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시골촌놈인 줄 알았는데 천재작가였다-112화 (111/216)

112화. 사인회 이벤트 (2)

12월 1일부터 진행된 5일간의 사인회의 마지막 당첨자분이 내 앞으로 다가왔다.

“레, 레이시라고 해요! 감사합니다!”

“레이시? 아. 원래 월요일 날 받으셔야 하는데 사정 때문에 오늘 오셨다고.....”

“네, 네! 맞아요!”

“반가워요.”

평일에 하는 사인회의 특성상 개인적인 사정 때문에 오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런 경우는 시기를 미룰 수 있었다.

배송도 가능하지만, 아무리 안전하게 배송을 해도 흠집이나 혹은 절도가 일어날 수 있었고, 거기에 드래곤원 작가를 보기 위해 웬만하면 일정을 조절해서라도 전부 직접 받으러 오는 편이었다.

‘애틀랜타에서 거주 중이셨지?’

사인회를 미루는 팬분들이 그리 많진 않았지만, 그중에서도 LA 정반대 방향에서 오시는 분은 이분 딱 한 분이셨기에 기억에 남아 있었다.

“제 소설을 좋아해 주셔서 감사해요 레이시.”

“아, 아니에요! 저야말로 감사하죠!”

본래 책에 흥미가 없던 레이시는 양장본에 당첨되고 몇 주 동안 동생의 행복한 미소를 보며 속이 뒤틀렸었다.

평소에 소설에 흥미는 없었지만, 동생의 깝죽거림과 거기에 양장본 이벤트까지 당첨됐으니 가기 전에 한 번쯤은 읽어볼까? 라고 생각했다.

중간에 읽다 말 게 뻔했기 때문에 제 돈 주고 사긴 아까웠다. 그래서 바리케이드를 쳐놓은 동생의 책장에 가서 책을 뺏었다.

제발 침은 흘리지 말아 달라고 울고불고 난리를 피는 남동생을 무시한 채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처음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동화책을 봐도 아무런 느낌이 들지 않았던 레이시는 그날 처음으로 소설이 ‘재밌다’는 것을 느꼈다.

이후 [사막의 전갈]뿐만 아니라 제임스 작가의 모든 책을 섭렵했다.

드래곤 원의 모든 책이 전부 남동생에게 있었기에 손쉽게 빼앗을 수 있었다.

한 권 한 권 읽을 때마다 서서히 드래곤의 입속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빠져나올 수 없는 마력을 느꼈다.

도저히 헤어나올 수가 없었다.

아르바이트를 할 때도 계속해서 머릿속에 빙빙 맴돌았고, 밥을 먹거나 목욕을 할 때도 도저히 머릿속에서 작품에 대한 생각을 떨쳐 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양장본은 내가 가질게.’

‘......뭐라고?’

‘어차피 내 이름으로 당첨된 양장본이잖아? 법적으로 내 양장본이 맞지 않아? 물론 돈도 안 줘도 돼. 내가 낼게. 걱정하지 마.’

‘야! 그런 게 어딨어!!!!! 내가 돈 주면 갔다 와준다며!! 그건 아니지! 내가 이걸 위해서 얼마나.....’

‘꼬우면 경찰에 신고하던가.’

‘.....Fuxk’

그렇게 양장본은 레이시의 차지가 되었다.

남동생은 피눈물을 흘렸지만 레이시의 말에 틀린 구석은 하나도 없었기에 양장본을 레이시한테 양보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레이시는 일정을 조절하여 월요일 날 가야 했던 양장본 사인회를 마지막 날, 그것도 마지막 손님으로 온 것이다.

“소, 손잡아주실 수 있으실까요?”

“물론이죠.”

나는 레이시가 내민 손을 잡아주었다.

단지 그것뿐인데도 쌀쌀한 날씨에 붉어졌던 레이시의 손이 눈 녹듯이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그렇게 사인회가 마무리되었다.

***

내 사인회는 뉴스에도 나올 정도로 유명세를 탔다.

마지막 팬까지 양장본을 주고 나니 제임스는 이제야 휴식 기간을 가질 수 있었다.

물론 SC라스틱이 준비한 공연장 휴식실에서 쉬어야 했지만 말이다.

“작가님! 커피요!”

“네. 고마워요.”

나는 루시아가 주는 커피를 받아들며 시간을 확인했다.

“언제쯤 들어갈 것 같나요?”

“앞으로 10분 정도 후에 들어가실 것 같아요. 그때까지 푹 쉬고 계세요.”

“네. 감사합니다.”

그렇게 커피를 마시며 잠깐의 휴식을 즐기고 있을 때 갑작스럽게 핸드폰이 울렸다.

-삐리리리리!

‘누구지?’

사인회를 하는 와중에도 지인한테 연락이 한 번 오지 않아 시무룩해 있던 상태였기에, 드디어 울리는 핸드폰이 반가워 발신인을 확인했다.

‘처음 보는 번호인데......’

스팸이나 잘못 건 전화일까 봐 내심 실망한 얼굴로 전화를 받았다.

“누구시죠?”

-아! 제임스 작가님! 사인회 수고하셨어요!

‘이 목소리는......’

듣자마자 몸이 황홀해질 정도로 아름다운 목소리가 귓가에 머물렀다.

목소리만으로 누군지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의 유명인이었다.

“올리비아?”

-네. 맞아요!

“아..... 그러고 보니 제 번호를 알려드리긴 했는데 올리비아의 전화번호는 제가 못 받았었네요.”

-아! 그러고 보니 그랬네요? 죄송해요.

“괜찮아요. 그보다 무슨 일 있으세요? 제가 곧 들어가야 해서 금방 전화를 끊어야 할 수도 있어서요.”

이벤트장으로 들어가는데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보니 전화를 오래 할 수 없었다.

-저번에 말씀드렸던 소아암에 걸린 아이 기억나시나요?

“아...... 물론이죠, 그걸 잊었을 리 없죠.”

-호, 혹시 토요일에..... 시간 되시나요?

‘토요일이라...... 뭐야. 내일이잖아?’

사인회 강행군으로 내일은 글도 생각하지 않고 집에서 푹 쉴 생각이었다.

물론 아리아나가 와서 저녁에 운동해야 한다고 재촉할 테지만, 그때까지는 잠에 푹 빠져있을 생각이었는데...

“상관없어요.”

-저, 정말요? 체력적으로 괜찮으시겠어요?

“네.”

지금 내 머릿속에는 한 가지 생각이 지배하고 있었다.

‘필라테스를 할 바엔 그냥 봉사를 가는 게 더 좋겠지.’

필라테스는 지금까지 총 2번밖에 안 했음에도 갈 때마다 더 몸이 혹사되는 느낌에 그냥 이런 식으로 변명거리를 만들어 빠져버리는 게 나에겐 더 매력적인 선택이었다.

아리아나 미안해요.....

“저도 만나보고 싶기도 했고요.”

무엇보다도 소아암 말기에 걸려 시한부 판정을 받은 아이를 빨리 만나고 싶었다.

“일요일에는 방송을 해야 하니까 토요일이면 오히려 환영이죠.”

-그, 그럼 내일 뵙도록 할게요! LA 다운타운 근처에 있는 병원이니까 제가 마중 나갈게요!

“네. 알겠어요. 그럼..... 음. 집 근처 카페를 알려드릴게요!”

-네! 사인회 마무리 잘하시고 푹 쉬세요, 작가님!

그렇게 올리비아와 전화가 끊고 한 1분 정도 더 지났을까. 휴식실 안으로 루시아가 다시 들어왔다.

“이제 가셔야 할 것 같아요!”

“네.”

그렇게 난 루시아의 뒤를 따라 공연장으로 들어갔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공연장의 규모와 그 인원은 내 예상을 가뿐히 뛰어넘었다.

***

공연장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나를 반긴 건 팬들의 환호성도 있었지만, 그보다 무수히 많은 카메라 소리와 플래시였다.

-찰칵! 찰칵! 찰칵! 찰칵! 찰칵!

카메라 셔터 소리와 함께 눈이 부실 정도로 밝은 빛이 눈 앞을 가렸다.

‘기자들?’

각 방송사에서 나온 기자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스티븐이 조용히 내 옆에 다가와 귀에 속삭였다.

“인터뷰가 아니니 걱정하지 마세요. 기자들은 그냥 작가님이 독자들과 소통하는 모습만 사진으로 찍고 기사로 올릴 겁니다.”

기자들은 나한테 질문을 하지 못한다는 건가?

“갑작스럽게 준비된 소통이다 보니, 기자들을 미처 막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지금은 내쫓을 수는 없지만 기사로 올리는 건 막을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기사로 올라오는 것 정도는 상관없어요. 다만, 방해가 될 것 같은 기자들은 소통이 진행 중이라도 바로 차단해 주세요.”

“그야 당연합니다.”

스티븐은 조용히 뒤로 물러났고, 나는 무대 위에 있는 의자에 가 앉았다.

내가 의자에 앉자 루시아가 마이크를 가지고 왔다.

“감사합니다.”

“뭘요. 작가님 파이팅!”

루시아의 응원을 들은 나는 마이크를 꼭 쥔 채로 2층까지 꽉 채운 좌석을 바라봤다.

원래는 뮤지컬이나 클래식 음악을 하는 극장인지 2층까지 좌석이 있었다.

나를 위해 먼 길을 달려오고, 추위 속에서 기다렸던 그들을 위해 싱긋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제임스 권입니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그러자 또다시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어느 정도 소리가 진정되자 나는 다시 마이크를 입 앞에 갖다 댔다.

“사전에 공지했던 대로 오늘로 [드래곤 마스터] 양장본 사인회가 끝이 났습니다. 하지만 이렇게만 끝내면 뭔가 아쉽기도 하고, 섭섭하기도 하니 잠깐이라도 독자님들과 대화를 나누고자 이 자리에 모시게 되었습니다.”

-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

격한 환대에 나는 그제야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우선 가장 궁금해하실 [드래곤 마스터 2부 : 블랙 드래곤의 진실]에 관한 이야기부터 해볼까 해요.”

그러자 관객석 여기저기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유튜브 방송에선 너무 간략하게만 언급했었기 때문에 팬들이 많이 궁금해할 내용이라고 생각했다.

“현재 음..... SC라스틱에 2부 원고가 있어요. 다만, [사막의 제국]이 발매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상태기 때문에 여기서 더 무리하게 공장을 가동시킬 수는 없다는 것 같아요. [사막의 제국]의 판매가 조금 잠잠해지기 시작하면 그때쯤에야 2부 출판을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우우우우우우우우!!!

오래 걸린다는 말에 사방에서 야유 소리가 터져 나왔다.

“하하. 어쩔 수 없어요. 그래도 수정은 이미 다 끝난 상태고, 거기에 [사막의 제국]은 다른 소설들과는 다르게 애초에 200만 부를 준비했으니 금방 잠잠해질 거라고 예상하고 있어요. 무엇보다 전자책으로도 나와 있으니 공장을 무리해서 더 돌릴 필요는 없을 것 같기도 하고요.”

SC라스틱은 계약했을 때 말했던 전자책으로도 책 발매를 시작했다.

전자책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많기에 아직까지는 종이책이 실적이 우수했지만, 종이책을 구하지 못한 사람들은 우선 내용이라도 읽자는 심정으로 전자책을 구매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보다 [사막의 제국]은 재밌으셨나요? 인터넷에 떠도는 품평은 보긴 했지만 제가 정말 오랜 시간 고민하며 쓴 글이거든요. 그렇기에 솔직한 답변을 듣고 싶어서요. 어땠나요?”

-예에에에에에에에에-!!!!!

SNS로 이미 재밌다는 말은 들었지만, 그래도 직접적으로 그 열기를 느끼고 싶었다.

다행히 열광적인 사람들의 반응을 보니 대부분이 내 소설을 재밌게 읽어 준 것 같았다.

“그럼 이제 여러분들과 함께 대화를 해볼까요? 음..... 근데, 즉흥적으로 이루어진 이벤트라서 제가 따로 생각해놓은 이야기가 없어요. 그렇다 보니 최대한 한 분 한 분씩 대화를 나눠볼까 해요. 질문과 답변 형식도 괜찮고, 그냥 제 글에 대한 생각이 어떻다라는 의견도 얼마든지 환영이에요. 개인적인 사생활도 문제가 되지 않는 선에서 말씀드릴 수 있어요. 그럼 이제 시작해볼까요?”

내 말에 객석에서 팔이 우수수 위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자자. 일단 차례대로 진행할 거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우선 가장 맨 앞좌석에 앉아있는 꼬마 아가씨부터 시작할까요?”

내 말에 SC라스틱 직원이 내가 가리킨 꼬마 아가씨한테 마이크를 넘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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