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시골촌놈인 줄 알았는데 천재작가였다-101화 (100/216)

101화. 필라테스

살아생전 헬스장이라는 곳을 가본 적은 단 한 번뿐이었다.

중학교 철없던 시절, 근육을 키워보겠다고 월리와 함께 옆 동네에 있는 헬스장에 갔었다.

운동이 처음이라 긴장 반 설렘 반으로 헬스장으로 향했었는데...

그리고 그날 집으로 그냥 돌아왔다.

‘아직도 생각나네.....’

헬스장 안에는 흑인과 히스패닉 인종들이 뒤섞여 있었다.

그들의 근육을 보고 한 번 충격받고, 그들한테 나는 땀 냄새에 한 번 더 충격받고, 헬스장 시설에 마지막으로 충격받았다.

‘필라테스..... 힘들까?’

혹시 모를 필라테스의 고통을 생각하며 두려움에 떨고 있을 때 갑자기 누군가 휴게실 안으로 들어왔다.

-벌컥!

황급히 문을 여는 소리에 고개를 돌려 보니 그곳에는 필라테스 강사 옷을 입은 금색 머리카락을 가진 미인이 있었다.

“제, 제임스 작가님?”

“......예?”

날 알고 있는 건가?

여성은 내 얼굴 앞으로 제 얼굴을 들이밀었다.

마치 내가 진짜 제임스 작가임을 확인하려는 사자와도 같았다.

“지, 진짜 제임스 작가님! 꺄아아아악! 어떻게에에에에! 진짜 제임스 작가님이야아아아아!!!!!”

여성의 괴성과도 같은 비명소리에 당황스러웠다.

***

자신을 아리아나라고 소개한 여성은 [나인 드래곤]의 우수회원이라고 할 정도로 내 열렬한 팬이라고 했다.

“이, 이것도 있어요!”

아리아나는 내가 말하지도 않았는데 어디선가 포스터 하나를 가지고 와서, 내 얼굴이 모델처럼 그려져 있는 그림을 보여줬다.

“.....일러스트?”

“맞아요! 유명한 일러스트레이터 ‘리암’ 씨가 제임스 작가님의 얼굴을 포스터로 만든 거예요!”

“......”

리암이 그랬다고?

“물론 개인적으로 만든 거라고 비용은 절대 받지 않고 일만 명 추첨을 통해서 받았어요!”

“네에.....”

“그리고 이거! 이것도 봐주세요!”

아리아나는 그다음에 핸드폰 케이스를 내밀었다.

그곳에는 [드래곤 마스터]의 아기 드래곤 하스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다만, 표지의 버전이 아닌 아직 출시되지 않은 일러스트 도감 모습으로 되어있었다.

‘아. 이게 그건가......’

며칠 전에 받은 연락을 통해 양장본의 인기를 더하기 위해 SC라스틱 측에서 굿즈를 판매하는 게 어떻겠냐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승낙했는데 벌써 판매가 진행됐을 줄이야...

실행속도가 어마어마했다.

‘작은 열쇠고리 같은 걸 만든다고 해서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아리아나는 들고 있는 핸드폰 케이스부터 시작해서, 몸 곳곳에 [드래곤 마스터] 굿즈의 흔적이 있었다.

밴드, 공책, 핸드폰 케이스, 목걸이 등 눈에 보이는 것만 그 정도였다.

“언제 시작할 거야?”

아까 만난 직원인 브리드는 소란을 떨고 있는 아리아나를 보자마자 휴게실 안으로 들어왔다.

필라테스를 시작해야 하는데 계속 휴게실 안에서 손님이 당황할 정도로 요란법석을 떨고 있었기에 어쩔 수 없이 중재하러 들어온 것이었다.

-까득!

“.....천천히 해.”

브리드는 아리아나의 이빨 갈리는 소리를 듣자마자 휴게실에서 조용히 나갔다.

“그나저나 작가님!”

“......네.”

“여기는 어쩐 일이세요?”

극과 극의 온도 차에 당황한 제임스는 일단 이곳에 온 이유를 말해주었다.

“요즘 글만 쓰면서 계속 의자에 앉아있거든요. 그래서 몸이 많이 망가진 것 같았는데 필라테스가 좋다길래 해보려고요.”

“아! 그런 거라면 진짜 필라테스가 제격이죠! 필라테스가 자세 교정에 정말 좋거든요! 작가님처럼 의자에 많이 앉아 계시거나, 몸이 불편하다고 느끼시는 분들한테 정말 좋은 운동이에요.”

“그럼 다행이네요. 오늘은 체험 정도로 해보고 싶어요.”

아리아나의 눈빛이 열정으로 반짝였다.

“이쪽으로 오세요! 제가 하나하나 천천히 가르쳐 드릴게요!”

“......”

“얼른요!”

휴게실을 앞장서서 나가는 아리아나의 뒷모습을 보자 왠지 모르게 오한이 들었다.

지금이라도 그만둬야 하나?

***

“자아! 척추뼈 하나하나 분절해서 땅바닥에 붙여준다는 느낌으로 천천히 내려가세요! 하나! 둘! 하나! 둘!”

“끄으으으윽!”

영상으로 볼 때 ‘고작 저거 하는데 저렇게 힘들어한다고?’라고 생각한 적이 몇 번이나 있었다.

그런 안일한 생각을 했던 게 미안할 정도로 이 운동은 생각보다 굉장히 힘들었다.

“작가님 굉장히 유연하세요!”

“끄으응!”

내 고통은 아랑곳하지 않고 웃는 아리아나의 얼굴을 보니 소리칠 수도 없고, 그렇다고 팬 앞에서 찌질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 군말 없이 아리아나의 말에 맞춰 몸을 움직였다.

“자아! 그 상태로 팔과 다리를 하늘로 뻗어보세요.”

“끄으으으읍!”

언제 끝날지 모르는 지옥 같은 시간이 흐르고 흘러 50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짜악!

아리아나가 박수로 수업의 끝을 알렸다.

“오늘은 체험이니까 여기까지만 하도록 할게요! 총 30회 신청하셨으니까 주에 2회, 그러니까 내일모레 또 오시면 돼요!”

“허억..... 허억......”

웃는 얼굴에 침을 뱉을 수도 없고...

내 고통은 누가 알아준단 말인가.

나는 조용히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제 안 와야지......’

양심적으로 너무 힘들었다.

‘어차피 30회 신청해놨으니까 천천히 와야지. 내일모레 또 나오면 몸이 더 망가질 게 분명해.’

물론 전문가와 함께하는 거니 망가질 리 없겠지만, 그런 생각이 날 정도로 너무 힘들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작가님 집 주소 서류에 써주신 거 봤어요! 제가 직접 모시러 갈게요!”

“예, 예?”

“작가님의 ‘팬’으로서, 더욱 질 높은 글이 나올 수 있도록 같이 노력해야죠! 걱정하지 마세요! 저 아리아나가 작가님의 건강을 전적으로 책임질게요!”

“아뇨, 아뇨! 아리아나 씨도 다른 수업 있으실 텐데 그 시간을 저한테 쏟으시다니요! 그냥 제가 스스로 관리할게요!”

“아뇨! 작가님의 글을 위해! 제가 희생해야죠! 그리고 시간은 걱정하지 마세요! 어차피 손님은 많지 않거든요!”

아리아나의 눈이 집념으로 불타오르고 있었다.

‘망했네.’

아무래도 망한 것 같았다.

“그으.....”

“맡겨주세요! 작가님의 건강은 팬인 제가 챙겨드릴게요!”

저 열정을 말리긴 힘들어 보였다...

난 결국 한숨을 푸욱 내쉬며 말했다.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

이유가 어찌 되었든 간에 아리아나 씨가 열과 성을 다해 운동을 가르쳐준다고 하니 고맙긴 했다.

솔직히 죽도록 힘들었지만, 그래도 집으로 돌아와 샤워를 하고 소파에 앉아있으니 굳어졌던 몸이 풀리는 것 같아서 운동을 하는 편이 확실히 오래 글을 쓰는 데 좋겠다고 생각했다.

“......”

멍하니 소파에 앉아있기를 몇십 분.

‘글을 쓰고 싶긴 한데......’

이 이상 글을 쓰려면 사전 조사가 필요했다.

몸이 풀린 지금 글에 대한 생각을 계속하고 있긴 했지만, 딱히 무언가가 뚜렷하게 생각나지는 않았다.

‘산부인과에 다른 시신들이 있는 이유......’

그리고 단지 병원에 들어간 것만으로 소리는 어째서 다른 사람들이 죽어 있다는 것을 안 걸까?

‘동물을 초월한 감각? 그건 너무 현실성이 없는데......’

소파에 드러누운 상태로 소리의 주인이 그런 말을 내뱉을 만한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봤다.

‘원래의 목적은 그거였지. 병원장의 비밀.’

앞으로의 전개에서 병원장이 지금까지 어떠한 일을 저지르고 있었는지에 대해 나오게 된다.

하지만, 그 전에 소리가 어떤 식으로 다른 사람들이 죽은 걸 알게 됐는지부터 설정해놔야 했다.

“흐음.”

나는 소파에서 일어나 다시 컴퓨터를 켰다.

‘어디 보자.’

나는 파일을 열어 지금까지 적어 놓았던 시놉시스를 확인해봤다.

‘어째서【질투】라는 이름이 들어갔는지도 시놉시스에 적지 않았네.’

너무 몸만 앞섰다는 느낌이 들었다.

‘일곱 개의 죄악과 일곱 개의 주선..... 난 어째서 죄악이라는 말을 고집한 걸까?’

막상 정할 때는 별 이유가 없었다.

죄악이라는 말이 들어감으로써, 범죄자의 심리를 특정하기 쉽게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어째서 범죄자가 그들을 죽인 이유가 【질투】 때문인지를 먼저 파악해야 하는데......’

시놉시스는 전체적인 스토리를 적어 놓고 그에 따라 내용을 풀어나가야 하지만, 애석하게도 추리소설이다 보니 시놉시스를 자세히 적지는 못했다.

‘누군가를 범죄자로 삼을지부터가 관건인데..... K-막장을 도입해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만, 그것보다는 조금 더 디테일한 무언가가 있으면 좋겠는데.’

천재적인 범죄자.

히어로 영화에 나오는 ‘조크’처럼 천재적으로 사람들을 어떤 식으로 괴롭혀야 사람들이 절망을 느낄지 알고 있는 그런 범죄자였으면 했다.

‘범죄자들의 얼굴을 보면, 차이가 있지.’

사람들은 범죄자들의 얼굴을 잘 구별하지 못한다.

사이코패스라 불리는 범죄자들의 얼굴은 그 악명과는 달리 무섭게 생긴 편은 아니다.

오히려 미남미녀라고 불려도 될 정도로 깔끔한 외모를 가지고 있는 자들도 있었고, 그중에는 똑똑하거나 부자인 집안에서 태어난 사람들도 많았다.

픽션, 픽션 말하지만, 실제의 일을 바탕으로 적는다면 오히려 영화보다 끔찍한 일이 벌어질 수 있는 게 현실이다.

‘질투에 관련되어 있는 사건은..... 솔직히 엄청 많지.’

죄악이라는 이름이 들어간 만큼, 질투 때문에 벌어진 살인사건은 엄청나게 많았다.

인터넷에 들어가 찾아보니 내가 아는 것보다 더욱 많은 사건들이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살인사건에 관해 조사하다가 정신을 차렸다.

“그보다 나 뭐하고 있냐..... 어째서 병원에 다른 시체들이 있다는 걸 목소리가 어떻게 알아챘는지 생각해내야지.”

다른 방향으로 빠질 뻔했다.

‘콜린과 목소리는 생각하는 바가 전부 다르지만 결국 동일인이야. 그렇다면 콜린도 어째서 병원에 들어오자마자 시신들이 있는지 알아야 해.’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럴듯한 무언가가 생각나지 않았다.

“끄응..... 설정 오류인가?”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형사의 감..... 같은 걸로 해도 괜찮을 것 같기는 한데.....’

-톡..... 톡....

적막한 집안에 고민의 소리가 퍼졌다.

무언가 잡힐 듯 안 잡힐 듯 머리가 복잡해지며, 결국 생각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후우......”

결국 생각하는 걸 포기한 나는 일단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선 밥부터 먹고 생각하자. 먹으면 뭔가 생각나겠지.”

어차피 오늘 운동도 열심히 했으니 많이 먹어도 상관없겠지.

***

생각이 길어질수록 떠오르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걸 경험상 알고 있었다.

이럴 때는 그냥 계속 거리를 걷거나, 아무런 생각이 안 날 정도로 몸을 지치게 하거나, 밥을 먹는 것 같이 글에 관련되지 않은 일을 하는 것이 가장 좋았다.

“피자!”

그렇게 피자를 시켜놓고 텔레비전을 켜서 유명 영화를 보며 글에서 최대한 멀어지는 행동을 했다.

가장 좋아하는 페페로니 피자와 함께 심장이 벌렁거릴 정도로 달콤한 로맨스 영화를 보던 중, 문득 무언가 생각났다.

‘그러고 보니 오늘 캐서린 책이 출판되는 날이었지?’

영화를 다 보면 저녁이긴 하지만 그래도 늦은 저녁은 아니었다.

‘나가볼까?’

각 지역마다 소설책에 대한 반응은 전부 다른 편이었다.

이 LA에서 캐서린의 소설이 과연 어느 반응을 보일지 궁금해졌다.

‘소화도 시킬 겸 나가보는 것도 좋겠지.’

그러다 글에 대한 실마리를 잡을 수도 있으니까.

나는 눈앞의 페페로니 피자를 입안 가득 집어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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