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시골촌놈인 줄 알았는데 천재작가였다-110화 (109/216)

110화. 양장본 사인회 (4)

“1월 초에 발매를 시작할 예정입니다. 순차적으로 진행될 거고 어느 나라에서 어떤 식으로 진행될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그렇군요.”

[사막의 전갈]이 영화화로 제작된다면, 실패하든 실패하지 않든 일단 소설에서 각색된 영화라고 알려질 것이다.

조금이라도 홍보를 하기 위한 방식이었다.

“대충 그때쯤이라고 예상은 했지만..... 한 달밖에 남지 않았다는 점에서 싱숭생숭하긴 하네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한 달이라는 시간 이후에 내 소설이 해외로 뻗어나간다는 소식에 기쁘기도 하면서도 부담스럽기도 했다.

“하하하하! 부담스러우십니까?”

“솔직히 그렇죠... 해외 사람들한테 제 소설을 공개하는 일이니까요. 각 나라마다 문화와 생각이 다르니 제 소설을 보고 그들이 좋아해 줄지 의문이기도 하고요.”

그 말에 스티븐은 그렇지 않다며 고개를 저었다.

“현재 작가님의 소설은 생각보다 많이 세계에 뻗어 있습니다. 저희나 빌에이든 미디어 측에서 공식적으로 진출시킨 게 아닌데도 불구하고요.”

“그렇긴 하죠.”

현재 양장본을 받으러 온 사람들 중에선 동양인도 있었고, 아르헨티나에서 왔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들이 해외 배송으로 직접 구매하여 읽은 것이다.

내 소설은 이미 알음알음 전 세계에 뻗어나가 있었다.

“해외 진출이라는 의미는 영어를 번역하여 각 나라의 언어로 출판한다는 것일 뿐. 작가님의 소설은 이미 세계인들한테 검증되었습니다. 미국이라는 나라는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있으니, 솔직히 미국에서 검증되면 세계에서도 통한다는 의미기도 합니다.”

“......그렇게 말해주셔서 고맙긴 하지만, 그래도 이 떨림이 쉽게 사라지진 않네요. 하하. 아. 한 잔 하시죠.”

“네. 작가님도 한잔하시죠.”

능숙하게 막걸리를 흔든 나는 스티븐의 잔에 막걸리를 따라주었다.

살짝 과일 향이 나는 막걸리였지만 그래도 스티븐과 루시아는 좋다는 듯 막걸리를 들이켰다.

“그나저나 내일 양장본까지 사인할 생각을 하니 아찔하네요.”

“보통 작가님들이 하루에 2,000권 정도는 하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작가님의 사인엔 글자가 많이 들어가서 더 힘드신 것 같습니다.”

“거기에 이름까지 적어야 하니까요.”

“이니셜도 괜찮은데.... 굳이 이름 전부를 적는 이유가 있습니까?”

“그래야 양장본을 받은 독자님들이 더 좋아하시겠죠.”

“음......”

스티븐은 잠시 고민하더니 말했다.

“그렇다면 이름은 저희 측에서 적는 건.....”

“아뇨. 이건 힘들더라도 제가 그냥 할게요. 오늘 고기로 체력도 채웠고, 푹 자고 일어나면 어떻게든 되겠죠.”

첫 시작을 했으면 마무리까지 내가 하고 싶었다.

“귀찮은 건 내일 생각하고 오늘은 배터지게 먹죠.”

***

저녁을 먹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침대에 눕자마자 수마에 빠져들었다.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자는 거라 잠이 잘 안 올 줄 알았지만, 등을 기대자마자 곯아떨어져 버렸다.

자기 전에 스트레칭을 해서 그런지 아침에 일어났을 땐 생각보다 몸이 가벼웠으며, 상쾌한 얼굴로 간단히 씻고 새벽부터 스티븐이 말한 서점으로 출발했다.

이번에 간 서점은 어제 서점보다는 규모가 더 컸지만, 전형적인 현대식 분위기를 가진 서점이었다.

“이쪽이에요!”

이른 새벽이라 서점이 닫혀있을 시간이었기 때문에, 어제 사전에 예고한 대로 루시아가 새벽부터 서점에 도착해 있었다.

서점에 들어가는 건 사장님한테 이미 허락을 받아놓은 상태였고, 무엇보다 사장님 역시 새벽부터 나와계셨다.

“저희 때문에 죄송해서 어떡하죠?”

중년의 백인 남성은 내 말에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호탕한 웃음을 지었다.

“하하하하! 저희 서점은 어차피 새벽 6시에 오픈합니다! 즉. 지금부터 준비를 한다는 것이죠. 그냥 조금 더 일찍 일어나서 문을 열어드린 것뿐이니 걱정하지 마세요!”

“다행이네요. 저 때문에 사장님이 일찍 일어나신 게 아닌지 걱정했어요.”

“정 미안하시면 저희도 사인 좀.....”

“하하! 그럴게요!”

아무리 괜찮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사전에 조율했던 계획보다 조금 일찍 진행되는 것이라 조금 미안한 마음이 있었다.

나는 사장님이 가지고 오시는 [사막의 제국]에 정성스럽게 사인을 해주었다.

“전시해놓겠습니다!”

“하하.... 부끄럽네요.”

사장님은 책을 끌어안고 우리를 창고로 안내해주었다.

창고에는 SC라스틱 측에서 준비해 놓은 포장이 덜 된 양장본이 놓여 있었다.

“사인회장은 준비는 해놨지만 아직 모자란 부분이 많습니다. 거긴 시끄러울 수 있으니 편하게 여기서 사인을 준비하시면 될 겁니다.”

“감사합니다.”

어제는 두 명이서 내 사인을 보조해줬는데, 한 명은 명단에 적힌 이름 체크와 동시에 포스트잇을 포장된 상자에 붙이는 걸 도와주었고, 루시아는 내 책을 포장해주었다.

“혼자서 괜찮으시겠어요?”

“해봐야죠! 그런데 작가님이야말로 괜찮으세요? 손목 안 아프세요?”

“아직은 괜찮네요. 일단 써 보면 컨디션을 확인할 수 있겠죠. 저도 전데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어차피 간단 작업이니까 체력적으로 문제는 없어요. 문제라면 헷갈릴 수 있다는 건데..... 어차피 두 시간 뒤에 직원이 또 오니까 괜찮을 거예요.”

“문재 없이 진행되어야 할 텐데..... 걱정이네요.”

표지 뒷면에 사인을 한 뒤에, 비닐 포장을 하고 알루미늄 케이지에 넣는다.

루시아가 실수하면 다른 이름이 적힌 사인이 잘못 갈 수 있기에 조심해야 했다.

“시작하죠.”

나는 또다시 사인을 시작했다.

***

제시카의 친구 아리야는 오래간만에 집으로 돌아왔다.

저녁 비행기를 타고 왔기에, 새벽에서야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아리야 왔니?”

집으로 들어가자 엄마가 앞치마를 한 상태로 아리야를 맞이해주었다.

“콜린은?”

“아직 자고 있어. 아빠는 곧 돌아오실 거고.”

콜린의 상태 때문에 주간에는 엄마가, 야간에는 아빠가 일을 해야 했다.

상태가 어느 정도 호전되면서 그럴 필요가 없다고 느껴지긴 했지만, 어떻게 될지 모르다 보니 아직도 일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상태였다.

“밥해놨으니까 얼른 먹어. 안 먹었지?”

“응. 잘 먹을게.”

콜린의 음식도 일단 만들어 놓기는 했지만, 언제 내려올지 모르기에 아리야는 먼저 밥을 들었다.

“그나저나 오늘 그 제임스 작가님이 이 근처에서 사인회를 하신다고 하셨지?”

음식을 입안으로 집어넣던 아리야는 엄마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응. 아마 오늘일 거야.”

LA 전역에 있는 서점 5곳에서 5일 동안 진행을 하는데 오늘은 여기서 10분 정도 걸으면 나오는 서점에서 사인회를 한다고 들었다.

서점 측이나 SC라스틱 측에서 알린 건 아니고, 오늘 양장본을 받으러 가는 사람들이 이미 SNS에 올렸던 소식들 때문에 알게 됐다.

“끝나면 한 번 찾아가야 하나......?”

“힘드시지 않을까? 하루 2,000권 사인한다고 하시던데?”

“으음. 그것도 그런가? 그래도 은인이신데 아무렇지 않게 넘기는 것도 조금 그렇지 않겠니? 아. 혹시 음식 좋아하시려나?”

“아. 엄마 음식점에 초대하면 되겠네!”

“그러게. 혹시 언제쯤 끝나는지 아니?”

“오후 6시였나? 그때쯤 끝난다고 했던 것 같아.”

“그럼 연락 드려서 괜찮으시면 그때 우리 식당으로 와달라고 하겠니? 물론 거기 있는 직원들도 전부 와달라고 해줘.”

“연락은 해 볼게. 근데 지금 바쁘셔서 받으시려나 모르겠네.”

아리야는 들고 있던 빵을 내려놓고 핸드폰을 들어 올려 ‘제임스 작가님♡♥♡♥♡’이라 적힌 연락처에 전화를 걸었다.

***

어제처럼 사인회가 시작되었다.

‘콜린의 어머니가 음식점을 하고 계실 줄은 몰랐네.’

사인회 시작 전에 아리야한테서 온 연락을 받고 사인회가 끝나면 음식점으로 찾아가기로 했다.

스티븐한테도 말을 하니 좋다고 환영하는 분위기였다.

인터넷으로 음식점을 찾아보니 LA에서 맛집으로 소문난 레스토랑 중 하나였기에 오늘 저녁이 벌써부터 기대가 되었다.

사인회가 시작되고 도돌이표처럼 어제와 같은 상황이 흘러갔다.

다만, 어제와 다른 점이 있다면 내 체력 분배를 위해 서점 측에서 준비한 책상과 의자에 앉아 있다는 것이다.

단지 이것만으로도 내 체력을 상당히 아낄 수 있었다.

“서, 선물이에요! 꼭 읽어주세요!”

“네. 잘 읽을게요.”

“꺄아아악!”

양장본을 받으러 온 팬들 중에서는 나한테 팬레터나 자신이 만든 일러스트, 인형 등을 건네주고 가시는 분들도 계셨다.

그 외에 직접 만들어 온 음식들도 있었지만, 애석하게도 선물은 전부 SC라스틱 측에서 검수를 한 다음에야 나한테 준다는 말에 전부 가져갔고, 음식은 위험물질이 들어가 있을 수 있다며 먹지 못했다.

실제 미국 내에서 팬인 척하는 안티팬이 스타에게 독극물을 먹여 살해한 사건이 종종 일어났기에 어쩔 수 없는 절차였다.

그렇게 사인회는 계속 진행되고 점심이 되었다.

‘어제와 같은 햄버거이려나?’

점심시간이 그리 길지 않아 햄버거 같이 간단하게 먹는 게 좋았다.

그렇기에 루시아가 가져 줄 햄버거를 기다리며, 아침에 미쳐 다 하지 못한 사인을 계속하고 있었다.

새벽부터 사인을 하긴 했지만, 그래도 어제저녁에 쉬었기 때문에 백 권 정도는 하지 못한 상태라 지금 점심밥을 먹으면서 최대한 마무리해놓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갑자기 문 쪽에서 소란이 일어나더니, 이내 루시아와 스티븐이 무언가 가득 담긴 봉지를 가져왔다.

“......이건?”

“선물이라고 하네요. 팬분이 제임스 작가님 얼굴이 좋지 않아 보여서 근처에 있는 식당에서.... 주문 배달을 시켰다고 하네요.”

일식 요리점인지 봉지에는 포장된 초밥이 가득했다.

원래 팬이 주는 음식은 거부하는 게 맞지만, 이렇게까지 직원 전부를 위한 음식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잘 먹겠다고 SNS에 올리는 게 좋겠죠?”

나는 핸드폰을 들어 선물 받은 음식을 찍은 다음 SNS에 게시했다.

“양이 많은 것 같으니까 서점 직원들하고도 같이 나눠 먹어도 될 것 같네요. 얼른 먹어요!”

내 말에 옆에서 우리를 보던 직원들이 슬금슬금 다가왔다.

역시 음식은 같이 먹어야 맛있지.

***

그렇게 2일 차 사인회가 끝이 났다.

사인회가 끝나자마자 우리는 자리 정돈을 한 뒤에 곧바로 아리야가 알려준 식당으로 향했다.

‘스테이크 전문점인가.....’

스테이크를 먹은 지가 언제였더라...

안 먹은 지 꽤나 오래됐던 터라 스테이크 생각을 하자마자 군침이 돌았다.

“안녕하세요. 린네 부인.”

“어서 오세요 작가님. 호호! 이렇게라도 은혜를 갚을 수 있어서 다행이에요!”

“은혜라니요. 그건 그저 콜린 스스로가 이겨낸 거죠.”

“그래도 작가님 글이 아니었으면 이렇게까지 호전되지 않았을 거예요. 자자! 얼른 앉으세요! 오늘 배 터지게 드셔도 괜찮아요!”

“정말이죠?”

“물론이에요! 오늘 식재료 창고를 거덜 내셔도 정말 환영이에요!!”

나는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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