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화. 양장본 사인회
제임스의 방송은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한 시간 동안 제임스가 한 일이라고는 책을 추천하는 것과 더불어 현재 쓰고 있는 [일곱 개의 죄악 : 【질투】]이 어느 정도 진행되었는지 정도였다.
하지만 마지막에 언급한 [드래곤 마스터 2부 : 블랙 드래곤의 진실]에 관해 들은 시청자들은 흥분을 감출 수 없는 모양이었다.
-뭔가 꼬인 것 같지만..... 그게 어디야! [드래곤 마스터 2부]! 얼른 내놓으라고! SC라스틱!
ㄴ어이 형제. 그만 진정하라구~ 아직 [드래곤 마스터] 양장본 배포도 하지 않았다구~
-그나저나 SC라스틱이 [드래곤 마스터 2부]를 출판할 수 있으려나? [사막의 제국]이 다음 주 출판일 텐데.
-윗댓글 읽어보니까 그것도 그러네? 드래곤 원 작가님의 작품은 공장을 몇 개나 돌려야 한다고 하던데... 보통 한 달 주기로 책이 출판되니까..... 최소 두 달은 걸리지 않을까?
ㄴ그러니까. 일단 드래곤 원 작가님 소설은 몇십만 권을 찍어낸 다음에 팔기 시작해야 하니까. 고작 몇만 권 정도로는......
ㄴ음...... 출판사가 욕을 배불리 먹겠지.
-하아..... 작가님 소설은 솔직히 너무 좋은데, 기다리는 게 못할 짓이야..... 내가 누군가의 작품을 이렇게까지 기다리게 될 줄은 몰랐는데
ㄴ나도 그래. 좋아하는 작가의 소설은 언제든지 서점에서 구매할 수 있었으니까. 그것도 아니라면 인터넷 배송으로 받을 수 있었는데 드래곤 원 작가님의 소설은 그렇지 않잖아?
사람들은 입을 모아 [드래곤 마스터 2부]의 내용이 궁금하다고 외쳤고, 더불어 제임스 작가의 소설은 너무 구하기 힘들다는 볼멘소리를 내뱉었다.
하지만 그것도 하나의 재미라는 사람도 있다 보니 딱히 큰 이슈가 되지는 않았다.
-그래도 일주일에 한 번 방송을 해준다고 하니까. 궁금한 점을 그때 다 물어보면 되겠네.
-뭔가 숨통이 트이는 느낌이네. 이런 경우는 처음인데?
어차피 시간이 흐르면 해결될 일. 사람들은 이제부터라도 제임스가 독자들과 소통한다는 점에서 만족하는 듯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다음 날이 되었다.
제임스가 Live 방송을 한 날보다 기껏해야 하루 뒤였지만, 이 날은 제임스 작가의 팬들이 가장 기대했던 날이기도 했다.
『Jasper smith
【사진】
드디어! 드디어! 드디어! 드디어! 드디어!』
어떤 팬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서점에 줄 서 있는 사진을 SNS에 올리기도 하였다.
그가 올린 게시글에는 댓글들이 우후죽순 달리기 시작했다.
-[사막의 제국]을 사러 새벽부터 서점에 갔는데 줄이 너무 길어요...... :-Z
-어린아이를 위한 소설책이라는 말에 아내가 새벽부터 나가서 사 오라고 등을 떠밀더군요. 하아..... 지금 저도 줄 서 있는 중인데, 저보다 빨리 온 사람들도 있습니다.
ㄴ저랑 똑같으시네요..... 아이들이 [드래곤 마스터]를 너무 재밌게 읽어서, 교육에 좋다고 아내가 새벽에 저를 내쫓았습니다.
ㄴ저도 마찬가지예요. 게임하는 것보다 책을 읽는 게 아이들 교육에 좋지 않겠냐며..... 그래도 윗분들처럼 내쫓아지진 않았으니 다행이네요. 전 제 발로 나왔거든요.....
이러한 일을 우려해서 SC라스틱은 SNS와 홈페이지에 며칠 전부터 글을 올려둔 상태였다.
『SClaseutig
12월 1일 월요일에 출판되는 [사막의 제국 1부 : 4개의 보물]은 총 200만 부를 준비하였습니다. 120만 부를 준비했던 [드래곤 마스터]와 달리 넉넉하게 준비하였습니다.』
-부족할 것 같은데?
-[드래곤 마스터]도 120만 부 완판되고 나서 사람들이 계속 찾은 걸 기억하지 못하는 건가?
-그래도 초동 200만 부를 준비했다는 건 SC라스틱이 깨달은 게 있긴 한가 보네.
ㄴ깨닫지 못하면 회사로 쳐들어갔지.
-200만 부도 솔직히 부족하기는 한데, 그래도 공장하고 계약까지 하면서 최대한 출판하는 거니 더 이상 뭐라고 할 말이 없네.
다른 소설이라면 120만 부도 정말 많이 준비한 거겠지만, 제임스 작가 소설은 보통의 것들과는 달랐다.
120만 부도 금방 완판되었다 보니 솔직히 200만 부도 넉넉한 거라고는 딱 잘라 말할 수 없었다.
그래도 독자들은 저번 사태를 보고 깨달은 것이 있는 SC라스틱의 행동에 그나마 만족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SC라스틱의 이벤트는 이게 전부가 아니었다.
드래곤 원 작가의 팬들이라면 누구나 기대하고 있던 가장 중요한 이벤트가 남아 있었다.
『SClaseutig
【사진】
12월 1일 월요일.
드디어 여러분이 기대하시고 기다리던 [드래곤 마스터] 양장본 사인회를 진행합니다!
당첨되신 분들은 안내해 드린 시간에 맞춰서 [The First Bookstore In : LA]로 오시면 됩니다.
추첨 사이트는 ▶ [★]로 들어가시면 확인하실 수 있으니 참고 바랍니다!』
바로 [드래곤 마스터 1부 : 혼혈 드래곤] 양장본 사인회 개최 이벤트였다.
추첨을 통해서 9,990권을 판매하며, 그뿐만 아니라 사인회까지 개최되는 이 이벤트는 오후 1시부터 시작하여 저녁 6시까지 진행된다.
제임스는 북페스티벌에서 상당히 많은 사인 경험을 했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약과에 불과했다.
1만 권이라는 사인은 웬만한 베스트셀러 작가들도 하기 힘들어할 정도였다.
그렇다 보니 독자들한테 양해를 구해 사인 시간과 날짜를 조정하였으며, 무엇보다 사인회에서 바로 사인을 해주는 게 아니라 미리 사인을 한 양장본을 보내는 형식으로 진행하기로 했다.
“끌끌.”
“.......”
-슥슥......
서점 할아버지는 영혼 없이 기계적으로 사인을 하고 있는 나를 보며 끌끌 웃음 지었다.
***
어제 Live 방송이 끝나고 갑자기 걸려온 루시아의 전화를 받고 서점으로 향했다.
마침 그 서점은 내가 자주 가는 할아버지가 있는 서점이었기에 길을 찾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근데 왜 부른 거지?’
사인회라고 해서 독자들 앞에서 사인을 해주며 간단하게 소통을 하고 양장본을 주는 그런 형식으로 진행될 줄 알았다.
그래서 루시아와 함께 있는 스티븐한테 그런 말을 하니 고개를 저었다.
“무리죠.”
“예?”
“1만 권이라는 분량이 적은 건 아니니까요. 보통 이런 식의 사인회는 100~200 많아 봤자 500 정도입니다. 그것도 몇 시간이 걸리는데 1만 권이나 직접 사인을 하려면 정말 오래 걸릴 겁니다.”
“아......”
스티븐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북페스티벌도 기껏해야 천 권에서 2천 권 정도 하셨을 겁니다. 사인회다 보니 독자님들과 소통하면서 사인해서 더 많이 하신 거라고 착각하셨을 거예요. 그 정도도 손목이 뻐근하다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아......”
“그리고 저번에 말씀드렸다시피 사인회는 하루만 진행되는 게 아닙니다. 5일 동안 나누어 진행됩니다.”
“.....5일이나요?”
“예. 보통 1만 권 정도 사인회는 세계적으로 돌아다닐 때 가능한 수치입니다. 작가님의 인지도와 팬덤 규모 때문에 여기 미국에서만 양장본을 1만 권이나 발매한 거구요.”
“......”
SC라스틱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들이 많다 보니 빌에이든 미디어와 달리 사인회에서 더욱 철두철미했다.
‘5일이나 진행될 줄은 몰랐는데......’
생각해보면 하루 만에 1만 권을 사인하는 건 말이 되지 않기는 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사인회에 관해서 더 자세히 물어볼 걸 그랬네.
“LA에 있는 대형 서점들 다섯 곳을 돌아다닐 생각입니다. 내일 할 사인회는 이곳에서 진행되죠. 작가님은 아시는지 모르시겠지만, 이곳은 세계에서 선정한 아름다운 서점 중 한 곳입니다. 이곳에 오는 독자들이 이 서점의 아름다움과 함께 작가님의 소설을 즐기셨으면 하네요.”
“......”
“오늘 하다못해 500권 정도는 사인을 미리 해놔야 내일 하기 편하실 것 같아서 작가님을 모셨습니다.”
방송을 한 뒤 글이나 더 쓸까 했지만, 스티븐의 말을 들어보니 이번엔 글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1만 권 사인을 하신 분이 몇 분 있었는데, 손가락이 부서지는 일은 없더군요. 혹시 몰라 찜질팩은 준비해놨으니 괜찮으실 겁니다.”
탈출로를 막아버리는 스티븐의 말에 나는 묵묵히 사인을 시작했다.
***
최대한 많은 분량에 사인을 해둬야 한다고 해서 어제와 오늘 오전까지 사인을 몇 권이나 했는지 셀 수 없을 정도였다.
하루에 2천 권. 5일 동안 1만 권을 해야 한다고 하니 많은 분량에 미리 사인을 해놔야 했다.
내가 사인을 하면 옆에 있던 SC라스틱 직원이 포장을 시작했다.
포장 자체는 어렵지 않은 일이라 직원 한두 명이 내 옆에 착 달라붙어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는 루시아가 있었다.
‘신입사원이 원래 그렇지.’
복잡한 일을 시키기에는 불안하니 그냥 내 옆에서 간단한 일이나 하면서 보조 정도나 하라는 것이겠지.
아무튼 나는 또다시 기계적으로 사인을 시작했다.
무언가 다른 짓을 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끄을.....”
그리고 그 모습을 서점 주인인 할아버지가 묘한 눈길로 바라봤다.
“사인을 볼 때마다 느끼는 건데 자네 글씨 참으로 더럽군.”
“.....”
할아버지 말대로 나는 악필이었다.
이유야 많지만 가장 큰 이유는 딱히 글씨체 때문에 문제가 될 일이 생길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은 컴퓨터로 문서 작성이 많아졌는데, 글씨체가 좋아봤자 어디다 써먹겠는가.
‘내가 이렇게 사인을 하게 될 줄 누가 알았겠어.’
이 악필이 미국 전역에 퍼질 줄 누가 알았겠나.
할아버지의 말에 씁쓸하게 웃으며 계속 사인을 진행했다.
“지금도 앞에 사람들이 몰려있는데 내일 되면 얼마나 몰려있을지..... 끌.”
오늘 하루는 사인회 때문에 [사막의 제국]을 들여놓지 않았지만, 내일이 되면 창고에서 잘 포장되어 있는 [사막의 제국] 판매를 시작할 것이다.
200만 부나 발매했지만 모자랄 게 분명하다는 걸 알고 있는 할아버지는 내일쯤 되면 사람들이 바글바글 모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들어온 [사막의 제국]에 사인 가능한가?”
“지금 제 꼴을 보시고도 사인해달라는 말을 하시는 거예요?”
힘들어 죽겠는데, 할아버지는 또 사업수완을 펼치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그 말에 곰곰이 생각하다가 말했다.
“하긴, 그것도 그렇지? 근데 자네 밥은 먹었나?”
“네.”
어제 서점에서 사인을 계속 진행하고, 집에서 푹 쉬고 밥까지 먹고 온 상태였다.
하지만 얼굴에 피로감 때문인지 밥도 안 먹고 사인만 하고 있는 걸로 알고 계신 것 같았다.
“쯧. 커피라도 가져오겠네. 자네 얼굴 보고 독자들이 그냥 돌아갈 수준이야.”
“......그 정도로 심해요?”
“그래.”
집필과 방송 거기에 사인회까지 있어서인지, 잠은 푹 자고 있지만, 피로와 스트레스는 쌓이고 있는 것 같았다.
할아버지가 커피를 타러 가자 옆에 있던 루시아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작가님 괜찮으세요?”
“괜찮아요. 뭐..... 한 주 정도는 바빠도 상관없겠죠. 곧 집필도 끝나니 푹 쉴 수도 있고. 그보다 SC라스틱 측은 괜찮아요?”
어제 내가 던진 폭탄 발언과 더불어 [사막의 제국] 출판까지 진행하다 보니 난리도 아닐 것이다.
“저는 작가님 사인회를 도와주면 되니까요!”
‘피했구나.’
어쩐지 계속 반복 작업을 하는데도 얼굴에 미소가 가득하나 했더니.
“작가님. 어느 정도 끝내셨습니까?”
사인회장을 살피고 온 스티븐은 내 옆에 포장되어 있는 패키지들을 바라봤다.
“곧 2,000권 끝나요.”
“그럼 슬슬 오픈할 준비를 해도 되겠습니까?”
“네. 그러세요.”
그렇게 사인회장의 문이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