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화. 과로
ASMR라는 건 뇌를 자극시키는 심리적 안정감이다.
청각으로 쾌감을 느낀다는 뜻인데 그러려면 상당히 좋은 마이크를 사용하여야 했다.
제임스는 마이크에 입을 최대한 가져간 뒤 가져온 서류를 읽었다.
원체 목소리가 상당히 좋은 제임스였기에 노래도 잘 부르는 편이었다.
거기에 올리비아 또한 목소리가 섹시한 배우 탑 10에 들어간 적도 있었다 보니 그 둘의 하모니가 서서히 병원에 울려 퍼졌다.
재미있고 신나는 모험 이야기.
본래 [드래곤 마스터]는 아카데미에 있는 일을 주로 풀어내는 이야기지만, 이번 이야기는 묘하게 달랐다.
제임스 작가의 팬들이라면 모두 이 이야기가 [드래곤 마스터]의 부속 혹은 또 다른 이야기라고 판단했다.
쉽게 말해 동화책 같은 것이었다.
1부 분량에서 끝을 내기 위해 최대한 내용을 함축하여 쉽게 알아들을 수 있게 만든 것이다.
하지만 그 양은 동화책이 아니었다.
한 시간 동안이나 이어진 낭독회였지만, 아이들은 지겹지도 않은지 자리를 떠나지 않고 끝까지 들어주었다.
-와아......
-제임스 작가님 목소리가 상당히 좋으시네.....
-Live 방송을 하실 정도이니 목소리에 상당히 자신 있으신 편인 건 알았지만, ASMR을 하시니까 가슴이 벌렁거리네.....
-우우! 뭐냐! Live 방송에서도 낭독회를 해줘라!
-왜 아이들한테만 낭독회를 하냐! 우리한테도 해줘라!
사람들은 제임스 작가의 낭독회를 더 듣고 싶었다.
원작을 헤치지 않은 [드래곤 마스터]의 신나는 모험 이야기도 더 듣고 싶었지만, 다른 작품들도 낭독회 버전으로 만들어진 걸 듣고 싶었다.
-뮤튜브 가면 낭독을 하시는 분들이 꽤 많습니다.
-제임스 작가님 작품 낭독하시는 분들 상당히 많아요. 물론 내용을 전부 담아낸 낭독회는 많지 않지만요.
-책을 그대로 읽어주시는 분도 계시는데 그중에서 목소리 좋으신 분 링크 달아드릴게요.
워낙 유명한 소설이다 보니 뮤튜브에서 낭독을 하는 크리에이터들이 가장 많이 애용하는 소설이었다.
나오는 주기도 빠르고, 조회수도 상당히 나오기에 굉장히 보장된 아이템이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엘리나라는 분 이후로 제임스 작가님 작품을 노래로 만드시는 분도 많아졌지?
-그중에는 훌륭한 것도 있기는 한데..... 내용 풀이를 잘 못 이해하시는 분도 꽤 많으시더라.
-Bliss cam이라는 프로듀서가 만든 노래는 괜찮더라. [사막의 전갈]을 모티브로 삼았는데 들을 때마다 가슴이 벌렁거려서 잘 만들었다고 생각했음.
ㄴ그 사람은 유명하잖아.
-Dale B 분도 제임스 작가를 직접 만나고 같이 작업하고 싶다고 했잖아? 언젠가 같이 작업한다고 말했는데...... 그게 언제가 될지 모르겠네.
ㄴDale B하고 노래를 만들고, 제임스 작가가 작사를 한다라..... 젠장. 듣고 싶네.
그런 한편, 영상을 다른 시각으로 보는 이들도 존재했다.
바로 올리비아의 팬덤이었다.
미국 내에서라면 제임스 작가의 팬덤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그래도 전 세계적으로 팬덤이 있는 올리비아가 제임스라는 동양인과 함께 있는 모습에 분통을 터트린 것이다.
-우리의 여신이 원숭이와 함께 하다니..... 젠장.
-김치 냄새 나는 원숭이가 올리비아하고 같이 있는 게 가당키나 한가?
-올리비아가 착해서 같이 있는 거지, 같이 작업할 때 얼마나 힘들었을까? 마늘 냄새 때문에 근처에 가기도 싫었을 텐데.
대다수가 올리비아를 보러 모니터를 켰던 사람들이었기에 제임스 작가라는 듣도 보도 못한 동양인을 아니꼬워했다.
하지만 미국 한정 올리비아보다 더 큰 팬덤을 가지고 있는 제임스 작가의 팬들은 그걸 보고 가만히 지나치지 않았다.
-니들이 뭔데 제임스 작가를 판단하냐?
-서로 보기 좋은데 왜 너네들이 지랄이야?
-올리비아님이 누구를 만나든 간에 무슨 상관이야? 거기에 제임스 작가의 소설을 좋아하는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아? SNS에 들어가 보니까 올리비아님이 직접 초청한 거라는데 방구석에 박혀서 뭐 하는 짓들이냐?
-올리비아님 SNS만 봐도 제임스 작가를 좋아한다는 게시글을 많이 올렸던데 너네 진짜 팬은 맞아?
제임스 작가의 팬들 중에서 연예인도 상당히 많았고, 그중에는 올리비아처럼 할리우드에서 이름 날리는 연예인이나 가수들도 있었다.
다만, 올리비아처럼 대놓고 팬심을 보여주는 이들도 있는 반면, 그냥 숨어서 덕질을 하는 연예인들도 있었기에 제임스 작가의 팬덤이 정확히 어느 정도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냥 인종차별을 하고 싶으니까 여기서 지랄하네.
-병원 사이트에서 인종차별하고 싶냐?
-제임스 작가님이 얼마나 바쁜데, 시간 내서 병원까지 간 거면 이번 이벤트를 진짜 중요하게 생각하셨다는 건데... 아 방구석 찐따들 때문에 혈압 오르네.
-병신들. 아이들이 나오는 영상에서 인종차별 발언을 하니까 좋냐?
악질 팬들이 댓글을 올릴 때마다 제임스 작가의 팬덤과 올리비아의 팬덤이 그들을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근데 왜 저번 주엔 Live 방송 쉬신 거지?
-곧 이번 연도도 끝나서 제임스 작가님의 Live 방송을 꼭 보고 싶었는데.....
글을 쓰는 작가들이나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유익한 방송인 제임스의 Live 방송은 저번 주에 방송되지 않았다.
새해가 하루 남지 않은 시점인 12월 31일인 목요일이었기에 더욱 아쉬워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SNS에 어떠한 공지도 남기지 못한 상태로 Live 방송을 안 했기에 또다시 과거처럼 독자들과의 소통을 끊었다고 말하는 팬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 생각은 곧이어 올라온 ‘ABA 연예계 제이든’이라는 기자가 올린 기사로 인해 정반대가 되었다.
[속보! 제임스 작가 자택에서 실신한 상태로 발견!]
-......!
-......!
팬들의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
현관문 걸쇠를 걸어 잠그고, 제임스는 누구와의 연락도 없이 오로지 글에만 집중했다.
제임스의 몸은 마치 지금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그 재능과 천재성을 마음껏 발휘했다.
주체하지 못했다.
지금까지 공들여 쌓았던 자제심이 아예 무너져 내린 것이다.
역사에 한 획을 그은 명장들의 조언으로 버텨오던 아슬아슬한 천재성이 결국 참지 못하고 터져 나온 것.
최소한의 에너지도 섭취하지 않는 채 제임스는 계속해서 글을 썼다.
그 결과 빌에이든 미디어와 SC라스틱은 동시에 원고를 전달 받았다.
하지만 이 사실을 알 리 없는 아리아나와 메디슨은 제임스집 현관문 앞에서 한참을 기다렸고, 아무리 연락을 해도 받지 않는 제임스가 걱정되어 결국 헤리한테 연락을 취한 상태였다.
-문을 열지 않는다고요?
“네. 아무래도 문을 강제로 열어봐야겠어요.”
전화도 받지 않고, 문도 열리지 않으니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 모르는 노릇이었다.
헤리는 전화를 받자마자 심각함을 감지했다.
작가 사인 중 가장 많은 사인을 차지하는 것이 고독사다 보니, 출판업계에서 오래 활동해온 헤리는 지금 이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을 인지했다.
-한스한테 연락해 놓겠습니다.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겁니다.
헤리의 말대로 전화가 끝나기가 무섭게 얼마 지나지 않아 한스 할아버지가 다가왔다.
한스 할아버지는 시큐리티 직원과 함께 왔는데, 오자마자 서둘러 문을 열 준비를 하였다.
“쯧. 이게 무슨 일인지 원......”
혀를 차며 전자식 키패드를 해체하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꺄아아아아악!”
제임스 작가가 쓰러져 있었다.
컴퓨터 전원이 켜져 있는 상태로 기절해 있는 제임스 작가를 보자 메디슨의 얼굴이 새파래졌다.
‘이, 이런.....!’
자신의 실수였다.
크리스마스에 취한 제임스를 보고 그날 무슨 일이 있었을 거라는 직감을 받았다.
다만, 회사에 중요한 일이 생겨 어쩔 수 없이 며칠 동안 오지 않았는데 결국 이러한 사달이 나버렸다.
제임스에게 이러한 일이 벌어지지 않게 일주일이 몇 번씩이나 찾아왔지만, 최근에는 스스로 잘 컨트롤하길래 방심했던 것이다.
아리아나는 제임스 작가를 잡고 흔들었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패닉이 온 그녀들의 귓가로 한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뭐 하는 겐가? 얼른 구급차를 부르지 않고?”
“아....! 네!”
그 말에 아리아나는 서둘러 911에 연락했다.
한스 할아버지는 쓰러져 있던 제임스를 이리저리 살피며 한숨을 내쉬었다.
“탈진했군.”
“그걸 아세요?”
“많이 봤으니까. 상태가 그리 위독한 편은 아니니 다행일세.”
은퇴한 군인 출신인 한스 할아버지는 경관 시절에 이러한 일로 쓰러진 사람들을 많이 봐왔다.
그렇기에 불안해하는 메디슨을 진정시키며 같이 온 시큐리티 직원과 함께 쓰러져 있던 제임스를 바르게 눕혔다.
“작가라는 직업도 여러모로 힘들겠구만.”
***
제이든이 제임스 작가가 쓰러졌다는 소식을 들은 건 루이나로부터였다.
제임스가 병원에 실려 갔다는 말에 일단 메디슨이 가족 전체에 이 소식을 알렸기 때문이다.
루이나의 허락을 받고 기사를 올렸지만, 이게 과연 맞는 답인지는 알 수 없었다.
“정말 올려도 되는 거야?”
제이든은 일단 기사를 작성한 뒤 루이나한테 다시 말했다.
“응.”
“정말로 이래도 돼? 얼마 전에 병원에 봉사활동 다녀왔다면서, 병원에 역풍이 부는 건 아닌지 걱정이네.”
“팬들이 어째서 제임스가 기절했는지 알게 되면 괜찮을 거야.”
루이나는 평소와 달리 얼굴이 차갑게 굳어져 있었다.
가족이 쓰러져서 그런 것이기도 하지만, 그 가족이 일을 하다가 쓰러졌다는 사실에 더욱 마음이 냉정해진 것이다.
“어차피 조용히 있어도 곧 알려질 일이야. 차라리 네가 먼저 기사를 적어서 올바른 방향으로 소식이 퍼지게 하는 게 좋아.”
제임스 정도 되는 녀석이라면 인지도가 많다 보니 괜한 유머에 휩싸일 수 있었다.
그러니 차라리 올바른 기사를 먼저 내는 것이 중요했다.
글을 쓰다가 과로로 쓰러졌다 정도로 이 사건을 일단락시키려는 것이다.
“그렇다 해도 루머는 퍼질 거야.”
“올바른 기사가 먼저 나온 후라면 상관없어.”
잘못된 정보는 빠르게 퍼져나가지만, 올바른 정보는 느리게 퍼져나간다.
이는 맨 처음에 어떤 방식으로 시작됐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잘못된 정보를 고치는 건 어려우니 올바른 정보를 제이든처럼 인지도 있는 기자가 빠르게 퍼트린다면 괜찮을 것이다.
“그나저나 정말 과로 때문이야?”
“응. 언니한테 연락 왔어. 그렇게 심각한 수준은 아니라고 하네. 탈진한 거라고 하더라.”
“에휴.....”
한 사람의 팬으로서 제이든은 안타깝다는 한숨을 내쉬었다.
“생판 남인 나도 제이슨 작가님이 쓰러졌다는 소식에 심장이 벌렁거렸는데, 관계자들은 얼마나 놀랐겠어. 잘못됐기라도 해봐..... 폭동이 일어났을걸?”
“제임스의 팬덤이라면 충분히 가능하겠지. 아무튼 괜찮을 거라고 하니까 너도 너무 걱정하지 마.”
제이든은 루이나의 말에 그나마 안심하면서도 잠시 생각에 잠겼다.
제임스 작가와 연관이 있는 기업들이나 사람들은 과연 이 소식을 들은 뒤에 무슨 반응을 보일까 하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