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화. 크리스마스 이벤트 (3)
이 병원 말고도 상당한 병원에서 제임스의 소설은 유명했다.
이유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딱히 기부 활동을 하지도 않았고 무엇보다도 모습을 공개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인 작가가 병원에서 이 정도 인기를 끄는 건 순전히 하나 때문이다.
재미.
독서 치료라는 것이 있다 보니, 소아 병원에서는 어느 정도 책을 구비해 놓는다.
거기에 인지도가 있으면서도 아이들이 읽기 편한 [드래곤 마스터]나 [블랙 & 월드], [사막의 제국]은 필수도서였다.
병원 원장이나 간호사들이 좋아해서 책을 들여놓는 경우도 있었지만, 역시나 가장 큰 이유는 아이들이 좋아해서였다.
하지만 이번 소아 병원에서 제임스 작가의 소설이 유명해진 이유는 그것과는 조금 달랐다.
병원 최고 후원자 그리고 자주 오는 올리비아라는 할리우드 간판 배우가 제임스 작가의 책을 자발적으로 병원에 선물했기 때문이다.
불과 몇 달밖에 되지 않았지만 제임스 작가의 스토리와 필력은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특히나 괴로움, 고통, 부담, 부당함에서 이겨내려 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에 아이들의 마음이 움직였다.
“......!”
정말 깜짝 놀라면 크게 놀랄 수도 없다고 하는데 지금 아이들의 표정이 그러했다.
믿을 수 없다는 것을 봤다는 듯이 아이들의 얼굴이 굳어졌다.
-음......
올리비아가 주는 마이크를 받아든 나는 땀으로 범벅이 된 얼굴로 아이들을 천천히 살폈다.
-제가 온 게 그리 기쁘지 않나 보네요?
그 말을 끝으로 아이들의 얼굴에 표정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
산타클로스가 왔을 때보다 더 큰 함성 소리가 병원에 우렁차게 퍼져나갔다.
***
어릴 적 누구한테나 우상이 있을 것이다.
누군가에겐 아빠가 우상일 수도 있고, 역사서에 등장하는 위인이나, 동화책에 나오는 영웅이 우상일 수 있었다.
이 아이들한테 우상은 제임스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곳에 있는 아이들은 마치 우상 혹은 영웅을 만난 것 마냥 눈을 반짝이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이들을 보며 조심스럽게 마이크를 입으로 가져갔다.
-제가 누군지 알고 있는 어린아이들은 손을 들어볼까요?
그러자 대다수의 아이들이 손을 들어 올렸다.
물론 나를 모르는 아이들이 있는 건 당연했기에 이 정도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뿌듯했다.
-제가 누구죠?
“제임스 작가님이요!”
“드래곤이에요! 세상에서 하나뿐인 드래곤이요!”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드래곤이라는 말에 부끄러움이 머리털 끝까지 차올랐지만 나는 애써 웃으며 아이들한테 손을 흔들어 주었다.
-산타 할아버지가 전 세계의 어린아이들한테 선물을 나눠 주느라 바빠서 저를 남겨 두고 갔어요. 그런 관계로 오늘은 저랑 놀아볼까요?
“네에!”
오늘을 위해서 나는 정말 많은 것을 생각했다.
과연 아이들을 위해 무얼 하고 놀아야 하는지 말이다.
누나가 말하길 팬은 그저 스타가 옆에 있는 것만으로 좋아한다고 말했지만, 아이들 앞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기에 글을 쓰고 나서 아이들을 위해 여러 가지 계획을 세웠다.
보통의 아이들이라면 몸을 써서 놀아주겠지만, 몸이 불편한 아이들을 위한 계획은 그렇게 선택지가 많이 없었기 때문에 결국 내가 선택한 건 낭독회였다.
‘내 목소리가 좋기를 바라야지.’
살아오면서 한 번도 목소리가 좋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지만, ASMR 효과도 있다 보니 조금은 믿어보기로 했다.
-자. 그럼 시작할까요?
나는 서류 더미를 꺼내 들었다.
[드래곤 마스터]를 나만의 방법으로 적은 낭독회 대본 같은 것이었다.
내용 그대로를 읽는 것도 좋은 방법이긴 했지만, 그래도 나한테 많은 시간이 주어진 것이 아니다 보니 아이들의 이해력을 쉽게 하기 위해 최대한 많은 수정을 해야 했다.
그래도 어찌저찌 하루 만에 어떻게든 마무리할 수 있었다.
올리비아는 사전에 이야기했던 대로 내가 만들어낸 서류를 꺼내 내 옆에 앉았다.
그러자 아이들은 우리가 무엇을 하는 건지 궁금한 듯 고개를 갸웃했다.
-옛 고대 신화에 드래곤은......
입에서부터 흘러나오는 잔잔한 소리가 아이들의 귓가로 스며들었다.
***
아이들이 만족할까?
그건 모른다. 하지만 아이들의 눈은 전부 나를 향해 있었고, 올리비아와 내가 하는 낭독을 주의 깊게 듣고 있었다.
낭독회는 30분을 넘어 한 시간 가까이 진행되었다.
애초에 양이 상당한 [드래곤 마스터]다보니 아무리 내용을 함축하고 새로운 재미를 추가한다고 해도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아이들은 지루한 기색 없이 내 낭독회를 끝까지 들어주었다.
-......그리하여 로얀과 하스와 진정한 친구가 되었습니다.
본 편과는 상당히 다른 내용이었지만 그래도 본편의 내용을 해치지 않은 또 다른 화목한 이야기.
계속해서 연재되는 본 내용과 다르게 이번 낭독회에서 나온 스토리는 완전한 마무리였다.
ASMR 전용 마이크의 전원을 종료하고 천천히 일반 마이크를 들어 올렸다.
-어땠나요?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짝짝짝짝짝짝짝짝짝-!!!!!
박수 소리가 무섭게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아이들 뿐만 아니라 같이 있던 부모님들 그리고 이 장면을 촬영하고 있는 카메라 감독님들과 스태프들까지 우리를 향해 열렬한 환호를 보내주었다.
-짝짝짝짝짝짝짝짝짝-!!!!!
박수 소리는 끝날 줄 모르고 계속해서 이어졌다.
한참 동안이나 이어지자 나는 마이크를 다시 들어올렸다.
-모두 고마워요. 손 아프겠다 이제 그만 박수 치세요. 하하! 박수만 치다가 끝나겠어요.
그제야 박수 소리가 잠잠해졌다.
나는 흐뭇하게 웃으며 눈을 반짝이고 있는 아이들을 바라봤다.
-모두 재밌었나요?
“네에-!!!!!”
-다행이네요. 제가 오늘을 위해서 많이 준비했거든요. 하지만 이렇게만 끝나면..... 많이 섭섭하겠죠?
오늘을 위해서 준비한 게 하나 더 있었다.
-이건 제가 여러분들한테 드리는 또 하나의 선물이에요.
내 말에 스태프 여러 명이 선물 상자를 가지고 왔다.
빨간색 상자에 하얀색 끈으로 묶여 포장되어 있는 전형적인 크리스마스 선물 상자였다.
-제가 준비한 크리스마스 선물이에요.
선물 안에는 이른바 굿즈가 들어가 있었다.
[드래곤 마스터] 그리고 [사막의 제국]를 대상으로 한 SC라스틱이 판매하고 있는 굿즈였다.
다만, 평범한 굿즈가 아닌 크리스마스 이벤트 기념 한정 굿즈로 오로지 내 부탁으로만 만들어진 굿즈였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피규어나 인형, 리암 씨가 그려준 일러스트 등.
내 팬이라면 눈에 불을 켜고 좋아할 한정판 굿즈가 아이들의 손에 쥐어지고 있었다.
-앞에서부터 차례대로 나와주세요~
“네에!”
그러자 가장 앞에 있던 여자아이가 먼저 앞으로 나왔다.
나는 마이크를 내려놓고 붉은색 머리카락을 가진 아이를 맞이했다.
“안녕 젤라.”
“앗!? 저를 아세요?”
“물론이지. 아까 전에 산타 할아버지하고 같이 선물을 나눠줬잖니.”
“아! 맞다! 헤헤 그랬죠?”
나는 젤라한테 선물을 내밀며 말했다.
“무섭지 않았니?”
“......무서웠어요! 그래도 옆에 동생이 있는데 피할 수 없었어요!”
“하하! 용감한 아이구나! 자. 여깄다.”
젤라의 얼굴에는 찢어진 흉터가 가득했다.
갑자기 들이닥친 들개가 젤라의 동생을 공격했고, 젤라가 그걸 막으려다가 심하게 다쳤다.
동생의 비명소리가 들리자마자 뛰쳐나온 옆집 아저씨가 아니었다면 젤라의 생명은 위독했을 것이다.
“히히! 고마워요!”
아직 퇴원하려면 멀었지만 그래도 젤라의 얼굴에 잠깐이라도 미소가 머물렀다면 그걸로 충분했다.
젤라가 선물 상자를 들고 들어가자 그다음으로 남자아이가 나왔다.
다른 아이들보다 약간은 어른스러워 보이는 아이였다.
“저도 아세요?”
“물론이지 제이”
“.....고마워요. 제 이름을 기억해주셔서.”
제이는 일가족이 사망한 교통사고 피해자 중 살아남은 한 사람이다.
뻥소니 사건이었지만 결국 범인은 잡혔고 그에 대한 보상은 제이에게 돌아가게 되었다.
하지만 아무리 많은 돈이 있다고 한들 이제 세상에 홀로 남은 제이한테 그 돈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나는 제이를 꼬옥 안아주었다.
“홀로 살아가는 인간은 없어. 내가 너를 기억 할게 그러니 넌 더 이상 혼자가 아니야.”
“......네.”
제이는 선물을 받고 자리로 돌아갔다.
내가 아이들한테 해주는 위로가 솔직히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
위로라는 것은 상대의 마음을 울리고, 상대가 이겨내게 해주는 말이었다.
그저 단편적으로 아이들의 상황을 알고 있기에 위로라는 것 자체를 어떻게 해줘야 할지 알지 못했다.
그렇기에 나는 그저 아이들을 보고 떠오르는 말을 내뱉을 뿐이었다.
그것이 위로가 될지 그저 평범한 안부의 말이 될지는 아이들의 마음에 달렸다.
차례대로 앞으로 나오는 아이들을 보며 나는 환한 웃음을 보냈다.
산타클로스가 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아이에게 미소를 줄 수 있다면 어찌 되든 좋다는 생각에 힘든 것도 모르고 있었다.
인형 모자만 벗은 상태라 아직 입고 있는 인형 옷 안은 땀으로 범벅이었지만, 나는 끝까지 미소를 유지했다.
“......고마워요.”
“뭘. 앞으로 힘차고, 씩씩하게 알지?”
“네!”
마지막 아이까지 선물을 나눠줬음에도 선물 상자는 아직 남아 있었다.
올리비아는 고개를 갸웃하며 내 귓가에 속삭였다.
“선물이 남는데요?”
“아. 이건..... 다른 아이 거예요.”
“다른 아이.....? 아......”
올리비아는 무언가 깨달았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마이크를 들어 올렸다.
-오늘 모두 즐거우셨나요?
“네에에에에-!!!!!”
-그럼 모두 안녕히~ 모두 즐거운 크리스마스 되세요~
그렇게 소아과 병원에서 이루어진 소소한 크리스마스 이벤트가 끝이 났다.
***
향균실에 들어가려면 이 상태로 들어가면 안 된다는 말에 나는 병원 직원들이 사용하는 샤워실에서 간단하게 샤워를 하고 몸을 깨끗이 했다.
그리곤 브록스를 만나러 가기 전까지 일단 휴게실에서 휴식을 취했다.
‘올리비아도 들어간다고 했지?’
남녀 목욕 시간이 다르다고 들었는데 아무래도 올리비아가 올 때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았다.
스태프들도 이벤트가 끝이 나고 전부 돌아간 상태라 잠시 병원 측에 양해를 구한 뒤 휴게실에서 조금 더 쉴 수 있었다.
‘아이들이 기뻐했으면 좋겠다만......’
처음과는 많이 달라진 계획이었기에 아이들이 즐거웠을지 걱정이었다.
그렇게 휴게실에서 쉬고 있는데 갑자기 누군가 문을 두들겼다.
-똑똑!
‘올리비아인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었다.
“올리비아 왜 들어오지 않고 노크를.....”
문을 열자 그곳에는 내가 예상했던 올리비아가 아닌 정장을 입은 덩치 큰 백인 한 명이 서 있었다.
온몸에 마치 철갑이라도 두른 것 마냥 거대한 덩치를 가진 그는 멍하니 있는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명함입니다.”
“예, 예?”
“그럼 이만......”
이름도 밝히지 않은 그 남자는 명함 하나를 주고 아무 말 없이 뒤 돌아 떠났다.
나는 멍하니 그 남자가 주고 간 명함을 확인했다.
“.....스튜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