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화. 괴도 레이븐 (3)
루시아는 글을 곰곰이 읽으며 다시 한번 내용을 살폈다.
여운이 남지 않는다는 말은 정말 깔끔히 마무리되었다는 말이기도 하지만, 스토리가 계속 이어져야 하는 장편 소설에는 어울리지 않는 말이었다.
그렇기에 루시아는 몇 번이고 문제가 뭔지 곱씹었다.
‘우선 팀장님한테 말씀 드리자.’
메일로 보내드리기 전에 간단하게 자신의 감상이 어떤지 전달하는 게 좋을 것 같아 루시아는 팀장님 자리로 향했다.
“팀장님 어디 가셨어요?”
“퇴근하셨어. 무슨 일 있어?”
‘와... 자기 먼저 퇴근하다니...’
루시아는 씁쓸한 마음을 감추며 말했다.
“아..... 아니에요. 수고하셨습니다.”
“그래 루시아도 수고했어.”
남아있던 선임마저 사무실을 나가고 루시아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텅빈 사무실에 혼자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루시아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냥 메일로 보내놓자.”
나도 얼른 퇴근해야지.
***
다음 날 아침이 밝고 누나는 서둘러 회사에 출근했다.
‘난 좀 더 자야지.’
어차피 루시아한테 연락이 올 때까지 글이 손에 잡히지 않을 것 같아, 그냥 조금 더 남아 있는 피로를 풀고자 했다.
세상 꿀잠이 아침밥 먹고 또 자는 거라고, 아침밥을 먹고 나른한 상태에서 잠을 자니 꿀잠을 잘 수 있었다.
“하암.....”
그렇게 잠에서 일어나 문자를 확인하고 보니 루시아한테서 전화가 와 있었다.
‘쩝. 너무 깊게 잤나 보네.’
두 번 정도 전화를 걸었는데 핸드폰 소리를 작게 해놓은 터라 받지 못했다.
결국 전화 대신 문자를 보낸 것 같았다.
「발송인 : 루시아
안녕하세요 작가님! 연락이 되지 않아서 문자로 [괴도 레이븐]에 관해서 알려 드립니다.
우선 내용은 굉장히 재밌었습니다. 위드와 우드, 포레스트 같이 계급을 나누시는 것과 주인공의 성장과 초능력 활용이 굉장히 흥미로웠습니다.
어째서 도둑질을 하게 되었는지의 계기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부분이 좋았기에 대표님이 굉장히 흡족하셨습니다.
다만, 다른 측면에서 생각하면 애매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너무나 깔끔한 마무리가 살짝 거슬렸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장편 소설에서 깔끔한 마무리는 다음 권이 궁금하지 않다는 의미가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시리즈로 연재하시는 걸 생각하고 계시다 보니 그저 한 번쯤은 생각해보셨으면 해서 알려 드립니다.
또한 제목에 괴도라는 이름이 들어가는 것이 아이들의 정서에 좋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제목을 바꾸실 예정이라면 미리 연락 부탁드립니다. 저희 측에서도 생각해보고 있을게요!
문자를 보시고 궁금하신 사항이 있으시면 언제든지 연락 주세요!」
“.......”
루시아의 문자를 한참이나 바라봤다.
‘깔끔한 마무리가 오히려 독이 된다라......’
내 소설 중에서 장편 소설이 아닌 게 없었다.
그리고 그 장편 소설에는 전부 목적이 존재한다.
다음 스토리를 궁금하게 만드는 그런 목적이 말이다.
‘다른 것들은 1권부터 힘겨움을 이겨내서 목적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거라면, [괴도 레이븐]은 현실 세계를 이겨내기 위해 노력했던 소년이 자신의 재능을 깨닫고 무언가를 해보자고 결심하는 이야기지.’
즉, 목적이라는 게 뚜렷하지 않았다.
[드래곤 마스터]는 1권에서 목적이 없었어도 애초부터 3부 시리즈를 이미 써놓았다 보니 크게 문제될 게 없었고, 내용이 성장물이기도 해서 1권에서 어느 정도 사람들한테 ‘성장을 하며 목적을 이룬다.’라는 인식을 심어놓았다.
근데 [괴도 레이븐]은 아니었다.
지금까지 적었던 내용 전부를 확인해봐도 그저 어떤 식으로 물건을 훔칠지, 어떤 방식으로 인물을 만날지만 적혀있었지 마무리를 이루는 목적이 없었다.
“목적이라.....”
루시아의 문자엔 나쁘지 않지만 한 번쯤은 생각해달라는 말이 있었다.
즉.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이기에 우려가 된다는 말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류의 소설이 없는 것도 아니긴 한데......’
그렇게 생각하면 스토리가 조금 바뀌어야 한다.
보통 이런 류로 시작되는 스토리는 회고록에 가까우니까.
“악역을 만들기는 해야 할 것 같은데...... 아니야. 포레스트라는 어엿한 악역을 자처하는 집단이 있으니까..... 이 경우에는 차라리 도움을 주는 형식으로 가면서 세계의 평화로 나아가는 방식으로 하자.”
이럴 때 가장 중요한 건 비밀 조직이다.
옆집으로 이사 온 수수께끼 소녀를 1권에 잠깐 등장시키면서, 마지막 화에 다음 화를 암시하는 내용을 추가하면 된다.
‘소녀로 그냥 가자.’
원래라면 집사 역할을 하는 사람으로 등장시킬 예정이었지만, 할아버지나 또래의 소년을 등장시키는 것보다 그게 더 보기에는 좋을 듯싶었다.
“다시 보내자.”
컴퓨터 책상 의자에 앉아 모니터를 응시했다.
***
빌에이든 미디어와 SC라스틱은 공통적으로 하나의 문제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건 바로 제임스 작가였다.
제임스 작가를 둔 두 출판사는 원고를 가지고 있기에 항상 독자들의 원성을 들어야만 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소설에서 오는 파급력이 다른 작가들보다 넘사벽이었으니 감당해야지.
다만, 이것도 약과라는 것이 문제다.
하루 종일 메일 폭탄을 받고, 전화가 오고, 메시지로 협박을 받는 것까지는 가능하지만, 그보다 더한 문제는 바로 팬들의 선물이었다.
“......”
에밀라는 창고 가득 쌓여있는 상자들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정리가..... 음. 필요해요.”
“......”
옆에 있던 로건은 창고를 가득히 매운 택배 박스들을 보며 턱을 쓰다듬었다.
“보안 검사하고 정리하신 겁니까?”
“네. 이 창고에 있는 상자들은 전부 보안 검사를 한 것들이에요.”
“.....이 창고? 그럼 더 있다는 말입니까?”
“그야 당연하죠? 창고가 전부 가득 차서 대표님을 모셔온 거니까요.”
“허......”
“양이 많기는 하지만 작가님한테 슬슬 보내드려야 할 것 같아요. 음식물은 전부 폐기처분 했고 값비싼 선물 같은 걸 보관하고 있으니까요.”
지금까지 빌에이든 미디어하고 SC라스틱이 제임스한테 팬레터를 주지 않은 이유는 한 가지다.
너무 많기 때문이다.
보통 다른 작가들은 거리가 가까운 것도 아니다 보니 택배로 배달을 보내야 하는데, 택배로 선물이 올 때마다 일일이 보낼 수 없어서 보통 한 달에서 일 년에 한 번씩 모아서 택배를 보낸다.
하지만, 제임스 작가한테 들어오는 팬레터나 선물들은 그 양도 어마어마해서 선별 작업하는 데만 한참이 걸렸다.
그 때문에 차라리 전부 선별을 마친 뒤에 보내자고 생각해서 일단 창고에 모아둔 것이다.
“선별하는 직원을 늘려주세요. 저희도 바쁜데 선별까지 같이하려니 힘들어요.”
“시큐리티 직원들은......”
“그분들도 부족해서 저희가 도와드린 거예요. 하루에 얼마나 많은 양의 선물들이 들어오는데요.”
그제야 로건도 상황이 심각함을 느꼈다.
SC라스틱보다 빌에이든 미디어는 제임스 작가와 빠르게 계약했다 보니, [사막의 전갈] 때부터 온 선물들로 가득했다.
“일단..... 이 정도 양이면 작가님한테 연락부터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말끝이 떨렸다.
제임스 작가가 현재 살고 있는 집의 크기는 알 수 없지만, 몬태나에 갔을 때 봤던 제임스 작가의 집으로는 이 많은 선물들을 보관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버릴 수도 없으니 난감할 따름이었다.
“아무래도 작가님을 초대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 이후에 판단하도록 하죠. 어차피 [일곱 개의 죄악]으로 저희 측에 한 번 더 모실 생각을 가지고 있었으니까요.”
“네. 그게 좋을 것 같아요.”
다만, 이렇게 많은 선물을 작가님이 과연 어떻게 하실지가 의문이었다.
***
제임스는 에밀라한테서 걸려온 전화를 받고 고개를 갸웃했다.
빌에이든 미디어와 제임스의 집은 상당히 떨어져 있기는 하지만, 캘리포니아주에 속하다 보니 저번처럼 무지막지하게 멀지는 않았다.
가까운 거리라면 출판사에서 오는 경우가 많기에 뜻밖이었다.
‘이틀 뒤라.....’
누나하고 연락을 하여 시간 약속을 잡은 결과 금요일에 가는 걸로 일정이 잡혔다.
“쓰읍...... 드디어 [블랙 & 월드] 2부를 적을 수 있겠네.”
[블랙 & 월드] 1부를 적은지 벌써 4개월이 흘러 있었다.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아찔했다.
‘글에 못 이겼지.’
잠도 자지 않고, 음식도 제때 챙겨 먹지 않아서인지 며칠 만에 1권 분량을 적어냈다.
그게 얼마나 무모한 짓이었는지 지금은 알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글의 완성도가 그리 높다고 생각되지는 않네.’
그때 당시에는 재밌다고 느꼈지만 지금 보면 모자란 부분이 많아 보였다.
“케이한테 [여우 구슬]을 주면서 살리는 것까지 했지..... 이제 슬슬 에나가 진실을 아는 편이 좋겠네.”
어차피 오늘 많은 분량을 적을 수 없으니, 최대한 그 힘의 활용 방법에 대해 적을 생각이다.
1부에서 에나가 브레이셔에서 배운 건 기껏해야 폴리모프 정도다.
인간의 모습과 요괴의 모습을 자유자재로 바꾸어 지구에서도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방법을 말이다.
다만, 이 경우 요력이라는 것이 필요한데 그것을 컨트롤하는 방법을 브레이셔에서 배운 것이다.
요력을 이용한 공격도 있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몬스터 고유 능력이라는 것을 배우는 게 더 강력할 테니까.
“이제 몬스터 고유 능력을 배워야지.”
[여우 구슬]이라는 것을 깨달은 에나는 이제 다루는 방법을 익혀야 한다.
‘슬슬 베일에 싸여있던 할머니를 등장시켜야지.’
6.25전쟁 때 미국으로 피난 온 구미호를 등장시켜 제대로 된 여우의 힘을 다뤄야만 했다.
“에나의 꿈은 자신의 몸 안에 있는 몬스터의 힘을 버리고 평범한 인간으로 돌아가 가족과 만나는 것, 케이의 꿈은 특정이 안 잡히는 어느 몬스터를 찾는 것인데..... 아무래도 케이의 스토리로 먼저 진행해야겠지.”
그걸로 주된 스토리를 꾸며가야지.
1권 내용이 에나의 적응 스토리라면, 2권부터는 몬스터에 대한 진실과 세계의 암운을 막는 이야기로 진행되어야 한다.
“시작하자.”
***
‘[여우 구슬]에 이런 효과가 있을 줄은 몰랐는데......’
케이는 에나의 주위에 마치 수호신처럼 떠다니는 푸른색 구슬을 바라봤다.
‘[여우 구슬]이 대체 뭔데 그래?’
‘구미호가 가지고 있다는 구슬인데..... 한국 설화에서 보면 이 구슬로 인간의 정기를 흡수한다고 해.’
‘정기?’
‘쉽게 말해서 생명력 같은 거지. 구미호에 대한 설화는 너무 많아..... 하지만 하나 알겠는 건 네가 나한테 [여우 구슬]을 먹였을 때 일시적으로 넌 모든 힘을 잃었다는 거야.’
‘......진짜?’
‘그래. 하지만 [여우 구슬]은 다시 내 몸에서 나와서 너의 몸으로 갔어. 너와 떨어질 수 없다는 거겠지...... 지금도 조종이 안 돼?’
‘응. 그냥 주위를 떠다닐 뿐이야. 건드리면 잡을 수는 있는데 내가 움직이고자 생각해도 움직이지 않아.’
‘......흐음. 구미호는 브레이셔에 그 어떠한 기록도 남아 있지 않아. 이 경우는 구미호가 스스로 자신의 모든 기록을 지웠다는 거야.’
‘그게 가능해?’
‘가능해. 몬스터가 이루고자 했던 꿈을 이뤘다면.’
‘꿈?’
에나가 고개를 기울이자 케이는 별것 아니라는 듯 말했다.
‘몬스터들은 저마다 이루고 싶은 꿈이 있어..... 이건 몬스터가 창조된 이유기도 한데 아무튼 구미호의 꿈은 지극히 간단해.’
‘뭔데?’
‘인간 혹은 신이 되는 것. 몬스터가 꿈을 이룬다면 기록은 사라지고 그저 전설로만 남아 있게 되는 거지. 그 몬스터의 기록을 찾으려면 직접 만나는 수밖에 없어.’
‘그럼......’
케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할머니를 찾아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