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시골촌놈인 줄 알았는데 천재작가였다-108화 (107/216)

108화. 양장본 사인회 (2)

애틀랜타 주에 살고 있는 레이시는 몇 주 전에 양장본 추첨에 당첨이 됐다.

“에휴.”

다른 이들은 기뻐할 테지만 어째서인지 레이시의 얼굴에는 귀찮음이 묻어나 있었다.

“야!”

레이시는 당첨되었다는 화면이 켜져 있는 핸드폰을 들고 남동생 방을 박차고 들어갔다.

“아! 씹! 뭔데!”

옷을 갈아입고 있던 남동생이 허둥지둥 옷을 입는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레이시는 오히려 역겹다는 표정을 지으며 들고 있던 핸드폰을 내밀었다.

“뭔데?”

남동생은 ‘또 뭔 개짓거리냐’라는 표정으로 레이시의 핸드폰을 들여다봤다.

“.....어?”

핸드폰을 들여다본 남동생의 얼굴에는 당혹함이 첫 번째요, 두 번째론 입꼬리가 귀에 걸리기 시작했다.

“아즈아아아아아아아-!!!!!”

“시끄러!”

“끼야후-!!!!!”

평소 책을 좋아하지 않는 레이시는 드래곤 원이 누군지조차 알지 못했다.

레이시가 당첨된 이유는 자신의 남동생인 루니가 가족들부터 시작해서 지인과 친척들의 이름을 빌려 추첨을 넣었기 때문이다.

루니 본인은 당첨되지 않았고, 그 중 오직 레이시의 이름으로만 당첨되었다.

“아싸!”

루니는 그리도 좋은지 침대 위에서 폴짝폴짝 점프했지만, 레이시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300나 되는 책을 산 게 뭐가 그렇게 좋다는 건지..... 에휴. 그 돈이면 옷이나 한 벌 사겠다.”

“어차피 내 돈인데 뭐 어때!”

“그나저나 어떻게 갈 건데?”

“응?”

“12월 1일이라는데? 이날 월요일 아니야? 너 학교는?”

“.......어?”

“학교를 빠지더라도 LA라고? 비행기를 타고 가야 하는데 너 괜찮겠어?”

대학생인 레이시와는 다르게 루니는 아직 고등학생이었고, 거기에 LA에 가려면 호텔 숙박비와 비행기 티켓값도 필요한 상황이었다.

레이시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지만, 용돈 생활을 하고 있는 루니한테는 부담이 가는 금액이었다.

거기에 학교도 며칠씩이나 빠져야 하니 아직 겨울방학이 아닌 루니한테는 무리였다.

“어, 엄마한테 부탁하면......”

“일하러 가겠지.”

“아빠는.....”

“바보냐?”

“하아.... 씨. 어떻게 하지?”

고민하는 루니한테 레이시는 어려울 게 뭐가 있냐는 듯 툭 말했다.

“그냥 다른 사람한테 양보해. 어차피 가지도 못하는데 당첨돼봤자 무슨 소용이냐?”

남동생의 좌절 어린 얼굴을 보며 레이시는 고소하다는 듯 방을 나가려 했다.

하지만 다음으로 들려오는 루니의 말에 걸음을 멈췄다.

“누, 누나가 대신 가주면 안 돼?”

“미쳤냐? 그날 아르바이트 있는 거 몰라?”

“아씨.... 그럼 어떻게 하지? 이거 정말 놓치면 안 되는 건데.....”

“그게 그렇게 가지고 싶냐?”

“누나는 모르지? 드래곤 원 작가님 양장본 가격이 얼만지 말이야.”

책이 비싸면 얼마나 비싸겠는가.

레이시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네가 말했잖아 $300이라고.”

“아니 그게 아니라! 이거 한정판 발매라고! 최근에 유명세를 타게 돼서 한 권에 $10,000에 사겠다는 사람도 있단 말이야!”

“......뭐?”

그 말에 레이시의 얼굴이 서서히 굳어지기 시작했다.

“저번 [블랙 & 월드] 양장본도 그 정도 가격에 거래된 적이 있다고 뉴스에 나온 적도 있어! 물론 그건 1,000권 한정이었고 이건 10,000권 한정이지만! 그래도 상당히 비싸게 거래될 거라고! 물론 팔 생각은 없지만.”

“흠... 그런 미친 사람들이 있단 말이야...? 그 정도면 내 대학 학비로 충분하겠는데.”

미국은 부모님한테 대학 학비를 대달라고 하지 않고, 스스로 장학금을 타든가 대출을 하여 대학을 다니는 경우가 많았다.

아무리 아르바이트를 한다 해도 돈이 모자란 게 학생이다 보니, 루니의 말에 레이시의 얼굴이 먹잇감을 문 사자처럼 돌변하는 건 당연했다.

“내가 대신 가줄게. 다만, 얼마 줄 건데?”

“으, 응?”

“뭐가 응? 이야. 비행기 티켓값부터 시작해서, LA에서 묵을 호텔비까지 내줘야지. 거기에 아르바이트도 빠져야 하니까 그 비용도 줘야 하고.”

“.......”

루니의 얼굴이 썩어들어 갔다.

양장본을 살 돈만 모아놓은 루니한테 너무 큰 지출이었다.

“거기에 수고비도.”

물론 줘야 하는 것들이다.

남한테 대신 가달라고 할 수 없으니 레이시한테 부탁해야 하는 건 맞지만, 그래도 그 지출을 제대로 감당할 수가 없었다.

“다, 다섯 달 용돈으로 어떻게 안 될까.....?”

“흐음..... 뭐. 그 정도로 해줄까?”

“지, 진짜? 진짜지?”

“그래. 이 누나가 귀여운 동생을 위해서 그 정도로 양보해줄게.”

“끄악! 고마워 누나!!!!”

모자라면 팔면 되니까.

그런 레이시의 생각을 모르는 루니는 헤벌쭉 웃는 얼굴로 연신 고맙다는 인사를 건넸다.

***

레이시와 루니 남매뿐만 아니라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추첨에 가족과 지인, 친척들의 이름으로 참여했다.

조금이라도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였지만, 그 때문인지 자신이 아닌 가족이 당첨된 사람들은 루니와 같은 상황에 빠졌다.

‘돈이 되는 소설.’

[블랙 & 월드] 양장본이 비싸게 팔렸다는 소식에, 지인이 당첨된 소식을 숨기는 경우도 허다했다.

그와 반대로 가족이나 친척이 당첨되었으면, 소설을 받고 나서 판매하자는 의견도 많았다.

양장본 가격이 한화로 대략 35만 원이나 되다 보니 솔직히 굉장히 비싼 축에 속했다.

알루미늄 케이스에, 도감 일러스트 등을 포함했어도 비싸다는 말이 많았지만, 웃돈을 주더라도 사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었다.

이는 SC라스틱도 어느 정도 생각을 했었던 부분이었기에 어느 정도 방지를 해놓은 상태였다.

“이름을 적으라고요?”

“네. 작가님의 가치를 떨어트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어젯밤 서점에서 제임스는 스티븐한테 당첨자들의 명단을 받았다.

명단에는 내일 올 당첨자들의 이름들이 적혀 있었다.

“되팔이를 방지하기 위해서입니다.”

사인만 적혀 있는 것과 그곳에 이름이 적혀 있는 사인의 가치는 확연히 다르다.

당첨자한테서 양장본을 구매했는데, 그곳에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이름이 적혀 있으면 소장 욕구를 떨어트릴 수도 있었다.

이름을 지우자니 흔적이 남아 가치가 손상될 수 있었고, 그렇다고 이름이 남아있으면 찜찜할 수밖에 없었다.

무분별하게 이벤트성 아이템을 뿌리고, 그 아이템에 상징조차 남기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는지 스티븐은 이미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시간이 더 걸리겠네요.”

“이니셜로만 남기셔도 상관없습니다. 무엇보다 일만 권이니 그렇게까지 되팔이가 심하진 않을 겁니다.”

“그래요?”

“사람 심리가 한정판 개수가 적으면 적을수록 더 비싸게 사고 싶어 합니다. 천 권은 그럴 수도 있지만 만 권은 그리 심하지 않으리라 봅니다.”

“그런데도 적어야 하나요?”

“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서 말이죠.”

“......”

그렇게 내 손목은 더 혹사당했다.

***

사인회가 시작되고 사람들이 물밀듯이 들어오리라 생각했지만, 포장된 양장본마다 이름이 적힌 포스트잇이 붙어 있었기에 그에 맞는 순서대로 한 명씩 서점에 있는 사인회장으로 입장했다.

“꺄아아아아아악!”

첫 번째 주인공은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여학생이었는데, 아직 방학도 아닐 텐데 직접 찾아온 모양이었다.

“안녕하세요? 줄리아?”

“안녕하세요 작가님! 꺄아아아악!”

꿈에 그리던 제임스를 만나서 그런지 여학생은 붉어진 얼굴을 한 손으로 가리면서, 나머지 한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나는 그녀의 손을 붙잡고 악수를 해주었다.

“제 책을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꺄아아아악! 소, 손잡았어! 이, 이 손 절대 안 씻을게요!”

“......씻으세요. 제발.”

그렇게까지 날 좋아하진 말았으면 했다.

나는 직원이 내미는 포장된 양장본을 줄리아한테 내밀었다.

“가, 감사합니다!”

이름이나 이니셜은 몰라도 사인이 적힌 양장본을 그냥 전달해준다는 건 이미 팬들한테 알려졌는지 줄리아는 내가 주는 양장본을 조심스럽게 받아들었다.

-부스럭!

양장본을 받자마자 가지고 온 가방에서 주섬주섬 종이호일을 꺼내더니 정성스럽게 감싸기 시작했다.

“죽을 때까지 간직할게요! 마, 마지막으로 악수 한 번만 더 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물론이죠.”

내 손을 붙잡고 여러 번 흔든 줄리아는 감격해 마지않는 얼굴로 뒤돌아 나갔다.

줄리아가 밖으로 나가자 이번에는 줄리아 또래로 보이는 남학생이 들어왔다.

갈색 머리카락에 주근깨가 가득한 통통한 남학생이 나를 보자마자 손으로 입에 찰싹 소리가 날 만큼 세게 가렸다.

“Oh My God......!”

마치 신을 영접한 신도마냥 믿을 수 없다는 듯, 남학생은 그 자리에서 멍하니 서서 나를 바라봤다.

“얼른 와! 벤!”

벤은 아직까지도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을 지으며 종종걸음으로 내 앞으로 다가왔다.

걸음걸이가 어쩐지 뚝딱였다.

“지, 진짜 작가님이시다! 진짜 작가님이야!”

‘목소리가.....’

벤의 목소리는 상당히 억눌러져 있었다.

얼굴을 보니 부어오른 것처럼 통통했고, 행동 하나하나가 일반인들과는 사뭇 달랐다.

‘아픈 아인가?’

벤이 서 있던 곳을 바라보니, 그 뒤쪽에는 벤의 부모로 보이는 사람이 서 있었다.

그저 손수건으로 얼굴을 닦을 뿐,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고 벤의 행동을 유심히 지켜보고 계셨다.

“벤. 나를 좋아하니?”

“네! 물론이죠!”

나는 직원이 주는 양장본을 꺼내 벤한테 내민 다음, 벤을 안아주었다.

좋아하던 작가와 좋은 추억을 남기길 바라며, 해준 행동이었다.

갑작스러운 내 행동에 벤의 가족뿐만 아니라 옆에 있던 직원들도 당황한 듯 보였지만, 벤은 조용히 손을 들어 내 등으로 가져갔다.

“고마습니다. 작가님.”

“내 소설을 사랑해줘서 고마워 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었지만 벤은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다고 한다.

안면 기형과 지적 장애, 신체적 발달의 지연시키는 병으로 제임스도 처음 들어보는 병이었다.

내 책 중 [드래곤 마스터]를 가장 좋아하는 벤은 SC라스틱 측에서 준비한 추첨에서 당첨된 게 아닌, 장애아동 기부 이벤트에 당첨되어 온 것이었다.

제임스도 이미 알고 있던 내용이었고, 양장본 중 500권 정도가 몸이 불편하지만 내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한테 할당되어 있었다.

벤이 나가고 다음 사람이 들어왔다.

‘할머니하고 할아버지?’

나이가 지긋이 들어 보이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서로의 손을 붙잡고 나한테 걸어오셨다.

“책 잘 보고 있어요. 제임스 작가님.”

“아. 넵!”

조심스럽게 내밀어진 할아버지와 할머니 손을 차례대로 붙잡았다.

“우연인지, 우연이 아닌지 우리 둘 다 양장본에 당첨되었더군요. 제 아내는 [드래곤 마스터]를 좋아하고, 저는 [사막의 전갈]이 재밌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앞으로 더 열심히 쓰겠습니다.”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2부 빨리 써 주세요.”

할머니의 재치 있는 농담이었지만, 나는 그 농담에 어떤 반응을 해야 할지 잠시 머리가 하얘졌다.

마냥 농담으로만 느껴지지 않아서 그런지 장난으로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여깄습니다.”

나는 양장본을 할머니한테 내밀었다.

“고마워요.”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다시 손을 잡고 사인회장에서 나가셨다.

그 모습에 가슴이 아련해졌지만, 그 감정은 오래가지 않았다.

이 사인회는 아직 끝날 기미가 전혀 없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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