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시골촌놈인 줄 알았는데 천재작가였다-160화 (159/216)

160화. 휴식 (3)

영상이 끝나고 다이애나는 놀란 표정으로 나를 빤히 바라봤다.

“.....16일이요?”

“네. 16일이요.”

“.....동시에요?”

“네. 동시에요.”

이 소식은 내가 병원에 쓰러져 있을 때 들었다.

에밀라와 스티븐이 떠나기 직전 해준 말이었다.

둘 다 똑같은 날 출판을 한다는 말이 나오자마자 서로의 눈빛에서 불꽃이 튀었지만 말이다.

“음..... 네! 오늘 방송 수고하셨어요.”

“고마워요.”

우리는 주섬주섬 카메라를 정리했다.

“이제 뭐 하실 거예요?”

“주변 인사를 갈 생각이에요. 걱정을 끼쳤으니까요.”

일단 고모부댁에 간 다음 월리네 집으로 갈 생각이었다.

“그럼 저도 가도 될까요?”

“재미없을 텐데..... 안토니하고 함께 있는 게 좋지 않을까요? 상태가 좋아 보이지 않던데.....”

“어차피 저녁쯤 되면 괜찮아질 거예요! 아빤 항상 그러거든요. 저도 같이 가고 싶어요!”

“아..... 네. 그럼 같이 가요. 근데..... 음. 아니에요. 같이 가요.”

“네?”

“냄새가 좀 날 수 있어요.”

“냄새요?”

“네. 지금 가축 축사 청소 중일 확률이 높거든요. 저도 오랜만이라 확신은 못 하지만요.”

“괜찮아요!”

“음..... 그럼 같이 가봐요. 밖에 추우니까 옷 든든하게 입으세요.”

“네!”

다이애나가 나가고 나 역시 옷을 챙겨 입었다.

***

아직 해외로 출판되지는 않았지만 제임스의 소설은 알음알음 세계로 뻗어나갔다.

미국에 있는 팬들이 주변 사촌들이나 친구들한테 추천해주다 보니 서서히 퍼져 나간 것이다.

제임스는 모르고 있지만 가장 인기 있는 곳은 다름 아닌 영국이었다.

미국 바로 위에 있는 국가인 캐나다도 제임스의 소설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영국에서 가장 인기가 많았다.

아직 정식적으로 판매되지도 않았지만, 인구 대비 배송 사이트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나라였다.

유럽인들은 책을 좋아하다 보니 가장 큰 시장이기도 했다.

그렇다 보니 요상한 소문들도 많았는데, 그중 하나가 영국의 여왕도 제임스 작가의 소설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물론 헛소문이고, 신빙성도 없는 얘기였지만 이러한 소문이 퍼진 이유가 있었다.

-제임스 작가님이 팬미팅 하신다는 소문 들었어요?

미국의 팬카페 [나인 드래곤]만큼은 아니지만, 영국에도 팬카페가 있었다.

[하트 드래곤]이라는 이름을 가진 카페로, 아직 그렇게까지 유명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단단한 팬덤을 유지하고 있었다.

[나인 드래곤]과 다르게 [하트 드래곤]은 최우수회원의 정체를 스스로 SNS에 밝혔다.

-네. 들었어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하비드 님?

하비드 스텐리.

아니 정확히는 스텐리 백작이라고 불러야 하지만, 카페에서는 친근하게 하비드라고 불리고 있었다.

-당연히 저희 쪽에서도 팬미팅을 열어달라고 해야죠. 제가 힘 좀 써보겠습니다.

ㄴ오오오오오오오오-!!!!!

ㄴ믿고 있었습니다!

ㄴ낭독회도 듣고 싶어요!

스텐리 백작은 명문 초등학교에 다니던 딸이 가져온 책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학교 도서관에 있던 [블랙 & 월드]와 [사막의 전갈]이라는 책을 말이다.

딸이 너무 집중해서 읽는 바람에 자신도 궁금증이 생겨 읽게 되었다.

그 후로 제임스의 팬덤으로 자리 잡았다.

이 나이를 먹고 덕심을 부리게 될진 몰랐지만 자연스럽게 그리되었다.

-근데 한다고 해도 2월부터 시작되겠군요. 아무래도 [사막의 전갈] 영화화가 우선인 듯싶습니다.

ㄴ하긴, 그렇긴 하죠.

ㄴ그때까지 참아야 하다니..... 에휴.

ㄴ그래도 한 달이면 참을 만하지. 그나저나 제임스 작가님이 영국으로 오실까요?

ㄴ맞아. 우리 팬덤이 솔직히 그리 많은 편도 아니니까. 아마도 팬미팅보다는 영화 홍보 목적으로 오는 게 아닌가 싶네.

ㄴ그래도 그게 어디야. 나는 제임스 작가님 실물을 볼 수 있으면 만족해!

여왕의 자손이 제임스 작가의 소설을 좋아한다는 루머는 스텐리 백작 때문이었다.

정계에 진출한 인물이 제임스 작가의 소설을 좋아하는데, 여왕의 자손이라고 안 좋아할까?

특히 여왕의 자손 중에서 독서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기에 이 소문은 신빙성을 얻었다.

물론 아직까지 이렇다 하게 밝혀진 건 없지만 말이다.

***

마을에서 가장 큰 농장을 가지고 있는 고모부는 가장 큰 축산도 가지고 계셨다.

농업은 고모부가 축산은 고모가 관리하고 있었다.

겨울에는 휴식하는 시간이 긴 농업과는 달리, 축산은 1년 내내 해야 하다 보니 항상 바쁘게 돌아갔다.

‘농업은 자주 도왔지만......’

농업은 육체적으로 힘들었다면, 축산은 거기에 정신력까지 필요했다.

기본적으로 가축의 대변 냄새와 함께 구릿한 냄새가 강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주로 양계장에서 알을 낳게 하고, 축사에서 소들을 기르다 보니 매일 청소가 필요했다.

‘내가 하는 일은 기껏해야 알을 수거하는 일 정도였지?’

닭들이 낳은 알을 수거한 뒤 수건으로 깨끗이 닦아 정돈하는 일이 내가 하던 주된 아르바이트였다.

본래는 기계로 세척할 수 있으나, 기계로 들어가기 전 가벼운 이물질을 제거하는 일은 필요했다.

그것도 고용한 사람들이 휴가를 나갈 때나 할 수 있는 일이었고, 페이가 센 편은 아니라 웬만하면 하지 않았었다.

“어? 오늘 오는 날이었나?”

“하하. 네.”

“다이애나 양도 같이 왔네. 오랜만이야.”

“오랜만이에요. 아저씨.”

고모부는 웃는 얼굴로 다이애나를 맞이해주었다.

“일이 지금 끝난 거예요?”

“응. 이제 집에 가야지. 닭 몇 마리 잡았으니까 가져가.”

“그래도 돼요?”

“넉넉하게 잡아서 괜찮아.”

알을 낳는 속도가 느려진 노쇠해진 닭들은 잡아서 가족끼리 나눠 먹는 편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육질이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어렸을 적부터 먹어온 나는 오히려 별미로 먹을 수 있는 정도였고, 거기에 엄마도 폐계를 맛있게 요리하는 법을 고모한테 배우기도 했다.

특히나 우리는 이 닭을 푹 끓여 백숙으로 먹는다.

“맛있겠네요.”

“너 그나저나 쓰러졌었다며?”

“하하..... 소문이 빠르네요.”

“뉴스 보니까 온통 네 소식뿐이더라. 아무튼 이제 몸은 괜찮냐?”

“네. 이제 괜찮아요. 정 뭣하시면 소고기도 좀 주세요.”

“예끼! 닭이나 더 가져가, 비싼 소고기는 돈도 잘 버는 놈한테 도저히 못 주겠다.”

“하하.”

양계장이 주 사업이고 소를 기르는 건 주된 일이 아닌 취미에 가깝다 보니 고모부는 소고기 인심은 야박했다.

“우와...... 말이 있어요!”

다이애나는 농장을 둘러보다가 소들 옆 마당에서 뛰어다니는 말들을 발견했다.

고모부가 취미 삼아 기르는 녀석들인데 순한 녀석들이었다.

“아. 슬슬 밥줄 시간이네. 너 잘 왔다. 애들 밥 좀 주고 가라.”

“취미 생활은 스스로 하셔야죠.”

“닭 주는 값이라고 생각해.”

버리는 닭을 주는 걸로 생색이라니.....

‘뭐. 다이애나도 주고 싶어 하는 것 같고, 운동 삼아 주지 뭐.’

옆을 보니 말을 실제로 처음 보는지 눈을 반짝이는 다이애나가 있었다.

딱히 혈통 있는 말도 아니고 그냥 평범한 말들이었지만, 고모부가 관리를 잘 해줘서 그런지 매끈한 다리와 윤기가 흐르는 털이 매력적이었다.

특히 꼬리 같은 경우는 매일 빗질을 해주는 것 같았는데, 고모부 자신은 기름진 머리를 손보지 않으면서 말꼬리를 보며 흐뭇하게 웃고 있었다.

“청소는 안 해도 되죠?”

밥 주는 정도는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지만, 청소까지 하게 되면 시간이 오래 걸린다.

“용돈 줄게.”

“저한테요?”

“너 말고. 다이애나야, 용돈 넉넉히 줄 테니까 청소 한번 해볼래?”

그 말에 다이애나는 잠시 고민했다.

제임스는 30달러 정도를 성금으로 냈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300달러로, 고등학생한테 굉장히 큰돈이었기에 최근 돈이 부족한 상태였다.

거기에 평소 말을 좋아하다 보니 말들에 관해서도 자세히 알고 싶었다.

“얼마 주실 건데요?”

“하는 것 봐서 줄게.”

“할게요!”

그 말에 제임스는 목을 긁적였다.

‘꽤 힘들 텐데.’

뭐. 운동한다는 생각으로 하면 되겠지.

***

겨울이다 보니 말들이 따뜻하게 지푸라기도 푹신하게 깔아줘야 했다.

힘든 일은 대부분 내가 했고 다이애나는 비교적 힘들지 않은 일을 맡겼다.

“우와......”

-푸릉~!

다이애나는 초롱초롱한 얼굴로 말들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처음에는 실제로 처음 보는 말의 크기에 살짝 무서움을 느끼는 듯했지만, 오히려 말이 더 겁이 많은 동물이었기에 다이애나를 무서워했다.

말이 무서워하자 다이애나는 오히려 말들을 진정시켰고 그제서야 만질 수 있었는데, 실제로 만지는 말의 촉감에 감탄한 듯 탄성을 내뱉었다.

“애들이 착하죠?”

“네! 너무너무 귀여워요!”

고모는 호호 웃으며 마구간 안으로 들어왔다.

“어? 고모?”

“어머! 제임스! 너 쓰러졌다며!”

“하하..... 그렇게 됐어요. 지금은 멀쩡하니 걱정하지 마세요.”

“얘는..... 그게 걱정이 안 되니?”

고모는 자신한테 고개를 쑥 내민 말들의 목을 쓰다듬어 주며 나한테 잔소리를 하였다.

우리 가족이 얼마나 놀랐는지, 아빠와 엄마를 말리느라 얼마나 고생했는지, 메디슨 누나한테 얼마나 많은 전화를 걸었는지, 병원에 얼마나 많은 전화를 했는지도 말이다.

나는 그 말에 미안함을 느끼며 더욱 열심히 청소에 집중했다.

“근데 이렇게 과격하게 움직여도 되니?”

“괜찮아요. 그냥 먹고 마신 게 없어서 탈진한 것뿐이래요. 오히려 너무 안 움직여줘서 몸이 굳었어요. 재활한다고 생각하죠, 뭐.”

“너무 힘들면 그만해도 돼. 어차피 남편 취미니까 그이가 알아서 해야지.”

그러면서도 고모는 빗을 가지고 말들의 털을 빗겨 주었다.

“지금 밖에 눈이 내려서 그런지 아이들이 많이 추워하네. 다이애나 양이 빗질 한번 해볼래요?”

“그, 그래도 될까요?”

“물론이죠.”

고모는 다이애나한테 빗을 내밀었고, 다이애나는 살짝 긴장한 얼굴로 빗을 들고 말을 쳐다봤다.

스윽.....

빗질을 좋아하는 건지 말은 가만히 다이애나의 빗질을 받아들였고, 오히려 기분 좋다는 듯 울음소리를 내었다.

“말을 좋아하나 보네요?”

“네! 어렸을 때부터 말을 좋아했어요. 아주 어렸을 적에 타본 적이 있었거든요. 지금은 기억도 잘 나지는 않지만요.”

“관광 목적으로 타는 아이들을 만난 모양이네요. 이 아이들도 타고 다닐 수 있게 훈련 시켰는데 저희는 잘 타지 않아요. 그냥 기르는 목적이거든요.”

다이애나는 멍한 눈으로 말을 연신 빗겨 주었다.

나는 그 모습을 흐뭇하게 보며 고모한테 말했다.

“근데 고모.”

“왜?”

“아까부터 궁금했는데 저 말은 뭐야?”

다이애나는 아직 발견하지 못한 듯싶지만, 다른 말들처럼 밖에 있지 않고 추운지 안쪽에 누워 있던 말이 있었다.

근데 말의 생김새가 다른 말들과 많이 달랐다.

“에휴..... 남편이 질렀어.”

“.....그럼 그렇지. 애니가 누굴 닮았는지 알겠네.”

그 말에 다이애나는 정신을 차리고 내 시선을 따라갔다.

“......!”

-푸릉?

그곳에는 크기가 굉장히 작은 미니어처 호스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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