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화. Live 방송
제임스의 손에 들려 있는 양장본과 그와 같이 동봉되어 있는 도감 형식의 공책은 아름답다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였다.
아리아나는 택배 박스를 열자마자 그것들에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그와 반대로 제임스와 메디슨은 무덤덤한 얼굴로 양장본을 평가하고 있었다.
“예쁘게 나왔네?”
“케이스도 확실히 알루미늄으로 만들어서 그런지 중세 느낌이 물씬 나긴 하네.”
“누구 줄 건지는 정해 놨어?”
“일단 부모님하고 고모부네에 보내고..... 나머지 8개는 뭐.... 월리한테도 일단 하나 보낼까?”
나는 루시아가 문자로 보내준 포장 방법을 따라서 양장본을 포장했다.
확실히 빌에이든 미디어가 준비한 양장본 가격보다 두 배는 비싸서 그런지, 무게와 질감 모든 것에서 자본의 맛이 났다.
“흐아아아......”
그렇게 포장하고 있을 때 옆에서 감탄해 마지않는 아리아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옆을 보니 아리아나가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양장본을 만져볼까 말까 고민하고 있었다.
손을 내밀었다 도로 가져가는 광경을 목격하고 있자니 딱 봐도 ‘하, 한 번쯤 만지는 건 괜찮지 않을까?’ 아니면 ‘아니야! 이건 팬으로서 건들면 안 돼!’라고 마음속에서 천사와 악마가 속삭이고 있는 것 같았다.
“만져도 상관없어요.”
어차피 만져도 닳는 것도 아닌데 그 정도는 허용해주었다.
“저, 정말요?”
“네.”
고작 만지는 것 자체만으로 아리아나는 뭐가 그리 좋은지 얼굴에 웃음을 그리며 드래곤 가죽 같은 느낌인 표지를 손가락으로 슥슥 만졌다.
조심성이 가득한 행동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튀어나올 뻔했지만, 팬으로서 그저 호기심에 조심조심 만져보고 싶어 했던 그녀의 행동에 고마움을 느꼈다.
“밥 다 됐어.”
“마침 포장도 끝났는데 잘됐네. 고마워.”
***
로건 에이든의 얼굴에는 최근 항상 여유로운 미소가 걸려 있었다.
제임스 권과 계약한 이후로 변변찮았던 출판사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성장하고 있는데 그 누가 기쁘지 않겠는가.
특히 SNS에 올라오는 유명인들의 감상문을 읽을 때마다, 마치 제임스 작가의 마음에라도 투영된 것인지 기쁘기 그지없었다.
로건의 최근 취미는 바로 최근에 발매를 시작한 [리턴 패션 디자이너]의 품평을 읽는 것이었다.
[벤자민의 삶에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드래곤 원 작가가 마음만 먹으면 얼마나 잔혹해질 수 있는지 보여주는 소설이었다. 【쟈니 스미스(소설 평론가)】]
[소설을 보고 눈물을 흘린 적이 몇 번인지 모르겠다. 아침부터 내리 울기 시작하여 저녁까지 눈이 마를 틈이 없었다. 생각할수록 비극적인 벤자민의 시련이 너무 슬펐다.【헬리아 고메즈(유명 가수)】]
[벤자민이 겪은 일은 미국 사회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이라 더욱 가슴 아팠다.【카이리 코릭(ABA 아나운서】]
[마지막 장면에서 나는 더 이상 생각을 이어나갈 수 없었다. 책을 다 읽은 후 내 머릿속을 지배한 건 작가의 강냉이를 털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작가한테 경고한다. 얼른 2부 작성하는 게 신상에 좋을 거다.【로지 나미(SFC 여성 플라이급 챔피언)】]
[재미없는 책을 읽고 작가를 욕한 적이 많지만, 재미있는 책을 읽고 작가를 욕한 적은 처음이다. 얼른 2부 내놔! 【ABA 저널리스트】]
[드래곤 원 작가의 소설은 항상 깊은 여운에 빠지게 한다. [블랙 & 월드]도 [사막의 전갈]도 그랬다. [드래곤 마스터]는 그 경우가 적었지만..... [리턴 패션 디자이너]는 그 여운의 강도가 너무 심하다. 보는 순간부터 우울하고 글을 적는 지금까지도 우울하다. 【제리 오즈(프로듀서】]
[인터넷 소설을 읽는 법을 몰라 책이 발매되자마자 새벽부터 책을 구매했다. 우리 아들이 드래곤 원의 열렬한 팬이라 내가 새벽부터 구매한 책을 건네니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런데 잠시 후 일을 마치고 돌아오니 아들이 엉엉 울고 있었다. 책임져라 드래곤 원. 【킨 켐페러(래퍼)】]
[이번 소설을 읽고 나는 정말 많은 생각을 했다. 드래곤 원 작가는 항상 현실을 글에 반영했다. 이번 소설은 지금까지 나왔던 소설 중에서 그런 부분이 가장 짙게 느껴졌다. 벤자민의 삶은 솔직히 말해서 주인공이라 불릴 만큼 대단하거나 특별한 삶은 아니었다. 그저 평범했기에 가장 위대했던 그런 삶이었다. 그런 삶을 살아온 벤자민한테 신은 마치 과거로 회귀한 대가를 주려는 듯했다. 작가는 대체 이 글을 쓸 때 무슨 생각을 하며 쓴 것일까? 우리가 과연 기억을 잃은 상태로 과거로 간다면 무언가 바꿀 수 있긴 한 걸까? 【알렉스 화이트(대학 교수)】]
평론글을 읽으며 흐뭇하게 웃던 로건은 문득 이틀 전에 제임스 작가가 올린 SNS 게시글이 생각났다.
‘책 추천이라......’
유명 배우, 가수, 작가들이 추천하는 것들은 사람들의 입을 타고 순식간에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경우가 많았다.
대표적인 좋은 예로 뮤튜브를 운영하던 인기 없던 일본 개그맨을 빌보드 1위 가수가 재밌다고 SNS에 영상을 공유하면서 인기를 끈 경우가 있었다.
그만큼 유명인들의 파급력은 무시할 수 없었고, 광고주들이 유명인들을 좋아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우리 측 책을 추천해주시면 좋을 텐데......’
독자들은 바보가 아니다.
한두 번이라면 그러려니 하겠지만 여러 번 추천을 받으면 독자들도 이상하게 여길 것이다.
게다가 제임스 작가가 연줄로 아무 책이나 홍보해줄 만한 사람도 아니었고...
“하지만......”
책을 추천한다는 것 자체는 굉장히 좋은 일이었다.
하늘의 별만큼 많아진 작가들만큼 수많은 작품들이 있지만, 대부분의 작품들이 사람들의 시선도 받지 못하고 사라져 버린다.
자신이 좋아하던 작가의 작품이 뜨지 못하고 결국에는 사라질 때, 그만큼 슬픈 것도 없었다.
‘이걸 일회성으로 그치지 않고..... 정말 주기적으로 진행해주시면 좋을 텐데......’
작가님 성격상 또 까먹고 한참 뒤에야 SNS 활동을 하실 것이다.
개인적인 의견일 뿐이었지만 로건은 이 이벤트성 활동을 조금 더 자주 해주셨으면 했다.
단지 빌에이든 미디어 때문이 아니라 이 출판업계의 성장 자체를 위해서라도 말이다.
‘작가님한테 문의해볼까?’
로건은 휴대폰을 들고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제임스한테 전화를 걸었다.
***
저녁 7시에 아침밥을 먹은 뒤 소파에 앉아 있었다.
‘졸려......’
아리아나도 돌아갔고, 누나는 하룻밤 자고 간다고 편한 복장으로 내 옆에 앉아 영화를 보고 있었다.
영화 내용이 굉장히 따분했기 때문에 나는 소파에 앉은 상태로 서서히 고개가 숙여지고 있었다.
-삐리리리리~♪
갑자기 들리는 전화벨 소리에 황급히 고개를 번쩍 쳐들었다.
‘누구지?’
지금 시간에 딱히 전화할 사람이 없었기에 휴대폰을 들어 발신인을 확인해봤다.
‘로건?’
지금까지 빌에이든 미디어와의 대화는 에밀라와 함께 했기에 로건한테 전화가 온 건 굉장히 뜻밖의 일이었다.
“누군데 전화를 안 받아?”
“아..... 아무것도 아니야. 전화 좀 받고 올게.”
나는 베란다로 나가 로건의 전화를 받았다.
“안녕하세요. 로건? 어쩐 일이시죠?”
-그동안 무탈하셨습니까 작가님? 하하하하! 이렇게 갑작스럽게 전화 드려서 죄송합니다. 혹시 지금 전화 괜찮으십니까?
“네. 괜찮아요.”
-이틀 전에 올리신 SNS에 관해서 여쭙고 싶은 게 있어서 전화 드렸습니다.
‘이틀 전?’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틀 전 저녁에 서점에서 나오며 올렸던 SNS가 생각났다.
“아..... 네네. 기억나네요.”
-혹시 활동 주기를 어떻게 생각하고 계신지 알 수 있을까요?
“글쎄요..... 원래는 그냥 생각날 때마다 올릴 예정이었거든요.”
즉흥적으로 생각한 일이라 뚜렷하게 계획 같은 걸 생각해두진 않았다.
-그렇다면..... 혹시 실례가 되지 않으시다면 이걸 Live 방송으로 해보시는 건 어떠실까요?
“Live 방송으로요?”
-네. 작가님이 올리신 게시글을 보니 문득 아이디어가 떠올라서요. 요즘 독자님들이 작가님이 활동도 많이 안 하시고, 책 발매일에 관해서도 딱히 정보가 없다 보니 작가님하고 소통하고 싶으신 분들이 많으시거든요.
“음......”
-거기에 얼굴을 보여주는 Live 방송 약속도 하셨는데 지금까지 안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솔직히 얼굴을 드러내고 방송을 해도 기껏해야 대화를 주고받는 정도인데, 차라리 이 기회에 이걸 활용하면서 소통하시는 게 어떠십니까?
좋은 생각이긴 하지만...... 그만큼 시간이 있을까?
-일주일에 한 시간씩은 어떠십니까?
“그 정도면 무리는 아닌데..... 조금 생각을 해볼게요.”
독자와의 약속과 소통을 항상 한다, 한다, 해놓고 하지 않고 있었기에 계속해서 마음에 걸리긴 했다.
“근데 제가 혼자 방송하기가 괜찮을지 모르겠네요.”
-그건 저한테 맡겨주시면 됩니다. 카메라 세팅이나 방송하는 법 등은 저희가 전부 준비해드리겠습니다!
“그렇다면..... 예. 해보죠.”
-정말입니까?
“네. 딱히 거절할 이유도 없고, 무엇보다 독자님들하고 약속을 계속 지키지 않은 게 마음에 걸렸거든요. 책을 추천하는 일은 처음이지만..... 제가 재밌다고 생각한 책을 추천하면 되겠죠 뭐.”
-그럼 최대한 빠르게 준비하겠습니다!
“근데 이걸 왜 대표님이 저한테 직접 말씀하시는지.....”
굳이 대표가 나서서 나한테 권할 이유는 없었다.
에밀라가 얘기한다면 나름 이해는 하겠다마는 대표가 다이렉트로 말하니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개인적으로 저도 재밌는 책이 세상에 많이 알려졌으면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거기에..... 작가님의 인지도를 더 올리는 것도 좋다고 봅니다.
“인지도를요? 제가 인지도가 없는 편은 아니지 않나요?”
-미국 내에서라면 그렇죠. 현재 작가님 책이 해외 진출 준비를 마쳤습니다. 이후 해외 팬들도 생겨..... 아니 이미 있기는 하지만, 해외에도 거대한 팬덤이 생길 수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지금부터라도 활동을 조금씩이라도 늘리는 게 어떨까 싶었고요.
“해외 팬덤이라...... 근데 그게 쉬울까요?”
각 나라마다 문화가 다르다 보니 재미없어하는 나라도 분명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한국 같은 경우, 베르나르 베리베르의 소설이 유독 인기가 있었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아니었다.
-그래도 안 생길 거라고 생각하고 가만히 있는 것보단 뭐라도 해보는 게 좋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건 그렇죠. 그럼 이번 주말에 한 번 해볼까요?”
-저야 상관없지만...... 그렇게 빠르게 진행하셔도 괜찮으실까요?
“다음 주는 정말 바쁘거든요. 차라리 이번 주에 끝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렇게 진행해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긍정적으로 생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뭘요. 제가 더 고맙죠.”
전화를 끊고 쌀쌀한 밤기운을 느끼며 하늘을 바라봤다.
하늘 정 가운데에 떠 있는 달이 아름다웠지만, 이제부터 얼굴을 드러내고 Live 방송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그 아름다움을 온전히 느낄 수 없었다.
‘부담되긴 하지만... 잘 되겠지?’
걱정을 많이 하면 오히려 독이 된다는 것을 알기에 제임스는 이만 집 안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