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화. 창작
장문의 댓글을 보고 사람들은 답글을 달기 시작했다.
-이런 분이 왜 아직까지도 안 알려진 거임?
ㄴ네 집에 책꽂이를 봐. 그럼 이해가 될 거야.
ㄴ아..... 인정. 책이 없네.
-우리나라는 종이책 시장보다 전자책 시장이 더 커져가는 중이니까. 무엇보다 아직 해외 진출을 하지도 않았고.
ㄴ왜 아직도 안 한 건데? 저 정도 수준이면 오히려 안 한 게 더 이상한데?
-해외 진출이 쉽냐. 번역 잘못하면 아무리 재밌는 소설이라도 망하기 십상인데.
ㄴㅇㅈ 거기에 해외 진출해서 책이 안 팔리면 그거 전부 판권 구매한 출판사가 덤터기 쓴다.
ㄴ맞지. 우리나라도 출판사가 그쪽 작가한테 판권을 구매하는 형식으로 진행하니까, 우리 쪽 출판사가 흥미가 없으면 아예 들여오지를 않지.
-SC라스틱은 여러 나라에 지점이 있으니까 [드래곤 마스터]나 [사막의 제국] 같은 경우는 1월 말쯤부터 출판을 시작한다고 하더라.
ㄴ[사막의 전갈] 영화화에 맞추려는 거겠지. 망할 수 있으니까 우선 영화로 이름을 알리고 시작하는 거 아닐까.
-근데 얼마나 재밌으면 이러는 거야?
ㄴ제 2의 에드월 홈즈라고 말하기도 하더라.
ㄴ그게 누군데?
ㄴ.....실환가?
-미친..... 에드월 홈즈를 모르는 시대가 왔다니.
ㄴ아니 틀딱들아 에드월 홈즈가 대체 누군데?
ㄴ엄마한테 물어봐 잼민아.
에드월 홈즈의 흔적은 대한민국에서도 남아 있었다.
과거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그의 존재는 많은 국민들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였다.
그런 작가를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라니..... 미치도록 보고 싶어졌지만 애석하게도 읽을 수가 없었다.
-번역본이 없네.
-젠장. 샐러쉬에 [리턴 패션 디자이너]는 읽을 수 있는데 영어를 모르겠어.
-총 12년 동안 영어를 배웠는데 나는 아직도 영어를 할 수 없다니...... ㅠㅠ
다만, 가장 중요한 번역본이 없으니 사람들은 그저 손가락만 빨아야 했다.
***
여러 가지로 이슈가 생긴 제임스의 과로사 사건은 잠깐이지만 또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그건 바로 극성 파파라치가 찍은 사진 한 장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뭐야.....
-안 돼! 내 여신님이.....!
그건 바로 제임스와 올리비아가 같이 있는 사진이었다.
아무리 사람들의 눈을 피해 활동했다고 해도, 극성 파파라치의 시선을 피하기는 힘들었다.
카페에서 제임스와 함께 커피를 마시고 있는 올리비아의 모습에 수많은 팬들이 좌절했다.
-안 돼.....! 형은 영원히 솔로여야 한단 말이야!
-감히! 우리 형은 영원히 글의 노예여야 한단 말이야!
-작가님! 여자한테 눈을 돌릴 시간이 어딨어요! 얼른 집필하세요!
더 좌절한 건 제임스의 팬들이었다.
가뜩이나 일을 많이 저질러 놓은 상태에서 연애까지 한다면 그 시간은 더욱 길어질 것이다.
무엇보다도 제임스의 친근하면서 소탈한 이미지 때문인지 그냥 편안한 동네 형, 오빠로 생각하는 팬들도 많았다.
-그나저나 작가님하고 올리비아하고 은근 어울리네.
-저게 어울리는 건가? 그보다 작가님 올리비아하고 만나는데 옷차림이 영.....
본인은 깔끔한 옷을 골랐다고는 하지만 다른 사람의 눈에는 그리 깔끔해 보이지 않았나 보다.
오히려 그 모습 때문에 친근하다는 이미지가 생긴 것이기도 하다.
-아. 올리비아님이 SNS에 해명글을 올렸네요. 올리비아님이 이벤트 전에 사전 준비로 잠깐 만난 거라고 하네요.
ㄴ역시 그렇지 뭐..... 우리 형이 어떤 형인데.
-그런데 올리비아도 곧바로 부정하지 않은 거 보면 마음에 두고 있는 거 아닐까?
ㄴ에이. 그건 아니지. 올리비아 보통의 배우도 아니고 굳이 제임스 작가님하고 만나겠냐?
ㄴ평소에 팬심을 항상 보였잖아? 그러면 가능성 있지 않냐?
-그보다 왜 다들 제임스 작가님은 생각 안 하냐? 글 쓰다 기절하셨다는데..... 우리 성금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니냐?
ㄴ성금?
ㄴ갑자기?
-성금..... 그거 좋은 생각인데? 괜찮은데?
-돈 모아서 작가님한테 드리자! 병원비에 보태는 것도 괜찮고, 병원에 기부하시는 것도 괜찮고, [리턴 패션 디자이너] 실제 주인공한테 기부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고! 작가님이 쓰시고 싶은 대로 쓰게 하는 거야!
ㄴ그거 괜찮은데? [나인 드래곤]에 들어가서 얼른 문의해보자!
-근데 왜 올리비아랑 열애설에서 성금으로 넘어가냐? HAHAHAHA!
ㄴ우리 형이 연애할 시간이 어딨어? 그냥 가벼운 해프닝이지 뭐.
그렇게 제임스 과로사와 함께 떠올랐던 올리비아하고의 열애설은 순식간에 잠잠해졌다.
***
꿈을 꿨다.
아무리 생각해도 요상한 꿈이었다.
첫 꿈은 군대에 입대하는 꿈이었다.
전역을 했음에도 계속해서 재입대 꿈을 꾸고 있는데, 이런 꿈을 꾸면 항상 그날 하루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꿈은 평범한 재입대 꿈이 아니었다.
내가 처음에 입대했을 당시의 꿈, 그리고 그 꿈은 마치 현실처럼 이어졌다.
이사벨이 [사막의 전갈]을 멋대로 투고했을 때부터 이어지는 꿈은 서서히 글의 세계로 나를 인도했다.
내가 지금까지 적었던 책들의 세계관 안으로 들어가 마치 주인공들처럼 활동했다.
지금까지 적었던 내용에서부터 시작해서 나도 아직 모르는 그런 미지의 세계로 말이다.
‘이어지는 내용인가.....’
처음부터 시작하여 마무리까지 이어지는 소설 속 세계관이 하나하나 내 눈앞에 이어졌다.
내 상상 속에 있는 주인공, 인물들이 실사화로 만들어진 것처럼 말이다.
내가 생각하고 있지 않았던 내용이기에 이게 이어지는 내용인가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나는 이 세계관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만족스럽지 않아.’
그 생각과 동시에 세계관이 빙빙 돌며 수없이 바뀌기 시작했다.
내가 만족할 때까지 바꿔준다는 듯이 말이다.
하지만 몇십, 몇백 번의 수정을 해도 그 세계는 만족스럽게 흘러가지 않았다.
그렇게 또 한참의 시간이 흘렀을까, 드디어 원하던 세계가 만들어졌다.
‘기억해야 해.’
이 세계를
이 완벽에 가까운 세계관을
나는 무의식으로 기억했다.
[블랙 & 월드] [괴도 레이븐] [사막의 제국].
그렇게 난 의식을 잃었다.
내가 다시 의식을 차렸을 때는 모니터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을 때였다.
“.....내가 글을 언제 썼지?”
너무 오랫동안 자지 않아서일까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아..... 메일 보내야지.”
비교적 또렷한 정신으로 언제 쓴지 모르는 글을 출판사로 보냈다.
수정, 오타 작업 없이 그냥 보냈음에도 괜찮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기억 속에서 뚜렷하게 자리 잡은 그 세계관이 글에 옮겨졌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슬슬 자볼까?”
시간이 얼마나 많이 흘렀는지 알 수 없었다.
그저 이제 자야 한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을 뿐.
“끄응.....”
그렇게 두 다리에 힘을 주고 컴퓨터 의자에서 일어서는데.
-피잉~
플래시가 머리 안에서 터진 듯 새하얘지기 시작했다.
“......어?”
풀썩.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
그로부터 정신없이 잠을 잔 기억밖에 없었다.
“으윽.....”
그 어느 때보다 무거워진 눈을 가까스로 떴다.
가장 먼저 보이는 건 하얀색 천장이었다.
코로 들어오는 온갖 약품 냄새들이 몸이 무겁게 만들었다.
“뭐야.....”
몸이 내 뜻대로 움직여지지 않았고, 팔뚝에는 링거주사가 꽂혀 있었다.
‘병원인가?’
약품 냄새와 드라마에서나 보던 링거주사에 이곳이 병원이라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병원에 가는 건 손에 꼽을 정도로 잔병치레가 없는 나였기에, 병원이라는 사실이 신기하기만 했다.
‘이런 상황도 언젠가 글에 쓸 수 있겠지?’
병실의 천장, 링거의 모양, 병실의 구석, 침대의 촉감 등을 최대한 기억해 놓았다.
‘그나저나 내가 왜 병원에 있지.’
혼란스러운 마음을 가라앉히고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분명 글을 쓰기 시작하고..... 정신을 잃었고, 정신을 다시 차린 다음 메일을 보내고..... 기절했네.’
몸이 무겁고 힘이 없는 걸로 봐선 과거와 똑같은 절차, 아니 그보다 더 안 좋은 절차를 밟은 듯싶었다.
‘그래도 글은 다 썼는데.....’
정신없이 글만 썼다 보니 내용이 완벽히 생각나지 않았다.
‘아니, 내용이 이게...... 다르게 봐야 하나?’
내용을 생각하니 떠오르는 것이 딱 하나 있었다.
‘망상병에 걸린 것도 아니고...... 에휴.’
마치 내가 주인공이 된 것처럼, 또 다른 세계에서 몸을 움직이며 새로운 스토리를 만들어낸 것이다.
어릴 때나 생각하던 그런 망상을 경험하자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지만, 그 생각을 피할 수 없었다.
“.....내가 이런 식으로 글을 쓴 적이 있었던.....가?”
어릴 때라면 몰라도 나이가 들면서 이런 식으로 글을 쓴 기억은 없었다.
주로 현실에서 받은 영감으로 글을 쓰는 경우가 많다 보니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무슨 경지에 이른 것도 아니고.....’
어이가 없어서 허탈한 웃음이 튀어나왔다.
지금까지 글을 쓰면서 주인공에 나를 투여한 적은 적었다.
이유야 많지만 가장 큰 이유는 ‘나’를 주인공으로 생각하면 주인공의 성격 또한 ‘내’가 되기 때문이다.
각 소설마다 주인공의 성격이 ‘내’가 된다면 그만큼 진부한 것이 없을 것이다.
살인 사건을 찾는 형사는 찌질할 수도 있었고, 아름다운 판타지 소설의 주인공은 의외로 겁이 많을 수가 있었다.
성장하는 과정 또한 포함시켜 주인공을 창조하다 보니 주인공의 성격을 제2의 나로 하기는 어려웠다.
그렇기에 주인공은 나와 성격이 다른 자를 참고하는 경우가 많았다.
‘내용 좀 확인해봐야겠네.’
머릿속에 내용이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내가 기억하는 내용과 글에 적은 내용이 맞는지 확인해야만 했다.
‘일어나자. 이럴 시간이 없어.’
글을 적었으면 가장 중요한 수정이 남아 있다.
그래야 글이 완성이 되는데 지금 누워있을 때가 아니었다.
“그, 그걸 뭐라고 하더라? 퇴근? 퇴소? 끄응..... 머리가 어지럽네.”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아서인지 퇴원이라는 단어가 떠오르지가 않았다.
애초부터 환자복이 아닌 일반복을 입고 있었기에 그냥 링거가 달린 봉을 질질 끌며 일단 주위를 살펴봤다.
‘뭔 냉장고에 음료수가 저렇게 많아.....’
뿐만 아니라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옆에 있는 협탁에는 돈봉투와 꽃다발이 가득 쌓여 있었다.
병원비가 비싼 미국이다 보니 카드에 돈을 입금해 주든가 현찰로 줄 때가 있었다.
돈봉투에 적힌 이름을 보니 전부 내가 아는 사람들이었다.
‘나중에 한 턱 쏴야겠네.’
딱히 돈이 모자란 것도 아니기에 이 돈들은 모아서 나중에 좋은 곳에 쓰도록 하고, 일단 이곳에서 퇴원하자는 생각에 문 앞으로 걸어갔다.
-드르르륵!
끙끙거리며 문 앞에 도착했을 때, 갑자기 문이 열리더니 메디슨 누나가 들어왔다.
“어? 누나?”
“뭐야? 벌써 일어났네?”
누나의 차가운 눈빛에 되레 당황하며 링거주사가 꽂히지 않은 팔로 머리를 긁적였다.
“.....걱정했어?”
“그럼 걱정이 안 되겠냐! 멍충아!”
누나의 화난 목소리에 움찔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