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화. 병원
퇴원하러 가는 길이었다는 걸 들은 누나는 한참 동안이나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뿐만 아니라 순서대로 찾아오는 에밀라, 스티븐과 루시아, 그리고 노아 회장까지 내 걱정과 함께 한 소리를 하였다.
“작가님. 얼마나 걱정했는지 아시나요? 작가님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글을 쓰는 건 좋지만 자신의 몸상태를 한 번 체크해 보는 것도 중요해요. 그 누구도 작가님이 몸을 해치면서까지 글 쓰는 걸 좋아하지는 않을 거예요.”
“제임스 작가님. 기사를 보자마자 심장이 떨어지는 줄 알았습니다. 작가님. 글도 좋지만 작가님을 기다리고, 좋아하는 아이들도 많습니다. 몸이 좋지 않다면 자제력을 발휘해서 글을 천천히 쓰시는 게 좋습니다. 작가님의 생명력을 깎으면서까지 글을 쓰는 걸 독자님들도 원치 않습니다..... 아마도요.”
“어린아이들은 작가님의 글을 원합니다. 오랫동안 행복한 글을 쓰셔야 할 분이 벌써부터 이러시면 어떻게 합니까. 작가님한테 몸을 해치면서까지 글을 쓰라고 강요한 사람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그러니 앞으로 이런 일이 없었으면 합니다.”
차례대로 들어와 내 몸의 걱정과 함께 쓴소리를 내뱉으니 내가 많이 무리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전부 다 나를 걱정해주는 소리였기에 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그저 그들의 꾸중을 들어야만 했다.
“하하..... 죄송해요. 다음부터 조심할게요.”
“휴우..... 정말 큰일이 난 줄 알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래도 얼굴을 보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스티븐의 말에 나는 뒷머리를 긁적였다.
“보낸 글은 확인하셨나요?”
그 말에 에밀라와 루시아는 고개를 저었다.
이야기를 들어 보니 회사에 출근하자마자 이곳으로 출발했고, 지금은 저녁이라고 한다.
본래라면 룰루랄라 퇴근을 준비해야 할 시간인지만, 나 때문에 지금까지 남아 있다고 하니 더욱 미안해졌다.
정시퇴근이 필요한 월요일에 나 때문에 남아 있다니.....
“누나 나 노트북 좀......”
한쪽에 우두커니 서 있던 누나가 그 말에 싸늘한 눈빛을 보냈다.
“.....알았어 오늘은 그냥 쉴게.”
더 이상 말했다가는 귀때기가 터지도록 잔소리를 들을 것 같았기에 오늘은 그냥 쉬기로 했다.
“오늘뿐만 아닙니다. 퇴원할 때까지 푹 쉬세요.”
“그건 조금......”
“괜찮습니다. 작가님이 편안히 계실 수 있도록 저희 미션 월드 측에서 전부 준비하겠습니다. 아예 이참에 휴가를 가지시는 게 어떠십니까?”
“휴가요?”
“예.”
노아 회장 옆에 있던 비서가 테블릿으로 무언가 만지기 시작하더니 나한테 내밀었다.
“하와이에 있는 개인 별장입니다. 며칠 쉬시다 오시지요.”
“별장이요?”
“예. 말만 하시면 전부 준비해 놓겠습니다.”
“음......”
그렇게까지 쉬고 싶지는 않은데.
“작가님의 몸은 현재 휴식이 필요합니다. 별장이 아니더라도 일단 휴식을 취하시죠.”
노아의 말을 스티븐과 에밀라도 거들었다.
“맞아요. 과로 때문에 쓰러지셨는데 계속 일을 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어차피 [블랙 & 월드] 2부도 보내 주셨고, [리턴 패션 디자이너]도 휴재 중이시잖아요? [일곱 개의 죄악]도 출판하려면 아직 시간이 걸리니까 이참에 휴식을 취하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휴식을 취하면 더 좋은 글이 나오는 건 당연합니다. 과로로 인해 몸이 많이 무거워졌을 테니 이번 기회에 여행을 가시는 건 어떻겠습니까? 아니면 고향에 가서 몸의 노곤함을 푸시는 것도 괜찮을 것 같고요.”
그들의 말을 무시하고 움직였다가는 무슨 일이라도 생길 것 같았기에, 아무래도 그 말을 따르는게 좋을 것 같았다.
***
어느덧 한밤중이 되어 내 휴식을 위해 메디슨 누나만 남고 전부 돌아간 상태였다.
부모님한테 연락이 가긴 했지만 너무 먼 거리라 무사히 깨어났으니 누나보고 알아서 잘 챙겨주라고 했단다.
오늘 하루는 따가운 눈초리들 덕분에 방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고 꼼짝없이 쉴 수밖에 없었다.
“열흘 그 이상은 휴식하도록 해.”
“.....그렇게 오래?”
“그래. 이번 시사회도 빠지고.”
“......그래도 돼?”
바쁜 한스를 대신해서 블루스타게이트는 대변인을 보냈다.
이번 시사회 때는 빠져도 좋으니 제발 몸만 생각하라는 메시지와 함께 말이다.
“그래도......”
“시사회 때 말고 차라리 영화 개봉날에 와서 팬들하고 인사나 하라고 하더라. 마그누스 감독님이 화나셨으니 웬만하면 그날 오지 말라고 하더라.”
“쩝..... 알았어. 그럼 그렇게 할게. 시사회는 가고 싶었는데......”
“시사회 때 가서 할 건 많긴 하지..... 근데 너 그런 큰 인터뷰는 해본 적 없으니까 차라리 안 하는 게 더 좋을 수도 있어.”
“하긴, 인터뷰 잘못했다가 사라지는 사람들을 많이 보긴 했지. 그래도 아깝네......”
내 첫 영화이니 상당히 기대하고 있었는데 말이다.
“[블랙 & 월드] 영화 제작 미팅은 그래도 갈 수 있을 거야.”
“그건 언젠데?”
“그다음 주 월요일. 시사회 끝나고니까 12일이네.”
“12일.....”
“그리고 13일 날은 [드래곤 마스터] 시나리오 미팅하고 면접도 있어.”
“바로 다음 날이네?”
“응. 근데 이건 네가 결정해야 해. 12일에 미팅하고 그다음 날 시나리오 미팅을 하면 피곤할 수도 있잖아? 미션 월드 측에서도 본래는 온 김에 다 해버리자는 의견이었는데, 네가 쓰러지니까 금요일 혹은 그다음 주로 시간을 변동시켜도 된다는 의견이야.”
“그냥 진행 시켜. 차라리 빠르게 해버리는 게 오히려 속 시원하니까. 피곤한 것 이전에 복잡한 건 빠르게 풀어버리는 게 좋아.”
“알았어. 그건 그렇게 할게.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할래?”
나는 침대에 허리를 최대한 눕히며 말했다.
“휴가라며? 쉬어야지 뭐.”
“뭐하고 쉬게?”
“일단 아리아나한테 미안하다고 전해야지. 집에 가면 운동은 하기 힘들 것 같으니까.”
“집에 가려고?”
“응. 그래야지. 새해도 됐으...... 잠깐만, 그러고 보니까 내일이 새해네?”
“응. 오늘이 12월 31일이니까.”
“젠장...... 새해부터 쓰러졌다니.”
“반대로 생각해 보는 건 어때? 이번 해 마지막 날에 쓰러졌으니 불운을 전부 없애고 다음 해로 가는 거지.”
“그렇게 생각하면 좋기는 한데..... 에휴. 그냥 그렇게 생각해야지 뭐.”
그렇게 합리화를 해두니 지금 이 상황도 나름 괜찮다고 느껴졌다.
“차라리 집에 가지 말고 여행을 가는 건 어때? 어차피 달에 한 번은 집에 돌아가야 하잖아?”
“여행은 무슨 여행이야. 집이 가장 쉬기 좋지. 계획 없이 여행 갔다가 피로만 쌓여서 돌아올 수도 있어. 그냥 푹 쉬는 게 최고야.”
“뭐어..... 네가 그렇다면 그렇기는 한데, 전형적으로 나가기 싫어하는 사람들의 핑계네. 한국에 여행이라도 갔다 오는 건 어떻고?”
“.....여행할 게 있나?”
찾아본다면 있긴 하겠지만, 산에 가면 군대가 생각날 것 같고, 도시에 간다면 휴가가 생각날 것 같았다.
문화를 체험하는 건 군대에서 많이 했다 보니 딱히 하고 싶은 게 없었다.
“아무튼 좀 쉬어볼게. 지금부터 쉰다면..... 거의 열흘 넘게 쉴 수 있겠네. 집에 좀 갔다 올게.”
“알았어. 푹 쉬다 와.”
“참. 재롱이는?”
“병원 오기 전에 밥 줬어. 애가 미친 듯이 먹더라.”
“쩝..... 미안하네.”
“휴일 동안은 내가 데려가 있을게. 인터넷 쳐보니까 베타는 1L 이상의 물만 있으면 키울 수 있다니까 작은 플라스틱 통에다가 데리고 있으면 되겠지 뭐.”
“그럼 물은 매일 갈아줘야 하는데 괜찮아?”
“그게 뭐가 어렵다고. 너는 물고기 걱정은 하지 말고 푹 쉴 생각이나 해.”
나는 이불을 끌어모으며 베개에 머리를 가져갔다.
“매번 신세 져서 미안하네.”
“시끄러. 미안하면 얼른 몸이나 풀어.”
“하하 알았어.”
누나는 병실을 나가며 무슨 일 있으면 전화해달라는 말을 던졌다.
퇴원은 내일모레. 남은 이틀 동안은 혹시 모르니 병원에 잠자코 있는 게 좋겠지.
나는 다시 잠을 자기 위해 눈을 감았다.
“.....잠이 안 와.”
방금까지 자고 일어나서 그런지 잠이 올 리가 없었다.
그리고 묘한 병원의 분위기와 약품 냄새가 거슬렸다.
‘그나저나 오늘 하루 난리가 났다고 했나......’
현재 병원 측에서 기자들을 막고 있는 상태라 소란은 일어나지 않았다고 말하지만, 처음엔 굉장히 많은 기자들이 들이 닥쳐서 노아 회장이 힘을 썼다고 들었다.
SC라스틱 측에서도 무분별하게 올라오는 기사들을 메디슨 누나 회사인 골든 문 게이트와 협조하여 내리게 했다고 들었다.
그럼에도 올라온 기사들은 어쩔 수 없겠지만, 아무튼 오늘 하루 내가 기절했다는 소식 때문에 조금 과장을 덧붙여 미국 전역이 난리가 났다고 한다.
‘내가 아플 때..... 걱정해주는 사람이 있었나?’
한국에 있을 때의 기억은 많이 나지 않았고, 미국에서 크게 아팠던 적이 한 번 있었다.
어릴 때라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마 그때 약을 사 오는 것도 굉장히 힘들었던 기억이 났다.
아빠는 일을 나가야 했고, 엄마는 영어를 잘 모르다 보니 약을 사 오는 게 굉장히 힘들었던 것이다.
나중에 일을 마치고 들어온 고모가 진통제를 비롯한 여러 감기약을 사왔던 것으로 기억난다.
미국은 병원비가 비싸다 보니 가벼운 감기 정도는 그냥 집에서 약을 먹고 참는 경우가 많았다.
‘편도선이 부었을 때였지?’
독감 때문에 편도선이 부풀어 올라 음식을 먹지 못했고, 약을 삼키는 것도 힘들었다.
아빠는 일, 엄마도 일.
‘아..... 누나들이 나를 돌봐줬었지?’
공부하느라 바쁜 누나들이 나를 돌봐줬던 기억이 난다.
‘아픈 건 서럽지.....’
지금은 몸이 무거운 게 다라 그런 느낌이 들지 않았다.
만약 혼자 있는데 몸이 아프고 돌봐 줄 사람이 없다면 무슨 느낌일까.
“.....아픈 자들, 외면받는 자들을 위한 글.”
라울과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500만은..... 찍었겠지.”
정확히 몇만 부가 나왔는지 모르지만 500만 부는 충분히 팔렸을 것이다.
“진지하게 고민해봐야겠네.”
외면(外面).
나는 머릿속에 계속해서 그 단어를 떠올렸다.
***
생각이 길어지니 오히려 잠이 오지 않았다.
“인터뷰라도 할까?”
의사들하고의 인터뷰는 귀중하니까.
거기에 라울이 말했던 외면 받는 자들을 위한 작품도 병원에 있는 환자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참고해볼 수 있지 않을까?
‘환자하고의 인터뷰는 중요하니까.’
[일곱 개의 죄악]을 적는 데도 필요하고.
“근데 지금 나갈 수 있나?”
저녁 10시에 소등을 하다 보니 내 방도 불이 꺼져 있었다.
나가서 들어가라고 하면 다시 들어오면 되니까.
그렇게 병실 문을 열어보니
-툭!
“꺅!”
“.....응?”
누군가와 부딪혔다.
부딪힌 것까지는 좋은데 문밖으로 나가자마자 시선이 느껴졌다.
“지, 진짜 드래곤 원 작가님이야!”
“꺄악!”
“이것들아! 병원에서 조용히 안 해!”
“교, 교수님도 조용히 하세요!”
“이것이 진짜.....”
문밖에는 의사와 간호사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