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시골촌놈인 줄 알았는데 천재작가였다-118화 (117/216)

118화. 집으로

나는 바닥에서 책 한 권을 꺼 내들었다.

일러스트와 초록색 표지를 가진 책으로 그곳에는 빌에이든 미디어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아. 오해하실 것 같아서 미리 말씀드리는데 제가 저희 출판사의 책을 가져온 건, 책을 추천하는 게 아니라 신인 작가의 책을 어떤 방식으로 교정하는가를 보여드리기 위해서예요. 아무래도 다른 출판사의 신인 작가분 책을 교정하면 실례인 것 같아서요. 그래서 저와 같은 출판사에 소속되어 있는 신인 작가님의 소설에 양해를 구했고 이 책으로 진행해보려고 합니다.”

다른 출판사의 신인 작가 책을 임의로 교정하면 그건 비판의 요소가 될 수 있었다.

그렇기에 빌에이든 미디어 측은 신인 작가이면서도 인기를 끌지 못했던 작품을 제임스한테 넘겨주었다.

물론 작가 측의 허락을 맡아야 했고, 이번에 책을 준 작가는 제임스의 열렬한 팬이었기에 제임스가 교정해준다는 사실에 상당히 영광스러워하며 흔쾌히 수락했다.

“자. 그럼 시작할게요!”

***

책은 이미 한 번 읽어놔서 어디에 무슨 내용이 있는지 대략적으로 알 수 있었다.

거기에 표시까지 해놨기 때문에 어느 부분을 어떤 방식으로 수정해야 하는지 요점만 알려주기 쉬웠다.

다만, 책의 내용을 그대로 펴서 보여주는 건 스포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내용 일부를 파일로 옮겨적어 어떤 식으로 수정하는지 보여주었다.

“자. 여기 보시면 엑스트라 에이가 총을 들고 앞으로 전진한다고 나와 있어요. 전반부에 이러한 묘사를 보여주는 건 에이가 용감하다는 걸 간접적으로 보여주죠. 하지만 후반부로 가면 갈수록 에이의 용감함이 점점 줄어드는 것 같아 보여요. 그에 따른 상황적 묘사나 설명이 나타나지 않다 보니 어째서 에이의 용감함이 줄어드는지 독자로선 알 수 없죠. 물론 에이라는 캐릭터가 그렇게 중요한 역할은 아니지만 그래도 조연을 이런 식으로 방치하게 되면 내용에 막이 끼게 되거든요. 이 외에도 독자들이 불친절함을 느낄 수 있는 요소가 많아요.”

소설은 물론 주인공 위주로 돌아간다.

다만 그에 대한 스토리 진행을 도와주는 조연들 그리고 엑스트라에 대한 비중 역시 적절하게 챙겨줘야 했다.

“에이를 완전히 엑스트라 취급했다면 그나마 스토리 진행에 어색함이 없었을 거예요. 하지만 한 번 나오고 말 것처럼 엑스트라 취급을 하니 단번에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그렇다고 에이가 하나의 에피소드에만 등장하는 것도 아니니까요.”

방송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그렇다고 책을 계속해서 비판하는 건 하지 않았다.

“문단도 이런 식으로 고쳐보면 어떨까요? [주인공 비라는 길을 걸으며 몸에 힘이 빠졌다.]가 아닌 [지금까지 있었던 일이 생각난 비라는 손으로 머리를 짚으며 휘청거렸다.]라는 식으로 말이죠. 휘청거렸다는 건 일단 몸에 있는 힘이 빠졌다는 걸 의미하니까요.”

사전에 예고했던 대로 책에 대해 어떤 방식으로 수정해야 하는지, 스토리를 어떤 식으로 진행해야 하는지에 대해 알려주었다.

그렇게 계속해서 책에 대한 수정이 진행됐고 얼추 끝날 시간이 다가오자 나는 읽고 있던 책을 접었다.

“자.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아아......

-조금만 더 해주시면 안 돼요?

-벌써 시간이 이렇게 갔네......

“즐거운 일요일인데 제가 시간을 전부 뺏으면 안 되죠.”

한 시간이라는 짧은 시간에 시청자들은 아쉬워했지만, 그렇다고 일주일에 한 시간만 한다는 다짐을 깨고 싶지는 않았다.

“아. 방송을 종료하기 전에 한 가지 알려드릴 사항이 있어요.”

갑작스러운 내 말에 방송에서 나가려던 시청자들은 마우스에서 손을 멈칫했다.

“[일곱 개의 죄악 : 【질투】]를 완결했습니다! 그럼 모두 수고하세요!”

-자, 잠깐 뭐라고......

-혀, 형! 지금 뭐라고......

-방송 끄지마 봐! 뭐라고 했는지 다시 말해봐!

-이.. 악마!!! 현실에서도 절단신공을 하네!!!!!

“모두 조심히 들어가세요~!!!”

시청자들의 당황스러운 야유를 목도하며 나는 그대로 방송을 꺼버렸다.

카메라가 꺼지고 나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역시 한 시간 동안 혼자 말하는 건 힘드네요.”

“하하. 그래도 오늘도 무사히 끝내셔서 다행입니다.”

프렌은 매니저들과 함께 세팅했던 카메라를 해체했다.

‘이제 쉴 수 있겠네.’

알게 모르게 몸에 피로가 많이 쌓였고, 어제 운동도 열심히 한 상태라 마음 같았으면 지금 당장 더 자고 싶었다.

Live 방송만 아니었다면 오후까지 푹 잤을 것이다.

-띠링!

-띠링!

피곤해서 소파에 앉자마자 핸드폰이 동시에 울렸다.

문자를 보낸 사람들을 보니 빌에이든 미디어와 SC라스틱 측에서 온 문자였다.

『<발신인 : 빌에이든 미디어 로건>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작가님? 5일 동안 진행되는 사인회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귀한 작가님을 5일 동안 부려먹은 SC라스틱은 대체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군요. 이벤트도 중요하지만 작가님 건강을 최우선으로 해야 할 텐데 말이죠. 하하. 본론으로 돌아가서 오늘 문자 드린 이유는 [일곱 개의 죄악 : 【질투】]을 저희 측에 맡겨주셨으면 합니다. 물론 강요가 아닌 그저 한 번쯤은 생각해달라고 보내는 것이니 부담스럽게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그저 이러한 선택지가 있다는 것만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발신인 : SC라스틱 스티븐>

사인회에서 무리하신 손목은 괜찮으신지 해서 문자 드립니다. 5일 동안 진행되었던 사인회 수고하셨습니다! 현재 양장본 사인회 반응도 굉장히 좋은 편이고, [사막의 제국] 진행 방향도 굉장히 수월합니다. 현재 [사막의 제국]은 일주일 만에 300만 부를 돌파하였습니다. 다른 소설들과는 다르게 아이들을 고려한 작품이라 학부모님들이 많이 구매하시는 것 같습니다. 저희는 언제나 작가님의 소설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저희 측과 [일곱 개의 죄악 : 【질투】]을 계약하시는 걸 다시 한번 생각해 보셨으면 합니다.』

안부의 인사도 포함되어 있어 내용이 꽤나 길었지만, 결론은 [일곱 개의 죄악 : 【질투】]을 자신들한테 맡겨달라는 의미였다.

“.....일단 답장은 미루자.”

마음은 이미 빌에이든 미디어에 기울어지긴 했지만, 그래도 그간 SC라스틱이 해준 것들도 고마웠기 때문에 조금 더 신중히 생각해보기로 했다.

“그럼 수고하셨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아. 뮤튜브 채널은 조금 이따가 확인해볼게요.”

그렇게 프렌 일행이 떠나고 나는 소파에서 일어날 생각도 하지 않고 멍하니 베란다 밖을 바라봤다.

-벌컥.

그렇게 휴식을 취하고 있는 집 안으로 아침부터 사라졌던 누나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나는 베란다에서 시선을 떼고 누나를 쳐다봤다.

“아침부터 어딜 갔다 왔길래 정장을 입고 있어?”

“회사에 일이 생겨서 급하게 갔다 왔지.”

“그냥 바로 집으로 가지 그랬어? 피곤하지 않아?”

우리 집에서 누나 회사까지는 차 타고 1시간 정도 걸릴 만큼 거리가 꽤 있었다.

아침부터 나가서 지금 온 걸 보니 회사 일이 굉장히 다급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차피 집에 가도 심심하니까. 그보다 방송 끝났어?”

“응. 조금 전에 끝났어. 지금은 쉬는 중이고.”

“그럼 나가자. 밥 사줄게.”

“아싸!”

사주는 밥은 별미니까.

***

“그러니까...... 동물을 키우고 싶다고?”

근처에 있는 미국 가정식 레스토랑에 온 나는 음식을 먹으며 생각하고 있던 걸 누나한테 털어놓았다.

“어. 요즘 조금 쓸쓸하더라고.”

“그럼 동물을 키우지 말고 여자친구를 만들어. 너 글 쓰면서 동물 돌볼 수는 있겠어? 한 번 집중하면 어디 다른 데 신경 쓸 여력도 없잖아?”

“그렇긴 하지..... 근데 내가 여자를 만날 기회가 없잖아.”

“.....”

그 말에 메디슨은 인상을 팍 구기고 나를 바라봤다.

“너한테 운동 가르쳐주는 아리아나하고 어제 온 올리비아라는 여자 아니냐?”

“에이. 그건 비즈니스 관계지.”

“......어째서 네가 지금까지 체리였는지 알겠다.”

“......그 말이 지금 왜 나와?”

“아무튼 어떤 동물을 키우고 싶은 건데.”

“말만 동물이라고 한 거지 그냥 조류나 어류도 있으니까.”

“조류는 시끄러울 테고, 어류는 네 생각보다 손길이 많이 필요할 텐데?”

“작은 소동물도 있고 파충류도 있으니까.”

“작은 소동물이라고 키우기 편한 건 아니고, 파충류 같은 경우는 생먹이도 키워야 하는데?”

“......”

아무래도 누나는 최악의 상황을 대비하는 변호사의 직업정신으로 내가 동물을 키우는 게 못마땅한 모양이었다.

“시끄럽고 다음 주에 몬태나 갈 준비나 해.”

“아..... 그러고 보니 슬슬 가긴 해야겠네.”

한 달에 한 번 집으로 돌아가겠다는 약속을 했으니 슬슬 돌아갈 때가 되긴 했다.

“이번에는 루이나하고 제시카도 온다고 했으니까.”

“아..... 그 둘 오랜만에 보겠네.”

루이나 누나라면 모를까 제시카는 보고 싶지 않은데.

“근데 집 엄청 춥겠네. 보일러도 없으니까.”

지금 내 집은 보일러가 깔려있어 따뜻하지만, 몬태나 집은 보일러가 없었기에 옷을 두껍게 입고 다녀야 했다.

“갈 때 맛있는 것 좀 사가야겠네. 다음 주 언제 갈 건데?”

“이번에 4일 휴가 받았으니까. 주말까지 포함해야 하니..... 화요일 날 가자.”

“화요일이라..... 좋네. 아리아나한테 말해놔야겠네.”

운동을 합법적으로 빠질 수 있는 핑계가 또 생겨나서 기분이 좋아졌다.

그렇게 밥을 먹다가 문득 저번에 만났던 에드워드 선생님의 말이 떠올랐다.

“아..... 손님도 데려가도 되나?”

“누구?”

“에드워드 선생님하고 손녀.”

“에드워드 선생님? 왜?”

“저번에 몬태나주에 한번 가보고 싶다고 말씀하셨거든. 은퇴하면 그런 시골에서 작게 농사나 하며 살고 싶다고 말씀하셨었어. 그래서 이번 기회에 보여드리는 게 어떤가 하고 말이야.”

“근데 우리 마을에 호텔은 없을걸?”

“우리 집에서 머무시면 되지. 어차피 우리 집에 방이 꽤 있으니까.”

“가기 전에 부모님한테 말씀 먼저 드려. 갑자기 오시면 당황하실 테니까.”

“그래야지 뭐. 일단 밥부터 먹자.”

***

누나와 함께 집으로 돌아온 나는 에드워드 선생님한테 연락을 드리려다가 연락처가 없음을 깨달았다.

조엘한테 전화를 할까 하다가, 일요일이다 보니 조엘한테 연락하는 건 실례다 싶어 어쩔 수 없이 다이애나한테 전화를 걸었다.

-자, 작가님! 어쩐 일로 전화 주셨어요?

“아. 다이애나 오랜만이에요.”

-네! 사인회 하셨다는 뉴스 봤어요! 정말 어마어마하던데요? 수고하셨어요! 몸은 괜찮으세요?

전화하는 사람들마다 내 몸을 걱정해주니 기분이 좋았다.

“물론이죠. 그보다 다이애나.”

-네. 말씀하세요.

“제가 다음 주 화요일에 몬태나에 가거든요. 에드워드 선생님하고 같이 놀러 오시는 건 어떨까 하고 연락드렸어요.”

-네???? 자, 작가님의 집에요?

“네. 몬태나에 한번 와보고 싶어 하셨다고 들었는데 아닌가요?”

-다, 당연히 가고 싶죠! 갈게요! 무조건 갈게요!

“다행이네요. 아. 그리고 저희 마을에는 호텔이 없어서 만약에 오신다면 누추하지만 저희 집에 머무셔야 할 것 같아요. 괜찮으세요?”

-.....당연하죠! 네! 당연히 괜찮아요!

“그럼 에드워드 선생님께 여쭤봐 주세요. 제 비행기 도착 시간은 문자로 따로 알려드릴게요.”

-네!

‘그렇게 가고 싶었나?’

연신 상기된 목소리로 대답하는 다이애나의 목소리에 나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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