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화. 품평 (2)
간혹 그런 느낌이 든다.
손에 마치 신이라도 내린 듯이 미친 듯이 글을 쓸 때가 있다.
[일곱 개의 죄악 : 【질투】]를 집필할 때도 그런 기분을 받을 때가 있었지만, 다른 소설들과는 다르게 현실성을 추구하는 추리소설이다 보니 무심코 글을 쓰지 않았다.
에피소드 하나를 구상할 때마다 각종 사례나 행동에 대한 조사가 필요했기에 내가 쓴 글들 중에서 가장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다른 소설들은 중간중간 활동을 하며 시간을 보내기도 했지만, [일곱 개의 죄악 : 【질투】]는 하루종일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스토리 구상과 내용을 집필하는 데에 집중했다.
그렇기에 다른 이의 품평이 간절했다.
‘어제 어느 정도 수정은 했지만......’
수정을 했어도 완벽한 것이 아니었고, 분명히 앞으로 더 수정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했기에 제3자가 보기에 부족한 부분이 어딘지 피드백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가장 먼저 생각난 사람은 이사벨이었다.
‘근데 이사벨한테 맡겼다가는 바로 팬카페에 올릴 것 같단 말이지.’
이사벨이 책을 품평하는 솜씨는 좋다고 판단했지만, 그간의 행적이 있었기 때문에 책 내용을 오롯이 보여주기엔 아무래도 무리가 있었다.
그렇기에 아쉽지만 이사벨한테 맡기는 것보단 캐서린한테 맡기는 게 좋으리라 생각했다.
‘캐서린도 일단은 최근에 책을 많이 읽고 있으니까.’
독자의 시점에서 책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이면서도 같은 작가라는 직업, 그리고 친구 여동생이라는 관계 때문에 믿을 수 있는 녀석이었다.
‘하지만 한 명만으론 부족하니.’
한 사람이 재밌다고 다른 사람에게도 재밌는 건 아니었다.
각자마다 생각이 다르기에 믿을 만한 사람들이 최대한 많이 글을 읽어 줬으면 했다.
브록스한테 품평을 부탁하기는 했지만, 아직 어리다 보니 아쉬운 부분을 상세히 말하지 못했기에 객관적으로 말해줄 사람을 원했다.
‘작품을 보는 눈이 정확하면서도 입이 무거운 그런 사람은 없나?’
솔직히 지인 중에서 그런 사람은 몇 명 있었다.
출판사에 소속되어 있는 직원들을 제외하더라도, 영화를 제작하는 마그누스 감독님이나, 조엘, 블루스타게이트 대표인 한스 등도 충분히 가능했지만 이런 부탁을 하기에는 너무 부담스러웠다.
그렇기에 가장 먼저 생각난 게 바로 에드워드 선생님이셨다.
‘에드워드 선생님이라면 부탁드려 볼 만하지.’
만날 때마다 틱틱거리시지만 그래도 작품에 관해서는 진지하게 맡길 수 있는 분이셨다.
그래서 이번에 집에 초대하며 내 책에 대한 품평을 부탁드릴까 했지만.
‘다이애나가 있잖아?’
에드워드 선생님 밑에서 수많은 작품을 본 여고생이자, 겨울 방학 동안 에드워드 선생님과 함께 우리 집에 초대받은 눈이 높은 사람.
얼마나 눈이 높은지 웬만한 베스트셀러를 보고도 읽을 만하다는 반응은 있어도, 재밌다는 반응이 없다고 들었을 정도였다.
‘두 명이라면 이 소설을 충분히 감평해 줄 수 있겠지.’
제임스는 이미 글에 푹 빠져버린 두 명을 바라보며 힐끗 탁자 위에 놓인 핫초코를 바라봤다.
따뜻한 우유와 함께 위에 얹은 휘핑크림, 거기에 토치질을 한 다음 젤리와 초콜릿 가루를 뿌려 한껏 단맛을 끌어올린 핫초코가 아예 허물어지다 못해 식어가고 있을 정도로 캐서린과 다이애나는 완전히 집중하고 있었다.
‘내가 슬쩍 나가도 모르겠네.’
나는 소설에 푹 빠져 있는 그녀들을 내버려 둔 채 조용히 밖으로 나왔다.
***
나는 나온 김에 동물병원에 들렀다.
동물병원에 가서 팡이를 데려왔다고 말하자, 흑인 수의사는 팡이가 들어있는 가방을 계산대에 올려놓았다.
“딱히 넥카라는 안 해도 됩니다. 어차피 핥지는 않을 겁니다.”
“그런가요?”
“네. 예전에는 수술 방법이 달라서 넥카라를 해야 했지만, 지금은 고환을 째서 꿰매는 것이다 보니 필요 없습니다. 어차피 핥지 못할 곳을 꿰맸으니까요.”
“음......”
어째서 팡이가 중성화를 했는데 내 마음이 불편한 건지 모르겠다.
“어머니 말로는 혹시 몰라 금식을 시켰다고 하더군요. 덕분에 수술은 수월하게 끝났습니다. 수면마취를 시킨 김에 치석 제거도 했는데 아마 마취에서 깨면 휘청거릴 겁니다. 높은 곳에 올라가지 않도록 주의해주세요.”
“네.”
“그래도 상처 부위를 핥으려고 노력은 할 겁니다. 그럴 때마다 말려주세요. 닿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하는 아이들이 있으니까요. 만약에 피가 나거나 핥는 행동을 멈추지 않으면 다시 오세요. 넥카라를 해야 하니까요.”
“그것 말고도 또 와야 할 일이 있을까요?”
“몸에 열이 조금 날 수 있으니, 열이 내려가지 않고 심하게 나면 다시 와주세요. 지금 아이가 배가 고픈 상태겠지만 바로 밥을 주시면 안 됩니다.”
“그럼요?”
“물을 먼저 마시는 걸 확인하고 주시되 요 며칠 동안은 좋아하는 걸 많이 주세요. 스트레스를 먹는 걸로 푸는 거죠. 그리고 다시 식사량을 조절해줘야 합니다. 팡이는 중성화를 안 했는데도 비만이었으니까요.”
“네.”
“계산하겠습니다.”
“......네? 제가요?”
“네. 어머님이 데리러 오는 아들이 계산한다고 하셨거든요.”
‘하긴, 내가 데려왔으니까 책임도 내가 져야지.’
나는 수술비를 계산하고 이왕 동물병원에 온 김에 팡이가 좋아하는 간식들을 구매했다.
캐서린의 집에서 나오며 우리 집으로 돌아가 아빠 차를 끌고 나왔던 터라, 나는 곧바로 집으로 출발했다.
‘아직도 읽고 있겠지.’
한 권을 읽는데 아무리 빨라도 두 시간은 걸릴 테니 팡이를 집에 데려다준 후에 가도 괜찮을 것이다.
그렇게 팡이를 데리고 집 안으로 들어가니 엄마는 설거지를 하고 있었고 아빠는 보이지 않았다.
“엄마? 아빠는요?”
“주무시고 계셔. 그보다 팡이는 데려왔어?”
“네. 오늘은 높은 곳에 올라가게 하지 말고 물을 마신 이후에 밥을 먹이라고 하시네요. 근데 에드워드 선생님은요?”
“그분도 주무시고 계셔. 그 양반 술도 못하시던데 왜 그렇게까지 마신 거람?”
우리 집안에서 술을 가장 잘하는 엄마의 눈에는 취해서 잠든 아빠나, 취해서 기절한 에드워드 선생님이나 똑같은 것 같았다.
나는 팡이가 들어있는 가방을 소파 옆에 내려놓았다.
“그럼 저 다시 나갔다 올게요. 올 때 사 올 거 있나요?”
“그 뭐냐. 다이애나라는 아이 너무 빼빼 말랐더라. 저녁에 밖에서 BBQ나 해 먹을까 하는데 어떠니?”
“점심에 갈비 먹었잖아요?”
“그래서 싫어?”
“어떤 부위가 먹고 싶으신데요?”
“대충 사와.”
나는 그길로 밖으로 나가 캐서린의 집으로 다시 차를 몰았다.
***
캐서린의 집에 도착하고 다시 집안으로 들어갔음에도 다이애나와 캐서린은 아직까지도 노트북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아직까지 읽고 있네.’
나는 조용히 거실에서 커피를 마시고 계신 아주머니한테 다가갔다.
“쟤네들 제가 나간 뒤로 움직이기는 했나요?”
“아니. 아까부터 저 자리에서 움직이지도 않아.”
“아무래도 시간이 더 걸리겠네요. 저 월리 방에 좀 들어갔다 올게요.”
“노크하고 들어가렴. 요즘 신경이 날카롭더라.”
“네. 알겠어요.”
나는 발소리를 최대한 죽이며 2층으로 올라가 월리 방문을 두들겼다.
-똑똑!
안에선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혹시 못 들은 건가 해서 아까보다 조금 더 세게 문을 두들겼다.
-똑똑!
그럼에도 방 안의 소리는 고요하기 그지없었다.
‘공부하느라 정신없나?’
오랜만에 얼굴이나 볼까 했는데 공부에 집중하고 있으니 그냥 가줄까.....
“그런 게 어딨어! 얌마 월리! 안에 있냐!”
-쾅쾅!
이번에는 문이 부서질 정도로 세게 두들겼다.
그러자 안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끼익.....
녹슨 경첩 소리가 들리며 월리가 드디어 문을 열었다.
편안한 복장의 월리는 한눈에 봐도 피곤에 찌들어 있었다.
“죽으려고 하네.”
“.....뭐냐. 왜 왔냐?”
“오랜만에 친구가 보러 왔는데 반응이 그게 뭐냐?”
“젠장. 공부해야 하니까 용건만 말해.”
“오늘 저녁에 집에서 BBQ 파티 할 건데 오라고.”
“너 같으면 시험이 일주일 남았는데 가겠냐?”
“엉. 나 같으면 갈 것 같은데?”
학년 테스트 보는 전날에도 손에서 소설책을 떼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네 꼬라지 보니까 고기 좀 먹어야 할 것 같은데? 너 그러다 시험 보기 전날에 쓰러진다?”
“에휴...... 일단 들어와.”
나는 오랜만에 월리의 방 안으로 들어갔다.
여기저기 붙어있는 포스터들과 피규어는 영락없는 남자의 방이었다.
‘공부를 열심히 하긴 하나 보네.’
전에 왔을 때랑 다른 점이 있다면, 저번에 왔을 때는 컴퓨터가 놓여 있는 책상 하나만 있었지만 지금은 공부를 위한 책상도 하나 더 있다는 것이다.
나는 월리의 침대에 털썩 앉으며 말했다.
“그래서 공부는 잘돼가?”
“.....인터넷 특강 보면서 어찌저찌 따라가고는 있는데 나도 잘 모르겠다.”
“하긴 너는 초등학생 때부터 공부랑 담을 쌓았으니까 따라가기 힘들 거야.”
“그건 너도.....”
“난 그래도 중학생 때까지는 공부를 어느 정도 한 편이니까.”
자랑은 아니지만 영어를 할 수 있게 된 후부터 내 성적은 상당히 좋아졌다.
상위권에 있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중상위권에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했으면 솔직히 그럭저럭 괜찮은 대학교에 갔을걸?”
“그럼 뭐해? 너도 중졸인데. 그나저나 인터넷으로 알아보니까 한국 군인은 중졸이면 안 간다며?”
“희망하면 갈 수 있거든...... 그때는 몰랐지 그게 미친 짓이라는 걸.”
“넌 원래 미친놈이야. 병신 같은 새끼.”
“깜둥아 난 그래도 지금 돈을 많이 벌고 있단다.”
“어후 재수없는 놈. 아무튼 BBQ는 몇 시에 시작하는데?”
“준비할 때 연락할게. 부모님 모시고 와.”
“에휴..... 하긴, 네 말대로 휴식을 좀 취하는 게 좋긴 하겠네. 알았어, 그럼 그때 갈게. 이제 그만 꺼져. 공부하게.”
나는 월리의 방에서 쫓겨나듯 나간 다음 1층으로 향했다.
그리고 1층으로 내려가자마자 보이는 부담스러운 두 쌍의 눈동자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자, 작가님! 이 책 어떻게 쓰신 거예요! 정말 재밌어요! 다음 권도 있는 거죠? 그렇죠? 네? 제발 그렇다고 해주세요!”
“젠장! 책을 대체 어떻게 쓰길래 이렇게..... 대체 머릿속으로 뭘 생각해야 이런 식으로 글을 쓸 수 있는 건데! 완전 변태잖아!”
책을 다 읽었는지 다이애나와 캐서린은 나를 보며 연신 쫑알거렸다.
나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그보다 내용에 이상한 점은 없었어?”
“몰라. 내용에 이상한 점을 찾기보다는 그냥 계속 범인이 누구인지 궁금했던 것밖에 머릿속에 남아 있지 않아.”
“저도 마찬가지예요. 손에 땀이 흥건할 정도로 범인이 궁금해졌어요. 그리고..... 마지막 반전 때문에 소름이 돋았어요.”
“너도 그랬어?”
“네. 전혀 상상하지도 못했으니까요.”
둘의 뜨거운 반응을 보자 그제서야 불안하던 마음이 편해지는 듯했다.
하지만 곧이어 들려오는 다이애나의 말에 얼굴이 굳어져 버렸다.
“다만...... 주인공이 조현병이라는 걸 끝까지 가져가지 못해서 아쉬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