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화. 장기매매
다시 한번 정리해보면 소리는 콜린 본인이다.
그렇다 보니 콜린의 지식과 본능이 청각화한 것이 목소리인 것이다.
콜린의 심연, 무의식에 존재하는 것까지 기억하기 때문에 콜린은 자신이 모르는 걸 목소리가 알고 있다고 착각하는 걸로.
‘콜린의 본능과 경험, 감. 지능적인 부분을 청각화된 것을 목소리의 정체로 하자.’
굳이 하나를 정할 게 아니라 두 가지 전부를 사용한다면, 소리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이끌 수 있으리라.
그렇게 정해졌으니 다시 글을 써볼까?
***
콜린의 말에 FBI는 병원에 또 다른 시신이 있는지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병원장실 창고에서 작은 흑인 여자아이의 시신이 발견되었다.
‘여, 여기 시신이 있습니다!’
FBI 요원의 말에 콜린은 병원장실로 향했다.
병원장실 창고에서 발견된 초록색 캐리어 안에서 5살 정도로 추정되는 여자아이가 죽은 지 얼마 안 된 듯한 상태로 비닐에 꽁꽁 싸여 있었다.
‘부패 냄새를 막으려고 비닐을 몇 겹이나... 그리고 몸에 있는 상처..... 저건.....’
여자아이의 몸 전체에 바늘로 꿰맨 듯한 상처가 나 있었다.
[낄낄낄낄!]
그 모습에 소리는 뭐가 그리 재밌는지 웃음을 참지 못했다.
[참으로 재밌어]
평소와 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인간은 역시 재밌어]
세월의 시간을 흠뻑 머금은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서로가 서로를 잡아먹지]
여러 남자를 잡아먹을 것 같은 매혹적인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인간은 자신이 가진 욕망을 억제할 수 없어.]
유치원에나 입학했을 법한 어린아이 목소리가 들려왔다.
‘닥쳐.’
[낄낄낄낄!]
여러 가지 목소리로 변한 ‘소리’는 낄낄 웃으며 내 귀에 계속 속삭였다.
[이 여자아이는 어떻게 죽었을까? 형태로 보아 몸 안의 장기가 하나도 없겠는데?]
‘......’
[너는 이러고도 인간임을 자신하는 거야? 그냥 나한테 네 몸을 주는 게 어때? 그렇다면 내가 완벽한 인간이 무엇인지 보여줄게.]
‘......닥치고 있어.’
[킥킥! 그렇게 말하니 잠시 조용히 있어줄게. 말만 해..... 언제든지 도와줄 테니까.]
의미심장한 말을 내뱉은 소리는 그 말을 끝으로 종적을 감추었다.
어차피 몇 시간 후에는 또다시 나타나 귓가에 종알거리리라는 것을 알기에 콜린은 신경 쓰지 않고 눈앞의 시체를 확인했다.
‘어째서 캐리어에.....’
‘병원장의 위치는?’
‘그게..... 파악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분명 연락이 됐는데......’
‘.....그렇군.’
‘뭔가 짐작되는 게 있으십니까?’
콜린은 멍하니 시체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건 내가 맡은 의뢰와 또 다른 사건이다.’
‘예?’
‘아마 병원장의 짓이겠지. 아니..... 정확히는 협박을 받은 거려나?’
‘협박이라니요?’
‘시신에 있는 상처들..... 저건 장기를 빼낸 흔적이다. 어린아이 장기는 비싸게 팔리니까.’
‘다른 사람이라는 걸 어떻게 확신하십니까?’
‘광기가 없어.’
‘예?’
‘그 녀석은 사람을 죽이는데 재미를 붙였다. 돈이 목적이 아니야, 자신의 비틀어진 욕망을 채우려고 저지른 일이지. 근데 이건 아무리 봐도 돈을 목적으로 저지른 범죄니까.’
그 말에 FBI 관계자가 멍하니 시신을 바라봤다.
‘근데..... 그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뭘 말하는 거지?’
‘이 건물에 또 다른 시신이 있을 거라는 걸 말입니다.’
‘......’
‘확신이 있으셨던 겁니까?’
콜린은 잠시 침묵하더니 이내 중얼거렸다.
‘건물 구조.’
‘예?’
‘쓸데없는 구조가 많다. 그래서 유추해본 것뿐..... 거기에.....’
묘한 냄새가 흘렀다.
병원이어서 느껴지는 소독약이나 약품 냄새와는 다른 무언가 요상한 냄새가 느껴졌다.
‘팀장님.’
‘무슨 일이야?’
아이를 조사하던 요원 중 한 명이 서류 파일 하나를 들고 다가왔다.
‘이 캐리어..... 사건 당일에는 없었다고 합니다.’
‘......뭐?’
‘당시 병원 곳곳을 다 사진으로 기록해놨었는데 이런 캐리어는 없었습니다.’
아이의 시체가 있던 초록색 캐리어는 병원 어디에도 없었다.
‘직원들한테 물어보니, 이런 캐리어는 본 적이 없다고 하더군요.’
그 말에 콜린은 인상을 찌푸렸다.
‘도전장인가.....’
‘그게 무슨......’
‘이 병원을 더 뒤져봐. 아마 장기매매의 흔적이 보일 수도 있다. 그리고 병원장의 행방도 계속 찾아보고.’
‘예!’
이 아이는 ‘그’ 녀석이 죽인 게 아닌, 또 다른 피해자다.
‘가해자가 또 다른 가해자를 협박에 범죄를 저질렀다......’
넌 대체 뭐가 하고 싶은 거지?
콜린의 머릿속은 점점 더 복잡해져 갔다.
***
아리아나는 제임스 작가가 운동할 시간이 되자마자 집으로 찾아갔다.
-띵동.
초인종을 누르고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려봤지만, 정작 제임스는 응답이 없었다.
‘무슨 일 있으신가?’
혹여나 무슨 일이 생긴 게 아닐까 걱정되는 마음에 다시 초인종으로 손가락을 가져갔다.
“누구세요?”
그러던 그때 갑자기 누군가가 말을 걸었다.
고개를 돌려보니 커리어우먼 같은 여성이 양손 가득 짐을 든 상태로 서 있었다.
“그쪽이야말로 누구신지.....”
“그 집에 사는 사람의 누나인데요?”
“누나? 제임스 작가님한테는 누나가 없다고..... 아. 혹시 사촌누나신가요?”
“네. 그런데요? 그쪽은 누구시죠? 제임스한테 여자친구는 없다고 들었는데......”
그 말에 아리아나는 기분이 좋아졌는지 몸을 비비 꼬며 말했다.
“헤헤..... 아리아나라고 해요. 2층에 있는 헬스장의 필라테스 강사예요.”
“필라테스.....?”
그 말에 메디슨은 대충 어떻게 된 상황인지 알 수 있었다.
“오늘 예약된 날짜인데 안 내려와서 오신 건가요?”
“네. 그런데..... 계속 문을 안 여셔서요. 혹시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닌지 걱정되네요.”
“얘가 밖에 있을 리는 없는데..... 비켜봐요.”
아리아나가 자리를 비키자 메디슨이 여벌 열쇠로 제임스의 집 문을 열었다.
“제임스!”
집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모니터를 켠 채 침대에서 쿨쿨 자고 있는 제임스가 보였다.
“야! 제임스! 그만 일어나!”
메디슨이 제임스의 몸을 흔들자, 그제야 제임스의 눈꺼풀이 깜빡였다.
“뭐, 뭐, 뭐야?”
“지금 저녁이야! 이 멍충아! 그만 일어나!”
제임스는 비몽사몽한 눈으로 메디슨과 아리아나를 번갈아 바라봤다.
“......뭐야? 왜 둘이 같이 있어..?”
부스스한 얼굴로 제임스는 멍하니 그 둘을 바라봤다.
“뭘 했길래 아직도 자고 있는 거야? 지금 저녁 6시야!”
“......벌써?”
“그래! 지금 시간을 봐봐!”
누나의 말에 핸드폰을 바라봤다.
충전하고 자지 않아서인지 전원이 완전히 꺼져 있었다.
고개를 돌려 침실에 걸려 있는 시계를 확인하니 저녁 6시 하고도 30분이 흘러가고 있었다.
“.....그러네?”
“어제 대체 뭘 했는데 지금까지 자고 있는 거야?”
“하아아암......”
나는 까치집이 된 머리를 긁적이며 컴퓨터 의자에 앉았다.
“쩝...... 아직 마무리하려면 조금 더 걸리겠는데.....”
“뭔데 그래?”
“추리 소설 신작.”
그 말에 아리아나의 눈빛이 반짝 빛났지만 결코 모니터 앞으로는 다가오지 않았다.
보고 싶은 마음은 굴뚝이어도 팬으로서 저 작품이 얼마나 작가님한테 중요한지 알고 있었다.
무엇보다 지금 본다고 해도 감질나기만 할 뿐, 일부분만 본다면 오히려 악마의 심연 속으로 가라앉을 뿐이었다.
“마무리 못 했어?”
“마무리고 뭐고 간에..... 고작 며칠 만에 완결을 내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지 뭐.”
저번처럼 잠도 자지 않고 무리한다면 모를까, 지금은 활동이라는 활동을 전부 하면서 잠과 밥도 챙겨가며 하다보니 글을 쓰는 데 어느 정도 시간이 걸렸다.
글도 중요하지만 건강도 신경 써야 하니까.
“아. 아리아나 죄송해요. 그러고 보니 오늘이 예약한 날짜였죠?”
“네. 작가님이 안 오셔서 집으로 찾아왔어요. 그나저나 오늘 운동하실 수 있으시겠어요?”
“끄응...... 글쎄요? 솔직히 잠든 지 몇 시간 되지 않아서 많이 피곤하긴 하네요.”
그 말에 메디슨 누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뭐..... 그래도 예전보다는 나아졌다고 해야 하나?’
과거에 비해서 확실히 나아지긴 했지만, 일반인의 기준으로 볼 때 아직까지도 자신의 몸을 아끼지 못한다는 것만큼은 확실했다.
“그나저나 누나. 들고 있는 거 뭐야?”
“뭐긴? 식재료지. 너 또 식재료 사는 거 깜빡해서 집에 아무것도 없을 게 뻔해서 사 왔지.”
“.....누나는 나를 너무 잘 안다니까.”
나는 메디슨이 든 봉투를 주방으로 옮기며 멍하니 서 있는 아리아나를 향해 말했다.
“오신 김에 같이 식사나 하고 가세요. 근데 오늘은 운동이 불가능할 것 같아요. 밥 먹고 더 자고 싶거든요.”
아리아나는 제임스의 얼굴을 바라봤다.
딱 봐도 피곤으로 범벅된 얼굴에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대신 내일은 반드시 오셔야 해요. 내일도 안 오시면 또 집으로 찾아올 거예요.”
“하아아암..... 네. 그렇게 할게요.”
누나는 내 말에 가져온 식재료로 간단하게 요리하기 시작했다.
“제임스.”
“왜?”
요리를 하던 누나는 소파에 멍하니 앉아있던 나를 불렀다.
“그러고 보니 택배 왔더라? 경비아저씨가 받아놨는데 무거워서 가지고 오진 못했어.”
“택배? 택배 올 게 없을 텐데......”
택배라.....
나는 문득 루시아가 보내준다던 양장본이 생각났다.
“아!”
“뭔지 생각났어?”
“응. 아. 바보 그걸 깜빡하고 있었네.”
“음식 다 되려면 시간 좀 걸리니까 내려가서 받아와.”
“그래야지.”
나는 주섬주섬 밖으로 나갈 준비를 했다.
“저도 같이 갈게요.”
“네. 그러세요.”
뻘쭘하게 앉아 있던 아리아나도 지금이 기회라는 듯이 내 옆으로 다가왔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가는 와중에 아리아나가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뭐가 온 건가요?”
나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양장본이요.”
“......예?”
“[드래곤 마스터] 양장본일 거예요. 홍보랑 선물 목적으로 10권 정도 보내주신다고 하셨거든요.”
“양장본......”
그 말에 아리아나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기대하는 어린아이처럼 눈을 빛냈다.
“아... 갖고 싶으세요?”
“그야..... 물론이죠. 하지만 달라고는 말하지 않을 거예요. 저는 작가님 팬이니까 정당한 방식으로 양장본을 차지할 거예요.”
“정당한 방식? 추첨에 당첨되셨나요?”
그 말에 아리아나는 고개를 저으며 손가락을 동글게 말았다.
“돈으로 살 건데요?”
“......”
뭐. 나름 정당한 방식이긴 하네.
우리는 1층에 도착해 경비실로 향했다.
“한스. 오랜만이에요.”
이 빌딩의 시큐리티를 책임지는 경비실에 백발이 성성하신 할아버지 한 분이 앉아계셨다.
“어쩐 일인가?”
“제 택배가 왔다고 들었거든요.”
“아. 저거?”
한스 할아버지는 손가락으로 뒤쪽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상당한 크기의 박스가 있었다.
“구루마 빌려줄 테니까 내일 아침에 가져오시게.”
“네. 감사합니다.”
옆에 접혀있던 구루마를 편 다음 상자를 들어올렸다.
묵직!
‘책 10권이 들어가 있어서 무거울 거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10권이 들어가 있다고 해도 양장본이라 그런지 더 무거웠다.
“도와드릴게요.”
아리아나는 나와 함께 구루마 위에 상자를 올렸다.
“택배 맡아주셔서 고마워요.”
손을 대충 휘적거리는 한스 할아버지를 바라보며 우리는 다시 집으로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