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화. 기부
“쯧.”
뭔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에드워드 선생님의 얼굴에 괜히 기가 죽었다.
식판을 내놓으려고 일어서려는 찰나, 에드워드 선생님이 나타나셨다.
에드워드 선생님은 아무 말 없이 혀만 차며 침대에 머쓱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나를 바라봤다.
“그래서..... 만족했나?”
“뭐가요?”
“글 말일세.”
긁적.
나는 아까부터 만지고 있던 뒷머리를 더욱 세게 건드렸다.
뭐라 말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참을 생각하던 나는 결국 하나의 결론을 내었다.
“그게 말이죠......”
이렇게 답답한 일은 상대방이 이해할 수 있게 처음부터 말하는 게 좋다는 것을 알기에,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겪은 이야기를 말해주었다.
허황되면서도 거짓된 이야기, 그러면서도 내 망상의 이야기를 에드워드 선생님한테 모조리 털어 주었다.
선생님은 내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만족한 건 모르겠고 조금 기분이 묘하다는 거군?”
“네. 그냥 정신 차리니까 글이 완성되어 있더라고요.”
“흐음......”
선생님은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에 빠지신 듯 한참이나 가만히 있으셨다.
“에드월..... 그 녀석도 한때 기절을 많이 했지. 당시에는 과로다 탈진이다 그런 걸 조금 가벼운 병으로 치부했으니까. 그냥 며칠 쉬다 보면 치료되는 그런 병이라고 생각했지.”
“지금도 과로로 쓰러져도 며칠 쉬면 멀쩡해져요.”
“내 말은 몸이 아닌 정신을 말하는 걸세.”
“예?”
정신?
“몸이 피곤해서 과로로 쓰러지면 정신은 어떨 것 같나? 예전처럼 똑같은 정신상태를 가지고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나?”
“그건..... 모르겠는데요?”
“며칠 동안 휴식한다면 몸은 휴식이 되겠지. 하지만, 정신상태는 돌아오려면 시간이 걸릴 걸세. 특히 자네처럼 머리를 많이 쓰는 작가들은 그 경우가 심하고.”
“음......”
이야기를 들어 보니 그런 느낌이 들기도 했다.
지금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일단은 글 내용을 확인하고 싶다는 정도의 생각만 머릿속에 가득했다.
현재로선 다음 내용을 생각해봐도 그리 생각나지 않는다고 해야 할까?
“그 상태일 때 강제로 머리를 쥐어짜면 더욱 피로감을 느끼게 되겠지. 더욱 글을 잘 쓸 수 있지만 반대로 글이 더 안 써질 수도 있지. 그렇게 되면 서서히 감각이 무덤덤해질 걸세.”
“감각이요?”
“뭐. 나도 자세히는 모르겠으나 그럴 걸세. 쉽게 말해 자네가 쓴 글을 보고 글이 안 써졌다고 생각하는 것이 익숙해져서 재미없다고 느끼는 거지.”
“그럼 다른 사람들한테 품평을 맡기면 되잖아요?”
“쯧쯧. 그래도 만족하지 못하면?”
“그건......”
“결국 작품이라는 것은 스스로 만족하지 못하면 쓸모없네. 그 누가 아무리 재밌다고 해도 스스로가 만족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기쁜 마음으로 작품을 출판하겠나?”
“....그렇죠.”
재밌다는 평을 듣더라도 결국 출판을 하는 건 본인의 의지다.
남의 말을 듣고 출판해서 망하면 결국 남의 탓을 하게 될 뿐.
본인의 의지에 의한 거라면 자책을 자양분으로 삼아 더욱 성장의 발판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에드월 그 친구도 서서히 정신이 망가졌네. 스스로가 만족하지 못하는 글을 썼고..... 무리하게 쓰다가 요절했지. 자네도 어중간하게 휴식할 생각은 절대 하지 말고 정신상태가 온전해질 때까지 푹 휴식을 취하게나.”
그 말과 함께 에드워드 선생님이 자리에서 다시 일어나셨다.
“가시게요?”
“에잉..... 쯧. 그럼 바로 가지 어떻게 하겠나? [블랙 & 월드] BGM 준비도 슬슬 준비해야 하는데.”
“그 말만 하시러 오신 건가요?”
“뭐어..... 그냥 그렇게 생각하게.”
“흠흠. 저 때문에...... 감사합니다.”
나 때문에 그 먼 곳에서 이곳까지 오셨다는 건데 감사함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아. 그리고 자네 휴가는 어디로 갈 생각인가?”
“집으로 가야죠.”
“그럼 다이애나도 데려가게.”
“예?”
선생님이 웬일이시지? 라는 생각이 먼저 떠올랐다.
“크, 크흠! 원래 오늘 같이 오려고 했는데..... 학교에서 빠질 수 없는 이벤트가 있어서 나랑 애비하고만 왔네.”
이벤트를 빠지고 오겠다고 했을 게 뻔한데 애써 달래며 몬태나에 가게 해주는 걸로 허락했나 보다.
“선생님도 가시게요?”
“음...... 나는 못 가지만 안토니가 대신 갈 걸세.”
“아. 근데 안토니는 왜 안 들어오셨어요?”
“뭘 오나. 어차피 곧 만날 텐데. 언제 갈 생각인가?”
“내일모레 갈 생각입니다.”
“크흠. 그럼 그때 공항으로 출발하라고 말해 놓겠네.”
“네.”
그렇게 밖으로 나가던 에드워드 선생님은 발걸음이 문 앞에서 멈췄다.
“아. 참 자네.”
“네.”
“혹시 올리비아라는 여배우랑 무슨 사인가? 요 며칠 동안 열애설이 터졌는데.”
“......제가요? 올리비아랑요?”
“그래.”
“에이..... 별 사이 아니에요. 그닥 만난 적도 없고요.”
“흐음..... 그래? 알겠네.”
“네. 와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크흠!”
선생님은 다시 한번 헛기침을 한 다음에 밖으로 나가셨다.
“후우......”
다시 한번 내가 아프면 여러 사람이 피곤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람이 과로로 쓰러지면 얼마나 위험한지도 깨닫게 되었다.
바쁘신 선생님을 뉴욕에서 LA까지 당일치기로 오게 만들었으니 더욱 미안했다.
‘다음부터는 정말 자중하자.’
다시 한번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
그렇게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갔다.
병원에 있는 시간도 나름 쓸모....가 없을 것 같지만 그래도 한 번쯤은 신선한 경험이라고 생각했다.
나가면 사람들이 몰려올 수 있다고 거의 하루 종일 병실 안에만 있었는데, 누워서 핸드폰이나 텔레비전만 보고 있으려니 더욱 심심했다.
‘퇴원한 뒤에도 몸 관리는 계속해야 되겠네......’
보통은 일주일 정도 입원을 해야 하지만, 나 같은 경우는 과로보다는 탈진에 가까웠고 상태가 금방 호전되다 보니 금방 퇴원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일찍 퇴원시켜 주는 대신 몸 관리를 철저히 하라는 당부를 받았다.
내 식사는 보통 아리아나가 어느 정도 관리를 해주고 있었고, 영양제 같은 것도 아리아나가 신경 써주고 있다 보니 충분했다.
아무튼 퇴원을 하기 위해 병원에 왔을 때 입었던 옷을 주섬주섬 입었다.
“이걸 어떻게 하지?”
그러다 문득 병원에 온 사람들이 병문안 선물이라고 주고 간 봉투가 보였다.
모아보니 상당한 액수였지만, 스스로 병원비를 내도 문제없는 상황이라 사용하지 않고 모아두었다.
좋은 곳에 쓰겠다고 생각했으니 좋은 곳에 쓰는 게 좋긴 하겠지만, 막상 쓰려니 어디에 써야 할지 몰랐다.
일단 나는 퇴원 절차를 받기 위해 안내 창구로 향했다.
“아. 퇴원하시게요?”
“네.”
나는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하게 모자와 마스크를 쓴 상태로 퇴원 절차를 밟았다.
“혹시 여기 모금함 같은 게 있을까요?”
“네. 소아암 아이들을 위한 모금함이 있기는 하거든요. 근데 절도의 위험성이 있어서 저희가 관리하고 있어요.”
“아..... 그럼 이것 좀 넣어주세요.”
나는 받았던 봉투들을 간호사한테 내밀었다.
“모금함에 넣는 봉투에는 제 이름은 적지 마시고, 봉투에 적혀 있는 사람들 이름으로 기부를 해주세요.”
“아. 넵! 감사합니다.”
“뭘요. 수고하세요.”
나는 누나가 기다리고 있을 병원 밖으로 나왔다.
예상대로 누나는 병원 앞에서 차를 대기시켜 놓고 있었다.
“나. 일하러 가야 해! 빨리 와!”
“아. 응.”
일하는 중간에 나왔을 게 분명하니 누나의 차에 서둘러 탔다.
병원에서 집까지는 그리 멀지 않았기에 금방 도착할 것이라 생각했다.
“누나.”
“왜?”
“기부는 어떻게 하는 거야?”
“.....또 뭔데 그래?”
“아니 그냥...... 갑자기 라울의 말이 떠오르네.”
라울이 말했던 아이의 이야기가 브록스하고 겹치는 건 우연이 아닐 것이다.
요즘따라 심정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약간 그런 느낌이 들었다.
“그냥 좀 알아봐 줘. 전문 기관이 아니라 다이렉트로 쏠 수 있는 그런 기관.”
“차라리 그럴 거면 라울이 운영하는 기부 기관에 연락해볼까?”
“그거 괜찮네. 그렇게 알아봐 줘.”
“알았어. 그리고 집은 언제 갈 거야?”
“내일 가야지. 그냥 좀 피곤하더라도 내일 가서 푹 쉬게.”
“가기 전에 아리아나한테 고맙다고 인사나 하고 가. 많이 놀랐다더라.”
“.....쩝. 그래야지. 아. 누나 집에 가기 전에 백화점 좀 들를 수 있어?”
“.....백화점? 왜?”
“말했잖아. 아리아나한테 고맙다고 인사하라고. 이왕 가는 김에 한스 할아버지하고 시큐리티 직원분 선물도 사게.”
“잘 생각했어. 돈도 많은 녀석이 계속 아껴서 뭐 하냐?”
“쓸 데가 없던 거지. 근데 백화점 들렀다가 가도 돼?”
“좀 늦으면 네 핑계 대지 뭐. 대신 내 것도 사 줄 거지?”
“하하. 당연하지.”
우리는 백화점으로 차를 틀었다.
***
“작가님! 정말 걱정 많이 했다고요!”
“하하 죄송해요.”
“웃을 일이 아니에요! 으이그!”
집에 내려가 있던 아리아나로선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다.
하긴, 트레이너로서 담당하고 있는 회원이 건강상의 문제로 병원에 실려 가게 되었으니 화가 나는 건 당연하겠지.
“이거 선물이에요. 놀라게 해드려서 죄송해요.”
나는 백화점에서 산 운동복을 아리아나한테 내밀었다.
아리아나는 거부하지도 못하고 일단 운동복을 받아들였지만 그래도 찝찝함이 풀리지 않은 것 같았다.
“에효.....”
아리아나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래서 몸은 이제 괜찮은 건가요?”
“네. 조금 무거운 느낌은 있지만 움직이는데 불편하진 않아요.”
“다행이네요. 어디 아프신 덴 없고요?”
“없어요.”
“그나마 다행이네요. 그래도 며칠 동안 의자에 앉아서 글만 썼다고 했으니까 일단 인바디 체크를 해야 하긴 할 것 같아요.”
“근데 제가 내일부터 휴식 여행을 갔다 오려고 하는데......”
아리아나는 잠시 고민하더니 말했다.
“다녀오세요. 다만, 제가 알려 드리는 스트레칭을 하루에 한 번씩 하신 다음 영상으로 보내 주세요.”
“.....예?”
“그렇게 안 하시면 바지 끄덩이 잡고 말릴 거예요!”
하루에 몇 분씩 스트레칭에 꾸준히 투자만 해도 몸 상태가 건강해진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기에 일단 알겠다고 말했다.
“고향 집에 가시는 거예요?”
“네. 아무래도 집이 가장 휴식을 취하기 좋으니까요. 그 전에 해야 할 게 있지만요.”
“설마......”
“하하. 아니에요. 그냥 제가 어느 정도 썼나 확인하는 거예요.”
아무리 그래도 내가 쓴 글은 확인해봐야 하지 않겠는가.
***
일단 두 개의 원고를 빌에이든 미디어와 SC라스틱에 보낸 기억은 있다.
당시 기억이 흐릿하기는 하지만, 그냥 보내도 될 것이라는 판단을 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내용을 한 번도 쭉 훑어보지 못했다 보니 나한테는 확인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
“우선 [블랙 & 월드]부터 볼까?”
오늘 할 일은 그저 책을 읽을 뿐. 수정이나 오타는 찾지 않을 생각이다.
그렇게 모니터를 켜고 파일을 열어보니.
“......이건.”
새로운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