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화. 집으로 (2)
다이애나는 제임스한테 전화를 받자마자 핸드폰을 쥐고 제자리에서 방방 뛰었다.
“꺄아아아아아아아-!!!!!”
마치 MTS 콘서트 티켓팅에 성공한 팬처럼 다이애나는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고 소리를 질러댔다.
그런 비명소리에 1층에 있던 아빠 안토니가 무슨 일이 일어난 건가 하고 헐레벌떡 뛰어왔다.
“무, 무슨 일이야?”
“꺄아아아아아! 아빠! 나 제임스 작가님 만나러 갈 거야!”
“으, 응?”
다짜고짜 제임스 작가를 만나러 간다는 다이애나의 말이 안토니는 황당했다.
“누구를 만나러 간다고?”
곧이어 안토니의 등 뒤로 에드워드 선생님과 엄마인 헬리아가 다가왔다.
“할아버지! 제임스 작가님한테 연락이 왔어요!”
그 말에 에드워드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 녀석이 왜 너한테 직접 연락을 해?”
“어머. 아버님도 참. 말은 곱게 하셔야죠.”
“크응......”
에드워드는 대놓고 불편하다는 기색을 보였다.
안토니는 그런 아버지의 반응에 머쓱하다는 미소를 지으며 다이애나한테 말했다.
“무슨 일인데 그러니?”
“제임스 작가님이 몬태나주에 있는 집으로 초대하셨어요! 아빠 가도 되죠? 네에?”
“안 돼!”
그 말에 에드워드는 크게 소리쳤다.
안토니는 에드워드의 호통에 뒷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근데 아버지. 저번에는 몬태나주에 초대하겠다고 해놓고 초대 안 한 썩을 놈이라고......”
“그건 그거고! 지금은 지금이잖아! 절대 안 돼!”
아버지가 이렇게 길길이 날뛰실 때는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기에 안토니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다이애나를 바라봤다.
하지만 다이애나는 그런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말했다.
“할아버지도 같이 오라는데요?”
“.....뭐?”
“저번에 할아버지가 오고 싶다고 하셔서 초대하는 거라고 하시더라고요.”
다이애나의 말에 에드워드는 헛기침을 했다..
“크, 크흠! 요즘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기억이 잘......”
“그런 의미에서 엄마! 갔다 와도 되죠?”
“다, 다이애나?”
다이애나는 이 집안의 실세가 누구인지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뒤편에서 이 상황을 직관하고 있던 헬리아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려무나. 혼자 가는 거였다면 말릴 생각이었는데, 아버님까지 같이 가시는 거면 상관없겠지.”
“크, 크흠. 헬리아야. 나는 애석하게도 [블랙 & 월드] BGM을 만들어야 해서 말이다......”
그 말에 안토니가 눈치 없이 말했다.
“아버지 다음 주까지 여유 있다고 저한테 사우나 가자고 하지 않으셨나요?”
“......”
에드워드는 제 마음도 몰라주는 아들내미의 반응에 표정이 썩어들어갔다.
“그럼 할아버지도 같이 가시는 거죠? 할아버지하고 여행가는 게 몇 년 만인지 모르겠어요! 엄마! 나 옷 좀 챙겨줘!”
“언제 가는데 그러니?”
“다음 주 화요일! 이틀 뒤에 가는 거야! 비행기는 작가님이 대신 잡아주신대!”
에드워드는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하긴, 다이애나가 너무 집에만 있긴 했지.’
학교와 공부 때문에 놀러 갈 시간도 없었고, 아끼는 손녀다 보니 혹시나 무슨 일이 있을까 친구들과 놀러 가는 것도 최대한 자제시켰다.
지금까지 군말 없이 따르던 다이애나가 저렇게나 좋아하는데, 할아버지인 자신이 어떻게 반대하겠는가.
“몬태나라면 더럽게 춥겠네. 쯧. 헬리아, 내 옷은 두툼하게 부탁한다.”
오래간만에 손녀 단둘이서 여행하는데 그 어느 할아버지가 싫어하겠는가?
에드워드는 결국 백기를 들었다.
***
화요일부터 시작하는 누나의 휴가는 주말까지 포함하여 총 6일을 쉰다고 했다.
어차피 내일모레 함께 집으로 돌아갈 거라 누나는 밥만 먹고 곧바로 집으로 돌아갔다.
오늘부터 짐을 싸야 월요일에 일을 하고 편히 쉰 다음에 화요일에 출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난 딱히 짐 가져갈 게 없는데.’
어차피 대부분의 짐이 아직 몬태나에 있는 상황이었다.
가져갈 건 끽해야 핸드폰과 지갑, 그리고 부모님 선물 정도이려나?
대충 짐을 챙기고 월요일엔 운동을 한 뒤, 가볍게 [일곱 개의 죄악]을 수정하며 그간의 피로를 풀었다.
그리고 화요일, 나는 짐을 들고 집 밖으로 나갔다.
“어딜 가나?”
1층으로 내려오자 머그컵에 따뜻한 커피를 홀짝이고 계시던 한스 할아버지를 만났다.
“다음 주 월요일까지 본집에 좀 가 있으려고요. 요즘 무리해서 약간 힐링이 필요했거든요.”
“그나저나 자네는 괜찮았나?”
“뭐가요? 감기요?”
“취기를 말하는 걸세. 그렇게 독한 술을 마시고 어째서 그리 멀쩡하나?”
“에이. 그런 건 취기도 아니죠. 젊어서 그런 걸 수도 있고요. 아무튼 잘 다녀올게요. 집 좀 잘 부탁드려요!”
“크음!”
입구 밖엔 메디슨 누나가 차를 타고 있는 상태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똑똑.
차 문을 두들기니 누나가 트렁크 문을 열어주었다.
트렁크에 내 짐을 싣고 앞 좌석에 앉았다.
“피곤해 보인다?”
슬쩍 본 누나의 얼굴이 말이 아니었다.
“하암..... 오늘부터 휴가라서 어제 주어진 일을 전부 끝내야 했거든. 그나저나 너는 피부가 맨들맨들하다? 아주 푸욱 쉬었나 보네?”
“응. 어제 아리아나가 피로를 푸는 스트레칭을 알려줬거든.”
“나도 운동이나 할까...... 에휴. 이제 나이가 들어서 몸을 움직이기도 쉽지가 않아.”
누나는 목을 주무르더니 이내 운전을 시작했다.
“에드워드 선생님 비행기 예약은 해놨어?”
“응. 비행기 값도 전부 내가 냈어. 오시는 길에 편안히 오시라고.”
“잘했어. 시간은?”
“우리가 공항에 도착하고 한 시간 뒤에 도착하는 비행기를 타고 오실 거야.”
“그럼 가서 기다려야겠네.”
그렇게 우리는 몬태나를 향해 출발했다.
***
항상 공항에 도착하면 차를 끌고 월리가 마중 나와 있었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응? 아빠?”
“왔냐?”
이번에는 월리가 아닌 아빠가 우리를 맞이했다.
“안녕하세요, 삼촌.”
“오랜만이다 메디슨. 근데 이번에도 남자친구는 안 데려왔구나.”
“아직 결혼할 생각이 없어서요. 호호......”
“뭐. 똑똑하니까 알아서 하겠지. 그나저나 그 선생님이라는 분은 안 왔냐?”
“한 시간 뒤에 오실 거예요. 그나저나 월리한테 부탁했는데 웬일로 아빠가 오셨어요?”
“곧 있으면 GED 시험 때문에 바쁘다고 나한테 대신 가달라고 하더라, 아마 이번에 월리 보기 힘들 거다. 다음 주에 시험이니까.”
“자식...... 그러게 공부는 미리미리 해놓으라니까.”
그렇게 말하는 나도 고등학교 졸업은 못 했지만 말이다.
“추우니까 차에 들어가 있어라. 한 시간이면 금방 지나가겠지. 그리고 뭔 얼굴을 그렇게까지 동동 감싸고 있냐?”
“아. 가끔가다 사람들이 알아봐서요. 차에서 벗을게요.”
그렇게 난 차에 들어가서 쓰고 있던 마스크와 선글라스를 벗었다.
“으으..... 따뜻해.”
4인용 픽업트럭이다 보니 선생님과 다이애나가 오면 비좁을 것 같았지만 어차피 금방 집에 도착하니 상관없을 것이다.
그렇게 차에 들어가 몸을 녹이고 있을 때 문득 궁금한 게 생각났다.
“팡이는 잘 있어요?”
그 말에 아빠의 표정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무슨 일 있어요?”
“쯧. 발정기가 심해졌더라. 하루종일 울어대서 골이 아플 정도야.”
“아..... 그러고 보니 고양이는 중성화를 안 시켜주면 힘들어 한다고 하죠.....?”
“그것 때문에 고민 중이다. 한국에서 시골에 살 때는 그냥 길고양이들한테 먹다 남은 밥이나 주는 정도였는데, 제대로 키우기 시작하니까 걱정이야. 월슨 할배 집에 가서 암컷을 데려올지 아니면 중성화를 할지 고민 중인데......”
“아빠 생각은 어떤데요?”
“당연히 예쁜 암컷을 데려다줘야지! 얌마! 네가 생각을 해봐 앙? 하루아침에 고환이 사라지면 애가 어떻게 하겠냐? 그건 동물 학대지!”
“그래도 도시 사람들은 웬만하면 다 중성화를 시켜요. 뭐..... 시골에 사는 녀석이니 새끼를 낳아도 상관없겠죠. 새끼들도 아빠가 다 돌보실 수 있죠? 근데 제가 중성화시켜준다고 팡이랑 약속한 게 있는데......”
“취소해.”
“네.”
잠자코 이야기를 듣고 있던 메디슨은, 이야기의 흐름이 중성화를 안 하는 쪽으로 가자 다급하게 말했다.
“새끼를 많이 낳을 텐데 괜찮으세요?”
“까짓거 새끼도 같이 키우면 되지 뭐가 걱정이냐?”
“그것도 그렇지만..... 그래도 새끼를 한 번 베면 다섯 마리 이상 낳기도 한다던데요?”
“어차피 늙어서 남아도는 게 시간이니까 같이 키울 수 있어.”
“숙모는 괜찮으시데요?”
“.......”
“동물을 기르는데 한 사람의 의견만 들으면 안 되죠. 그리고 고양이 중성화는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라고 하잖아요? 성격도 유순해진다고 하고, 무엇보다도 한 마리만 집중해서 길러야 관리가 되지 여러 마리를 집중해서 기르면 힘드실 텐데요?”
“......”
누나의 말에 틀린 구석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아빠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팡이 고환의 운명을 단정 짓는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고, 결국에는 시간이 흘러 에드워드 선생님의 도착 시간이 되었다.
“비행기가 도착할 시간이네요. 제가 나가 있을게요.”
공항으로 다시 들어가고 시간이 흐르자 저 멀리서 추운지 몸을 꽁꽁 싸맨 에드워드 선생님과 환하게 웃고 있는 다이애나가 손을 흔들며 다가왔다.
***
마주한 선생님의 얼굴은 생각보다도 불만이 없어 보이셨다.
나는 선생님과 다이애나를 데리고 차로 데려갔고 집으로 출발했다.
“풍경 하나는 기똥차군.”
선생님의 중얼거림에 운전을 하고 있던 아빠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오늘은 하늘이 우중충해서 그런지 저 멀리까지 보이지 않습니다. 맑은 날에 오면 좋으셨을 텐데 아쉽군요.”
“어차피 6일 동안 있을 텐데 한 번쯤은 맑은 날이 있겠지. 근데 통성명을 못 했군. 에드워드라고 하네. 편하게 부르게나.”
“체이스 권입니다. 그냥 편하게 체이스라고 불러주세요.”
“6일 동안 잘 부탁하네. 민폐를 끼치는 게 아닌지 걱정이구먼.”
“하하. 아닙니다. 부담 갖지 마시고 편하게 있으세요. 어차피 대단할 거 없는 집입니다.”
창고를 개조한 집이었지만, 창고라고 말을 하지 않으면 그 누구도 창고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농사일은 끝난 건가?”
“네. 겨울이니까 이제 가축에 집중하고 있죠. 말도 있는데 타보시렵니까?”
“에잉..... 엉덩이 까질 일 있나? 다이애나나 경험시켜주게.”
두런두런 이야기하다 보니 서서히 우리 마을이 보이기 시작했다.
마을 전체를 감싸고 있는 담벼락에 다이애나는 궁금증이 생겼는지 나한테 말을 걸었다.
“작가님 여기는 어째서 담벼락이 이렇게 높은 건가요?”
“별건 아니고 그냥 들짐승이 많이 나타나서 그래요. 저렇게 담벼락을 높게 해도 곰이나 코요태 같은 게 가끔 넘어 들어오거든요.”
“헤에......”
“겨울 되면 먹을 게 많이 없어져서 동물들 울음소리도 많이 들려요. 그렇다고 위험한 건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여우나 그런 것들은 어디선가 들어오기는 하는데 딱히 사람한테 해가 되지 않으니까요.”
“네!”
“아. 저기 저희 집이 보이네요.”
내 손가락 방향을 따라 다이애나와 에드워드 선생님의 고개가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