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시골촌놈인 줄 알았는데 천재작가였다-113화 (112/216)

113화. 사인회 이벤트 (3)

꼬마 아가씨는 마이크를 들자마자 맹랑하게 소리쳤다.

-안녕하세요! 멜리사라고 해요!

“안녕 멜리사? 혹시 지금 몇 살인지 물어봐도 될까?”

-10살이요! 엄마랑 같이 왔어요!

“하하! 반가워 멜리사. 혹시 내 소설 중에 어느 소설을 좋아하는지 말해줄 수 있겠니?”

-[사막의 전갈]이요!

“......음. 그건 멜리사가 읽기에 너무 잔인한 걸로 알고 있는데...?”

-헤헤! 엄마 몰래 봤어요! 엄마 방에 있는 책장에서 새벽마다 조금씩 읽어야 해서 어려웠어요!

마치 적장의 목을 딴 장수처럼 자랑스럽게 소리치는 모습에 주위 사람들은 하하 웃음을 터트렸지만, 옆에 있는 엄마의 표정은 경악으로 물들었다.

처음 알게 된 사실에 당황하면서도, 자신이 잘 때 그러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는 사실에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던 것이다.

“어머니는 그 사실을 지금 알게 되신 건가요?”

옆에 있던 아이의 엄마는 멜리사의 마이크를 가져가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에..... 저는 멜리사가 읽기에 적합한 [드래곤 마스터]랑 얼마 전에 [사막의 제국]만 사줬거든요. [블랙 & 월드]도 아이가 읽기에는 잔혹한 부분이 있다고 느꼈고, [리턴 패션 디자이너]도 아이가 읽기엔 너무 심오해서...

-[리턴 패션 디자이너]는 읽고 그날 하루 종일 울었어요!

-어쩜! 멜리사!

옆에서 마이크에 들릴 정도로 소리치는 멜리사의 말에 어머니는 멜리사의 입을 손으로 막았다.

자신이 읽으려고 구매한 책들을 전부 몰래 보고 있었다는 게 기가 차고 코가 찰 노릇이었다.

“하하. 멜리사. 그건 네가 읽기에 너무 잔인하다는 건 알고 있니?”

-그건..... 네. 알고 있어요.

“나도 멜리사 너 정도의 나이 때 어른들이 하지 말라는 것들이 항상 궁금했었단다.”

특히 야구 동영상이라던가, NC-17(19금) 영화라던가.

“그래서 멜리사처럼 나도 부모님이 잘 때 본 적이 꽤 있어.”

부모님이 잘 때나, 부모님 두 분 다 집에 안 계실 때 그런 것을 보기에 최적의 타이밍이었다.

“하지만, 성인이 되고 나서야 어째서 부모님들이 어렸을 때 그런 걸 보지 말라고 했는지 알게 됐어. 성인이 되면 언제든지 볼 수 있으니, 어릴 때부터 봐서 그 흥미를 잃지 말라는 의미였지. 물론 교육적 문제에서 봐도 안 좋고 말이야.”

-네에......

내 따끔한 지적에 멜리사는 시무룩한 얼굴을 하였다.

“하지만 말이야...... 과연 내 부모님은 그걸 모르셨을까?”

어느 순간 그런 의문이 들었다.

부모님은 과연 내가 몰래 보는 걸 모를까 하고 말이다.

꼬리가 길면 잡힌다고 하는데 내 행동이 길어질수록 부모님이 과연 눈치채지 못했을까?

아닐 것이다. 알고 있지만 그것이 자연스러운 방향임을 알고 있기에 말리지 않은 것이다.

“그러니 어머님. 너무 막으려고만 하지 마세요. 아이들은 막으려면 막을수록 더욱 흥미가 깊어져서 어떻게든 읽으려고 할 거예요. 어머니가 재밌게 즐기시는 거면 아이들도 자연히 흥미를 가지는 게 당연하잖아요? 그러니 적당한 선에서 타협을 해주세요. 그럼 멜리사도 이해할 거예요.”

-.....네!

그냥 내가 어릴 적 경험을 간략하게 말한 것뿐이었지만, 그래도 둘이 원만하게 흘러가는 분위기라 다행이라 여겼다.

마이크는 곧바로 옆좌석으로 향했다.

-안녕하세요? 제임스 작가님? 테렌스라고 해요.

대학생 정도로 보이는 흑인 청년은 마이크를 입에 가져가며 활짝 미소 지었다.

“네. 안녕하세요. 테렌스? 저한테 궁금한 게 있나요?”

-혹시 작가님께서는 소설작가의 세계에 어떤 식으로 빠졌는지 알려주실 수 있으실까요?

“음..... 이건 예전에 Q&A로 말했던 내용이네요. 다만,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달라는 의미겠죠?”

-네! 저도 작가 지망생이다 보니 이런 사연이 궁금하더라고요.

“하하. 그러실 수 있죠. 어디 보자..... 그럼 여기서부터 이야기하는 게 좋겠네요. 저는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어린 시절에 사우스 코리아에서 미국으로 왔습니다. 아버지 사업이 부도가 나서 먹고살기 위해 미국으로 온 케이스죠.”

유명인의 과거 이야기는 언제나 흥미로운 법이다.

자신이 동경하던 사람의 어린 시절은 어땠는지 궁금해하는 건 팬들로서 당연한 부분이다 보니, 팬들은 주의 깊게 내 말에 귀를 기울였다.

“너무 어린 시절이라 그런지 미국에 왔을 때 무슨 느낌이었는지 잘 기억은 나지 않아요. 제가 기억하는 건 언어와 문화가 다른 이국땅에서 부모님과 제가 힘들었다는 것뿐이죠.”

행복했던 기억보다 괴로웠던 기억이 더 머릿속에 남는다는 말은 사실인 것 같았다.

지금에서야 아무렇지 않게 말할 수 있지만,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숨이 턱턱 막힌다.

“그래도 고모님이 미국에 계셔서 그런지 부모님들은 빠르게 적응했지만, 저는 아니었어요. 그런 저에게 사촌 누나들이 [드래곤 블러드]라는 영화를 보여줬죠. 그땐 영어를 거의 못 하던 때라 무슨 소리인지 하나도 몰랐고 그저 눈이나 즐거우라고 보여준 영화였지만..... 이게 제 인생을 바꿔놨죠. 아직도 생생해요. 영화를 보고 그것의 원작을 알고 싶어서 영어를 열심히 공부했죠.”

내 삶에 대한 근본적인 이야기에 사람들은 하나같이 빠져들기 시작했다.

“결론은 힘들었던 이국의 생활을 소설로 이겨냈다는 거죠. 이후에 영어 실력이 좋아지면서 소설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어요. 소설을 보다 보니 나도 글을 써볼까? 라는 생각으로 어린 시절부터 야금야금 글을 적었죠.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드래곤 마스터]가 그렇게 탄생됐어요. 이후에 꾸준히 글을 쓰게 됐죠. 테렌스, 생각해보면 ‘꾸준함’이 제 성공의 비결 같아요. 어느 한 분야에 미쳐버리면 전문가가 되기 쉬우니까요.”

-아아..... 그래서.....

테렌스는 무언가 깨달았다는 표정으로 자리에 앉았다.

***

그 이후로도 소통은 계속되었다.

-저도 작가님의 글을 보고 작가를 지망하게 되었어요. 혹시 글을 잘 쓰는 비결 같은 게 있을까요?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저는 글을 쓸 때 가장 중요한 게 퇴고라고 생각해요. 자체 수정을 하고, 출판사에 의견을 물은 다음 교정본을 거쳐서 완본을 만드는 거죠. 글을 쓰는 방식은 너무 제각각이다 보니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이 정도뿐인 것 같아요.”

-저는 글을 쓰는데 수정이 힘들더라고요. 혹시 수정하는 데 따로 방법이 있나요?

“음..... 가장 정확하게 하는 방법은 찬물로 얼굴을 씻고 정신을 차린 다음에 소리 내서 글을 읽는 거예요. 소리 내서 글을 읽으면 창피하다는 느낌이 없잖아 있지만, 그래도 문단에서 이상한 부분을 찾는 데 큰 도움이 되더라고요.”

-[일곱 개의 죄악 : 【질투】]은 어느 정도 쓰셨나요?

“라이브 방송에서 이야기했다시피 마무리만 남겨두고 있어요. 다만, 요즘 사인회 때문에 글을 도통 못 써서 다음 주쯤에야 완결이 날 것 같아요.”

-앞으로 일정이 어떻게 되나요?

“[블랙 & 월드 2부]와 [리턴 패션 디자이너] 2권을 동시에 집필할 생각이에요. [리턴 패션 디자이너]는 인터넷 소설이니 올해 안으로 샐러쉬에서 확인하실 수 있을 거예요.”

-벤자민은 2권에서 행복해지나요?

“저는 [리턴 패션 디자이너]를 집필할 때 약간 창조신?과 같은 그런 비슷한 시야로 벤자민을 바라보며 글을 써요. 어째서 신은 벤자민을 과거로 돌려보낸 것일까? 그에 대한 대가는 어떨까?하고 말이죠. 인간은 누구나 시간을 돌리고 싶어 하죠. 하지만 그게 누구나 생각하는 ‘행복한 과거’는 아닌 ‘지독히 현실적인’ 소설을 쓰고 싶었죠. 벤자민의 행복은 죄송하지만 그 누구도 알 수 없어요. 저조차도 말이죠.”

소통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어느 이는 작가로서 글을 쓰는 법을 알고 싶어 했고, 어느 팬은 내 과거를 알고 싶어 했고, 어느 팬은 글에 대한 앞으로의 내용을 간략하게나마 알고 싶어 했다.

나는 내 선에서 최대한 설명해줄 수 있는 만큼 이곳에 온 팬분들한테 아낌없이 말해주었다.

다만, 원래는 백화점 홀 그것도 몇백 명 정도의 의견만 듣고 말할 생각이었다 보니 사람들의 말을 전부 대답해주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중간부터 랜덤하게 손을 든 사람들의 말만 들어주었지만, 그래도 시간상 더 이상 질문을 받아주기가 어려웠다.

“더 이상 질문을 받기가 어려울 것 같네요. 하하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소통을 하다 보니 벌써 10시가 다 되어가네요.”

3시간 이상 이어진 소통 시간이라 지겨울 법도 했지만 관객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우우우우우우-!!!!!

그만해야 한다는 말에 관중석 여기저기서 야유가 쏟아져 나왔지만 어쩔 수 없다는 것을 다들 알았는지 야유 소리는 금세 잠잠해졌다.

“일요일에 있을 Live 방송에서 또 최대한 말해볼 테니 그걸로 참아주세요!”

-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

그제야 관중석에서 수고했다는 의미로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가 터져 나왔다.

나는 그 모습에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양손을 흔들었다.

“모두! 오늘 하루 수고하셨습니다!”

그렇게 기나긴 사인회가 드디어 끝이 났다.

***

멍......

집에 들어오자마자 불도 켜지 않은 상태로 그저 안마의자에 앉아 멍하니 허공을 바라볼 뿐이었다.

‘뭔가..... 공허하네.’

콘서트를 치르고 온 가수들이 집으로 오면 그 피로감과 공허함 때문에 씁쓸함을 느낀다고 들은 적이 있었다.

열렬한 응원과 시끄러운 음악소리를 듣다가 조용하고 적막한 집에 오면 공허한 건 당연했다.

그건 제임스 또한 마찬가지였다.

‘피곤한데 잠이 오지 않아.’

몸은 피곤하다고 아우성치고 있는데, 눈은 감기지 않았다.

그저 아무 생각도 없이 가만히 있을 뿐이었다.

“외롭네.”

그러다 문득 혼잣말이 터져 나왔다.

집으로 들어와도 맞이해줄 사람 하나 없다는 게 꽤나 쓸쓸했다.

‘지금이라도 글을 써 볼까?’

하고 생각하며 오른손을 보니 미세하게 경련이 일고 있었다.

피로로 인해 몸이 더 이상 무리하지 말고 푹 쉬라고 경고하고 있는 것 같았다.

제임스는 안마의자 전원을 끄고 자리에서 일어나 냉장고로 향했다.

-벌컥.

냉장고에는 메디슨 누나가 마시려고 사다 놓은 맥주가 있었다.

“오랜만에 맥주나 마실까?”

안주는 없었기에 그냥 깡맥주를 마시며 소파에 털썩 누워 텔레비전을 틀었다.

외로움을 느끼지 않으려고 행동 하나하나에 의미를 담았다.

하지만 아무리 맥주를 마시고 밝게 떠드는 예능을 봐도 외롭다는 느낌을 떨쳐낼 수 없었다.

-콰직!

제임스는 다 마신 맥주캔을 찌그러트리며 마찬가지로 얼굴도 찌푸렸다.

“와..... 진짜......”

평소에도 외로움을 느꼈지만, 5일 동안 그 시끌벅적한 현장에 적응됐었기 때문에 오늘은 특히나 그 외로움이라는 빈자리가 너무도 컸다.

가장 어이없는 건 지금 연락할 사람도 없다는 것이다.

너무 늦은 시간이라 월리한테 전화를 해도 민폐일 정도였다.

“안 되겠다. 동물이라도 키우자.”

글만 쓸 때는 하루종일 집에만 있으니 반려동물을 키우기엔 괜찮은 조건이리라.

대도시라 그런지 펫시터도 잘 돼 있는 편이니 알아보면 되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침대로 휘적휘적 걸어갈 그때였다.

-띵동~!

갑자기 누군가 내 집 초인종을 눌렀다.

‘누나일 리는 없고..... 누구지?’

도어폰을 바라보니 그곳에는 저번에 봤던 시큐리티 한스 할아버지가 서 계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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