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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촌놈인 줄 알았는데 천재작가였다-141화 (140/216)

141화. 괴도 레이븐 (2)

집에서 가끔 직접 요리를 해서 먹은 적이 있다 보니, 요리하는 데 자신이 없는 건 아니었다.

마트에 가서 간단하게 돼지고기와 감자, 양파 같은 기본 재료들을 구매한 뒤, 아시안 마트로 가서 고추장 한 통을 구매했다.

오늘 저녁은 고추장찌개를 먹을 생각이었다.

만들기 그리 어렵지 않았고, 고추장찌개만 있으면 밥 몇 그릇은 뚝딱 먹을 수 있었기에, 오늘같이 지친 날에는 고기가 가득 들어간 찌개와 뜨끈한 밥 그리고 김치면 충분했다.

‘날씨가 점점 따뜻해지네.’

아직 춥기는 하지만 그래도 점점 따뜻해지는 게 느껴졌다.

LA의 겨울이 한국만큼 춥지 않다고 하더라도 요즘에는 이 날씨도 춥게 느껴졌다.

‘세월이 눈 깜짝할 새에 흐르네.’

집으로 돌아온 나는 곧장 재료 손질에 착수했다.

그런데.

-벌컥!

갑자기 현관문이 열렸다.

‘누난가?’

우리 집 현관문을 노크 없이 열 사람은 누나밖에 없었기에 나는 별로 놀란 기색 없이 주방에서 나갔다.

“야! 제임스!”

예상대로 누나가 집으로 들어왔다.

“누나 안 바빠?”

“바빴으면 왔겠어?”

“아니 그래도 어제 집에서 돌아왔는데 안 피곤해?”

“우리 집보다 이 집 소파가 더 편해.”

누나 집을 가본 적이 없어서 뭐라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확실히 신축 아파트에 보일러, 그리고 해리의 배려로 모든 가구가 최고급이었기에 웬만한 사람들은 이 집을 편안하게 느낄 것이다.

“이해는 되는데 그래도 남자 혼자 사는 집에 이렇게 불쑥불쑥 찾아오는 건......”

“뭐래. 어차피 여자도 없으면서.”

“.....나가줄래?”

“내가 그냥 찾아오냐? 자.”

누나의 손에는 장바구니가 들려 있었다.

항상 집에 올 때마다 양손 가득 장을 봐오는 누나 덕분에 배달을 그리 자주 사 먹지 않게 되었다.

“그보다 맛있는 냄새 나는데? 요리하고 있었어?”

“응. 오랜만에 고추장찌개나 해 먹을까 하고. 저녁 안 먹었지?”

“해주려고 왔는데 당연하지. 맛있겠다.”

누나는 성큼성큼 거실에 자리를 잡았다.

“엥? 웬 어항?”

“집에 오는 사람마다 똑같은 말 하네, 집이 너무 삭막한 것 같아서 데려왔어.”

“잘했어. 너도 조금 마음 붙일 곳이 있어야지. 정성을 다해 열심히 키워봐. 물고기 한 마리 있을 뿐인데 전과 달리 집에 생기가 도네.”

항상 나 혼자였기에 싸늘했던 집을 알고 있는 메디슨으로선 그 미묘한 변화를 금세 알아차렸다.

“배고프다. 얼른 밥 먹자.”

누나는 능숙하게 부엌 어딘가에 있던 쌀통을 찾아 밥을 안쳤다.

***

밥을 먹으면서 누나는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대해 간략하게 말해주었다.

무슨 중소기업 저작권 어쩌구 하는데 솔직히 1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드래곤 마스터] 계약을 누나가 담당했기 때문에 그냥 알고만 있으라고 했다.

“일단 예전에 계약이 완료됐는데 이번 영화화에 대해서 말을 좀 하더라고. 그래서 [드래곤 마스터]에 관해서 좀 말해줄까 해.”

“응.”

“우선 네 의견대로 실사화로 진행될 것 같아. 다만, 미션 월드 입장에서는 애니화도 포기할 수 없다는 의견을 보이고 있어.”

“음......”

“본래 미션 컴퍼니는 애니메이션으로 성공한 회사니까 그렇겠지.”

“아무리 그래도 [드래곤 마스터]는 역시 실사화가 좋은 것 같아.”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아무래도 실사화, 애니화 둘 다 진행하면 작품의 집중이 흐트러질 수 있으니까, 이런 경우는 차라리 실사화로 완전히 완결을 낸 뒤에 진행하는 게 좋지.”

“음.....”

나는 고추장찌개를 숟가락으로 크게 퍼서 입안으로 가져갔다.

매콤달콤한 찌개의 맛과 그 안에서 느껴지는 보슬보슬한 감자의 식감이 입맛을 돋웠다.

“그런데 최근에 애니화에 대한 완고함이 조금 줄어들었어.”

“확고하게 입장을 표할 줄 알았는데?”

“나도 그럴 줄 알았는데 상황이 조금 변했어. 네 [사막의 제국] 때문에.”

“아......”

“[사막의 제국]을 자신들한테 맡겨준다면 [드래곤 마스터] 애니화에 대한 욕심을 접겠다, 다만, 나중에 다시 진행해보겠다. 라는 게 현재 미션 컴퍼니의 입장이야.”

“어차피 맡길 생각이었어.”

미션 컴퍼니라면 [사막의 제국]을 재미있고 유쾌하게 제작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아동문학용으로 만들어진 소설이다 보니 애니화 빼고는 딱히 생각나지도 않았다.

“그 건에 대해서도 누나가 알아서 처리해줘.”

“그래도 돼?”

“믿으니까. 거기에 요즘 좀 바빠서 말이지.”

“바쁘다고? 아아..... [블랙 & 월드] 2부 연재한다고 했지?”

“응. 아무래도 시간이 조금 부족할 것 같기도 해.”

“그렇다고 해도 GV시사회는 참여해야 할 것 아니야?”

“그렇긴 하지.”

Guest Visit 시사회.

블로그, 카페, SNS로 사람들을 초청하여 무료로 시사회를 한 뒤에 영화가 끝나면 감독, 배우, 기자님들을 모아 간단하게 Q&A 시간을 가지는 시사회를 의미한다.

영화 개봉 며칠 전에 시작하다 보니 반드시 참여해야만 했다.

“시기상 1월 5일 정도에 가야 할 것 같아.”

“무슨 요일인데?”

“월요일.”

“주말에 해달라고 하면 양아치겠지?”

“그치, 너무 늦었지. 이미 제작사와 전부 합의하에 시사회를 그날 하자고 끝내놓은 상태니까. 그래도 멀지 않은 LA에 있는 영화관에서 한다고 하니까, 자세한 일정이나 위치는 다음에 말해줄게.”

“응.”

든든하게 맡은 역할을 꼼꼼히 처리해주는 누나에게 고마움을 느끼며, 누나가 요리한 찹스테이크에 젓가락을 가져갔다.

“오? 맛있네?”

“내가 맛없는 요리 하는 거 봤어?”

“하긴, 그것도 그렇지. 아무튼 일 이야기는 그게 끝?”

“넷마이너스 측에서 미팅 건이 있기는 한데, 이건 어떻게 할래?”

“해야지. 그런데 감독님하고는 어제 대화를 나눠서 내용 합의 같은 건 안 해도 괜찮을 거야. 물론 시나리오가 만들어지면 확인은 하겠지만.”

“만난 적이 있어?”

“응. 집으로 초대했거든.”

누나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OTT와의 계약은 처음이라 어떻게 진행될지 모르겠네..... 일단 조금 더 조사해보고 알려줄게.”

“응. 아! 맞다. 나 신작 연재하니까 SC라스틱하고 계약 또 해야 해.”

“.....또 한다고? [일곱 개의 죄악] 계약도 아직 체결이 안 됐는데?”

“습작이라서 괜찮을 거야. 벌써 1권 분량 끝냈고.”

“.....이렇게 빨리?”

“기껏해야 120페이지? 정도 분량으로 짧게 나가는 거라서 수정이 빠르게 되더라고. 오늘 안에 끝냈어.”

“예전이었다면 너 벌써 쓰러졌겠는데?”

“에이..... 농담도.”

내가 글을 쓰다가 쓰러진 적은 없었다.

잠을 안 자서 나는 현기증에 잠시 휘청거린 적은 있지만.

“아무튼 내일부터는 [블랙 & 월드] 2부 연재 시작할 거라 또 바빠.”

“뭐..... 아리아나도 있으니 그리 걱정되진 않네. 그나저나 너 크리스마스에 어디 갈 거야?”

“누나한테 말 안 했었나? 소아암 병원에 가기로 했어.”

“아..... 브록스 때문에?”

“그것도 있는데 올리비아가 병원에 내 꼬마 팬들이 많다고 하더라고. 가서 아이들하고 대화 좀 나누고 오게.”

“잘 생각했어. 스타한테는 이미지가 중요하니까. 거기에 허송세월로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것보다 그런 의미 있는 일이라도 해주는 게 더 좋으니까.”

“근데 내가 거길 가서 아이들을 위해 뭘 해줘야 할까?”

내가 잘하는 건 기껏해야 글을 쓰는 것 정도였다.

아이들한테 좋은 말을 해주는 법도 모르고, 병이 있는 아이들한테 해줄 말도 딱히 생각나지 않았다.

어쭙잖은 위로는 독이 될 거라는 걸 잘 알기 때문에 아마 가서 뻘쭘하게 서 있는 정도일 것이다.

“그냥 가서 아무것도 안 하고 있어도 아이들은 좋아할 거야. 팬이란 건 그런 거니까. 아니면 내가 미션 컴퍼니에 연락해볼까?”

“왜?”

“아이들한테 꿈을 선물해주는 기업이잖아? 아이들을 위해 후원이나 기부도 많이 하는 기업이니까 크리스마스에도 기부를 한다고 하더라고. 말하면 도와줄 것 같은데?”

“......음. 근데 그런 건 병원에 먼저 허락을 받아야 하지 않나?”

“하긴, 그것도 그런가? 그럼 말하지 마?”

“응. 말하지 마. 이건 그냥 내 개인적인 후원으로 할게. 미션 컴퍼니 굿즈가 필요하면 그냥 내 돈으로 사면 되니까 일을 키우고 싶지 않아. 대대적으로 선행을 알리고 싶은 마음도 없고.”

“알리고 싶지 않다고?”

“나 말고도 선행을 하는 사람은 많아. 고작 한 번 선행한 걸로 유세 떨고 싶은 마음은 없어. ‘올리비아와 함께 봉사하러 온 남자’ 그거면 충분해.”

그러자 메디슨 누나는 희미하게 웃었다.

“네 뜻이 그렇다면 그렇게 해.”

***

그 시각 루시아는 집에 도착한 상태로 메일을 읽고 있었다.

‘하아......’

메일을 받자마자 루시아는 머리가 지끈거렸다.

가뜩이나 오늘 야근이라 피곤한데 거기에 제임스 작가님이 보낸 글까지 읽어야 하다 보니 머리에 과부화가 오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제임스 작가님의 메일을 내일 확인하자니 흥미롭게 자신의 모니터를 바라보고 계셨던 스티븐 팀장님이 거슬렸다.

결국 루시아는 그 자리에서 파일을 다운 받아 펼쳤다.

“제목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작가님이 이미 정하셨나 보네.”

“[괴도 레이븐] 이름 괜찮은 것 같네요. 도둑 까마귀라...... 이름에 도둑이라는 말이 들어가는데 어린아이가 보는 소설인데 괜찮을까요?”

“음...... 일단 제목은 넘어가자. 제목은 바꿀 수 있으니까.”

“네. 그럼 지금..... 읽어야 하나요?”

“음..... 잠시만”

스티븐은 손목시계를 바라보며 말했다.

“어차피 분량이 한 스토리 정도라며? 아직 야근 끝날 시간도 아니고..... 일단 지금 하고 있는 일 로니한테 넘기고 글 먼저 읽어.”

“네!”

이렇게 되면 또 상황이 달라진다.

일을 다른 사람한테 넘기고 자신은 제임스 작가의 글을 집중해서 읽을 수 있었다.

옆에 있던 동기인 로니의 표정이 썩어들어가기 시작했지만, 회사 일이 이런 것을 어떻게 하겠는가.

“읽고 교정할 게 있으면 간단하게만 교정하고 나한테 보내줘.”

“넵!”

루시아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파일을 읽어 내려갔다.

처음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주인공 능력의 하향 조정, 그리고 비유하는 말이 늘었다는 것이다.

잡초와 나무 그리고 숲.

마치 초능력이라는 것의 한계를 지정해 놓는 단어의 등장은 더욱더 세계관에 차별을 주었다.

그 차별 속에서 자신만의 노력으로 세계에 대항하는 괴도 크로의 이야기는 어른인 루시아가 읽어도 굉장히 흥미로웠다.

수정 전 버전보다 개연성도 보완되었고, 전반적으로 내용이 굉장히 깔끔해진 것 같았다.

‘글자 수가 적어져서 그런가? 순식간에 읽은 느낌이네.’

오타가 조금 있기는 했지만 이건 읽으면서 수정하면 됐다.

루시아는 글을 교정하다가 고개를 갸우뚱 비틀었다.

‘너무 깔끔해..... 그래서 재미는 있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너무 깔끔하다.

재미는 있지만 너무 깔끔하여 마무리까지 정돈된 느낌.

‘이러면..... 스토리가 마무리된 느낌이라 다음 내용이 안 궁금해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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