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화. 사인회 이벤트
일반적으로 사이즈 자체가 다른 미국 스테이크와는 달리, 아리야 어머니의 식당은 그러지 않았다.
스테이크 전문점이라 그런지 육질이 굉장히 부드러웠고 육즙 또한 풍부했다.
물론 맛있었지만, 다 먹어가면 다른 부위를 주시고, 사이드까지 연달아 내주시는 통에 배가 터지기 일보직전이었다.
“잘 먹었어요.”
“맛있게 드셨다니 다행이네요.”
콜린의 어머니 린네는 앞치마를 입은 상태로 웃으며 나한테 다가왔다.
“요즘 콜린의 상태는 어떤가요?”
“점점 좋아지고 있다는 게 느껴져요. 물론 아직 방 안이 더 안전하다고 느끼는 것 같지만요. 그래도 저희가 없을 때 식사를 하러 1층으로 내려오고, 가끔씩은 밖에 나가서 필요한 걸 구매하고 오는 것 같아요.”
“많이 좋아졌네요.”
“최근에 글을 쓰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인터넷 소설이 아닌 그냥 글인데..... 만날 때마다 어느 정도 글을 썼냐고 물어보니까 쓰려면 한참 멀었다고 하더라고요.”
“원래 글을 쓰는 데 오래 걸리는 게 당연하죠.”
“처음으로 도전하는 일이니 끝까지 응원해주려고요.”
과거에는 그냥 집에만 얌전히 있기를 바랐다.
그냥 집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남들한테 폐만 끼치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도 했었다.
그렇기에 무언가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콜린의 모습은 린네에게는 새롭기만 했고 또 대견스러웠다.
“콜린한테 전해주세요. 전에 했던 말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내 말에 린네는 포근하게 미소 지었다.
***
어느덧 사인회의 마지막 날.
마지막 날답게 조금은 특별하게 진행되었다.
이는 사전에 계획된 것이 아닌, 내 요청에 의해 변경된 사항이기도 했다.
‘벌써 마지막 날인가.’
사인을 할 때마다 사인회가 언제 끝나냐고 한탄했었는데 막상 마지막 날이라고 하니 마음이 뒤숭숭했다.
나는 차를 몰고 서점에 도착해 근처 주차장에 차를 주차했다.
서점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루시아가 헐레벌떡 내 앞으로 달려왔다.
“루시아. 무슨 일 있나요?”
“헤엑.... 헤엑.... 자, 작가님! 큰일 났어요!”
“뭐가요?”
“사, 사람들이 너무 몰려서! 뒷문으로 가야 할 것 같아요!”
“그렇게 많이 몰렸나요?”
“경찰 떴어요!”
“뒷문으로 가죠.”
경찰 떴으면 말 다 한 거지.
‘브루클린 북 페스티벌이 떠오르네.’
나는 루시아를 따라 서점 뒤쪽으로 이동했다.
“근데, 얼마나 몰렸길래 그러는 거예요? 그냥 사인회가 끝나면 간단하게 소통을 하는 것뿐인데......”
마지막 날은 기나긴 사인회를 마무리하고 다시 나아가자는 의미로 독자님들과 소통을 하는 시간을 준비하기로 했다.
린네의 식당에서 스테이크를 먹으며 직원들과 이야기하던 중에, 갑자기 나온 이야기였다.
이런 사인회를 두 번 다시는 안 하고 싶다는 말이 나왔고, 이왕 이렇게 됐으니 마지막 피날레를 조금 의미 있게 장식하고 싶었다.
마지막 날 서점은 백화점 서점이기에, 백화점 공연 홀을 빌려 혹시 따로 자리를 마련할 수 있겠냐고 스티븐한테 의견을 물었다.
스티븐은 할 수 있으면 해보겠다고 해본 뒤, 그 이후로 백화점과 연락하여 어제 오후에 갑작스럽게 SNS로 공지가 나간 것이다.
‘사람이 많네.’
루시아가 준 마스크와 모자를 뒤집어쓰고 나는 백화점 서점 안으로 들어갔다.
아직 사인회가 끝나려면 멀었는데도 사람들은 이미 바글바글했다.
추첨으로 사람들을 부른 것이 아닌 즉흥적인 이벤트였기에 선착순으로 자른다고 사전 공지를 했음에도 혹시나 싶어 이미 와 있던 것이다.
“루시아.”
“네! 말씀하세요!”
이런 광경은 루시아도 처음인지 흥분한 얼굴이었다.
“저분들한테 커피 한 잔씩 대접해드리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네? 그야..... 불가능하지는 않은데, 작가님 사비로 드리려고요?”
“물론이죠.”
“이건 SC라스틱 측이 해드릴 수 있는.......”
“아뇨. 저 때문에 이렇게 된 거니까. 제 돈으로 하고 싶어요.”
“그렇다면..... 팀장님한테 말씀드리고 올게요!”
“네. 그나저나 저는 어디로......?”
“아. 맞다맞다! 헤헤. 제가 마음만 앞섰네요! 이쪽으로 오세요!”
루시아를 따라 나는 서점 창고로 향했다.
***
SC라스틱이 올린 SNS를 보고 독자들은 흥분을 금치 못했다.
하지만 즉흥적인 이벤트고, 무엇보다 또 인원이 정해져 있는 이벤트다 보니 실망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에휴, 그냥 누군가 찍은 영상이나 봐야지.
-백화점 홀이면 많이 들어가지도 못하겠네.
-어차피 사람이 몰릴 게 뻔하니..... 갈 엄두가 나질 않네.
백화점 홀이면 기껏해야 500명, 많아 봐야 1,000명 정도나 들어갈 수 있을 정도기 때문에 규모가 작다.
그렇다 보니 한정적인 인원수 때문에 이벤트에 참여할 수 없다는 리스크가 있었고, 무엇보다도 갑작스럽게 LA에서 진행한다는 말에 멀리 사는 팬들은 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스티븐은 이러한 상황을 SNS로 지켜보며 회사 대표인 헤리한테 전화를 걸었다.
“......그렇게 돼서 아무래도 자리를 옮겨야 할 것 같습니다.”
-흐음......
전화 너머로 헤리의 고민 어린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회사 입장에서 솔직히 이번 이벤트는 금전적인 손실이 날 수도 있었다.
이번 작가 사인회가 [사막의 제국] 홍보 목적도 있었다고 하지만, 그건 이미 충분히 했기에 갑작스러운 이벤트 같은 건 오히려 장소 섭외로 인한 고충이 있었다.
솔직히 회사 입장에서는 굳이 진행하지 않아도 되는 건이었지만, 이미 인지도가 차고 넘치는 제임스 작가가 나서서 하고 싶다는데 어떻게 하겠는가.
그 이벤트에 배팅함으로써 SC라스틱의 이미지를 더욱 긍정적으로 끌어올릴 수밖에.
-작가님이 원하신다면 해야지요. 장소는 저희 측에서 알아볼 테니 거기선 사인회 준비 열심히 하세요.
“네. 알겠습니다. 그런데 그쪽 상황은 괜찮습니까?”
[사막의 제국]이 발매된 지 5일이 되어가는 시기였다.
스티븐은 외부 출장을 나옴과 더불어, 너무 바빠서 현재 회사 상황을 완벽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쪽하고 별반 다를 바 없어요. 항의 전화와 메일이 많이 들어오고, 서점과의 계약과 출판 때문에 정신없이 바빠요.
“그렇습니까.... 그럼 얼른 끊겠습니다.”
-네. 아. 그리고 제임스 작가님 손목은 괜찮으신가요? 너무 무리한 일정이니 작가님의 건강을 최우선으로 생각해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그럼 수고하세요. 일정에 관한 건 따로 연락드릴게요.
헤리와 전화가 끝나자마자 스티븐은 제임스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창고에서 사인을 하고 있는 제임스의 얼굴은 겉으로 볼 땐 상당히 양호한 편이었지만, 이미 그의 몸에는 피로가 많이 쌓여 있을 것이다.
스티븐은 그 피로를 어떻게 없애줄까 잠시 고민하다가 핸드폰에 무언가를 입력한 뒤에 제임스한테 다가갔다.
“작가님. 현재 [사막의 전갈] 반응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시간이 조금 남아있으니 확인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보통 작가라면 자신의 소설에 대한 반응을 궁금해하기 마련이다.
“오? 지금 볼 수 있을까요?”
그건 제임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지만 실상은 달랐다.
‘와. 드디어 쉴 수 있겠네.’
스티븐은 모르고 있었지만, 제임스는 보통 책에 대한 품평을 잘 안 보는 편이었다.
‘혹시나 악평이 있을까 봐’라기보단, 지금의 현실에 안주할까 봐 잘 보지 않는 편이었다.
지금의 자리에 만족하는 순간 작품을 만드는 사람으로서는 끝이라는 마그누스 감독님의 말을 언제나 가슴속에 새겨놓고 있었다.
‘어디 보자.....’
스티븐이 보여준 핸드폰 화면에는 어느 팬이 중요 인물들 혹은 유명 인사들이 책을 평가해 놓은 것만 편집해 놓은 것이었다.
[뭐라고 해야 할까...... 이걸 보자마자 나는 울고 있었다. 이 소설이 슬퍼서가 아닌, 무엇이든 될 수 있었던 그 동심의 세계가 생각나서 나도 모르게 엄마한테 전화를 걸었다. 【리카르트 폴리(미국 축구 국가대표 선수)】]
[동심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된 책이었다. 【발렌티노 가리바(이탈리아 출신 유명 패션 디자이너)】]
[드래곤 원 작가님이 무슨 생각으로 이 글을 적었을까를 계속해서 생각하게 했다. 어린아이의 생각을 가지고 온 것 같으면서도 글의 세계는 너무 어른스러웠다. 【아쳐 밀리스(영화 평론가)】]
[어릴 때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어른들은 그렇기에 아이들을 ‘미래의 대통령’이라고 부른다. 언제든지 신나게 뛰어놀았던 당시의 상황이 그리워졌다. 【ABA 저널리스트】]
[한 가정의 부모로서, 한 아이의 엄마로서 너무도 재밌게 책을 읽었다. 하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의 아이와 과거의 내 동심이 똑같을까? 하고 말이다. 어린 시절 나는 밖에 나가서 놀고, 몸에 좋지 않다는 과자도 많이 먹고, 밤늦게까지 모래와 흙을 만지며 놀았고, 저녁에는 숙제를 생각하지 않고 그냥 오랫동안 잤다. 한 아이의 엄마로서 과연 나는 아이의 꿈을 지켜주려고 노력하고 있는 걸까? 【제나 오디션(프로듀서)】]
[드래곤 원 작가님이 활동을 시작했을 때부터 항상 Live 방송에 어린아이들이 읽기 편한 소설을 적어달라는 말이 많았다. 그렇기에 드래곤 원 작가님이 아이들을 위해 어떤 소설을 적어 주실지 계속 기대하고 있었고, 출판됐다는 소식에 새벽부터 나가 책을 구매했다. 책을 다 읽고 나도 모르게 소파에 누워 멍하니 천장을 바라봤다. 과거의 나한테 물어보고 싶다. 너는 과연 뭐가 되고 싶었던 거냐고. 【코델리아 올리버(빌보드 팝가수)】]
[아이들은 아기자기한 사막 동물들의 이야기라고만 생각할 것이다. 그저 재밌고 즐거운 그런 이야기로 말이다. 하지만 어른의 시점에서 보면 굉장히 심오한 세계였다. 내 눈에는 4개의 종족이 지구상에 있는 4개의 인종으로 보였으며, 국력, 군사력, 금력으로 물이라는 생명 수단을 표현하는 것으로 보였다. 제임스 작가의 소설 중에서 가장 현실과 부합하는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제임스 작가는 언제나 소설로 우리한테 질문한다.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말이 있다. 주인공 미어캣 툰툰은 가까이서 비극을 지켜보았다. 툰툰은 과연 어떤 세상을 보고 있을까?【알렉스 화이트(대학 교수)】]
[그냥 지금부터 제임스 작가를 감옥에 가둬놓고, 중국식 만두만 먹이며 이렇게 외치고 싶다. ‘2부나 내놔!’ 【짐 콜스(코미디언)】]
제임스는 마지막 짐 콜스라는 코미디언의 말을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
‘군만두 드립은 어디서 배운 거야...?’
세상 잔혹한 말에 미간을 찌푸리고 있을 때 귓가로 스티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떠십니까?”
스티븐은 조마조마한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딱히 나쁜 말이 적혀있는 것도 아니었고, 군만두 드립은 오히려 피식 웃음이 나올 정도로 유쾌했다.
나는 스티븐한테 다시 핸드폰을 돌려주며 말했다.
“힘이 나네요. 하하. 얼른 사인하죠.”
그 말을 뱉고 나서 또 한 번 힘차게 사인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