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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촌놈인 줄 알았는데 천재작가였다-114화 (113/216)

114화. 경비병 할아버지의 정체

블루스타게이트 대표님과 똑같은 이름을 가진 시큐리티 한스 할아버지는 항상 무엇이든 귀찮다는 표정을 하고 계셨다.

시큐리티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을 정도로 젊은 몸은 아니었기 때문에, 가끔가다 마당을 청소하실 때조차도 흔들리는 몸이 위태로워 보일 정도로 몸 상태가 안 좋으셨다.

항상 경비실에서 흥미 없다는 얼굴로 머그컵에 커피를 마시던 한스 할아버지였기에 갑자기 집으로 온 할아버지가 의아하기만 했다.

‘집에 무슨 일이 생긴 건가?’

시큐리티가 이 늦은 시간에 집으로 찾아올 일이 없었기에 혹시 보안상 무슨 문제가 생겼거나, 건물에 도둑이 들은 건가 의심했다.

“할아버지? 무슨 일이세요?”

-잠시 나와보게.

문밖에 서 계신 할아버지의 손에는 상자 하나가 들려있었다.

“며칠 전부터 와있던 택배네. 가져가라고 쪽지도 남기고 문자도 주지 않았나?”

“아..... 요즘 너무 바빠서 깜빡했나 봐요. 죄송해요.”

“퇴근 시간에 직접 올라온 거니 얼른 받기나 하게.”

나는 한스 할아버지의 손에 있던 택배를 받아들었다.

배송인을 확인해보니 뜻밖에도 루이나 누나가 보낸 것이었다.

이사 선물을 지금 보낸 것인지, 아니면 또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한스 할아버지는 나한테 택배를 주자마자 곧바로 발걸음을 돌렸다.

“자, 잠시만요.”

나는 나도 모르게 할아버지의 걸음을 붙잡았다.

이유는 몰랐다. 말이 입 밖으로 튀어 나가자마자 ‘내가 왜 불러 세웠지?’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저 할아버지의 등에서 내 외로움이 겹쳐 보였기 때문일 수도 있었지만, 뭐가 되었든 간에 할아버지는 걸음을 멈추었다.

“뭔가?”

할아버지는 귀찮다는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봤다.

나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뭐라 말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혹시..... 술 좋아하세요?”

***

집에는 술이 항시 구비되어 있었다.

메디슨 누나도 술을 상당히 좋아하는 편이라 집 찬장엔 각종 술이 있었다.

다만, 우리 집안의 가훈이 ‘자고로 집에는 술이 남아 있으면 안 된다’이다 보니 비싼 술은 내가 열심히 마시고 있었다.

그 결과, 집에는 그리 비싸지 않은 술들만 남아 있었지만, 그래도 안주와 함께라면 충분히 마실 만했다.

-쪼르르륵!

한스 할아버지는 컵에 따라지는 술을 쳐다보지도 않고 내 얼굴을 지그시 바라봤다.

“중국인인가?”

“한국계 미국인이에요. 얼마 전에 시민권을 취득했죠.”

“시민권..... 어릴 때 이민 왔나 보군.”

“네. 몬태나주에서 자랐죠.”

“몬태나라..... 깡촌에서 왔군.”

“지금은 상당히..... 아뇨. 뭐, 여기에 비하면 깡촌이긴 하죠. 하하.”

LA이나 뉴욕에 비하면 확실히 촌동네라 불릴 만했다.

한스 할아버지는 뭔가 생각하는 듯한 얼굴로 술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나도 몬태나주에서 왔네.”

“......예?”

꿀꺽꿀꺽꿀꺽.

할아버지는 며칠 물을 못 마신 사람처럼 술을 들이켰다.

“크으......”

입가에 묻은 술을 소매로 대충 문지른 한스 할아버지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어릴 때 농사가 싫었네. 농사일이 하찮게 느껴져서 군에 입대했지.”

“......군? 그럼 군인이셨어요?”

“한때는 그랬지.”

아마 할아버지 시대의 미국이라면 징병제가 있을 시기였을 것이다.

징병제가 아니라 자원으로 입대했다고 하셨으니 아마 간부로 가셨을 것이다.

“군인이 되고 정말 많은 곳을 가봤네. 그중에는 한국도 있었지.”

“......설마.”

“내 첫 전투를 한국에서 치렀지.”

할아버지는 쓸쓸하다는 듯이 중얼거렸지만 나는 아니었다.

“에이~ 거짓말.”

그리고 나는 그 말이 거짓말임을 꿰뚫었다.

“킥! 어떻게 알았나?”

“70년이 훌쩍 지난 일이에요. 거기에 할아버지 나이가 아무리 많아도 90은 안 되실 것 같았거든요.”

“끌끌끌끌...... 그걸 안 속나?”

“속을 리가 없잖아요!”

할아버지는 재밌다는 듯이 웃었다.

“그래도 군인이었다는 말은 사실일세. 이런저런 사건을 겪었지.”

“저도 군대에서 이런저런 사건을 경험했죠.”

“나만 하겠나? 예전 군대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나?”

“요즘 군대 아세요? 원래 군대라는 건 언제 가든 X같은 거예요.”

그렇게 할아버지와 나는 계속해서 군대 이야기로 이야기꽃을 피웠다.

***

‘......대박이야.’

남자 둘이서 군대 이야기를 하면 하루 동안 이야기가 가능하다고, 술안주로 재미 삼아 시작한 군대 이야기는 새벽까지 이어졌다.

그냥 평범한 군인이라고 생각했을 할아버지의 신분은 내 예상을 초월했다.

‘찐군인이셨어.’

군인으로서 은퇴한 뒤에 경찰 특수부대로 투입되어 내가 감히 상상하지도 못할 여러 경험을 쌓으신 분이셨다.

나이도 많이 들으신 것 같으셨지만 생각보다 많지 않으셨고, 군인에 대한 리스펙이 엄청난 미국에서 그냥 적적한 마음에 소일거리로 시큐리티를 하고 계신 거라고 들었다.

‘사전 조사를 이렇게 할 줄은 몰랐지만..... 이런 행운이 있을 줄이야.’

[일곱 개의 죄악 : 【질투】]의 마무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었기에 지금까지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런데 한스 할아버지가 술을 마시는 동안 묻지도 않은 그 시절 이야기를 상세하게 해주었기에, 나는 가까스로 정신을 유지하며 수첩에 내용을 적을 수 있었다.

상당히 독한 술이었기에 다음날 일어나는 게 살짝 힘들긴 했지만, 죽은 듯이 기절해 있던 한스 할아버지보다는 상태가 상당히 좋은 편이었다.

아무튼 할아버지를 경비실로 데려다주고, 나는 새벽에 적었던 수첩을 확인해봤다.

“내가 술이 강한 게 이런 곳에 도움이 될 줄은 몰랐는데.”

살짝 아직 취기가 있긴 했지만 이 정도면 해장 라면 한 그릇으로 사라지니 상관없었다.

그렇게 라면을 끓여 식탁에 놓고 수첩에 적힌 내용을 정리했다.

‘애정 결핍 소년의 잔혹한 살인사건, 질투에 먼 여자가 일가족이 사는 집을 방화한 사건, 한 가정의 아버지가 자신의 아들과 딸을 살인한 뒤 집 마당에 유기한 사건......’

어제 한스 할아버지한테 들었던 이야기들 중에서 ‘질투’에 관한 살인사건들을 확인하고 있었다.

솔직히 군대 시절 이야기는 듣고 넘겼고, 대부분 FBI나 특수부대에서 활약했을 때 경험했던 이야기들을 옮겨 적었다.

그렇게 라면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알지 못할 정도로 수첩을 이리저리 뒤집으며 좋은 이야기들을 섬세하게 정리했다.

“호오.....라?”

그중에서 가장 끌리는 이야기가 있었다.

네바다주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네바다주에서 가장 유명하다고 알려진 세계적인 도박 도시 라스베이거스의 미제 사건이었다.

‘이건 질투에 관련된 사건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흥미로운 이야기였지?’

수첩에 적힌 내용을 읽으면 읽을수록 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이 사건은 복잡하면서도 섬뜩했다.

‘처음에는 부자들을 질투해서 사람들을 죽인 거라고 생각했다고 하지.’

부자로 보이는 사람들만 죽이다 보니 경찰들과 FBI 소속 요원들은 첫 수사 당시 범행의 동기가 라스베이거스에 오는 부자들을 시기하는 마음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사건을 파헤치면 파헤칠수록 이상한 점이 있었다.

‘실제론 부자들이 아니었다지?’

살인사건의 피해자들은 부자들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물론 부자가 아예 없는 건 아니었지만 그중에서는 라스베이거스에 한 방을 노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사람들을 죽인 이유가 부자처럼 보이기 때문이라고 말했지만..... 실상 그도 시기심 때문에 살인을 저지른 건 아니었다는 점에서 놀라웠지.’

그는 그저 살인을 하라고 지시받은 자였던 것뿐이다.

진짜 살인자는 따로 있었다.

‘가족이 납치당해 협박당했다......’

협박한 살인자를 체포한 경찰은 살인자한테 어째서 그런 짓을 했냐고 물었다.

협박범은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그 녀석의 아내는 내 여자친구였으니까......’

가족은 납치당한 게 아니었다.

협박받은 사람의 아내가 아이를 데리고 스스로 그 남자한테 간 것이고, 여자친구와 함께 남편을 미치광이 살인자로 만들어 감옥에 가두기로 자작극을 벌인 것이다.

왜 그들이 그냥 남편을 직접 처리하지 않았는가? 왜 무고한 사람을 죽여야 했는가? 들킬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나? 등 의문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지만, 한스 할아버지는 애초에 살인자들에게 일반인의 사고를 기대해선 안 된다고 했다.

결국 그들 모두가 법의 심판을 받게 되었다.

“이 부분을 스토리로 풀어보면 괜찮을 것 같은데...”

반전의 반전은 추리 소설에서 필수였다.

그렇게 스토리를 머릿속으로 그리며 [일곱 개의 죄악 : 【질투】]의 이야기와 합쳤다.

라면을 먹으며 계속해서 스토리를 구상하다가 집에 찬밥이 없다는 사실에 좌절했지만, 이내 모든 것이 정리되었다.

“아직 연락 오려면 멀었으려나?”

아직 이른 아침이기에 아마 오후쯤은 되어야 연락이 올 것이라 생각했다.

잠시 고민하던 나는 컴퓨터 전원을 켰다.

“조금만 써볼까?”

어차피 마무리 단계다 보니 조금만 적으면 되었다.

올리비아한테서 전화가 올 때까지 시간이 충분하니 그때까지 집필해보는 게 좋으리라.

-우두두둑!

손가락을 풀고 모니터 화면을 바라봤다.

“적어볼까?”

***

[일곱 개의 죄악 : 【질투】]의 마무리는 여러 가지 방면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하고 생각해도 마음에 드는 마무리가 나오지 않았고, 거기에 사인회까지 터지다 보니 그 과정이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었다.

그렇게 고민하고 있을 때 한스 할아버지의 이야기가 엄청난 영감을 줬다.

올리비아와 만나는 시간을 정해놓지 않았기에 연락만 기다리는 것도 아니다 싶어 글을 썼고 나는 손가락을 멈출 수 없었다.

마무리의 마무리가 다가올수록 몸에서 식은땀이 흐르고 더욱 글에 집중하게 되어버렸다.

무아지경으로 글을 쓰다 보니 어느새 시간은 오후 3시.

그리고 내 마지막 타이핑은 End.로 끝나 있었다.

“잘 쓴..... 건가?”

글을 쓰기 시작한 이후로 수많은 도전을 했지만 결국엔 완성시키지 못했던 추리 소설을 드디어 처음으로 완결을 내봤다.

고작해야 1부 완결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후련한지 마음이 편안해졌다.

‘개운하네.’

아무래도 내용의 재미가 신경 쓰이긴 했지만, 지금은 한 스토리를 끝냈다는 여운에 잠기고 싶었다.

천천히 눈을 감고 의자 등받이에 최대한 몸을 눕혔다.

그저 머릿속으로 내용을 다시 한번 복기하고 이게 최선인지를 판단했다.

‘수정을 해야지.’

스스로 자체 수정을 하고 출판사에 문의해 최대한 완성도를 높여야 할 것이다.

과연 이 소설이 세상 밖으로 나갈 수 있을지는 그때 되어서야 판단할 수 있겠지만, 완결을 낸 오늘은 그냥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싶었다.

그렇게 등받이에 등을 기대고 쉬고 있던 그때였다.

-띠리리리리~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던 핸드폰 벨소리가 울렸다.

‘슬슬 나가면 되나?’

나는 핸드폰을 귀에 가져갔다.

“네. 올리비아.”

-안녕하세요! 작가님! 몸은 괜찮으세요?

“어제 술을 마셔서 취기가 약간 남아 있지만 괜찮아요. 그보다 카페에 도착하셨나요?”

-아. 그게 말이죠.....

전화기 너머로 올리비아의 곤혹스러운 감정이 느껴졌다.

어차피 지금 난 누구보다 편안하고 차분한 상태였기 때문에 올리비아를 다독였다.

“괜찮으니 말해주세요.”

-그게..... 약간, 작가님이 곤란하실 수 있을 것 같은데...

“뭔데 그래요? 괜찮으니까 말해주세요.”

-그..... 브록스가..... 작가님의 집에 가보고 싶다고 해서요.

“.....저희 집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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