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화. 장호식 감독 (3)
“흐음...... 제가 방금 나갔다 왔는데 오늘 바로 만나야 하는 걸까요?”
-지금 만나셔도 상관은 없는데 힘드시면 다음으로 일정을 잡아드릴 수 있어요!
‘장호식 감독님이라......’
애석하게도 내가 장호식 감독님의 영화를 본 곳은 다름 아닌 군대였다.
군대에서 평생 볼 한국 영화를 다 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때 장호식 감독님의 영화를 보고 푹 빠져, 장호식 감독님이 연출한 모든 영화를 섭렵했었다.
마그누스 감독님처럼 스토리 각본도 스스로 하시는 분이시라 내용을 보는데 신선한 재미가 있었다.
“제 집 주소를 알려주세요. 오늘은 조금 쉬어야 할 것 같아서 밖에서 술을 마시진 못할 것 같아요. 어차피 오늘은 글을 쓰지 않을 생각이고.”
-아. 그래도 될까요?
“네. 어차피 오늘은 쉴 생각이었어서 이참에 뵙는 게 좋겠죠.”
-그럼 그렇게 할게요! 아! 그리고 [리턴 패션 디자이너]는 올리셨나요?
“네. 올렸어요. 연재일은 오후 6시로 저번과 똑같이 할게요.”
-넵! 그럼 바로 연락드릴게요!
“수고하세요.”
전화가 끊기고, 나는 또다시 재롱이를 보며 물멍을 때렸다.
***
원래 남을 함부로 집에 초대하는 건 지양하는 편이었다.
초대할 거라면 한 번은 안면을 튼 사람만 초대했지만, 더 이상 밖을 돌아다닐 기력이 남아있지 않았고, 무엇보다도 나가면 모자와 마스크를 계속 착용한 상태로 돌아다녀야 해서 쉽지 않았다.
어차피 장호식 감독님은 내가 이미 알고 있던 분이셨고, 언론에서도 호탕한 모습을 보여주시는 분이라 집으로 초대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호텔 먼저 들렀다 바로 오신다고 했으니까...... 그래도 조금 여유가 필요하시겠지.’
LA가 좁은 땅도 아니고 어떻게 바로 오겠는가.
나는 소파에 누워 핸드폰을 들어 올린 상태로 샐러쉬 사이트에 접속했다.
‘지금쯤이면 반응이 충분히 올라왔겠지.’
오늘부터 2부 연재를 시작하게 된 [리턴 패션 디자이너]의 반응이 궁금했다.
특히 오늘 분량은 1권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칼리아를 완전히 잊어버리는 내용이었기에 독자들의 반응이 무척이나 궁금했다.
샐러쉬에 들어가자마자 2시간 만에 유료 베스트 탑 1위에 오른 내 소설의 제목을 볼 수 있었다.
‘유료도 베스트가 있구나.’
예전에는 없었던 것 같은데 최근에 생긴 건가.
내 작품 최신화 댓글이 벌써 100개를 넘어가고 있었다.
‘아. 심장 떨려.’
보통 작품 반응을 열심히 찾아보는 편은 아니었지만, [리턴 패션 디자이너]만큼은 그러지 않았다.
웹소설 특성상 화별로 댓글이 쌓일뿐더러, 벤자민의 상황에 대한 독자들의 원성이 자자했던 작품이기에 이 전개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했다.
‘독자들이 내 의도를 잘 이해해줄까.’
아무리 나라도 실시간으로 반응을 보는 건 떨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열어본 댓글 창은 눈물바다가 되어 있었다.
-아..... 결국 기억을 잃는 시나리오로 가는구나.....
-벤자민..... 신은 너한테 과거로 온 대가로 아주 짧은 시간만 허락해 줬구나.
-어쩌면 칼리아의 선물이 아닐까? 자신을 잊고 이제는 아빠의 인생을 살아가라는 그런 선물.....
ㄴ헐. 진짜 그런 거면 더 슬픔.....
-작가님은 이 글을 쓰실 때마다 신의 관점으로 보신다고 들었어요. 작가님은 벤자민한테 신으로서 무엇을 바랐던 걸까요?
ㄴ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신이라고 해서 아낌없이 자비를 베푸는 건 아니라고 들었어요. 대가겠죠..... 과거로 올 수 있게 된 대신 미래의 기억을 모두 잊으라는 대가.
ㄴ그렇게도 생각할 수 있겠네요...... 그나저나 마지막 장면 너무 슬프네요...... 몇 번을 읽어도 울적한 마음이 사라지지가 않아요.
-자신의 기억을 잊지 않기 위해 몸부림치는 장면을 너무 디테일하게 적어놨어요. 벤자민의 얼굴도 모르는데 계속 머릿속에서 어느 한 남자가 떠나질 않네요. 진짜..... 하아......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두 사람의 운명을 지키기 위해, 미래에 가장 소중했던 딸에 대한 기억을 바치라니..... 이건 그냥 살인이나 다름없죠.
-작가님 글이 너무 잔인해요...... 히잉.
다행히 눈에 띄는 나쁜 반응은 없었다.
“휴. 다행이네.”
나는 핸드폰을 내려두고 장호식 감독님이 올 때까지 세팅된 수조를 바라봤다.
유유히 떠다니는 베타의 매혹적인 모습을 보자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그렇게 시간을 때우고 있을 때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
-띵동!
도어폰을 바라보니 깔끔한 복장을 한 중년 아저씨가 서 있었다.
인터넷이나 텔레비전에서 그렇게나 많이 보던 장호식 감독님이 1층 시큐리티실 도어폰에 얼굴이 비추고 있다는 사실이 상당히 묘했다.
-자네를 찾아왔다고 하는데, 맞나?
장호식 감독님 옆으로 한스 할아버지가 계셨다.
“네. 맞아요. 들여보내 주세요.”
-찾아올 손님이 있으면 다음부터 이야기 좀 해놓게.
“하하. 죄송해요. 오늘은 조금 피곤해서 깜빡했네요. 아. 술 마실 것 같은데 오실래요?”
-일 안 끝났네. 그리고 이제 자네하고 술 안 마셔.
그 말을 마지막으로 한스 할아버지는 화면에서 떠났다.
도어폰이 꺼지고, 잠시 후 장호식 감독님이 집으로 들어오셨다.
“안녕하십니까. 장호식입니다.”
나보다 훨씬 나이가 많으심에도 불구하고 우리 집으로 들어오자마자 허리를 숙여 정중히 인사를 건넸다.
호탕할 것이라 생각했던 모습과는 정반대되는 행동에 나도 당황하여 허리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제임스..... 아니 권용일입니다.”
“용일..... 한국 이름이십니까?”
“네. 하하 조금 촌스럽죠?”
“아닙니다. 용일..... 혹시 한자가 어떻게 되는지.....”
“얼굴 용(容)자를 씁니다.”
“아아. 제가 착각했나 봅니다. 하하 한국에선 용 용(龍)자를 쓸 수 없는데 말입니다.”
“착각하신 게 아닐 겁니다. 저도 원래 어릴 때는 용이 드래곤을 뜻하는지 알고 있었으니까요. 그거 때문에 필명도 드래곤 원이 된 거고요. 하하. 아 현관에서 이야기가 길어질 게 아니라 어서 안으로 들어오세요.”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장호식 감독님은 현관에서 조심스럽게 신발을 벗고 내가 내민 슬리퍼를 신고 안쪽으로 들어왔다.
“얼마 전까지 고향 집에 내려가 있었거든요. 그래서 집이 조금 더러워도 양해 부탁드릴게요.”
“괜찮습니다. 하하! 원래 남자 집이 깨끗하면 이상하죠. 그리고 이 정도면 충분히 양호한 걸요 뭘.”
“그렇게 봐주시니 고맙네요.”
“아. 이거 선물입니다. 빈손으로 오기 민망해서요.”
감독님의 손에는 양주 브랜드 로고가 새겨져 있는 종이상자가 있었다.
“감사합니다. 아. 앉으시죠.”
소파에 앉은 장호식 감독님은 뭐가 그리 신기한지 주변을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그러다 수조를 발견하고는 두 눈을 크게 떴다.
“물고기를 키우시는군요? 저도 키우는데.....”
“집이 너무 생기가 없는 것 같아서 오늘 분양받았어요.”
“저도 물생활을 좋아해서 집에 어항을 많이 들여놨습니다. 하하! 아내는 좋아하는데 아이들은 싫어하더군요.”
“보통 그 반대 아닌가요?”
“제 아내도 물생활을 하다가 만났거든요. 아내는 베타 종류를 좋아하고, 저는 디스커스 쪽을 좋아합니다. 하하!”
‘디스커스가 뭐지?’
뜻밖에 겹치는 취미생활에 어색하던 분위기가 한결 풀린 것 같았다.
다만, 물생활이라는 것을 오늘 처음 알게 된 나로서는 장호식 감독님의 이야기에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도 많았다.
“그보다 식사는 하셨나요?”
“그러고 보니 배가 고프네요. 제가 사겠습니다. 이 근처에 맛있는 식당이 있나요?”
“식당보다는 그냥 편하게 집으로 배달시켜 먹는 건 어떨까요? 요즘 LA도 배달 서비스가 괜찮아졌습니다.”
“그렇습니까? 그럼 그렇게 하죠.”
나는 음식을 주문하고 소파에 다시 앉았다.
“그나저나 넷마이너스 측하고 미팅 날짜를 정하고 있어서 그때쯤이나 감독님을 뵐 줄 알았거든요. 이렇게 오늘 급하게 오신 이유가 뭔지 알 수 있을까요?”
그 말에 장호식은 거실 탁자에 놓여있는 커피를 들어 올렸다.
“저도 작가 생활을 하면서..... 자랑은 아니지만 스스로 영화도 만들어 보고, 여러 작가님들의 작품을 영화로 만들어 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작가님들의 작품을 각색할 때마다 항상 궁금하던 게 있었습니다.”
“네. 말씀하세요.”
“대체 그들의 머리는 무엇을 생각하고 있나, 랄까요?”
“.....예?”
커피를 한 모금 마신 장호식은 계속해서 입을 열었다.
“작품이라는 거대한 세계가 있지만, 전 미디어와 문학은 전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문학은 미디어가 될 수 있지만, 미디어는 문학이 될 수 없다고 말이죠.”
‘문학은 미디어가 될 수 있고, 미디어는 문학이 될 수 없다라...’
듣는 이로 하여금 많은 생각이 들게 하는 말이었다.
‘문학을 미디어로 하면 경우의 수가 많이 생기겠지만, 미디어를 문학으로 만들면..... 미디어에서 느꼈던 시각적인 감동을 전부 전달할 수가 없지.’
반대로 문학은 미디어가 따라 할 수 없는 문학만의 힘이 있다.
“작품이라는 같은 결 안에서도 서로 다른 방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문학을 영화로 만들 때 작가님의 생각을 먼저 알고 싶어집니다.”
원작자와 감독이 추구하는 방향은 절대 같을 수 없다.
그렇기에 작품을 만든 작가의 생각을 들은 뒤, 최대한 그쪽에 맞추려는 것이었다.
“음. 무슨 생각을 말씀드려야 할지 모르겠네요.”
“별건 아닙니다. 그저 작가님이 글을 쓰실 때 어떤 방식으로 쓰시는지 알고 싶습니다.”
“음......”
그런 거라면 쉽지.
“저는 현실에서 영감을..... 많이 받는 편입니다.”
“호오? 그런 작가분들이 많지요.”
“영감을 받으면 그걸 바탕으로 스토리에 풀이하기 시작합니다. 머릿속에 가상의 세계를 만들고 그곳에 저만의 방식으로 세계를 꾸며나가죠. 다만, 저는 작품마다 조금 다른 세계를 줍니다.”
“다르다라.....?”
“제 소설을 읽어보셨으면 아시다시피, 저는 각 소설마다 집필하는 방식이 다릅니다. 예를 들면 [블랙 & 월드]는 현실적인 영감보다는 작품에서 영향을 받아 글을 적었으니까요. [리턴 패션 디자이너] 같은 경우는 다른 책들과 달리 현실 세계에 있는 사람을 인터뷰하여 내용을 각색했습니다.”
“그래서 묘하게 현실적인 느낌이 났군요.”
“가상세계 역시 작품마다 다르죠. 제가 창조한 세계지만 어떤 작품은 제가 주인공이 되기도 하고, 어떤 작품은 세계관을 넓혀서 바라보기도 하고, [리턴 패션 디자이너]는......”
“신의 관점으로 보신다고 들었습니다.”
“맞아요. 시련을 주는 거죠. 솔직히 다른 소설들과 다르게 [리턴 패션 디자이너]는 회귀를 한다는 판타지만 줬지 그것만 빼면 현실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것들이잖아요? 인간은 죽을 때까지 시련이 오죠, 벤자민은 과연 시련을 어떻게 해결할지, 시련을 해결하는 인간들의 방식을 저는 이 소설에 접목한 것뿐이에요.”
“흐음...... 재밌네요.”
장호식 감독은 턱을 쓰다듬으며 흥미롭다는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