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시골촌놈인 줄 알았는데 천재작가였다-137화 (136/216)

137화. 장호식 감독 (2)

LA로 가는 길 내 손에는 키라나의 명함이 들려 있었다.

“연락해 보게?”

운전하고 있는 누나의 말에 나는 명함을 주섬주섬 품 안으로 집어넣었다.

“아니, 그냥 가지고만 있게.”

헤어지기 전에 받았지만 내가 먼저 연락할 생각은 없었다.

무엇보다 집필할 작품들이 우선이기에 가사를 적는 건 일이 얼추 끝났을 때였다.

“누나는 바로 회사로?”

“그래야지 뭐.”

“새벽부터 왔는데 힘들지 않겠어?”

“끄응..... 회사원이 그렇지 뭐. 아. 다 왔다.”

오랜만에 집에 도착했다.

***

‘청소해야겠네...’

6일이나 되는 시간 동안 자리를 비워놨다 보니 방은 삭막하기 그지없었지만, 나는 청소는 뒷전에 두고 침대로 가서 벌러덩 누웠다.

‘일단 좀 자자.’

여행을 갔다 오면 그날 하루는 엄청 피곤하다.

새벽부터 비행기를 타고 와서 그런지 몸의 피로가 더 심했기에 잠을 자는 건 필수였다.

그렇게 2시간 정도 반짝 잠을 자고 자리에서 일어나니 몸의 피로가 조금은 가시는 것 같았다.

텔레비전을 틀어놓은 상태로 멍하니 안마의자에 앉았다.

“.....외로워.”

일주일 동안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공간에 있다가 혼자가 되니 공허함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이러고 있지 말고 주변 구경이나 하러 가자.”

생각해보니 첫날을 제외하면 집주변을 구경한 적이 없는 것 같았다.

나는 주섬주섬 옷을 입고 현관문 밖으로 나갔다.

1층으로 내려가니 이곳에 도착했을 때 보이지 않던 한스 할아버지가 경비실 안에서 따뜻한 커피를 마시고 계셨다.

“안녕하세요. 오늘도 날씨가 쌀쌀하네요.”

내가 다가오자 한스 할아버지는 입으로 가져가던 커피잔을 잠시 내려놓고 나를 바라봤다.

“오늘 돌아왔나?”

“네. 아침에 돌아왔어요.”

“그럼 집에 가서 쉴 것이지 또 어딜 가나?”

“이사 와서 딱히 돌아다닌 적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조금 바람이나 쐬다 오게요.”

“에잉..... 이래서 젊은것들은..... 피곤해보이는데 그냥 집에나 있을 것이지..... 쯧. 다녀오게.”

“하하. 다녀올게요.”

까탈스러운 말 안에 걱정스러움이 섞여 있었기에 나는 웃으며 집을 나섰다.

‘밥은 먹긴 해야 할 것 같은데 핫도그나 먹을까.’

그리 배가 고프지 않은 상태라 핫도그 몇 개 먹으면 괜찮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핫도그 집 옆에..... 펫샵이 있던가?’

물고기나 파충류 그리고 조류를 분양하고, 그에 따른 용품도 판매하는 곳이 있던 걸로 기억난다.

그냥 지나가다 본 거다 보니 아닐 수도 있지만, 어차피 무언가를 집으로 들이는 걸 생각하고 있으니 겸사겸사 구경을 해보고 싶었다.

‘가자.’

결심이 선 나는 곧장 발걸음을 옮겼다.

***

강아지나 고양이를 입양하려는 건 아니었고, 그저 집안의 삭막한 분위기를 풀고 싶어서 내가 애정을 줄만 한 것을 보고 싶었다.

그렇기에 소형 동물보다는 파충류나 어류에 시선이 갔다.

두 종류 다 크게 어렵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도마뱀 같은 건 키워보기도 했고.’

실제로 야생 도마뱀이지만 어릴 때 재미 삼아 키워보기도 했다.

어류는 과거 군대 가기 전에 한번 키워보고 싶어서 이것저것 알아본 적이 있었기에 나름 괜찮을 것 같았다.

화악!

‘.....어우.’

펫샵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느껴지는 열기에 나도 모르게 당황했다.

“어서 오세요.”

안으로 들어가자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백인 남성이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혹시 어느 아이 분양받으러 오셨나요?”

“아직 정한 건 없고..... 일단 구경부터 할 수 있을까요?”

“아. 그럼 천천히 구경하시다가 궁금하신 아이가 있으면 불러주세요.”

“네. 감사합니다.”

매장 자체가 상당히 넓었기에 나는 천천히 아이들을 구경했다.

하나같이 신기한 것들투성이였지만 내 눈을 사로잡는 건 따로 있었다.

‘역시..... 사육장이 아름답네.’

어렸을 때부터 아빠를 닮아 이런 것에 흥미가 있었던 편이라, 동물을 키우는 또 하나의 재미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비바리움이라고 본래는 연구의 목적으로 자연환경과 똑같이 꾸며서 동식물을 키우는 방식인데, 양서류나 파충류를 이런 아름답게 꾸민 사육장에서 키운다.

“저기요?”

“아. 네.”

“혹시 사진 좀 찍어도 괜찮을까요?”

“물론이죠! 마음껏 찍으세요!”

“네. 감사합니다.”

찍는 것에 특별한 이유가 있다기보단, 그저 [드래곤 마스터] 세계관이나 혹은 [블랙 & 월드]의 브레이셔가 있는 공간 사용에 참고하면 좋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도시 일러스트 같은 것을 활용하여 머릿속에 가상공간을 만들어 이야기를 풀이해가는 방식을 사용하기도 하다 보니 이런 것을 보는 것도 작품에 도움이 되는 일이었다.

‘인터넷에서 보던 것하고, 실제로 보는 것하고 확연히 차이 나네.’

실제로 보니 인터넷으로 보던 것보다 생물들의 상태가 훨씬 더 좋았다.

그렇게 하나하나 파충류들의 구경이 끝이 날 때쯤 어느새 물고기 코너가 나왔다.

‘이런 걸 레이아웃이라고 하지?’

수조에 수초나 작은 물고기들을 넣어 비바리움처럼 또 하나의 자연을 만들어내는 것을 뜻한다.

‘비바리움보다는 레이아웃이 집에 있어야 생동감이나 구경할 맛이 나겠네.’

그중에 가장 마음에 든 건 정글 같은 수초들 사이로 반딧불이 같은 빛을 내뿜는 물고기들이 있는 수조였다.

‘이거 그대로 판매하나 보네?’

수초, 물고기, 어항, 여과기, 히터까지 전부 합한 가격표가 어항에 붙어 있었다.

‘가격이 상당히 비싸기는 한데......’

이런 게 집에 있으면 상당히 멋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수조를 멍하니 바라봤다.

이게 물멍이라고 하는 건가?

물살에 살랑이는 수초들 사이로 열심히 움직이는 새우들, 그 새우들과 친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달팽이들이 수초 사이사이를 엉금엉금 지나다녔다.

‘어째서 사람들이 어항을 집에 가져다 놓는지 알겠네......’

잠깐 이렇게 본 것만으로도 마음이 안정되는 걸 보니 사람들이 어째서 집을 수족관처럼 꾸며놓는지 알 것 같았다.

“저기요?”

“네!”

내가 부르자 어항을 정리하고 있던 직원이 서둘러 내게로 달려왔다.

“이걸 주문하면, 지금 여기에 있는 걸 그대로 가져다주시는 건가요?”

“아. 그건 아니고요. 안에 있는 수초를 비롯한 수조, 용품들을 드리는 겁니다. 물론 수초 식재는 저희가 자택에 가서 해드리고요.”

“아..... 그럼 이대로 오는 게 아니네요?”

“네. 이건 전시용이라..... 한 2~3개월 정도 지나면 이거랑 똑같이 되실 거예요.”

“음......”

“그리고 물고기는 제외된 가격입니다. 새우 같은 생물들은 따로 구매하셔야 해요.”

“관리는 어렵나요?”

그 말에 직원분은 머리를 긁적였다.

“혹시 물생활 입문이신가요?”

“네. 거의 그렇다고 봐야죠?”

관심은 있었지만 전문적으로 키운 적은 없으니까.

“그럼 아마 쉽지 않으실 거예요. 일정 금액을 지불하면 저희가 관리해드리는 서비스도 있어요.”

“관리요?”

“일주일마다 자택에 방문해서 청소 같은 걸 해드리는 거예요. 다만 비용이 상당하죠.”

“음......”

물멍이 하고 싶긴 하지만 그렇게까지 하고 싶은 건 아닌데.

“제가 직접.....”

“직접 한번 해보시고 싶으시면, 뮤튜브 영상을 보시거나 개인적으로 공부를 먼저 하신 다음에 하시는 걸 추천 드려요. 마음만 앞서다가는 비싼 수초를 전부 녹여버릴 수 있으니까요.”

“.....네.”

“정 물멍을 하고 싶으시면 키우기 쉬운 중형어를 키우시는 것도 가능하시고, 수초를 키우시고 싶으시면 음성 수초같이 키우기 간편한 것들도 있거든요. 그러니 조금 더 구경해보세요.”

“그럼 추천해주시겠어요?”

“음..... 우선 물고기를 키우신 경험이 완전 전무 하신가요?”

“야생에서 잡아온 건 몇 마리 키워봤는데.....”

“하하.... 완전 처음이시네요. 우선 가장 많이 키우는 게 구피예요. 수초하고 키워도 괜찮고 번식도 잘하고요.”

“.....번식까지 시킬 마음은 없고... 구피보다는 조금 컸으면 좋겠어요.”

“그럼 베타는 어떠세요?”

“베타요?”

“네. 이리로 오세요.”

그곳으로 가니 마치 음료수 진열장처럼 전시해놓은 병들 안에 두둥실 떠다니는 물고기가 있었다.

아름다운 지느러미는 마치 밝은 보름달이 팔랑거리는 것 같은 느낌도 있었다.

“이 아이들은 키우기 쉬워요. 여과기 없이도 자라는 아이들이기도 하고요. 저기 보시면 음성 수초로 레이아웃한 작은 수초에서도 키우기도 해요.”

점원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그곳에는 30cm 정도 되어 보이는 수조에 수초들과 베타가 함께 있었다.

아까 전에 본 수조처럼 웅장하지는 않았지만, 컴퓨터 의자 옆에 놓고 보면 상당히 아름다울 것 같았다.

“수초도 그냥 조명 키워놓으면 알아서 잘 자라고요. 벽면 이끼는 닦아줘야 하지만 작아서 일주일에 10분 정도만 투자하시면 될 거예요.”

“네에......”

“환수하는 법이나 물갈이, 맞댐하는 법은 앞에서 알려드릴게요. 어떻게 하시겠어요?”

“세트로 판매하나요?”

“네.”

“주세요.”

내 유일한 취미생활이 될 텐데 이런 건 화끈하게 질러야지.

***

나는 펫샵에서 들었던 대로 컴퓨터 옆에 있는 협탁에다가 어항을 세팅했다.

소일이다 ph다 뭐다 해서 머리가 아팠지만, 그래도 만드는 과정이 생각보다 재밌었다.

무언가를 조립하고 만드는 것을 아빠 때문에 좋아하게 된 편이라, 이렇게 물고기가 사는 환경을 만드는 것도 상당히 흥미로운 일이었다.

나는 온도가 알맞게 되자 그곳에 하얀색 지느러미를 가진 플래티넘 하프문 베타라는 수컷 친구를 천천히 물에 넣었다.

“네 이름은 이제 재롱이야.”

이름을 지어주고 나니 그 순간 갑자기 현타가 찾아왔다.

“아...... 젠장.”

물고기에 이름이나 지어주는 삶이라니..... 갑자기 자괴감이 들었다.

그래도 물고기가 유영하는 게 아름다워서 그 모습에 심취해 있을 때 핸드폰이 울렸다.

-삐리리리리~♪

“에밀라?”

화면에는 에밀라의 이름이 떠올라 있었다.

나는 무슨 일인가 생각하며 전화를 받았다.

“안녕하세요, 에밀라.”

-네. 작가님! 집에는 무사히 돌아오셨나요?

“하하. 물론이죠. 지금 잠시 쉬고 있어요. 그보다 어쩐 일로 전화 주셨는지.....?”

-아. 호식 장 감독님이 저희한테 연락 주셨거든요!

“.....벌써요?”

유명한 감독님이라 바쁘실 텐데 이렇게 빨리 컨택을 하신다고?

-방금 LA에 도착하셨다고 하더라고요. 최대한 빠르게 작가님을 만나 뵙고 싶다고 미팅할 수 있냐는 연락이 와서요.

“벌써 LA시라고요? 미팅 날짜는 아직 미정이었죠?”

-네. 아직 넷마이너스와 의논 중이었거든요. 이번 미팅은 아마 개인적으로 오신 것 같아요.

“음.....”

나는 멍하니 재롱이를 바라보았다.

-저어..... 작가님?

“아. 네..... 잠시 생각 좀 하느라. 장호식 감독님이 이렇게 서둘러서 저와 만나고 싶은 이유가 뭘까요?”

-아, 그거에 대해서도 여쭤봤는데요. 그냥 작가님하고 술 한잔하면서 대화해보고 싶다고 하시던데요? 엄청 들떠 계신 것 같았어요.

방금 나갔다 와서 또 나가기 싫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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