이에요.”

“좋긴 한데 괜찮을까요?”

“글쎄요? 근데 작중에 있는 에나의 역할을 제대로 표현하려면 두 명의 배우가 있으면 좋을 것 같기도 해요.”

“한 배역에 두 명의 배우라..... 예전에 그런 경우가 많았지.”

에드워드 선생님의 말대로 과거에는 그런 경우가 많았다.

대표적인 예로 홀크를 원작으로 한 드라마가 있다.

1977년에는 CG가 발전하지 않았기 때문에 분노하면 각성하는 홀크의 이미지를 구현하기가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보디빌더를 섭외하여 각성한 홀크의 역할을 대신하는 방식으로 드라마를 진행했었다.

상당히 인기를 끌었던 작품으로, 당시에는 미국에서 만화 원작으로 가장 성공한 작품이라고 불리기까지 했다.

“CG가 발전하긴 했지만 그래도 실제보단 현실감이 부족한 느낌이 없잖아 있으니까요. 거기에 작중에 보면 구미호로 변신한 모습과 일상의 모습이 완전히 다르다고 적혀있습니다. 이건 CG로 구현하는 것보다 그냥 두 명의 배역을 나누는 게 편할 거예요.”

“음..... 논란은 되겠네요.”

어차피 두 배역 다 CG의 힘이 필요하긴 할 거다.

다만 딜런 감독은 에나라는 이미지를 100% 살리기 위해 두 명의 배우가 필요하다고 느낀 것이다.

‘천재 감독.....’

확실히 그의 생각은 재밌었다.

그와 대화하면서 생각보다 마음이 맞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특히 가장 괜찮다고 여긴 부분은 작품에 한계나 차별을 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원작이 있는 작품이든, 없는 작품이든 딜런 감독의 머릿속에는 오직 영화의 성공만을 바라고 있었다.

‘아까 시나리오도 그래..... 다원적 각색과 충실한 각색을 둘 다 하려는 건가?’

원작에 근접하게 옮겨 놓으려는 의도와 함께 영화 자체의 독립성을 유지하고자 했다.

다원적 각색과 충실한 각색의 경계선이 모호한 이유가 바로 ‘생략’이었다.

충실한 각색은 원작의 에피소드를 지워버리고 개연성 있는 각색만을 사용하여 에피소드끼리 연결시키면 되지만, 다원적 각색은 생략된 부분에 감독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을 집어넣는다.

딜런 감독은 개연성 있는 에피소드를 사용하면서도 그 부분이 어색하지 않게 생략된 부분을 여러 번 수정하여 스토리를 집어넣었다.

“두 명이라.....”

에드워드 선생님은 뭔가 마음에 걸리는지 턱을 한참이나 쓰다듬으셨다.

“보통 이런 소설 같은 경우는 원작 그대로를 영화로 만드는 게 좋긴 하지.”

“저도 그렇게 생각해서 두 명의 배우를 섭외하고자 합니다.”

“근데 원작을 보면 에나는 혼혈로 나오지 않나? 동양인과 서양인 혼혈을 섭외한다고 해도, 구미호 역할인 배우는 어떻게 할 생각인가?”

작중에서 에나의 할머니가 6.25 전쟁으로 미국으로 넘어간 이민자라는 설정을 가지고 있었다.

한 번도 나오지 않고 2권에서 나올 예정이긴 했지만, 할머니의 모습 또한 두 가지로 등장시킬 예정이었다.

주변의 인간들처럼 늙어가는 모습과 몬스터의 모습 둘로 말이다.

할머니는 동양인이며, 몬스터의 모습은 여우.

에나는 격세유전으로 인해 인간과 하프의 생김새.

외형은 동양인과 서양인의 혼혈이지만 구미호로 변하면서 동양인에 가까운 모습으로 변한다.

즉, 원작 그대로를 가져가며 두 명의 배우를 섭외한다면 지금 오디션을 보러 온 배우들을 모두 뽑아선 안 됐다.

“화이트 워싱 논란에 휩싸일 수 있다고 말씀하시고 싶으신가요?”

“뭐. 그렇지?”

원작에서 벗어난 캐스팅이라고 일단 논란이 될 것이다.

두 명의 배우와 원작에 맞지 않은 인종, 거기에 내용에 충실한 듯하면서도 새로운 각색.

논란이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배우들을 캐스팅하기 전에 딜런은 나를 설득해야만 했다.

“[블랙 & 월드] 계약을 진행하기 전에 저는 세 가지 조건을 걸었습니다. 과도한 PPL 금지, 입김이 강한 투자처 금지, 그리고 내용에 필요한 논란이 나오는 건 최대한 삼가기로 말이죠.”

여기서 에나가 굳이 혼혈이 아닌 배우가 캐스팅되더라도 상관은 없었다. 어차피 CG나 분장으로 배우의 생김새를 조금만 변형시키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 명의 배우가 캐스팅되는 것도 모자라 한 명은 화이트 워싱 논란에 휩싸일 수 있다는 것은 내 취지에 반대되는 제작이었다.

“감독님, 배우들을 캐스팅하기 전에 저를 먼저 설득시키셔야 할 겁니다.”

이번만큼은 에드워드 선생님도 딱히 뭐라 하지 않으셨다.

계약 조항에 따른 취지였기도 하지만, 논란이 될 법한 부분은 영화 제작 전에 아예 싹을 자르고 시작하는 게 좋다는 것을 노장은 알기 때문이다.

“한 가지 예시를 들었으면 합니다.”

“말씀하시죠.”

“번개 흉터 마법사에 나오는 여주인공 아시나요? 어릴 때부터 아역을 거쳐 지금은 훌륭한 배우가 된 그분 말이에요.”

“네. 물론 알죠.”

번개 흉터 마법사 영화가 처음 개봉되었을 논란이 되었던 것 중 하나가 바로 주인공의 동료 헤르미였다.

헤르미가 논란이 된 이유는 바로 외모 때문이었다.

“엄청 귀여워서 논란이 됐었죠?”

“예. 맞습니다.”

그녀의 외모가 원작 소설과 다르다는 것이었다.

당시 감독은 헤르미에 어울리는 아역을 찾기 위해 영국 전역을 뒤집어 놓았다.

원작자의 의견을 받아들여 영국 내에서만 아역을 찾기 시작했지만, 어울리는 배우가 없었고 결국 캐스팅디렉터는 1년 만에 직장을 그만둘 정도였다.

결국에는 영국인으로 캐스팅하는 걸 포기하고 미국으로 가 캐스팅을 진행했다.

그런 제작사 앞에 엔마가 나타났다.

“번개 흉터 마법사의 캐스팅은 아직까지도 말이 나올 정도로 까다로웠습니다.”

엔마는 다른 아이들과 달리 ‘애초부터 포기할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영국인 아역들과 미국인 아역들을 다 합하면 수천 명이나 봤던 오디션이다 보니, 엔마의 아버지는 기대하지 말라고 했다고 한다.

그 때문에 절박한 아이들과 달리 자유롭고 즐겁게 오디션을 본 엔마가 제작사의 눈에 들었다.

“방금 말씀하셨다시피 외모 때문이었죠.”

원작의 헤르미는 앞니가 튀어나와 있고 머리가 부스스한, 쉽게 말해 공부벌레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영화의 헤르미는 전혀 상반되는 예쁘고 귀여운 외모를 가지고 있기에 원작과 맞지 않았다.

“작중에는 외모 때문에 벌어지는 시나리오들도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툭 튀어나온 앞니가 커지는 저주에 걸려 패닉에 빠지던 스토리도 있었죠. 하지만 감독은 이 부분을 전면 수정하였죠. 원작의 헤르미에 엔마를 맞추기보다는, 엔마에 맞게 헤르미의 설정을 수정하도록 말이죠. 그래서 어떻게 됐는지 아십니까?”

헤르미의 원작 이미지는 솔직히 말해 그리 인기 있지는 않았다.

잘난 척도 심하고 여성성이 없는 캐릭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1편이 개봉되고 헤르미의 외모와 역할이 바뀌면서 작중에서 가장 인기 있는 캐릭터가 될 정도였다.

“쉽게 말해..... 배우들의 연기력과 각색으로 논란이 없을 거라고 자신한다는 말씀이신가요?”

“맞습니다.”

“하지만 인종에 따른 논란은 꼬리표처럼 따라다닐 것입니다. 헤르미도 일단은 백인을 주제로 시작했으니까요. 이 경우는 공간기동대의 경우를 예를 들어야 하지 않을까요?”

아시아인 역할에 백인을 캐스팅한 경우다.

그 유명한 스칼릿이 연기를 맡았기에 연기에 부족함이 있다는 말은 나오지 않았지만, 서명운동 사이트에 반대 서명이 10만 명이 나올 정도로 말이 많았다.

“그 작품은 화이트 워싱 논란도 있긴 하지만, 흥미 없는 스토리, 작중 원작 훼손, 개연성과 연출 때문에 인기를 끌지 못한 겁니다.”

영상미와 수준 높은 원작 재현 그리고 음악에서는 긍정적인 평가가 많았지만, 딜런이 말한 대로 영화 자체가 심각할 정도로 재미가 없긴 했다.

“거기서 볼 건 오직 하나 스칼릿의 연기력뿐이었습니다. 이번 영화는 다릅니다. 믿고 맡겨주시면 반드시 성공해 보이겠습니다.”

“......”

딜런의 강한 각오가 담긴 눈빛에 고민하던 나는 일단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 이야기는 오디션이 끝난 다음에 다시 얘기하도록 하죠. 배우들의 연기를 보면 제 생각이 달라질 수도 있으니까요.”

“네. 알겠습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오디션장으로 첫 번째 배우가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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