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시골촌놈인 줄 알았는데 천재작가였다-134화 (133/216)

134화. 대중음악

“확실히... 뛰어난 목소리긴 하군.”

“그렇죠?”

“뛰어난 목소리라고 했지, 독보적인 목소리라고는 안 했네.”

선생님은 영상을 다 보시곤 핸드폰을 주머니 속으로 집어넣으셨다.

“그런가요?”

“뭐..... 좋은 목소리라는 건 부정하지 못하겠지만, 이 정도 음색을 가진 사람은 업계에 쌔고 쌨네. 그래도 뭐. 자네가 어째서 이 여자의 목소리를 참고로 했는지는 알겠네.”

별만큼 많고 많은 가수들 사이에서 1위를 차지하는 건 보통의 방법으론 되지 않았다.

“그래도 이 정도 음색이면 괜찮은 소속사에 들어가서 좋은 음악만 받는다면 상당한 유명인이 됐을 텐데.....”

“꿈이 싱어송라이터라고 하더라고요.”

“에잉..... 쯧. 꿈은 응원하지만 그런 사람이 어디 한두 명인가? 힘든 길을 가겠구먼.”

“그럼 성공하려면 무슨 조건이 필요한데요?”

그 말에 에드워드 선생님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특색 그리고 이슈, 그 두 가지면 충분히 먹고살 만하겠지.”

“1위가 되려면요?”

“재능.”

그 두 가지를 전부 포함하고도 재능까지 있어야만 1위가 가능하다고 선생님은 그렇게 단정하셨다.

***

방으로 돌아온 나는 엘리나의 노래를 재생시켰다.

그녀가 cover한 곡이 아닌 그녀가 직접 작사, 작곡을 한 그런 곡들을 말이다.

‘작곡은 잘한 것 같은데......’

물론 부족함이 없잖아 있었지만 그래도 내가 볼 땐 잘한 느낌이었다.

다만, 작사 능력은 아직 부족한지 그렇게 와닿지는 않았다.

“특색, 이슈 그리고 재능이라......”

가끔가다가 목소리에 특색이 있는 가수들이 있다.

듣기엔 호불호가 갈리더라도 확실한 팬층이 있는 그런 가수들이 말이다.

이슈라고 하면 엘리나도 있는 거나 다름없었지만, 그래도 내가 직접적으로 흥보한 게 아니라 금방 사그라든 편이었다.

그리고 재능.

‘가장 중요하지.’

노력만으로 되는 세계가 아니다.

노래에 대한 재능, 작사 작곡에 대한 재능이 있어도 뜨지 못하는 세계였다.

“쓰읍......”

괜히 이야기를 꺼냈다가 머릿속에서 영 사라지질 않는다.

“하아..... 일단 집중하자.”

-찰싹! 찰싹!

뺨을 두어 번 때린 나는 모니터 화면을 집중했다.

[리턴 패션 디자이너]의 연재는 다음 주 월요일부터 시작되다 보니, 일요일에 집필을 할까 했지만 지금부터 분량을 많이 적어놓으면 나중이 편안해지니 바로 시작해볼 생각이었다.

“2권 분량을 조금 적어놨지?”

저번에 에일리와 만났을 때 갑작스럽게 생각났던 내용을 조금 적어둔 게 있었다.

‘솔직히 이 부분도 1권에 포함되었다면..... 좋았을 텐데.’

2권의 앞부분은 칼리아의 기억이 사라지며 옷을 그리는 부분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완전히 기억을 잊고 새로운 미래가 나오는 장면을 2권부터 시작하는 게 더 좋았을 것 같았다.

아쉽긴 했지만 일단 앞 내용을 그대로 가져가고 새로운 희망을 덧붙여주는 게 좋겠지.

‘벤자민의 행복이라......’

만나는 사람마다 벤자민의 행복을 묻는다.

하지만 나는 신의 관점에서 벤자민한테 말한다.

‘너는 지금 행복할 자격이 있니?’

시간은 금과 같다는 말이 있다.

단 1초라도 시간은 되돌릴 수 없으니 말이다.

벤자민은 시간을 되돌렸고, 미래에 자신이 어떻게 되는지도 알고 있었다.

‘정확히 벤자민은 자신이 미래에서 회귀했다는 것 정도는 인지하고 있지.’

신은 벤자민한테 단 몇 시간 동안만 미래의 기억을 가지는 걸 허용했다.

1권의 마지막, 신이 허락한 기억이 사라지면서 벤자민은 그저 자신이 미래에 암울했다는 그 사실 하나만 기억할 것이다.

“그 암울한 기억이 어째서 생겨났는지가 사라졌으니까. 이제 벤자민은 자신의 꿈인 패션 디자이너를 꿈꾸며 나아가겠지.”

그때마다 생각할 것이다.

자신이 그렸던 그 아름다운 어린아이 옷의 주인이 누구인가 말이다.

“시작해볼까?

-투두두둑!

나는 오래간만에 손가락을 풀고 키보드 위에 손가락을 올렸다.

***

그 이후로 벤자민의 일상은 늘 한결같았다.

어째서 루시와 헤어져야 했는지도 이제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가끔 보기만 하면 화를 내는 루시를 만날 뿐이었다.

물론 미안했지만 그때 그 상황으로 다시 돌아가더라도 똑같은 일을 벌였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때만 생각하면 이상할 정도로 심장이 두근거리며 초조한 마음이 생겨났다.

‘그래서 이 그림은..... 누구의 옷일까?’

벤자민한테는 새로운 규칙 같은 게 생겼다.

아침에 일어나면 그렸던 옷을 5분 정도는 바라보고 있는 것.

자기 전에 5분, 일어나서 5분.

하루에 10분 동안 벤자민은 자신이 그린 그림이 걸려있는 액자를 뚫어지게 바라봤다.

‘어린아이 옷인데...... 예쁘네.’

취향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은 아름다운 다자인으로 되어 있는 옷이었다.

‘내가 그린 건 확실한데..... 왜 그린 거지?’

두근! 두근! 두근!

벤자민은 자신의 심장에 손을 가져갔다.

저 그림을 볼 때마다 이상하리만큼 심장이 두근거렸다.

사랑에 빠지거나, 흥분해서 심장이 뛰는 게 아니라 마치 무언가를 그리워하며 뭉클해지는 그런 느낌이었다.

‘학교 가야지.’

오늘도 벤자민은 액자 속에 박혀 있는 그림을 한참 동안이나 바라보고 나서야 방을 나섰다.

언제나 똑같은 일상이었다.

어찌 보면 지겨운 그런 일상이었지만, 벤자민은 왠지 모르게 이런 일상이 좋기만 했다.

‘왜일까?’

가난한 집구석, 항상 화가 나 있는 엄마, 학교에 가도 움츠려 있는 자신.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벤자민은 이 현실이 지긋지긋하고 항상 불안했다.

그런데 요즘 따라 이런 평범하고도 지겨운 일상이 너무 좋았다.

그래..... 그냥 아무런 일도 없는 이런 일상이 항상 지속되기를.....

***

“자..... 이제 무슨 시련을 내릴까?”

벤자민이 행복해진다.

그럼 이 소설은 거기서 완결이다.

‘벽을 만들어 줘야지.’

앞으로 벤자민에게 여러 시련이 다가오고 그걸 하나씩 이겨내는 순간, 이 소설은 비로소 재밌어진다.

“근데 딱히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단 말이지......”

처음이 너무 강렬했기 때문일까?

벤자민한테 줄 시련이 잘 떠오르지 않았다.

‘아니지..... 기억을 잃었으니까, 작은 벽도 벤자민한테는 크게 느껴질 수도 있어.’

다만, 이렇게 되면 독자들의 반응이 무덤덤해진다.

[리턴 패션 디자이너]가 독자들을 이끌어 온 방법은 벤자민의 절망이 언제쯤 희망으로 변할까 였다.

지금 벤자민의 스토리를 희망으로 넘기면 대다수의 독자들이 일단 만족은 할 테지만, 그게 내가 생각은 방향은 아니었다.

그러니 벤자민한테 또 다른 시련을 주어야 하는데, 앞선 내용의 절망이 상당히 크다.

절망을 크게, 희망은 작게.

그게 이번 소설의 모토였다.

“벤자민...... 미안하지만, 아무래도 그냥 처음 생각했던 시나리오대로 가야 할 것 같다.”

나는 지금까지 적었던 내용 중간중간을 수정했다.

처음 내용보다 절망이 더 크지는 않을 테지만, 현실은 아직 절망투성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상기시킬 필요가 있었다.

“Bully(왕따)..... 애초에 그런 스토리를 생각하고 시작한 소설이니까.”

나는 다시 키보드를 두들겼다.

***

[리턴 패션 디자이너] 분량을 최대한 많이 적어놔야 다른 걸 하기 편해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인지 제임스는 이틀 동안 내리 글만 썼다.

금요일, 토요일이라는 귀중한 주말 시간까지 날리며 집필했기에 일요일은 푹 쉬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원래라면 하루종일 잤을 테지만.....’

애석하게도 오늘은 약속한 날짜였다.

“피곤해 보이시는데 괜찮으세요?”

“네..... 뭐.”

키라나는 내 얼굴을 보며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냈다.

이사벨한테 카메라를 설치하는 방법을 부탁하려고 했지만, 그전에 옆에 있던 키라나가 자신이 해주겠다고 선수를 쳤다.

‘뮤튜브를 한다고 했지?’

인지도가 있는 프로듀서라서 그런지 개인적인 뮤튜브 채널도 운영 중이라고 했고, 가끔은 SNS로 Live 방송도 한다고 했다.

그 때문인지 굉장히 능숙하게 방송 준비를 해주었다.

“그나저나 다이애나 양한테 작사하는 법을 배우셨다고 했죠?”

“배웠다기보다는 노하우랄까요...?”

“그게 그거죠.”

“하긴 그렇겠네요.”

“그래서 말인데요......”

키라나가 말끝을 흐리는 순간 그녀가 무엇을 원하는지 바로 눈치챌 수 있었다.

“가사를 보여달라고요?”

“......너무 노골적이었나요?”

“그냥 그럴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근데 가사 내용이 마음에 안 들어서 처분할......”

난 잠시 말을 흐렸다.

빌보드 1위 가수의 곡을 프로듀싱할 정도로 재능있는 프로듀서는 과연 엘리나의 노래를 어떤 식으로 해석할까?

“키라나 혹시 그전에 곡 하나만 들어주실 수 있을까요?”

“누구요?”

내 핸드폰은 촬영 준비 중이었기에 나는 모니터에 엘리나의 영상을 올렸다.

“아..... 이분.”

“누군지 아세요?”

키라나는 엘리나를 알고 있었다.

“물론이죠. 작가님의 음악을 부르신 분 아닌가요? 제가 이 영상 때문에 작가님을 찾아온 거기도 하고요.”

‘아. 그러고 보니.....’

다이애나가 [블랙 & 월드]와 [드래곤 마스터]를 작곡한 걸 알고 있었지?

“목소리가 굉장히 아름다우신 분이세요. 중간중간에 숨을 들이마시는 습관이 있긴 하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노래를 굉장히 잘 부르시는 분인 것 같아요.”

키라나는 냉정하게 엘리나의 습관과 장단점을 분석했다.

“소속사만 잘 만났다면 이런 뮤튜브는 안 해도 될 정도의 실력인 것 같은데 아쉽죠. 하지만, 최고가 되고 싶다면 이런 과정을 직접 겪는 게 오히려 좋을 수도 있어요. 누구나 최고가 되기 위한 과정 속에서 많은 걸 배우니까요.”

작품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건 작품을 만든 본인밖에 없다.

나는 내 방에 굴러다니던 수첩을 손으로 집었다.

“부탁 하나 할 수 있을까요?”

“부탁.....이요? 무슨 부탁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저하고 작업해보고 싶으시다고 하셨죠?”

그 말에 키라나는 깜짝 놀란 얼굴로 물었다.

“작업하기 싫어하셨던 것 같았는데..... 아닌가요?”

“처음 보는 사람하고 바로 작업을 같이 한다고 대답하는 사람이 오히려 더 이상한 게 아닐까요? 무엇보다도 저로서는 다이애나가 작곡도 해주고 많은 도움을 줬으니 다이애나가 우선이었다는 말이 맞는 말이겠죠.”

“그건 맞지만 그렇게 들으니 약간 섭섭하네요...... 반대로 그렇게 생각하셨던 분이 부탁이라는 말을 꺼내니 뭔가 기대가 되는데요? 무슨 부탁이시죠?”

다이애나는 대중음악을 만든 경험이 적었다.

에드워드 선생님한테 물어보니 몇 번 만든 경험이 있기는 해도 그건 실전이 아닌 과제였거나, 혹은 재미 삼아 만든 거라 참고할 수가 없다고 했다.

엘리나가 부른 음악이 다이애나가 만든 대중음악 중에서 처음으로 외부인이 부른 것이라고 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키라나는 반대였다.

“제가 적은 이 가사가 과연 대중음악에 통할지 알고 싶네요.”

키라나는 오묘한 표정을 지으며 내가 내민 수첩을 받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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