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시골촌놈인 줄 알았는데 천재작가였다-143화 (142/216)

143화. 넷마이너스

제임스는 미친 듯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래도 과거와는 다르게 중간중간 휴식을 취했고, 휴식을 취할 땐 [리턴 패션 디자이너]를 집필했다.

에일리의 인터뷰는 아직 필요하지 않은 상태라 일단은 계속해서 이어나갈 수 있었다.

중간에 글이 막혀버리면 [괴도 레이븐]을 수정했고, 그것도 막히면 [블랙 & 월드]로 방향을 틀었다.

중간중간 글을 바꾸며 쓰다 보니 지루하지는 않았지만, 살짝 복잡해지는 경우가 있어 시놉시스나 진행 방향을 더욱 상세하게 적어 다음 화를 기약했다.

그렇게 정신없이 글을 쓰다 보니 어느새 빌에이든 미디어와 잡아놨던 일정이 다가왔다.

“어이구.....”

집으로 찾아온 누나는 내 지저분한 꼴을 보자마자 이마에 손을 올렸다.

“또 글만 무식하게 썼지?”

“중간에 아리아나가 와서 운동도 했으니까 걱정하지 마.”

“.....너 결혼한다면 아리아나 같은 여자하고 해라.”

“갑자기 뭔 뚱딴지같은 소리야? 씻고 나올 테니까 거실에서 커피 마시고 있어. 아. 재롱이 밥 좀 주고.”

“.....재롱이? 예전에 네가 키웠던 병아리 MK2?”

“MK2는 또 뭐야?”

“네가 그랬잖아? 팡이 다음으로 키운 병아리 이름이 MK2 재롱이라고.”

“.....내가 그랬나?”

팡이라는 병아리는 내가 닭까지 키워서 먹었다면, 재롱이라는 병아리는 산책시킬 때 여우가 낚아채서 눈앞에서 잃어버렸다.

‘에휴..... 씻자.’

나는 애써 부끄러움을 숨기며 샤워를 다 하고 밖으로 나왔다.

“재롱이 밥 줬어. 근데 물고기한테 이름 지어주면 정들지 않아?”

“.....딱히? 애초에 재롱이라는 이름을 지어준 것도 정들지 않으려고 지어준 거니까.”

불과 이틀 정도 키웠던 병아리다 보니 딱히 그리운 이름은 아니었다.

“정장 입고 가야 하나?”

“이제는 굳이 그럴 필요는 없잖아? 그냥 깔끔하게만 입고 나와.”

나는 저번 주에 집에서 가져온 옷을 뒤져 그나마 깔끔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가자.”

***

오늘은 빌에이든 미디어에 가서 넷마이너스 측과 [리턴 패션 디자이너] 드라마 제작 관련 미팅을 진행하고, 더불어 [일곱 개의 죄악] 계약 건을 조율해야 했다.

그렇기에 비교적 이른 아침에 출발하여 빌에이든 미디어에 도착했다.

“환영합니다, 작가님.”

“오랜만이네요, 로건.”

도착하고 나니 로건과 에밀라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근데 오늘 초대한 이유가......?”

“아. 그 이유는 나중에 설명 드리겠습니다. 우선 넷마이너스 측과 호식 장 감독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네.”

나는 옷매무새를 가다듬으며 로건을 따라 빌에이든 미디어 회의실로 향했다.

작은 빌딩이기에 회의실도 작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로건이 안내해준 회의실은 상당히 규모가 있었다.

그렇다고 대기업 회의실처럼 넓지는 않았지만 우리들이 전부 들어가도 쾌적할 정도는 되었다.

회의실 안으로 들어가니 장호식 감독님이 반갑다는 미소를 짓고 계셨다.

그의 옆으로는 4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백인 여성 두 분이 앉아계셨다.

“안녕하세요? 바리오니 가나라고 해요. 넷마이너스에서 경영 및 법무를 담당하고 있죠.”

“아. 네..... 안녕하세요. 제임스 권입니다.”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하는 나와는 다르게 뒤쪽에 서 있던 누나의 표정은 살짝 일그러졌다.

“VP(전무).....”

누나의 중얼거림을 들은 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VP라고?’

나는 놀라움을 속으로 숨기고 웃으며 가나가 내민 손을 붙잡았다.

“저도 소개를 해야겠네요. 아델라 페라스라고 해요. 파트너십을 맡고 있죠.”

그 말에 누나의 눈꺼풀이 또다시 흔들렸다.

“네. 제임스 권이라고 합니다. 오늘 계약 잘 부탁드립니다.”

“호호. 물론이죠. 오늘을 위해서 얼마나 빌에이든 미디어를 괴롭혔는데요. 그동안 연락이 안 돼서 조금 섭섭했어요 작가님.”

“제가 글 외에는 연락을 전부 차단해 달라고 해서요. 이번 계약은 장호식 감독님과의 인연도 있고, OTT로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 싶어서 나온 거거든요.”

“아하. 어쩐지..... 아. 일단 자리에 앉으시죠.”

나는 원탁 탁자에 앉아 슬며시 그들을 바라봤다.

누나의 얼굴이 긴장으로 딱딱해진 걸 보니 아무래도 넷마이너스 측에서 간부급 인사가 온 것 같았다.

그렇게 미팅이 시작되었다.

***

미팅은 원만하게 흘러갔다.

누나는 바쁜 눈으로 넷마이너스 측에서 제시한 계약서를 하나도 빠짐없이 확인했다.

내가 할 일이라고는 그저 어떤 방식으로 드라마가 제작될 것인가 확인하는 것이었다.

‘[리턴 패션 디자이너]는 그렇게 제작비가 많이 드는 드라마는 아닐 테니까.’

훗날에는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현재로선 현대 배경에 판타지 요소도 없는 작품이다.

아직까지는 그렇게까지 많은 제작비가 들지는 않을 것으로 보이니 넷마이너스 측은 간절히 잡고 싶은 것이다.

‘내 팬덤을 잡고 싶은 거겠지.’

확실한 재미를 보장해주는 소설이자, 실사화를 해도 무리 없는 내용.

화려한 CG 구현이 필요 없기에 제작비도 아낄 수 있고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제임스 작가라는 거대한 팬덤을 데려올 수 있었다.

그렇기에 넷마이너스 측에서는 이 확실하면서도 수익이 보장되는 상품을 반드시 잡고 싶은 것이다.

“저희는 본래 제작비의 10~20% 수익을 제작사에게 드립니다. 그중에 50%를 넷마이너스 측에서 드리겠습니다.”

“성공에 상관없이요?”

“그건 물론 아닙니다. 저희도 먹고는 살아야죠. 손익분기점을 넘는다는 가정하에 그리고 [리턴 패션 디자이너] 2권 분량의 판권도 저희한테 맡겨주신다는 가정하에 드릴 생각입니다. 물론 손익분기점을 넘지 않아도 제작사하고의 협의를 통한 수익은 있으실 겁니다.”

나와 넷마이너스와 계약은 2차적 저작물과의 계약이다.

2차적 저작물이란 원저작물에 저작자의 권리에 영향을 미치면 안 되면서도, 번역, 편곡, 변형, 각색, 영상 제작 그 밖의 방법으로 작성한 창작물을 독자적 저작물로 보호된다는 것을 뜻한다.

쉽게 말해 원저작자인 나한테 허락을 받아야지만 2차적 저작자인 장호식 감독님이 제작이 가능하단 말이다.

그렇게 되면 2차적 저작물은 완전히 넷마이너스 것이 되는 것이다만, 그 권한을 나한테 준다고 했으니 드라마가 만들어져도 2차 저작물에 대한 권한은 나한테 있다는 것이다.

물론 공동이고 극소수의 비율이겠지만 그것만으로 상당한 수입이 들어올 것이다.

“호식 장 감독님의 실력은 믿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제작사도 작가님을 밀어주실 겁니다.”

“음...... 방영권 구매가 아닌 독점인가요?”

“그렇습니다.”

이전단계 투자, 중간단계 투자, 완료 단계 투자로 넷마이너스는 드라마를 끌어와 독점한다.

즉, 이 작품은 넷마이너스 오리지널 작품이라는 것이다.

“좋네요. 다만, 2차 저작권은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음......”

2차 저작권 즉 굿즈 같은 것을 의미한다.

갑오징어 게임에서 나온 굿즈가 세계적으로 판매되었지만 이득을 본 건 중국 업체와 넷마이너스뿐이다.

막 나가는 중국업체는 그러려니 하고, 넷마이너스는 제작비의 110%만 주었을 뿐이다.

그로 인한 부수입이 더 많을 텐데 그 외 수익은 한 푼도 주지 않은 것이다.

그렇기에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리턴 패션 디자이너]에서는 굿즈가 안 나올 수도 있지만, 그래도 이 부분을 확실히 하고 갔으면 해서요.”

내 말에 바리오니는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이건 어쩔 수 없습니다. 2차 저작물 권한에 대한 수익 비율을 드리는 것도 저희한테는 정말 큰 투자거든요. 이 사실이 외부로 빠져나가면 지금까지 저희와 계약했던 제작사들한테서 불만이 나올 거예요. 거기에 2차 저작권까지 드려야 한다면 저희도 이번 계약은..... 아쉽지만 여기서 접을 수밖에 없어요.”

누나는 이래저래 다시 이야기를 해봤지만 바리오니는 완강했다.

다른 제작사한테도 안 해줬는데 나한테만 해주면 형평성이 어긋난다는 것이었기에, 차라리 이 계약을 안 해도 된다는 의지마저 밝혔다.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면 어쩔 수 없죠. 그럼 2차 저작권은 넘어가도록 하고...... 다른 이야기를 해보죠.”

내 말에 그제야 바리오니는 이를 드러내며 활짝 웃었다.

“[리턴 패션 디자이너]만 있다면 바라오니 씨만 자리하셨을 텐데 아까부터 아델라 씨가 왜 동행하셨는지 궁금했거든요.”

“호호..... 눈치채셨네요?”

그냥 평범한 계약이었다면 바리오니만 왔을 것이다.

파트너십 글로벌 수석이 왔다는 의미는 나와 또 다른 계약 혹은 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는 것이겠지.

“작가님의 또 다른 판권을 구매하고자 합니다.”

“또 다른 판권이라......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을까요?”

“[일곱 개의 죄악]과 작가님과의 파트너십을 원합니다.”

“......”

아델라의 말에 나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

넷마이너스 측과의 이야기가 끝이 났다.

[리턴 패션 디자이너]는 최대한 빠르게 제작을 시작하겠다고 했고, 늦어도 1월 말 아니 중반에는 시작한다는 확고한 답을 얻어냈다.

[일곱 개의 죄악 : 【질투】]는 다른 계약서와 똑같은 조건으로 계약을 했다.

어차피 빌에이든 미디어에 맡길 것이다 보니 누나가 확인한 계약서에 사인을 하는 것으로 끝이 났다.

“그나저나 오늘 저를 부른 이유는요?”

글을 쓰는 작가, 그것도 최고의 상품을 가지고 있는 작가다.

출판사의 입장에선 그냥 집에서 쉬며 빨리 원고를 써주면 그걸로 족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보통이라면 내 집 근처에서 일을 마무리하려고 할 것이다.

넷마이너스 측은 어디든 상관없었을 텐데 오늘 이곳으로 부른 이유가 심히 궁금했다.

“보여드릴 게 있어서입니다.”

“보여주실 게 있다고요?”

“예. 이쪽으로 오시죠.”

로건은 직접 우리를 안내했다.

“제가 봐도 되는 건가요?”

“물론입니다.”

메디슨 누나도 로건의 허락을 받고 우리의 뒤를 따랐다.

로건이 향한 곳은 빌딩의 뒤편, 즉 자재나 서류를 보관해 놓는 창고가 있는 곳이었다.

“이쪽으로.”

‘창고?’

로건은 창고 문을 열었다.

더러울 거라 생각한 창고는 생각보다 깨끗했고, 무엇보다 그곳에 있는 똑같은 크기를 가진 상자들에 더욱 눈에 갔다.

오랫동안 창고에 있던 것인지 먼지가 쌓인 상자들도 있었지만, 비교적 최근에 들어왔는지 깨끗한 상자들도 있었다.

가지런히 놓인 상자들을 보며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이게 뭡니까?”

“열어보시지요.”

로건의 말에 나는 더욱 궁금증을 느끼며 근처에 있던 상자를 열어봤다.

상자를 열자 그곳에는 편지 봉투가 빼곡히 차 있었다.

“이건......”

“작가님의 팬레터입니다.”

“.....이렇게나 많이요?”

“아뇨.”

“네?”

“여기 있는 것 전부입니다.”

로건의 말에 나는 창고를 둘러봤다.

“여기가 다..... 제 팬레터라고요?”

“네. 팬레터만 있죠, 여긴.”

“......네?”

로건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창고 건물 전체에 팬분들이 작가님한테 보낸 선물이 있습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