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화. 정신 이상화
다른 말들과 비교해도 무척 작아 보이는 말이 콧방귀를 끼며 누워 있었다.
미니어처 호스라고 불리는 작은 말로, 성인은 당연히 타지 못하고 어린아이들이나 간신히 탈 수 있는 그런 말이었다.
“꺄악!”
다이애나는 누운 상태로 꼬리를 팔랑거리는 미니어처 호스를 보자마자 눈을 초롱초롱 빛냈다.
“글렀어 저 녀석은.”
“왜요?”
“게을러. 아무리 운동을 시켜보려고 해도 누워있는 걸 좋아하더라. 무엇보다 너무 예민해.”
“못 타요?”
“응. 보통 예민한 녀석은 등에 끈을 올려서 무언가 얹고 있다는 느낌이 들게 하는 것부터 시작하잖니? 재는 그런 것조차 안 돼. 저 애는 애니를 위해서 입양한 거거든.”
“애니요? 아 동물을 좋아해서요?”
“응. 팡이하고 잘 놀아서 다른 동물들도 소개시켜 주려고 했지. 루니아도 타고 놀면 좋으니까. 그런데 잘못됐어.”
“하하.....”
“그래도 계속 훈련을 시켜봐야지. 그런데 애가 너무 예민해서..... 될지 장담을 못 하겠네.”
그런 말을 하면서 울타리 안으로 들어가셨다.
보통 예민한 애들은 집안으로 사람이 들어오면 무서워서 벌벌 떨 텐데, 미니어처 호스는 그냥 꼬리를 팔랑거리며 계속 누워 있었다.
‘내가 봤을 땐 그냥 게으른 것 같은데.’
고모는 그런 녀석이라도 빗질을 해주었다.
훈련된 다른 말들과는 다르게 미니어처 호스는 훈련이 전혀 되어 있지 않아 다이애나한테 빗질을 권하지 않으셨다.
‘그래도 손길은 좋아하네?’
뭐 저런 녀석이 있어?
나는 피식 웃으며 녀석의 움직임을 살폈다.
동물의 움직임은 눈에 담는 편이었다 보니 저렇게 행동이 특별한 녀석들은 특히나 기억해두는 편이었다.
드래곤들의 움직임에 참고가 되니까.
“근데 말들은 각설탕을 좋아한다는 소문이 있던데 사실인가요?”
미니어처 호스를 사랑스럽다는 눈빛으로 보던 다이애나의 말에 고모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말의 주식이 당근이잖아요? 당근은 채소 중에서 굉장히 단 편에 속해요. 훈련을 할 때 각설탕이나 사람들이 먹는 설탕을 주면 말들이 좋아해요.”
“그, 그럼 이거 먹여봐도 되나요?”
다이애나는 주섬주섬 품에서 사탕과 초콜릿을 꺼냈다.
내가 차에서 먹으라고 주던 것들이었다.
“초콜릿은 안 돼요. 초콜릿 자체가 동물들한테 굉장히 안 좋으니까요. 사탕만 주세요.”
그러자 다이애나는 눈을 반짝였다.
“이 아이한테 줘보시겠어요?”
“네!”
“조용히 들어오세요.”
다이애나는 고모의 말에 조용히 울타리 안으로 들어가 누워있는 미니어처 호스한테 사탕을 내밀었다.
-푸릉?
사탕의 달콤한 냄새에 그제야 미니어처 호스는 고개를 들고 다이애나를 올려봤다.
정확히는 다이애나의 손에 들려있는 사탕을 보고선 날름날름 혓바닥을 내밀었다.
‘뭐야? 별로 안 무서워하네?’
그보다 왜 좋아하는 것 같지?
예민하다는 말과는 다르게 미니어처 호스는 다이애나는 보자마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오히려 몸 주위를 맴돌았다.
사탕을 좋아하는 것 같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이 새끼..... 젊은 여자를 좋아하네?’
말은 굉장히 지적인 동물이었다.
어떤 말은 오직 여자만 태우고, 어떤 말은 자신의 등에 남자가 타면 출발할 생각도 하지 않는다고 들었다.
머리가 길면 태우지 않는 말들도 있을 정도라고 하니, 얼마나 말들이 취향에 확고한지 알 수 있었다.
물론 훈련을 잘 받은 말들은 괜찮다고 하지만 아직 훈련을 안 한 미니어처 호스는 지 꼴리는 대로 행동하고 있었다.
“어머! 이 애 너무 착한데요?”
다이애나는 자신의 몸에 머리를 부비적거리는 미니어처 호스가 귀여운 듯했지만, 말을 오랫동안 기르신 고모는 그제야 이 녀석이 왜 지금까지 움직이지 않았는지 알게 되었다.
“......그러네요, 착하네요.”
고모는 허탈한 얼굴로 말했다.
어쩌면 드래곤에 가장 맞는 녀석들이 말이 아닐까...?
변태 새끼.....
***
저녁은 폐계로 결정되었다.
폐계는 조리가 상당히 오래 걸리는 편이라 시간이 좀 필요했다.
그동안 나는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시청했다.
“으으.....”
그렇게 한참을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데 위에서 신음 소리를 내며 안토니가 내려왔다.
속이 이제 괜찮아졌는지 비교적 멀쩡해진 얼굴로 2층에서 내려왔다.
“이제 괜찮으세요?”
아빠는 고모부 댁으로 갔기에 거실에는 나하고 다이애나 그리고 엄마밖에 없었다.
내 말에 안토니는 어두워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자고 일어나니 괜찮아진 것 같습니다.”
“고소공포증이 정말 심하시네요.”
“하하..... 어릴 때 집 지붕에서 떨어진 이후로 고소공포증이 더 심해졌습니다. 집에 돌아갈 때가 문제군요.”
“집..... 이번에는 언제 돌아가실 생각이세요?”
“음..... 저는 프리랜서다 보니 언제든 상관없습니다. 다이애나도 방학이기도 하니, 작가님 휴가가 끝날 때까지 있어도 상관없습니다.”
“프리랜서?”
“하하. 제가 말씀 안 드렸었나요? 저 시나리오 작가입니다. 드라마 시나리오 작가로 일을 하고 있죠. 그 때문에 의뢰를 받으면 집에서 작업하는 편입니다.”
“오......”
그 말에 내 눈이 빛났다.
애초부터 내 꿈은 영화 시나리오 작가였고, 그 때문에 전문적으로 시나리오를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많았기 때문이다.
“아. 그러고 보니 작가님도 시나리오 작가를 꿈꿨다고 하셨죠?”
“네. 근데 저는..... 약간 아니 많이 어렵더라고요. 뭐라고 해야 할까..... 소설이랑 시나리오는 아예 다르다는 느낌이랄까요?”
“음......”
그 말에 안토니는 고개를 갸웃했다.
“작품에 들어가는 상황 묘사를 시나리오 대본에는 더욱 자세히 적고, 주연들의 움직임을 순서대로 적고, 대화는 그대로 적어도 되지 않나요? 보통 작가님들은 스스로 시나리오를 적는 경우도 있으니까 그렇게 어렵지 않으리라..... 생각되는데요?”
안토니의 말에 다이애나도 동의한다는 듯 나를 바라봤다.
“아빠 말을 듣고 보니 그러네요? 저는 작가님의 소설을 볼 때마다 그 상황이 너무 세세하게 생각나서 재밌다고 느끼거든요? 그걸 그대로 옮기면 되지 않나요?”
그렇게만 말하면 쉬울 수 있지만, 괜히 각색 시나리오 작가님들이 있는 게 아니었다.
작품을 그대로 시나리오로 옮기면 무언가 그 생생한 현장감 같은 게 나오지 않는다.
상상이란 자신의 멋대로 할 수 있는 거지만, 그걸 현실로 움직여 마치 인형처럼 연기를 시작하게 되면 그 작은 오차라는 것이 생긴다.
나는 그 오차라는 것이 어려운 거다.
“오차라...... 음. 하긴, 그렇긴 하죠. 쉽게 말해 디테일을 말하시는 거군요?”
“음...... 그렇게 말하니 그렇네요. 네. 맞아요 디테일.”
글에 추가할 수 있는 디테일도 아직 완벽히 감을 잡지 못한 상태인데, 시나리오는 어떨까.
망상으로 상상이 가능한 책과 눈으로 보게 되는 시나리오는 역시나 다른 디테일이 필요할 것이다.
“이 부분은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군요. 음..... 작가님도 휴식을 취하러 오셨는데 너무 일 이야기만 한 것 같으니 이야기는 여기까지만 하도록 하죠. 하하.”
“예전부터 시나리오에 흥미가 많았거든요. 괜찮아요. 아. 그보다 저녁은 한국식 닭요리..... Chicken Noodle Soup인데 Noodle이 없어요. 괜찮으시겠어요?”
“아. 괜찮습니다. 하하 원래부터 닭을 좋아하거든요.”
잠시 후 엄마는 밥상을 차려주신 뒤 고모부 댁으로 갔고, 우리끼리의 저녁 식사가 시작되었다.
***
그날 저녁에도 나는 끝까지 컴퓨터를 켜지 않았다.
그냥 재밌다고 느낀 책들을 다시 읽었다.
재밌는 책은 몇 번이고 읽어도 재미있었다.
그 작가의 의도를 다시 생각해볼 수도 있었고 내 글에 이입해볼 수도 있었다.
미처 느끼지 못하고 넘겼던 생각이나 장면을 다시 확인할 수 있는 것도 또 하나의 재미였다.
‘이제는 이걸 읽어 봐야지.’
나는 방에 쌓여 있는 박스로 다가갔다.
침대와 컴퓨터 그리고 책상을 제외한 나머지 공간에 박스가 가득 쌓여 있었는데, 이건 빌에이든 미디어에서 검열을 끝낸 다음 보내준 팬들의 선물이었다.
‘시간 날 때마다 정리하자.’
선물들은 일단 나중에 정리하기로 하고, 켭켭이 쌓인 팬들의 팬레터부터 꺼내 들었다.
‘내일 창고 문제는 아빠한테 문의해봐야겠는데?’
현재 우리 집에 있는 게스트룸은 내 책이 가득 쌓여 있었는데 다이애나와 안토니가 쓴다고 잠시 고모부 댁으로 빼둔 상태였다.
항상 그렇게 민폐를 끼칠 수는 없다 보니, 내일 간이 창고를 구매하든가 아니면 창고를 만들 생각이었다.
‘확실히 가까운 곳에 창고를 만드는 게 더 좋겠지.’
팬들의 선물이 얼마나 많이 올지 예상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빌에이든 미디어 창고에서 봤던 것만 봐도 어마어마했는데... 아무래도 집 같은 창고 하나를 더 건설하는 게 좋겠지.
한참이나 펜레터에 푹 빠져 읽고 나니 서서히 눈이 감기기 시작했다.
운동을 한 상태에서, 밥을 먹고 뜨거운 물로 목욕까지 했으니 서서히 잠이 오는 건 당연했다.
‘오늘도 그 꿈을 꾸려나?’
모르겠다.
일단 다시 잠을 청했다.
***
잠에 빠져들자마자 또다시 여러 세계관이 내 눈앞을 계속해서 지나갔다.
완벽한 세계관이 만들어져 그걸 기억해두려는 순간, 내 머릿속은 또다시 다른 세계관을 만들어냈다.
완벽한 세계관 위에 존재하는 또 다른 완벽한 세계관.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계속해서 리셋되는 세계에 나는 지쳐갔다.
몸은 멀쩡했지만, 더욱 완벽함을 추구하는 그 세계는 내 정신을 지치게 만들었다.
‘왜 계속 이런 꿈을 꾸는 거지?’
내가 원치 않아도 계속 만들어졌다.
이게 꿈인 걸 알면서도, 내가 원하지 않는 걸 알면서도 거부할 수가 없었다.
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곰곰이 고민한다고 해도 내가 할 수 있는 건 오직 하나, 이 완벽한 세계를 보다 더 완벽하게 만드는 것뿐이었다.
‘정신의 이상화......’
에드워드 선생님이 말했던 에드월 홈즈가 겪었던 정신의 이상화가 나한테 펼쳐지고 있었다.
나는 서서히 잠이 깨는 느낌에 천천히 눈을 떴다.
아침 햇살이 들어오는 방을 멍하니 바라보며 나는 어깨를 주물렀다.
“.....답이 없네.”
몸은 나름 가벼워졌지만, 솔직히 잤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휴식은..... 취해야지. 근데.....’
이게 과연 맞을까?
과연 이걸 정답이라고 할 수 있을까?
잠을 자도 계속해서 피곤은 풀리지 않았고, 만족을 할 수가 없었다.
“......”
나는 조용히 몸을 일으켜 컴퓨터 의자에 앉았다.
전원을 켜고 밝아지는 모니터를 느끼며 잠시 손가락을 풀었다.
혹시 몰라서 USB에 복사해온 파일들을 열었다.
‘부족해.’
볼 때마다 느껴지는 부족함.
이 느낌은 계속해서 내 정신을 자극했다.
이건 완벽하지 않은 세계다, 더욱 완벽한 세계를 만들 수 있다, 너는 여기서 만족해선 안 된다.
속으로 누군가가 계속해서 속삭이는 듯했다.
[아이들이 재밌게 읽어야 할 책인데, 빨리 출판해야 하지 않겠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