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5화. 병원 (2)
저번에도 말했듯이 제임스 작가의 책은 항상 병원에 구비되어 있었다.
의사들이나 간호사들이 자발적으로 가져다 놓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곳은 LA에 위치한 가장 큰 병원이다 보니 제임스 작가의 소설은 당연히 있었고, 그 때문인지 팬층도 두터웠다.
“이 방에 정말 제임스 작가님이 계셔?”
“어휴. 그렇다니까요? 그래서 오늘 당직도 아니신데 당직 서고 싶다는 교수님들이 얼마나 많았는데요.”
간호사들은 제임스 방문 앞에서 계속 기웃거렸다.
간호사들 뿐만이 아니었다.
레지던트와 당직을 서는 교수들 또한 자기 담당구역이 아님에도 혹시나 제임스 작가를 만날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에 길을 크게 돌아 한 번 보고 갈 정도였다.
“그렇게 난리가 났다고?”
“말도 마. 오늘 시큐리티에서 사람도 많이 보내 주고, 미션 그룹 측에서 보낸 경호원들이 전부 병원 전체에 진을 치고 있다니까? 지금도 사진 한 번 찍어보려는 기자들이 숨어있을걸?”
“그래서 분위기가 무거웠구나.”
“그것도 있는데 아까 기자 중 한 명이 간병인으로 위장해서 들어오려다 다른 환자들한테 피해를 줘서 그런 것도 있어. 하여튼..... 유명인이 보통 유명인이어야지.”
“선생님들도 그것 때문에 골치 아파한 거구나. 퇴원은 언제 하는데?”
“이틀 후에 한다고 하나 봐. 보호자들은 최대한 늦추고 싶다고 했는데 갑자기 사정이 바뀌었나 봐.”
“이틀..... 그중에 한 번은 뵐 수 있으려나?”
“사인받게?”
“그, 그러면 좋겠지?”
“얘는..... 작가들한테 사인해 달라는 게 얼마나 민폐인데..... 특히 제임스 작가님은 사인 안 해주기로 유명하잖아.”
딱히 오는 사람들한테 사인을 거부한 적은 없다만, 워낙 그런 활동을 잘 안 하다 보니 그런 식으로 소문이 퍼졌다.
그렇기 때문인지 제임스의 방문 앞을 더욱 기웃거렸다.
결국 소등시간까지 이어졌고, 소음 차단이 완벽한 제임스 방을 기웃거리던 간호사들과 의사들은 때마침 안에서 나오던 제임스와 부딪친 것이다.
***
사정을 들은 제임스는 간호사와 의사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결론은 나한테 사인받고 싶어서 온 거라고.
“그럼 인터뷰해주시면 사인해드릴게요.”
“.....그렇게 간단히요?”
“물론이죠.”
간호사들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지만, 그 사정을 알 리 없는 제임스는 싱글벙글 웃으며 A4용지 한 장을 꺼내 들었다.
“각 직업의 인터뷰를 하는 게 작품에 큰 도움이 되거든요. 아직은 모르지만 언젠가 쓸 날이 있을 수도 있고요.”
“그럼 어떤 걸 말해드리면 되나요?”
“음...... 정신질환 혹은 민폐인 손님이나 아니면 갑작스러운 사고나 응급사항? 그런 거 위주로 부탁드릴게요.”
“그럼..... 최근에 있던 일부터 말씀드릴까요?”
“네.”
간호사 한 분은 곰곰이 생각하다 얼마 전에 있었던 일을 말해주기 시작했다.
***
이야기를 들어 보니 생각보다 가관이었다.
그래도 미국은 병원 차량의 진로를 막거나, 병원에서 난동을 부리면 그 죄가 만만치 않아 그런 일이 별로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의외로 염치없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인공호흡을 했는데 성추행으로 경찰에 신고한다는 사람이나, 가슴압박을 했는데 갈비뼈가 부서져 의료사고로 신고한다든가.
여러 가지 이유로 민폐를 부리고 그에 따른 돈을 갈취하려는 사람들도 많았다고 한다.
‘흐음......’
근데 막상 이야기를 들으니 이야기로 쓸법한 게 별로 없었다.
‘간호사들 이야기는 전부 빼자..... 그나마 쓸법한 게 기상천외하게 응급실로 온 사람들이네.’
나는 어젯밤에 인터뷰한 내용들을 일일이 살펴보았다.
그중 쓸모없는 내용은 전부 줄을 그었고, 쓸모 있는 내용에는 동그라미로 표시를 했다.
그렇게 정리를 하고 있자니 슬슬 배가 고파졌다.
‘그러고 보니 어제부터 아무것도 안 먹었네......’
무슨 희멀건 스프 같은 거나 나오겠지.
‘쩝..... 배고픈데.’
-똑똑
시간이 지나고 9시쯤이 을 때 간호사분들이 병실 문을 두들겼다.
“네. 들어오세요.”
-드륵
문이 열리자 어제저녁에 봤던 간호사분들과는 다른 분들이 병실 안으로 들어왔다.
“작가님 Happy new year~!”
“Happy new year”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인사와 함께 간호사들은 내 침대 식탁 위에 병원식을 올려놓았다.
예상대로 희멀건 스프와 함께 오곡 시리얼 같은 것이 저지방 우유와 함께 나왔다.
‘으아..... 최악이다.’
미국 병원식은 다른 나라들에 비해 퀄리티가 굉장히 뛰어나다고는 하지만, 나처럼 며칠 동안 못 먹은 사람한테 소화하기 어려운 음식을 주지는 않았다.
그래도 상황이 심각한 편은 아니다 보니 점심 혹은 저녁부터는 평범한 병원식을 가져다줄 확률이 높았다.
“그럼 맛있게 드세요.”
“네. 감사합니다.”
그렇게 숟가락을 스프에 가져가려 하고 있을 때 간호사들은 무언가를 원하는지 제자리에 서서 머뭇거리고 있었다.
슬쩍 보니 간호사들이 가져온 식판 카트에 내 책이 보였다.
나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음식 바꿔 주시면 사인해드릴게요.”
“아쉽지만...... 그건 안 될 것 같아요.”
“하하 역시 그런가요? 그럼 그냥 해드릴게요.”
어차피 안 될 것을 알기에 그냥 말이라도 해본 거였다.
간호사분들은 내가 사인을 해주자 책자를 가슴에 꼭 끌어안으며 기쁜 얼굴로 병실을 나갔다.
‘누나가 핸드폰을 가져다줘서 다행이네.....’
텔레비전만으론 이 따분한 시간을 버틸 수는 없었다.
‘기념이니까 사진 좀 찍어놓을까?’
근데 어차피 인터넷을 보면 다 나올 것들이기에 그냥 핸드폰으로 뮤튜브를 들고 밥을 먹었다.
뮤튜브 영상을 보니 나에 관한 영상이 여러 개 떠올라 있었다.
나는 밥을 먹으며 관련 뉴스 하나를 틀었다.
[제임스 작가(드래곤 원)가 자택에서 기절한 상태로 발견되었습니다. 병원 관계자는 제임스 작가가 기절한 원인이 과로 때문이라고 하는데요.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델리 씨를 모셨습니다. 안녕하세요.]
여성 캐스터가 한쪽을 가리키자, 카메라는 수염이 난 중년의 남성을 비췄다.
[안녕하세요. 버니]
[델리 이게 어찌 된 영문이죠?]
[음..... 우선 이걸 확인하기 전에 제임스 작가의 일정을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자 화면에 지금까지 내 일정이 표시된 달력이 잡혔다.
달력에는 솔직히 별것 없었다.
12월 동안 있었던 일이 있기는 했지만, 그렇게 막 엄청 대단한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평범하지 않나요? 초반에는 휴식을 취하기도 했는데요?]
[하하! 맞습니다. 현재 많은 사람들이 오해를 하고 출판사나 제작사를 공격하는 일이 있더군요. 제임스 작가님은 12월 초에는 고향으로 내려가 휴식을 취했고 그 이후로는 간단한 미팅 정도만 있었습니다. 큰 이벤트라고 하면 크리스마스에 아이들을 위해 한 낭독회 정도군요.]
[평소에 운동도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그 말은 사실인가요?]
[예. 하하. 필라테스를 해서 자세 교정을 하신다고 하시더군요. 그리고 특별한 날이 아니면 PT와 운동을 병행해가며 한다고 하더군요.]
[그렇다면..... 건강하게 살고 있는 게 아닌가요? 과로사까지 간 이유가 궁금한데요?]
[말이 과로사지 그냥 탈진이나 다름없다고 합니다. 그냥 밤낮 가릴 것 없이 글을 썼다고 하더군요. 물과 음식, 비타민 D 등이 부족해서 탈진했다고 합니다.]
[글을 쓰다가 쓰러진 거군요. 근데 이 때문에 출판사와 제작사가 노예 계약을 했다고......]
[맞습니다. 아무래도 그런 오해를 받을 수밖에 없죠. 그래서 출판사와 제작사 측은 계약서를 일부분 공개하는 것으로 이 사건을 해결하고자 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그냥 제임스 작가가 필을 받아서 썼다고 생각하지만 일부 네티즌들은 아무래도 제임스 작가의 말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언제부터 제임스 작가의 파급력이 이 정도가 됐을까요?]
[그건 다음 화면에서 설명......]
“.....쩝.”
나는 뮤튜브 화면을 내렸다.
“나 한 사람 때문에..... 이렇게 많은 일이 벌어졌구나.”
괜히 나 때문에 상처를 받았을 출판사나 제작사 측에 미안함이 생겼다.
‘아무래도 직접 이야기 해두는 게 좋겠지.’
새해기도 하니 간단한 영상을 촬영하여 SNS에 올리는 게 좋을 것이다.
나는 다 먹은 식판을 잠시 옆에 있는 협탁에 올려놓고, 그대로 식탁에 누나가 가져온 핸드폰 받침대를 고정시켜 동영상 버튼을 눌렀다.
***
제임스 팬이라면 누구나 친추를 해 놓았던 SNS에 새해부터 갑자기 알림이 울렸다.
원래 스타들이라면 이런 기념일에는 영상으로 모두 행복하거나 축하한다는 그런 게시글을 올리지만, SNS를 일보다 끔찍하게 여기는 제임스 작가의 특성상 팬들은 기대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영상을 틀어보니 제임스가 병원복을 입은 상태로 어딘가 미묘하게 입꼬리를 올리고 있었다.
-아니, 누가 머리에 총 겨누고 있어요? 얼굴이 왜 이렇게 굳어있어요?
-누가 강제로 웃으라고 말했어요? 왜 입꼬리가 그렇게 굳어져 있어요?
-피곤해서 그러신가? 평소랑은 조금 다르시네.
딱히 얼굴이 굳어진 편은 아니지만 평소보다 몸이 무거워서 그런지 그렇게 된 것 같았다.
영상의 핵심은 두 가지였다.
새해 인사.
그리고 나는 괜찮으니 출판사와 제작사에 대한 오해를 풀어달라.
[제가 평소에 출판사나 제작사를 공격해서 빨리 책을 출판하라는 말을 Live 방송에서 자주 합니다. 하지만 그건 재미를 위해서 또한 독자님들을 빠르게 만족시키고 싶어서 한 말일 뿐입니다. 이번에 제가 과로로 쓰러진 이유는 제가 미친놈처럼 글만 쓰고 싶었고 그렇게 글을 쓰니 몸에 무리가 온 거예요. 출판사와 제작사에 오해가 없었으면 합니다. 저는 제가 글을 쓰고 싶을 때 쓰거든요. 그래서 [리턴 패션 디자이너]도 현재 휴재하고 있지 않습니까? 양해 부탁드립니다.]
제임스는 일부러 집필이 전부 끝났다고 말하지 않았다.
솔직히 쓴 글에 대한 내용이 완벽히 기억나지 않은 상태였고, 거기에 수정까지 한 차례 더 거쳐야 했기 때문이다.
[병원 측에서도 딱히 심각하다고 할 정도는 아니다 보니 내일 퇴원할 듯싶습니다. 퇴원 후에 휴식을 취하다 오겠습니다. 대략 열흘 정도 고향에 가 있을까 합니다. 물론 Live 방송은 할 예정이니 모두 걱정하지 마세요. 그러므로 모두 Happy new year~!!!!!]
제임스 작가의 SNS 게시글 중 유례없는 가장 긴 영상이었다.
-역시 이렇게 된 거였네..... 하긴, 그 어느 출판사가 제임스 작가한테 글 쓰라고 이래라저래라하겠어?
-네임드 작가인데 함부로 굴다가 출판사가 다음 계약 못 잡으면..... 어우야......
-가만히 있어도 돈이 들어오는 작가인데 함부로 할 수 있는 출판사가 어딨겠냐;;;;;
-예시를 잘 들으셨네요. [리턴 패션 디자이너]...... 작가님의 건강도 신경 쓰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빨리 읽고 싶습니다. 벤자민한테 너무 절망만 주지 마세요.....
SNS를 본 대부분의 사람들은 역시나 그럴 줄 알았다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는 사람들은 아직도 있지만 그런 사람들까지 이해를 시켜줄 시간은 없었다.
“쯧쯧..... 잘하는 꼴이다.”
“......”
거장이 눈앞에 등장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