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시골촌놈인 줄 알았는데 천재작가였다-95화 (94/216)

95화. 케이 오디션

마그누스 감독이 추격의 대가라 불리는 이유는 현실적인 영화를 좋아해서였다.

요즘엔 보기 드물게 CG를 사용하는 걸 싫어하는 감독님이시다 보니, 위험한 장면도 웬만하면 CG 없이 처리하는 거로 유명했다.

현실적인 연기가 필요하기에 감독님은 배우들을 캐스팅할 때에도 예시 대본을 만들어 배우들한테 익히라고 말한다.

그리고 대본의 한 씬을 가리키며 짧은 시간 동안 홀로 연기를 시킨다.

오직 연기력과 스토리에 어울리는 배우를 뽑기 위해, 현실적인 연기를 보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이번 오디션은 달랐다.

‘배우들은 모두 내 책을 보고 왔을 거야.’

혹은 지금도 책을 읽고 있을 수 있었다.

이 영화는 원작의 소설을 최대한 반영할 예정이었고, 그렇다 보니 배우들은 그에 따른 연기를 해야 했다.

마그누스 감독님과는 반대로 대본이 없는 상태에서 원작을 바탕으로 즉흥적인 연기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안녕하십니까! 레디 나가노입니다!”

“안녕하세요. 나가노 씨.”

에나를 도와주는 남자 주인공 케이는 동양인이다.

스토리상, 에나와 다르게 완전한 동양인으로 나오고, 특정 몬스터를 찾기 위해 미국으로 온 설정이다.

그렇다 보니 케이는 동양인 배우를 섭외해야 했다.

‘레디 나가노라.....’

상당히 유명한 일본계 미국인 배우였다.

인성도 나쁘지 않고, 들리는 소문도 나쁘지는 않지만, 부족한 점이 있다면 그의 언어 실력이었다.

연기력은 나쁘지 않지만, 어린 시절에 일본에 살아서 그런지 영어 발음에 문제가 있었다.

유명 작품에 조연으로 간간이 출연하며 서서히 연기 경험을 키우고 있기는 했지만 말이다.

“제 책은 읽으셨죠?”

“물론입니다!”

“그럼 케이가 에나를 지키다가 라이칸스롭의 손톱에 내장이 관통당하는 씬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넵!”

딜런의 말에 레디는 잠시 심호흡을 하더니 이내 연기를 시작했다.

‘즉흥적인 연기의 장점은 배우의 연기력을 파악함도 있지만, 배우가 생각하는 원작 내의 주인공 모습도 알아볼 수 있다는 거지.’

원작에서 케이가 라이칸스롭의 기다란 손톱에 의해 내장이 관통당하는 씬은 마지막 부분에 나온다.

이는 에나가 가지고 있던 [여우 구슬]의 힘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며, [여우 구슬]의 중요성과 앞으로 그 구슬이 종종 나타날 것을 암시하는 것이었다.

‘레디는 아무래도 구미호에 관한 이야기를 일본 쪽 구미호로 공부한 것 같네.’

구미호는 동아시아에서 요괴 혹은 신수로 분류되는 몬스터였다.

그렇기에 한국, 일본, 중국마다 설화가 미묘하게 달랐고, 내가 한국인이다 보니 구미호도 한국 구미호를 많이 참고했다.

‘에나의 구미호는 인간이 되고 싶어 하는 구미호야. [여우 구슬]은 인간의 정기를 빨아들이고, 그 정기를 이용하여 인간이 되든가, 혹은 100년을 기다려 천년미호가 되어 신선이 되든가.’

여기서 에나가 어째서 [여우 구슬]을 가지게 되었는지, 정확히 [여우 구슬]이 뭔지에 대해서는 소설 속에 표기하지 않았다.

2권에서 그걸 설명해줄 할머니가 등장할 예정이기 때문에 그 부분은 아직 떡밥으로만 남겨둔 상태였다.

“네. 잘 봤습니다. 심사 결과는 내일 연락드리겠습니다.”

“가, 감사합니다!”

힘차게 대답하긴 했지만, 분위기를 파악하고 결과가 좋지 않음을 직감적으로 느꼈다.

“마음에 안 드나?”

옆에 있던 에드워드 선생님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제가 한국계 작가인 것을 인지하지 못한 것 같기도 하네요. 그냥 작품만 보고 연기를 한 것 같아요.”

“뭐. 그럴 수도 있지. 배우들 중에서 책을 좋아하지 않은 사람도 많으니까.”

“그렇다고 해도 제가 한국인이면 한국 구미호를 참고해야지..... 일본 구미호를 참고한 건 좀 아니다 싶네요.”

그 말에 딜런도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블랙 & 월드]를 읽고 한국 구미호에 대해 많이 조사했습니다. 흥미로운 점이 상당히 많더군요. [여우 구슬]로 정기를 흡수한다는 부분도 있고, 마법을 사용한다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어느 프로그램 쇼에서는 [여우 구슬]을 상대한테 먹임으로써 상대한테 기력을 나누어 주기도 하더군요. 아무래도 작가님의 소설은 이 부분을 참고한 것 같습니다만.”

“네. 맞아요. [여우 구슬]은 [블랙 & 월드]의 이정표 같은 역할을 하게 될 거예요. 2권에서 [여우 구슬]을 다른 사람한테 준 의미와 주면 어떻게 되는지에 관해 이야기를 풀어나갈 거니까요.”

“케이는 작중에서 몬스터에 관한 정보를 자세히 알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여우 구슬]의 중요성을 그리 중요하지 않게 연기한다는 건 확실히 열정과 연구의 부족이네요.”

자신이 찾는 몬스터에 대해 알기 위해 케이는 일생 동안 정보를 수집했다.

그런 케이가 [여우 구슬]이라는 것을 모를 리가 없을 텐데, 그걸 자신한테 먹이는데 아무런 감정도 보이지 않는다?

작품만 보고 연기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다음.”

에드워드 선생님 말에 곧이어 중국계 미국인 배우가 들어왔다.

“브레이셔에서 ‘화안금정’을 가진 하프 몬스터가 주인공 에나의 영혼을 탐색하려는 걸 케이가 가로막는 부분을 연기해주셨으면 합니다.”

오디션은 계속 진행되었다.

***

한 시간을 넘게 진행 중인 오디션에 많은 배우들이 거쳐 갔지만, 딱히 마음에 드는 배우가 보이지 않았다.

“흐음..... 안 좋네요.”

“쯧. 미션 컴퍼니 측에서 준비한 배우들이라고 해서 기대했건만.....”

“하하......”

딜런은 나와 에드워드 선생님의 말에 멋쩍은 듯 뒷머리를 긁적였다.

이번 심사에서 에드워드 선생님은 아무런 발언권이 없고, 배우를 뽑는 권한은 아까 나와 시나리오에 대해 대화했던 탈리아와 딜런 그리고 나한테 있었다.

그렇기에 음악감독이신 에드워드 선생님이 감독님들이 있는 좌석이 아닌 심사위원 좌석에 있는 건 좀 이상한 그림이긴 했다.

있어도 상관은 없었지만, 그래도 배우들이 에드워드 선생님을 알아보고 말을 더듬거나 실수하는 경우가 있었다.

‘물론 에드워드 선생님을 보고 실수하면 실력은 안 봐도 뻔하긴 하지만.....’

그렇게 동양계 배우들의 오디션은 계속되었고, 서서히 흥미를 잃던 와중에 마지막 배우가 들어왔다.

‘마지막 배우까지 별로면 캐스팅할 배우를 찾고 또 오디션을 보고..... 에휴.’

또 제작 일정에 차질을 빚게 된다.

하지만 이번에 들어온 배우는 나름 믿어볼 만한 배우였다.

‘휴고 정’

나와 같은 한국계 미국인으로 굵직한 작품에 몇 번이나 주연으로 출연한 배우였다.

‘걱정이 아예 없는 건 아닌데.’

인기 있는 TV Show(드라마)에 주연으로 나온 적도 있었고, 라디오 방송이나, 유명 예능인 Show에도 몇 번이나 나온 인기 있는 배우지만 단점이 있다면 영화를 찍은 적이 없다는 것이다.

드라마 배우였고 한때 7시즌이나 진행되는 긴 드라마의 주연으로 활약하기도 한 청년 배우였다.

“휴고 씨는..... 음. 이 부분이 좋겠네요.”

상대가 영화를 찍어본 적이 없다고 해서 쉬운 장면을 줄 생각은 없었다.

드라마에서 쌓아온 내공이 있기 때문에 더욱 냉정하게 연기를 요구할 생각이었다.

“이 부분이 좋겠네요. 라이칸스롭의 손톱에 내장이 관통당하는 씬으로 부탁드립니다.”

여러 배우들한테 시켰던 가장 어려운 하이라이트 씬이자 마지막 씬을 요구했다.

그러자 휴고는 싱긋 웃으며 우리를 향해 고개를 꾸벅 숙인 다음 연기를 시작했다.

“에, 에나..... 그, 그건.....”

겉모습은 처절해 보였지만, 그가 내뱉은 대사에서 느껴지는 감정은 그렇지 않았다.

다른 배우들과 다르게 [여우 구슬]의 의미를 알고 있는지, 에나가 입을 통해 [여우 구슬]을 전해주는 상황을 실감 나게 연기하기 시작했다.

‘호오?’

딜런 또한 굉장히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으며 휴고를 지켜봤다.

내장이 관통당해 제대로 말도 못 하는 상황에 이입했는지 몸에 식은땀까지 흘리며 연기에 집중했다.

다른 사람들은 1분 길어봤자 2분이었던 오디션이 지금 3분을 넘어가고 있었다.

집중한다. 빠져든다.

지루했던 현장에 돈 주고도 구하기 힘든 ‘명품’을 본 것처럼 우리는 전부 휴고의 연기에 빠져들었다.

“.....감사합니다.”

-짝짝짝짝짝짝!!!

다른 배우들과 달리 끝까지 연기를 해낸 휴고를 향해 심사위원들의 박수가 쏟아졌다.

에드워드 선생님도 나름 만족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옷 좀 추스르세요.”

“네.”

땅에 엎드려 처절한 연기를 했기 때문에 휴고의 옷은 엉망으로 헝클어져 있었다.

휴고는 대충 먼지를 털어내고 옷을 다시 원상태로 되돌렸다.

나는 옷매무새를 정리한 휴고에게 궁금한 점을 물었다.

“안녕하세요. 제임스라고 합니다.”

“아! 안녕하십니까! 휴고 정이라고 합니다! 작가님 소설 재밌게 보고 있습니다!”

“하하. 감사합니다. 왠지 그러실 것 같았어요.”

맡겨진 배역에 온전히 이입하려면 그만큼 작품에 대한 사랑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예상일 뿐이지만 휴고는 이번 [블랙 & 월드]의 배역을 맡기 위해 내 소설을 몇 번이나 봤을 정도의 이해도를 갖고 있었다.

“한국 구미호에 대해 조사를 많이 했나요?”

“네. 한국 구미호에 대해 많이 조사했는데도 상대한테 [여우 구슬]을 먹인다는 말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한국에서 구미호를 주제로 한 영화나 드라마, 만화 등을 찾아봤습니다.”

“흐음..... 그래서 결론을 어떻게 내렸죠?”

“[여우 구슬]은 구미호의 또 다른 간이고, 그 간을 다른 인간한테 먹이면 구미호의 힘이 전승되며 ‘영영 인간이 되지 못하는’ 이야기로 생각했습니다.”

“하하..... 이거 제가 생각하던 내용과 비슷하네요.”

휴고와의 대화가 끝난 뒤 딜런한테 살짝 눈치를 줬다.

“심사 결과는 내일 연락이 갈 겁니다. 아마 좋은 소식이 있을 겁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심사평이었다.

“감사합니다.”

휴고가 오디션 장 밖으로 나가자 나는 딜런을 향해 말했다.

“연기력은 굉장히 좋아요. 명품이라는 말이 생각날 정도로 감정이입과 표정 변화도 좋네요.”

“몸에 흐른 식은땀을 보셨습니까? 감정을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다는 겁니다. 정말 연기를 잘하시는데요?”

“뭐. 이변만 없으면 케이 역할은 정해졌네요.”

내 말에 심사위원들은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

우리는 잠깐의 휴식시간을 가지고 주인공 에나 역할 오디션을 시작하기로 했다.

“작가님. 아까랑 생각이 여전히 똑같으십니까?”

“네. 다만, 배우들의 연기력을 보고 판단하겠다는 생각도 여전합니다. 어차피 에나와 구미호 두 가지 버전으로 봐야 할 테니까요.”

딜런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논란은 배우들의 연기력과 스토리로 잠재워질 거라고.

하지만 애초에 그런 것을 전부 제외한 상태에서 배우들을 캐스팅하면 논란 자체가 생기지 않는데, 굳이 위험을 깔고 가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쯧. 까칠하기는..... 그런 녀석이 따로 연락해서 배우 한 명 오디션 보게 해달라고 하냐?”

에드워드 선생님의 말에 딜런은 처음 듣는 소리인 듯 나를 바라봤다.

“진짜입니까?”

“1차 오디션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짧게 인연이 있던 배우인데 그 배우가 구미호 역에 어울릴 것 같아서 추천을 했을 뿐입니다.”

딜런은 그 말에 유쾌한 웃음을 지으며 나를 바라봤다.

“물론 실력 위주로 갈 겁니다. 그 배우보다 잘 어울리는 배우가 있으면 그 배우를 픽할 예정이고요.”

“하하. 물론입니다!”

딜런의 웃음소리와 함께 오디션장으로 배우가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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