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시골촌놈인 줄 알았는데 천재작가였다-102화 (101/216)

102화. 홍보

영화를 다 보고 나자 시간은 이미 저녁을 넘어 밤이 되어가고 있었다.

‘지금 시간에 열려 있는 서점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대형 서점의 경우 지금도 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으으...... 근육통.”

하루가 지나지 않았음에도 몸에 근육통이 찾아왔다.

천천히 걸으면서 근육통을 풀어내는 것도 좋겠지.

‘저번에 갔던 그곳으로 갈까?’

분위기도 좋고, 거리도 걸어서 가기 딱 좋으니 괜찮을 것 같았다.

“안 팔렸으면 나라도 한 권 사줘야지.”

***

저번에 갔었던 서점에 도착하니, 문은 열려있었지만 불은 꺼져 있었다.

“너무 늦었나?”

폐점 시간인 것 같아 다시 돌아가려고 발걸음을 돌리는 순간,

귀를 비집고 들어오는 세월이 가득 담긴 목소리가 내 발걸음을 붙잡았다.

“서점에 볼일이 있어서 온 게 아닌가?”

다시 고개를 돌려보니 서점 입구에 closed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있는 할아버지가 계셨다.

“하하..... 닫으신 줄 알고 돌아가려고 했죠.”

“내가 팻말을 걸어두기 전까지는 이 서점은 항시 열려있다네. 그래, 그래서 무슨 일로 왔는가?”

“서점에 무슨 일이냐뇨? 당연히 책 사러 왔죠.”

“끌..... 그렇긴 하지.”

“지금 들어가면 직원분들한테 민폐 끼치는 게 아닌가 싶네요.”

“어차피 나밖에 없네. 마무리는 언제나 나 혼자 하거든.”

“그럼 잠시 들어가도 될까요?”

“아직 문을 닫지 않았으니 들어오는 건 손님 마음이지.”

할아버지의 말에 웃으며 서점 안으로 들어갔다.

아무도 없는 고요한 서점은 어딘가 무섭기도 했다.

“.....저건 더 높아졌네요.”

“내 작품이지.”

서점 중앙에 내 소설책으로 이루어진 탑은 더욱 높아져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는 내 친필사인이 적힌 책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막상 이렇게 보니 부끄러웠다.

‘내 책이 무슨 골동품처럼 전시되어 있네......’

북 페스티벌에서도 양장본이 전시되어 있긴 했지만, 이 서점같이 고풍스럽고 오래된 분위기를 풍기는 곳에 평범한 사인이 그려진 책이 전시되어 있으니 기분이 묘했다.

“그나저나 무슨 책을 사려고 온 건가?”

“혹시 [너와 같은 그림자를 밟고 싶어]라는 책이 오늘 들어왔나요?”

“아. 그 책? 이리 오게나.”

할아버지는 나를 더욱 안쪽으로 데려갔다.

장르 소설 신간들이 모여있는 장소에 [너와 같은 그림자를 밟고 싶어]라는 자극적인 제목이 적혀 있는 소설책이 있었다.

‘표지가 생각보다......’

제목에 그림자라는 말이 들어갔기에 검은색 표지로 나올 줄 알았는데, 붉은색에 장미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잘 팔리던가요?”

“이름 없는 신인 작가인데 처음부터 잘 팔리겠나?”

“하긴, 그렇죠?”

“그래도 신인 작가치고는 많이 팔린 편이지. 옆에 있는 다른 책들과 비교해서 보게나.”

책이 높게 쌓여있는 다른 신인 작가들의 책과 다르게 캐서린의 책은 그 높이가 많이 줄어들어 있었다.

이는 다른 책들과는 다르게 나름 많이 팔렸다는 걸 의미했다.

“어디 보자..... 한 11권 정도 팔렸군.”

“많이 팔린 건가요?”

“참고로 자네 책은 하루에 160~170권 정도 팔린다네. 네 종류라고는 하나 한 권당 40권 이상은 팔린다는 의미지.”

“흠흠!”

뜨악할 만한 판매 부수 차이에 헛기침만 연신 해댔다.

“한동안 자네 책이 발매되지 않아서 그렇지, 발매되는 날에는 그냥 죽음일세. 직원들이 울상을 지을 정도로 말이야.”

“그 정도인가요?”

“각 도시로 책이 분배되다 보니 우리 서점에는 100~200권 정도 들어와도 많이 들어오는 걸세. 그럼 직원들은 책을 사지 못해. 금세 팔려버리니까.”

“아.....”

힘들어서 울상이 아니라 내 책은 정작 구매할 수가 없어서 울상이라는 말이었구나.

“최근에 발매를 시작한 [리턴 패션 디자이너]는 지금 아예 찾아볼 수도 없네. 들어올 때마다 귀신같이 팔리니 원......”

정말 탑이 쌓여 있는 내 책들 중에는 [리턴 패션 디자이너]가 보이지 않았다.

‘많이 팔리나 보네.’

인터넷 소설이다 보니 다른 것들보단 인기가 적을 줄 알았는데 그래도 인기는 여전한 것 같았다.

“아무튼 아는 사람의 책인가?”

“친구 동생 책인데 확인해보게요. 이거 한 권 주시겠어요?”

“돈을 지불하는 대신 여기에 사인해 주는 건 어떤가?”

할아버지는 또 다른 딜을 제시하며 최근에 발매된 [리턴 패션 디자이너] 1권을 가지고 오셨다.

“가지고 계시네요?”

“직원들은 몰라도 내 건 빼놔야지. 손자 거 하고.”

“하하. 이번에도 전시하시게요?”

“하면 안 되나?”

“상관없죠. 그럼 그렇게 하세요.”

나는 할아버지가 내민 책에 사인을 해주었다.

아무래도 연륜 때문이신지 사업수완이 대단하신 것 같았다.

“그나저나 그 책 재밌나?”

“할아버지가 보시기엔 조금 심장에 안 좋으실 수도 있으세요.”

“그럼 봐야지.”

“하하하하! 할머니 없을 때 보세요! 들키면 뻘쭘하실 거예요!”

“클클클클.....!”

사소한 농담을 주고 받은 뒤, 나는 캐서린의 책을 들고 서점 밖으로 나왔다.

‘솔직히 재미는 있어. 내용도 신선하고.’

내가 원고 검토를 해준 이후로 캐서린의 책은 여느 기성 작가와 비교해도 손색없을 수준이었다.

수정방식을 알려준 이후로 원고를 쓰는 스타일이 무척 나와 닮아있기도 했다.

‘그럼 내 팬들도 좋아할 것 같은데,,, 한 번 추천해볼까?’

나도 내 파급력을 어느 정도 알고 있기에 이걸 올리는 순간 캐서린의 책이 단번에 인기를 끌 확률이 높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예 일면식도 없는 작가면 바로 올렸을 텐데 지인이라 추천을 해주는 것도 괜히 찔린단 말이지.’

곰곰이 생각하던 나는 이내 게시글을 작성했다.

『제임스 권(Dragon one)

【사진】

여러분 오랜만에 뵙습니다. 최근 집필 때문에 SNS를 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독자님들과 소통도 할 겸 Live 방송까지는 아니지만 제가 개인적으로 재밌게 읽었던 책을 꾸준히 추천하려고 합니다!

신인 작가, 기성 작가, 중간 작가 등 빛을 보지 못한 작품들을 추천할 생각입니다!

첫 번째로 소개해드릴 작품은 [너와 같은 그림자를 밟고 싶어]라는 책으로 신인 ‘로즈마리’ 작가의 책입니다!』

캐서린의 책을 필두로 여러 좋은 작품들을 소개해주고 싶었다.

‘내 영향력을 이용해서 묻힌 작품들을 추천하는 방식으로 팬들과 소통하면 좋을 것 같은데.....’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저장 버튼을 눌러 게시글을 올렸다.

“나도 라울의 추천을 받았는데 뭐. 그리고 재밌다는 말도 거짓이 아니고.”

친구 여동생이라는 말도 적지 않았으니 상관없겠지.

나는 휴대폰을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

[나인 드래곤]에서 ‘드래곤 투 내꼬야’로 활동하고 있는 캐서린의 등급은 처음에는 그리 높지 않았다.

하지만 제임스 작가와 친하다는 점과 그의 잔잔한 근황을 알려주는 점에서 캐서린은 높은 평가를 받아 우수 회원에 올라가 있었다.

이미 카페 회원들 전체가 알 정도로 ‘드래곤 투 내꼬야’는 제임스 작가의 근황을 알려주는 비서나 다름없었다.

그와 반대로 ‘드래곤 투 내꼬야’가 작가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캐서린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직업 또한 알려지지 않았는데, 이유는 카페 규칙 때문이었다.

자신의 직업을 알리지 않고 편견없이 오직 팬심만을 게시글에 표현하라는 의미에서였다.

어쩌다 직업이 밝혀지는 사람도 없잖아 있었지만, 자신이 작가라는 것을 알려도 자신의 작품을 알리지는 않았다.

「<제목 : 드래곤 투 내꼬야님 근황 아시는 분?>

요즘 드래곤 투 내꼬야님이 활동을 안 하시네..... 드래곤 원님이 일주일마다 활동하고 계셔서 더 자세한 tmi는 이분을 통해서 알고 싶었는데.....」

짧게 올라온 게시글에 사람들은 하나둘 들어와 반응을 보였다.

-그거 작가님이 이제 ‘드래곤 투 내꼬야’님이 살던 고향에서 떠나서 그렇다고 들었어요.

-드래곤 원 작가님이 얼굴을 드러내신 이후부터 동네가 시끄러워질까 봐 이사를 했다고 SNS에 올리셨더라고요.

-‘드래곤 투 내꼬야’님도 요즘 카페 활동이 뜸한 이유가 일 때문에 바빠서라고 말하더라고요.

그렇게 게시글에 하나둘 댓글을 달고 있던 그들의 컴퓨터 혹은 핸드폰에 갑자기 알람이 울렸다.

-헐?

-님들아 작가님이 SNS에 글 올리셨는데 보셨어요?

-이제부터 다른 책들을 품평해주신다는데요?

갑자기 빠른 속도로 게시글이 올라오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서둘러 제임스의 SNS로 들어갔다.

새로운 작품 발간 얘기도 없어서 따분하던 차에 흥미 있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거 재밌겠는데요?

-요즘에 작가님이 Live 활동도 안 하시고, 이제 얼굴을 드러낸다고 하셔서 기대했다가 안 하셔서 조금 지루했었는데 이거 잘됐네요.

-지인들 말로는 작가님이 책을 정말 많이 읽으신다고 하시더라고요. 작가님이 재밌다고 느끼신 책들 읽어보고 싶었는데 잘됐네요!

-그나저나 [너와 같은 그림자를 밟고 싶어] 이 책 저도 재밌게 읽었어요.

ㄴ아시는 책인가요?

ㄴ[리턴 패션 디자이너] 연재하실 때 심심해서 순위에 있는 소설들을 읽어본 적이 있거든요. 거기에 있었어요.

-샐러쉬에서 나름 유명한 글이에요. 상당히 야해서 수위 등급이 있던 글이었는데 재밌었어요. 물론 작가님 상태에 따라 약간 오르락내리락거리는 느낌이 없잖아 있었지만요.

-저도 이 소설 읽어본 기억이 있어요. 달콤한 로맨스를 기대하시고 보시면 큰코다칩니다. 하드한 로맨스 소설이에요. 진짜 야하고.... 작가님 상상력에 경악할 겁니다.

-정주행 중인 소설입니다. 샐러쉬에서는 2권 후반까지 연재되었고, 1권이 오늘 발매된다고 들었는데 깜빡하고 있었어요.

-개인적으로 좋아하던 책인데 작가님도 알아주셔서 뭐랄까 뿌듯하네요!

-방금 살짝 읽고 왔는데..... 오우야..... 남편이 읽고 뻘쭘해하네요.

사람들은 제임스 작가가 올린 게시글을 확인하곤 [너와 같은 그림자를 밟고 싶어]가 연재되고 있는 샐러쉬로 향했다.

그리고 그 반향을 묵묵히 지켜보고 있던 캐서린은 무릎을 끌어안고 있던 상태에서 일어나 컴퓨터 앞에 앉았다.

“......실환가.”

SNS가 올라온 지 30분도 되지 않았는데 유료 결제율이 몇 배나 치솟고 있었다.

이런 경우를 살아생전 처음 보는 캐서린은 어안이 벙벙한 상태로 모니터 화면을 넋놓고 바라봤다.

***

‘생각보다 재밌을 것 같기도 하고.’

어린 시절부터 책을 잡히는대로 읽어왔기에 재밌는 책과 재미없는 책들을 많이 알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재밌다고 느낀 책들이 소리소문도 없이 사라진 적도 많다 보니 늘 마음속에 안타깝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책들을 추천해주고 사람들의 반응을 지켜보는 게 나름 재밌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전에..... 이것부터 해결해야지.”

피자도 먹었겠다, 서점도 갔다 왔겠다, 충분히 소화도 시켰겠다.

이제는 슬슬 글에 다시 손을 대야 했다.

소리가 어째서 병원에 다른 시신들이 있는지 눈치챘는지 다시 신중하게 생각해봤다.

‘탐정으로서의 감 아니면, 탐정으로서의 경험과 지식.’

나는 곰곰이 생각하다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굳이 고민할 필요 없이..... 이 둘 모두를 넣어보면 어떨까?”

생각이 정리되자마자 키보드 위에 손을 가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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