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3화. 악마의 추리소설
나는 곧바로 에밀라한테 [일곱 개의 죄악 : 【질투】]의 원고를 전송했다.
소녀팬처럼 좋아하는 에밀라의 반응에 나까지 절로 흐뭇해질 정도였다.
“재밌게 봐줬으면 좋겠네.”
침대에서 일어난 나는 곧장 집에서 나갔다.
이사벨한테 맥플러리를 사주기 위해서.
***
제임스의 작품의 최대 장점은 무엇일까?
보통 작품을 보면 가장 중요한 것이 필력이라고 생각을 한다.
소름 돋는 필력이야말로 책의 몰입도를 가장 끌어올리는 요소이니 말이다.
하지만 필력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스토리가 재미없으면 그 또한 지겨워질 뿐이다.
스토리가 이어져야 흥미진진해지며 계속해서 책에 몰입할 테니까.
하지만 스토리와 필력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묘사가 떨어지면 책에 대한 이해도가 낮아진다.
주인공, 환경, 배경 등의 묘사가 함께 어우러져야 더욱 책의 재미에 빠져든다.
제임스 작가의 최대 장점은 이 세 가지를 전부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항상 뒤에 따라붙는 말이 ‘악마’였으니 말이다.
[리턴 패션 디자이너]는 묘사력의 정점에 있는 작품이었다면, [드래곤 마스터]는 스토리의 정점에 있는 작품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필력이 부족한 건 아니었지만, 알게 모르게 균등하지 않은 점이 있었다.
이는 제임스가 떠올리지 못했던 단점이었다.
모든 것이 완벽한 책은 없다 보니 그러려니 할 수 있는 문제였지만, 그래도 책을 많이 읽은 사람들이라면 제임스 작가의 소설이 약간 아쉽다는 것을 눈치채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사람들 중에는 에밀라가 있었다.
‘......뭐야 이거.’
책을 업으로 삼고 하루종일 읽는 에밀라 역시 제임스 작가의 단점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굳이 말하지 않았다.
어쨌거나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훌륭했고, 굳이 단점을 말해주어 제임스 작가님의 스타일에 방해가 될까 알려주지 않은 이유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읽고 있는 [일곱 개의 죄악 : 【질투】]는 달랐다.
스윽
에밀라는 소매를 걷고 피부를 바라봤다.
닭살이 돋아나 있었다.
‘이런 소설이...... 과연 가능한 걸까?’
에드월 홈즈
어렸을 적 보았던 그 사람의 작품이 떠올랐다.
모든 방면에서 완벽했던 그 남자의 그림자가 제임스 작가가 보내준 이 소설에 비치고 있었다.
완벽에 가까운 작품.
에밀라는 이 소설을 읽고 그렇게 느꼈다.
‘휴식기를 가지고 쓴 글이 이 정도라고.....?’
이 글은 다른 글들과 다르게 휴식기를 가지고 처음으로 쓴 글이었다.
성장한 것이다.
휴식기 동안 글에 대한 부담감을 내려놓았기에 성장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에밀라는 소름이 돋은 피부를 쓰다듬으며 눈앞에 펼쳐져 있는 파일을 지그시 바라봤다.
벌써 시간이 한참이나 지났음에도 소설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다른 소설들은 봤던 장면을 계속해서 보고 싶어지게 하는데, 이 소설은 달라..... 마무리가 깔끔해서 오히려 속이 시원한 편이야.’
그런데 왜일까?
‘어째서 눈을 뗄 수가 없는 거지?’
이 책에도 매력이 있었다.
범인을 알게 된 직후에도 눈을 뗄 수 없는 마력 말이다.
다른 소설들과는 달리 여운은 적었지만, 오히려 그 여운이 없기에 더욱 책을 읽는 느낌이었다.
“......후우.”
간단한 오타는 있었지만 내용상으로는 흠잡을 데 없이 완벽했다.
‘이 작품이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얼마나 재밌을까?
생각만 해도 가슴이 두근거려 진정되지 않을 정도였다.
***
제임스는 이사벨과 다이애나를 데리고 햄버거집으로 향했다.
아무리 집에서 맛있는 걸 먹어도 가끔은 패스트푸드가 먹고 싶은 법이다.
드라이브 스루로 햄버거를 살 수도 있었지만, 그냥 식당에서 음식을 먹기로 하였다.
“넌 그게 그렇게 맛있냐?”
“응!”
“추워 죽겠는데..... 뭔 아이스크림이야.”
이해가 안 되네
이사벨은 맥플러리 5종류를 다 시켜놓고 번갈아 가며 먹고 있었다.
햄버거집에서 햄버거는 시키지도 않고 오로지 맥플러리만 먹고 있었다.
“그래서 어떻게 됐어?”
“책으로 낼 거야. 단편 소설 같은 느낌으로 낼 것 같은데..... 아무래도 시간이 조금 흘러봐야 알 것 같아.”
“무슨 이야기예요?”
햄버거를 먹던 다이애나는 이사벨과 나의 대화에 궁금증을 느꼈는지 고개를 갸웃했다.
“새로운 신작 이야기예요.”
“아아.... 그 [일곱 개의 죄악]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건 아니고..... 이번에 새로운 신작을 하나 더 준비할까 해서요.”
“신작이요?”
다이애나는 놀란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안 힘드시겠어요? 다음 주부터 소설을 또 연재하신다면서요?”
“이번 소설은 그렇게 어렵지 않아요. 아까 말했다시피 단편 소설 형식으로 진행될 것 같거든요. 걱정하지 마세요.”
그렇게 말은 했지만 솔직히 쉬운 일은 아니었다.
다음 주부터 시작하기로 한 [블랙 & 월드] 그리고 [리턴 패션 디자이너]와 거기에 [초능력 세계]까지 있으니 세 작품을 동시에 신경 써야 했다.
‘순서도 정해놔야지.’
어차피 [리턴 패션 디자이너]는 웹소설이다 보니 하루에 한 편씩은 집필해야 했다.
[초능력 세계]는 수정만 하면 되니까 어려울 게 없고, 문제는 [블랙 & 월드]였다.
“음..... 아무래도 휴식은 여기까지네요.”
“네?”
“오늘부터 글을 시작해야겠어요.”
우선은 [리턴 패션 디자이너]를 최대한 많이 써놓을 생각이었다.
그리고 루시아한테서 연락이 오면 그때부터 [초능력 세계]를 손보기로 하고, 그전까지는 [블랙 & 월드]를 쓸 생각이었다.
“오빠! 그럼 뭐부터 쓸 거야?”
“[리턴 패션 디자이너]”
“......!”
그 말에 이사벨은 먹고 있던 맥플러리를 내려놓고 자리에 앉아 두 주먹을 불끈 쥐며 좋아했다.
다이애나도 다른 소설들보다는 [리턴 패션 디자이너]를 기대하고 있었는지 이사벨과 똑같은 반응이었다.
다만
“다이애나는 몰라도 이사벨 너는 볼 수 없을 텐데?”
“.....응?”
“아니, 그도 그럴 게 너 아직까지 용돈이 끊겨 있는 상태 아니냐?”
“......!”
그 말에 현실로 돌아온 이사벨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드래곤 마스터], [사막의 전갈]을 멋대로 투고한 죄도 있었지만, 또 여러 가지 일이 있다 보니 아직까지도 용돈이 끊긴 상태였다.
애니와 루니아를 돌봐주는 대가로 그래도 많이 줄여줬지만, 아직은 수중에 돈이 없어 볼 수 없을 것이다.
“히잉.....”
이사벨은 순식간에 시무룩해졌다.
그러게 누가 사고 치래?
“......맥플러리 하나 더 먹어도 돼?”
“그거 다 먹고 시켜.”
***
집으로 돌아오자 웬일인지 에드워드 선생님이 월슨 할아버지 집에서 빨리 돌아와 계셨다.
선생님은 거실에 앉아 재밌다는 듯 수첩 하나를 바라보고 계셨다.
“뭘 보고 계신 거예요?”
“네 수첩.”
“......그건 어디서 나셨어요?”
“탁자에 올려져 있었네.”
“아......”
그러고 보니 놓고 갔었네.
어차피 딱히 중요한 내용은 없었기에 봐도 상관없었다.
저 수첩에 적어놓은 내용이라고 하면 기껏해야......
“그거..... 설마.....”
“킁. 자네 참 가사를 요란하게도 써놓았군.”
“......”
“뭐..... 자네가 이런 순정을 가지고 있을 줄은 몰랐네. 것참..... 이거 짐승 같은 남자라고 착각한 내가 부끄러워지는구만, 자네한테 사과하겠네. 그 뭐냐..... 힘내게나.”
“......”
하나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
애초에 고등학교 시절의 이야기라 딱히 위로가 필요하진 않았지만, 내 찌질한 과거가 다른 사람들한테 들켰다는 사실에 부끄러워졌다.
“그나저나 이거 자네가 쓴 가사가 맞나?”
“......네. 그런데요? 무슨 문제가 있나요?”
“문제까지는 아니고...... 흐음. 저번에 쓴 가사보다 훨씬 좋아서 한 말일세.”
“다이애나 양도 그런 말을 하더라고요. 더욱 가사다워진 느낌이 난다고.”
선생님은 수첩을 닫고 다시 거실 탁자에 올려놨다.
“이거 다이애나한테 맡길 생각인가?”
“아뇨? 그냥 없앨 건데요?”
“응? 이 가사를 말인가?”
“네. 일단 창피하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제 흑역사나 다름없는 이야기니까요.”
그 말에 선생님은 혀를 찼다.
“쯧쯧..... 원래 그런 흑역사에서 좋은 가사가 탄생하는 법이네. 잘 적은 가사라 아깝기는 하지만, 작품을 적은 당사자가 그런 말을 하니 딱히 할 말이 없군 그래. 알아서 하게나.”
선생님이 아깝다는 표정을 하자 나는 슬쩍 물어봤다.
“그런데 가사가 정말 괜찮은 게 맞나요?”
“가사의 내용보다는 상황에 그려지는 감정선이 좋다고 보는 게 좋겠군. 직접 겪은 스토리라 그런지 노래를 어떻게 프로듀싱 하느냐에 따라 상당히 좋은 노래가 만들어질 것 같은데... 근데 이건 누가 부를 걸 생각하며 적은 가사인가?”
“엘리나요.”
“엘리나?”
“네. 제가 알고 있는 사람 중에 가장 아름다운 음색을 가진 사람이에요.”
“가수인가?”
“무명 가수죠. 뮤튜브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는 여자 가수인데, 예전에 인연이 있어서 만났거든요.”
“자네가 그런 말을 할 정도면 상당히 음색이 좋은 가순가 보군. 근데 음색이 그렇게 좋은데 어째서 아직도 무명이지?”
“소속사가 없다고 들었어요.”
“아무리 소속사가 없다고 해도 음색이 좋으면 성공하기 마련인데...... 무슨 일이 있는 건가?”
“글쎄요? 스스로 작곡을 한다고는 하는데 이거하고는 딱히 연관이 없을 것 같네요. 운이 없는 게 아닐까요?”
“그럴 수도 있지만..... 흐음. 아무래도 소속사가 없는 게 가장 큰 이유겠군. 소속사에 들어가야 유명세를 얻기 쉬우니 말이야. 하지만 그 정도로 음색이 아름다우면 소속사에서 접근을 할 텐데..... 참으로 요상하군.”
“한 번 들려드릴까요?”
“그러지. 뮤튜브에 뭐라고 쳐야 하나?”
“그냥 엘리나라고 치시면 돼요.”
선생님은 뮤튜브로 들어가 엘리나를 검색했다.
“이 구독자 20만을 달성한 여자 말인가?”
“네...... 네? 20만이요?”
나도 서둘러 내 핸드폰으로도 뮤튜브에 들어갔다.
그러자 전에 봤던 엘리나의 사진 옆으로 20만 구독자라는 표시가 되어 있었다.
“허......”
전에 봤을 때는 이렇게까지 높지 않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녀도 성장했다는 건가?
“흐음...... [블랙 & 월드]라..... 저번에 자네가 적은 가사를 프로듀싱한 걸 이 여자한테 줬나 보군?”
“네. 그녀의 목소리로 상상했었으니까요.”
“아마 이걸 계기로 성장한 것 같군. 전에 있던 영상들에 비해 [블랙 & 월드] 노래 조회수가 월등히 높군.”
처음에는 호기심에 그녀의 노래를 들었지만, 점차 [블랙 & 월드] 노래가 이슈화되면서 조회수가 높아진 것 같았다.
그녀의 영상 중에서 유일하게 1,000만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으며 그 노래로 인해 엘리나가 올린 다른 영상들도 높은 평가를 받은 듯싶었다.
그 때문에 덩달아 구독자 수가 늘어난 거겠지.
“그럼 조회수가 가장 높은 걸 들어봐야겠지.”
선생님은 영상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AH~~♪~~~♬!
아름다운 목소리가 집안에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