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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촌놈인 줄 알았는데 천재작가였다-129화 (128/216)

129화. 가사

얼음낚시

낚시를 나름 좋아하는 나여도 미간을 찌푸리게 만들 정도로 하고 싶지 않은 낚시였다.

추운데 오들오들 떨면서까지 하는 낚시가 대체 뭐가 좋은지 모르겠다.

거기에 잡혀도 물고기들 행동도 굳어져서 손맛이라는 게 그다지 느껴지지 않다 보니, 솔직히 말해서 큰 흥미는 없었다.

“캠핑하는 느낌으로! 가자가자!”

“.....제발 그만해.”

캠핑하는 느낌이라고 하면 조금 끌리기는 하지만 너무 추울 것 같은데...?

“가자아아아아아!!!”

-흔들~ 흔들~

제시카가 계속 몸을 흔들자 어쩔 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긴 했지만 아직 내 졸린 두 눈은 꿈뻑꿈뻑 잠에 취해 있었다.

그 모습에 제시카는 슬며시 핸드폰을 꺼내 들이밀었다.

“아무리 가족이라도 SNS에 내 사진 무단으로 올리면 메디슨 누나 선임한다?”

“.....칫.”

“사진을 허락한 건 한 번이면 족해.”

내 싸늘한 말투에 제시카는 어쩔 수 없이 핸드폰을 집어넣었다.

제시카는 그저께 올렸던 SNS 반응을 보고 적잖이 당황했다.

고작 몇 시간 만에 DM이 엄청나게 많이 와서 답장하는데도 한참이나 걸렸고, 그중에는 할리우드 유명 슈퍼스타나, 빌보드 상위권에 항상 머무는 가수들도 간혹 있었다.

무엇보다도 같은 길을 걷고 있는 스포츠 슈퍼스타들한테도 연락이 왔다.

아리야한테 제임스의 인기를 항상 듣고는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아니, 오히려 그 말이 부족할 정도로 자신이 제임스 작가의 사촌 누나라는 것이 알려지자 방송국에서까지 슬쩍 연락이 왔을 정도였다.

뿐만 아니라 존경하던 레나 오스틴한테도 친구 요청이 왔다.

“그렇게 사진 찍히는 게 싫어?”

“사진도 사진 나름이야. 지금 내 몰골을 봐봐, 너 같으면 사진 찍고 싶겠냐?”

“그건.... 그렇네. 미안! 이건 내 생각이 짧았어! 근데 지금도 평상시랑 별로 다르지 않아! 하하!”

자신의 잘못을 금방 인정하는 것도 제시카의 장점 중 하나였다.

“네가 잠자고 일어났을 때의 모습도 원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 같아서 찍어주고 싶었지 뭐야. 미안!”

“......뭔데 그 사람들은.”

잠이 확 달아나네.

예전에는 팬티색 물어보는 사람들 때문에 당황했었는데.

“아무튼.... 얼음낚시?”

“응. 다이애나가 가고 싶데!”

“하암......”

나는 잠시 몸을 이리저리 틀며 스트레칭을 했다.

몸이 조금 풀리자 비몽사몽하던 정신이 어느 정도 돌아왔다.

“네가 가고 싶은 게 아니고? 오늘 다이애나가 나한테 작사하는 법을 알려준다고 했거든.”

“.....데헷.”

“에휴. 설득했구나?”

제시카가 본격적으로 옆에서 떠들면 귀가 아플 정도였다.

고등학생밖에 안 된 다이애나를 구워삶는 건 손쉬운 일이었다.

“아침 10시.....”

한 6시간 정도 잤나?

‘이 정도 잤으면 충분하겠지 뭐.’

어차피 내일도 쉴 테니까.

“그래 가자 가.”

“아싸! 짐은 다 챙겨뒀으니까 얼른 씻고 내려와!”

“그려그려.”

제시카가 나가자 나는 작은 한숨을 내쉬며 주섬주섬 침대에서 일어났다.

대충 얼굴을 씻고 방에 들어가 최대한 두껍게 입고 거실로 내려갔다.

거실로 내려가니 다이애나와 제시카는 이미 두껍게 입고 나갈 준비 중이었다.

“가자! 화로하고 장작도 다 준비해놨어!”

“먹을 건?”

“준비해놨지!”

아침부터 이게 뭔 일인가 하겠지만, 제시카와 몇 년 정도 살다 보면 익숙해진다.

무엇보다 다이애나도 그리 싫지 않은지 오히려 기대하는 얼굴로 빨리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주섬주섬 먹을 걸 더 챙기며 소파에서 팡이랑 놀아주고 있는 엄마한테 말했다.

“엄마. 선생님은요?”

“월슨 할아버지 댁에 갔어. 아빠는 데려다주러 갔고.”

“아. 그래요?”

“응. 가는 김에 강아지 추천을 받으러 간다고 하더라고.”

“강아지? 설마 키우게?”

“집을 지킬 만한 녀석이 있으면 키워보려고.”

“웬일이야?”

“봄이 오면 닭이나 오리 같은 걸 키울 생각인데, 그런 녀석들을 지키려면 한 마리 있으면 좋을 것 같아서.”

“......갑자기요? 평소에는 안 그랬잖아?”

그 말에 엄마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원래 아빠가 강아지도 좋아하거든. 평소에는 여유가 없어서 키울 생각을 못 했는데, 너도 독립했으니까 슬슬 취미생활로 키우시려는 거겠지.”

“아......”

아빠는 원래부터 동물을 굉장히 좋아하셨다.

하지만 자신 때문에 미국으로 왔다는 자책감 때문인지 취미를 즐길 생각조차 안 하셨다.

하지만 내가 고양이를 데려온 이후로 아빠의 마음이 흔들린 게 분명했다.

‘팡이를 위해서 캣휠을 직접 만들어주실 때 대충 예상은 했지.’

아들놈은 충분히 돈을 벌고 있고, 이제는 몸도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으니 슬슬 휴식을 취하면서 하고 싶으셨던 생활을 즐기시려는 거겠지.

‘하긴 로망이니까.’

커다란 마당에 닭과 토끼, 오리 같은 걸 키우면서 창고에는 공구방을 만들어 만들고 싶은 것을 만든다.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은퇴한 남자들의 로망이라고 생각한다.

“하긴, 그래도 팡이랑 잘 지낼 수 있는 녀석이면 좋겠네요.”

“그러게 말이다. 아빠도 그걸 염두에 두고 있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더 신중을 기하시는 모양이야. 아무튼 조심히 잘 갔다 와.”

“네. 아. 라면 좀 몇 개 가져갈게요.”

“내가 이미 챙겼어! 얼른 가자!”

“......그래.”

아. 왠지 고생길이 훤하네.

***

출발하기 전에 캐서린도 데리러 갔다.

이유는 별거 없었고 그저 집에서 퍼질러 자고 있을 캐서린이 아니꼬웠기에 그냥 데려갔다.

싫어할 거라 생각했던 캐서린이 순순히 따라왔고, 우리는 꽝꽝 얼어붙은 호수에 도착했다.

다이애나는 얼어붙은 호수를 보며 발을 들이기 망설이는 듯했다.

“그, 그냥 올라가도 돼요?”

“지금 날씨면 트럭이 올라가도 괜찮을걸요?”

물론 농담이다.

트럭까지는 아니어도 지금 두께라면 우리가 가져온 차량 정도는 올라가도 될 것이다.

하지만 차를 얼음 위에 올렸다가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 우리는 호수 앞에 차를 주차하고, 차에서 짐을 꺼내 호수 안쪽으로 가져갔다.

“으으..... 이 날씨에 낚시라니.... 이건 미친 짓이야.”

그런 미친 짓을 우리만 하는 게 아니었다.

호수 안쪽으로 들어가자 텐트들이 상당히 많이 있었다.

어차피 전부 우리 동네 아니면 옆 동네에서 온 사람들이 분명했기에 나는 익숙하게 전기톱을 꺼내들었다.

“우와..... 전기톱으로 얼음을 자르시게요?”

“네. 이 정도 얼음을 뚫으려면 전기톱이 편해요.”

원래는 얼음을 뚫으려면 아이스드릴이 필요한데, 전기톱을 가져온 이유는 집에 있던 아이스드릴이 망가졌기 때문이다.

“무리하지 말고 그냥 이걸로 해. 옆에서 빌려왔어.”

그렇게 얼음을 자르려 했는데 어느새 제시카가 아이스드릴을 근처에 있던 텐트에서 빌려왔다.

솔직히 전기톱을 남자다움을 보여줄까 했는데.. 쩝...

나는 무안한 표정을 지으며 아이스드릴을 받아들었다.

“흠흠.”

나는 헛기침을 하며 4개의 구멍을 만들었다.

아이스드릴의 파워가 상당했기에 금방 4개의 구멍을 뚫을 수 있었다.

내가 얼음을 뚫는 사이 제시카는 익숙하다는 듯 캠핑용 화로에 장작을 집어넣고 불을 피웠다.

다이애나는 재밌다는 얼굴로 그 모습을 유심히 바라봤다.

“익숙해 보이시네요?”

“제시카 때문에 겨울에 자주 했으니까요. 그보다 아침 드셨어요?”

“네? 네..... 저는 먹었어요.”

아무래도 나 혼자만 밥을 먹지 않은 것 같았다.

“제시카 물도 끓여줘. 아까 보니까 컵라면 있던데 그거라도 먹게.”

“알았어.”

나는 낚싯대를 정비해서 금세 4명분의 낚싯대를 만들었다.

간이 의자를 만들고 그곳에 앉아 낚싯바늘을 물 안으로 집어넣었다.

“여기요.”

“그냥 이대로 넣으면 되는 건가요?”

이런 것 하나하나가 신기한 도시 소녀 다이애나는 재밌다는 듯이 낚싯바늘을 얼음 안으로 집어넣었다.

“그나저나 갑자기 웬 낚시야?”

어쩔 수 없이 따라오기는 했지만 왜 갑자기 낚시를 하자는 건지 아직까지도 의문이었다.

그러자 제시카는 대수롭지 않게 끓는 물을 컵라면에 따라주며 말했다.

“휴가니까.”

“이해됐어.”

하긴, 나도 군대에 있을 때 휴가 나가면 하고 싶은 리스트를 작성했었지.

그중 하나가 햄버거 먹기였는데.

“자.”

“으휴.... 추워.”

나는 제시카가 준 컵라면을 받아들며 낚싯대를 바라봤다.

얼음낚시의 장점은 캠핑 같은 분위기를 낼 수 있다는 것이었고, 단점은 물고기가 없는 지역에 낚싯바늘을 내리면 한 마리도 잡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날씨가 추워져서 물고기가 활동을 안 하기 때문이다.

‘물고기 잡기는 글렀네.’

반응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뭐. 그러다가 잡힐 수도 있지만, 내가 봤을 때는 뻘짓이나 다름없었다.

“다이애나.”

“네?”

기대에 찬 눈초리로 낚싯대에서 눈을 떼지 않는 상태로 대답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가사 쓰는 법 좀 알려주세요.”

“아..... 네!”

다이애나는 잠시 곰곰이 고민하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소설 작가는 머릿속으로 스토리를 정하고 그걸 글로 표현하지만, 작사는 멜로디와 가수의 콘셉트 거기에 리듬과 그루브를 살려줘야 하고 음악적 이해도도 나름 필요하다고 할아버지한테 들었어요.”

“가수의 콘셉트는...... 이해가 되네요. 다만, 멜로디나 음악적 이해도가 문제라고 생각해요.”

“멜로디나 이런 건 솔직히 작가님하고 상관이 없어요. 어차피 가사만 적으시니까요. 제가 생각하기에는 작가님은 가사라는 것에 너무 연연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가사라는 것에?”

“네. 저번에 작가님이 쓰신 가사는 어느 가수의 콘셉트를 맞춰서 썼는지는 알겠지만, 가사가 마치 명언 같았어요. 제 생각이지만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신 느낌이 났어요.”

“그렇기는 하죠. 당시에는 뭐...... 내기가 걸려 있었으니까요.”

“그때 있었던 부담감 때문에 작사를 적는다는 것에 큰 부담을 느끼신 게 아닐까요? 그냥 지금이라도 가볍게 한 번 작사해보세요.”

“가볍게라......”

“일단은 어느 장면이라도 떠올리세요. 일상 속, 만화 속, 영화 속, 소설 속 어느 장면이든 상관없어요. 아니면 어떤 사물을 주제나 감정을 주제로 해도 상관없어요.”

다이애나의 말에 나는 일단 가장 흔한 주제인 ‘사랑’을 생각해봤다.

내가 짝사랑했던 에일리를 말이다.

“주제를 떠올리셨으면 그 이야기를 머릿속으로 생각하며 이입해보세요. 마치 자기 자신이 주인공인 것처럼 말이죠.”

말하지 않더라도 내가 주인공이었기에 더욱 감정이 이입되었다.

“한 스토리가 떠오르면 그 스토리를 적고, 그다음에 그 스토리에서 느꼈던 감정을 생각해보세요.”

다이애나의 말에 내가 가장 먼저 생각한 건 ‘다가가지 못한 나 자신’이었다.

그녀를 짝사랑했지만, 멀지도 그렇지도 가깝지도 않게 우물쭈물 다가갔던 나 자신을 말이다.

누구한테나 인기가 많았던 사람이라 그저 지켜보는 것만으로 행복했던 그때를 말이다.

“그리고 다음 스토리를 생각한 다음, 그 부분을 가사로 적고 거기에 또다시 감정을 입혀보세요.”

“......”

“어차피 내기도 아니고, 돈이 걸려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가볍게 가사를 써보시는 거니까 부담 갖지 마시고 생각했던 걸 그대로 말해보세요. 그것만으로도 가사는 충분할 수 있으니까요.”

다이애나의 말에 나는 지금까지 생각했던 가사를 천천히 적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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