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시골촌놈인 줄 알았는데 천재작가였다-163화 (162/216)

163화. 일기

나는 예전부터 자주 가던 스테이크 집으로 그들을 데려갔다.

스테이크뿐만 아니라 다양한 음식도 판매하는 곳이다 보니, 우리 각자는 먹고 싶은 음식을 마음껏 주문했다.

“나도 언제쯤이면 팬레터 받아보냐......”

스테이크 집에서 유일하게 샐러드를 먹고 있는 캐서린은 아까 본 장면이 충격적이었는지 무심히 중얼거렸다.

“고깃집에서 채소만 먹어서 머리에 이상 왔냐?”

월리의 말에 캐서린은 발끈했지만 이내 다시 시무룩 기가 죽어버렸다.

2권이 발매된다는 소식에 기뻐하던 캐서린은 뭔가 자신은 절대 넘을 수 없는 벽을 마주한 느낌에 기운이 쫘악 빠진 것 같았다.

“빌에이든 미디어에 문의해봤어? 검열 중이라던가.....?”

“히잉..... 그런 거 맨날 물어본단 말이야.....”

“음.....”

하긴, 작가로서 가장 받고 싶은 건 팬레터긴 하겠지.

팬들이 준 선물은 각별하다.

뭐라 정확히 표현할 수는 없지만... 아무튼 나도 올리비아하고 셀리나한테 받은 팬레터부터 시작해서 빌에이든 미디어가 전해준 팬레터를 보며 감동했었다.

“근데 작가님.”

“네.”

다이애나는 들고 있던 치킨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이번 선물은 빌에이든 미디어에서만 왔다고 하지 않았어요?”

“네.”

“그럼 SC라스틱에서는 아직 안 온 건가요?”

“.....그렇죠?”

나는 먹고 있던 립을 입에 가져가던 상태로 멈추었다.

“빌에이든 미디어는 성인층이 많을 테지만, SC라스틱은 아동층이잖아요? 아이들이 그런 편지나 선물 보내는 게 더 많을 텐데.....요?”

“듣고 보니까 그러네? 너 그 창고만으로 충분하겠냐?”

“음.....”

들고 있던 립을 잠시 내려놓으며 생각에 잠겼다.

SC라스틱도 분명 팬레터가 많이 쌓여 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SC라스틱에서는 연락이 없었네..... 왜지?”

빌에이든 미디어가 오랫동안 선물을 받아왔다면 SC라스틱은 선물을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많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팬레터라는 것을 가장 많이 적는 건 어찌 보면 아이들이다.

SC라스틱 주력이 아동 문학이다보니 팬레터가 분명 많이 왔을 텐데 어째서 아직까지 연락이 없는 걸까?

그렇게 곰곰이 고민하고 있을 때 갑자기 월리가 텔레비전을 보며 말했다.

“야. 너 작품 나온다.”

“응?”

생각에 잠겨있던 나는 월리의 말에 고개를 돌려 텔레비전을 바라봤다.

식당의 사람들은 전부 먹느라 바쁜지 텔레비전에 시선을 주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아.....!”

텔레비전에는 [사막의 전갈] 시사회 인터뷰를 보여주고 있었다.

화면이 나오자마자 주위를 둘러본 나는 서둘러 모자를 뒤집어썼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시사회 날이라는 걸 깜빡하고 있었다.

[마그누스 감독님 반갑습니다.]

[예. 반갑군요.]

시사회는 이미 끝이 났는지 이제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영화가 마무리됐는데 개인적으로 심정이 어떠신가요?]

[원체 원작 자체가 굉장히 뛰어나다 보니, 원작의 분위기와 내용을 최대한 살리는 데 집중을 한 것 같습니다. 배우들의 연기력이 굉장히 훌륭하고, 사전 조사와 ‘이곳에 못 온’ 제임스 작가의 피드백 덕분에 굉장히 잘 만들어졌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고보니 얼마 전에 제임스 작가님이 과로로 탈진했다고 하는데, 일종의 동업자로서 제임스 작가님한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이곳에 못 온’ 제임스 작가한테 그냥 편안히 휴식을 취하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 나이 때부터 과로가 오면 나중에 고생하니까요. 허허.....]

꼬장꼬장했던 첫 만남의 마그누스 감독님은 대체 어디로 갔는지, 지금 인터뷰를 하고 있는 마그누스 감독님은 마치 예의가 가득한 노신사 같았다.

[이번 영화가 다른 영화들보다 특별한 점이 있으십니까?]

[예..... ‘이곳에 못 온’ 제임스 작가의 첫 작품이기도 하고, 그 이름에 걸맞는 최고의 작품 아니겠습니까? 그 때문에 상황 묘사를 위한 피드백을 정말 많이 받았습니다. 그 때문에 배우들이 정말 많이 도움받기도 하고 고생했지요.]

[그럼 마그누스 감독님의 감독 인생에서 몇 번째 작품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제 인생에서라..... 아마 세 손가락 안에 들 겁니다. 아무래도 원작이 뛰어난 작품이니까요.]

[시사회 관객분들도 만족하셨나요?]

[허어..... 그렇습니다. 이번 시사회는 특히 몇십만 분의 일 확률을 뚫고 오신 분들이시라 만족하셨으면 했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울려 퍼지는 박수 소리에 저와 스태프 그리고 배우분들 전부 가슴을 쓸어내렸지요.]

[다행이네요. 그럼 마지막으로 제임스 작가님이 목표하신 북미 박스 오피스 1억 달러..... 가능하시겠습니까?]

[‘이곳에 못 온’ 제임스 작가님은 아마 아직 무리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이곳에 온 관객분들이라면 전부 이미 아실 겁니다.]

[아..... 네! 그럼 다음은 라울 데이비스.....]

-뚝!

그렇게 라울의 인터뷰를 들을 차례가 오자 갑자기 텔레비전 화면이 바뀌었다.

가게 사장이 재미없다며 채널을 바꾼 것이다.

“작가님. 감독님이 뭔가.....”

“끄응. 아무래도 오늘 갈 걸 그랬나?”

“단단히 앙심을 품으신 것 같네요. 근데 마그누스 감독님은 원래 괜히 저러세요. 금방 화를 푸시니 괜찮을 거예요.”

“금방이요?”

“네. 할아버지하고도 싸우셨다가 금방 화를 푸셨으니까요. 한 5일이면 될걸요?”

“5일이면..... 꽤 긴 편 아닌가요?”

“그래도 풀리면 다시 아무 일 없던 것처럼 돌아가시거든요.”

“그나마 다행이네요.”

“지금 전화해보면 오히려 역정만 내실 거예요.”

“에휴.....”

한 번 기절한 뒤에 너무 여러 사람한테 피해를 준 것 같아 미안했다.

“밥이나 먹죠.”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일단 밥을 먹은 뒤에 이번 시사회에 관해서 알아보는 게 좋을 것 같았다.

***

집으로 돌아오고 나는 소파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밥은 먹었냐?”

고모부 집에 있다가 돌아온 아빠는 다짜고짜 밥을 먹었냐고 물어보셨다.

“네. 먹고 왔어요.”

“창고는?”

“설치했죠.”

그 말에 아빠는 뒷문으로 나가셨다.

상당히 큰 조립식 창고의 모습에 살짝은 당황한 얼굴이었다.

“생각보다 크구나? 이걸 월리하고만 했니?”

“네 뭐..... 다이애나하고 캐서린도 도와주긴 했지만요.”

자잘자잘하게 도와주는 것도 상당히 큰 힘이 되어주었기에 그 둘의 노력도 숨기지 않았다.

“저 옆에다가는 닭장을 놓을 생각이다.”

아빠는 창고에서 조금 떨어진 곳을 가리켰다.

수풀이 가득하니 아마 제초를 한 다음에 놔야 할 것이다.

“응달진 곳이라 좋긴 하겠네요. 근데 닭은요? 양계장 폐계 데려다 키우시게요?”

“벼룩시장 갔다 와야지.”

“아..... 재밌겠네요.”

이 마을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동네엔 한 달에 한 번 벼룩시장이 열린다.

그곳에선 키우던 가축이나 애완동물 입양이 가능했다.

다만, 말이나 소 같은 건 조금 절차가 까다롭지만 닭 정도 되는 녀석들이라면 금세 구할 수 있을 것이다.

“유정란 낳는 암탉하고 수탉 한 마리 데려와야지. 비싸지는 않으니까 뭐..... 우선 내일 할 거 없으면 닭장이나 만들어 놓자꾸나.”

“닭장 정도는 아빠가 혼자 만드실 수 있잖아요?”

딱히 그리 힘들지 않을 텐데?

“요즘 기능성 닭장이 유행이더라.”

“아..... 설계도는 있으세요?”

“이미 해놨다. 자재도 전부 다듬어 놨으니까 그렇게 어렵지 않을 게다. 내일이면 충분히 만드니 그다음 날에 닭을 데려와야지.”

“이틀 후네요. 벼룩시장하고 시간도 맞고..... 근데 진돗개 키운다고 하시지 않았어요?”

“한인들한테 이미 말해놨다. 그나저나 너 한인들 사이에서 굉장히 유명해졌더라?”

“제가요?”

“그래.”

이야기를 들어보니 미국에서 성공한 한인들 중 한 명이라고 이름이 알려졌다고 한다.

사인을 받아와 달라고 부탁까지 받으셨으니... 말 다 했지.

“말은 많았지만 같은 한인들을 도와주면 좋겠다고 하더라.”

“도와요?”

“뭐..... 정착하지 못한 한인들이나, 어려운 사정을 가진 한인들에게 기부나 뭐 그런 거겠지. 그래서 일단 얼버무리고 왔다.”

“기부라......”

“나는 여유가 되면 하는 게 좋다고는 생각하지만, 그 돈은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이건 네가 하고 싶으면 하고, 하고 싶지 않으면 하지 않는 게 맞지.”

“일단 알겠어요.”

“진돗개는 제값 주고 데려온다고 하는데 더럽게 비싸더구나. 거기에 세금까지 내야 하니..... 원.”

“굳이 진돗개여야 해요?”

그 말에 아빠는 잠시 말없이 창고를 바라보다가 한참이 지나셔야 말을 이었다.

“꿈이었다. 마당에 진돗개 몇 마리 키우고, 토끼하고 닭새끼들 키우는 거.”

“......”

아빠의 소소한 꿈에 나는 아무런 대꾸를 할 수 없었다.

***

소파에 계속 앉아 있었다.

최대한 글에서 멀어지고 싶었기에 글이 아닌 영상을 선택하자는 생각으로 텔레비전을 봤다.

어제도 내 글은 아니지만 일단 책을 봤기에 그런 경험을 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재미는 없어도 일단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데, 막 샤워를 끝낸 안토니가 거실로 내려왔다.

“후우.... 여기는 바닥도 따뜻하고 물도 따뜻해서 좋군요.”

“좋으셨다니 다행이시네요.”

안토니는 내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나는 안토니를 힐끗힐끗 바라봤다.

그런 내 시선을 느꼈는지 안토니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저한테 뭐 궁금하신 거 있으신가요?”

“아.....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봤나 보네요.”

“하하. 아닙니다. 그보다 저를 보신 이유가 신기해서 본 건 아닐 텐데요? 무슨 일 있으신가요?”

그 말에 나는 잠시 뜸을 들인 뒤 작게 속삭였다.

“에드월 홈즈..... 그분을 직접 보신 적 있으신가요?”

아주 작은 소리였지만 안토니는 그 말을 들었는지 턱을 쓰다듬었다.

“에드월 님이라..... 예. 어릴 때 몇 번 본 적은 있습니다만, 너무 어릴 때라 기억이 솔직히 나지 않군요.”

“역시.... 그런가요?”

“하하. 솔직히 얼굴조차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저 아버지의 술주정에서 제가 갓난아기 때는 에드월 님이 살아 있었다고 말하더군요. 하하.”

“그렇군요.”

“근데 갑자기 그건 왜 물으십니까?”

“음.....”

나는 잠시 말을 얼버무리다 이내 뒷머리를 긁적였다.

“에드워드 선생님한테 들었던 말이 생각나서요. 정신을 휴식하라는 그런 말을요.”

“음..... 정신이요?”

“예. 그게 그러니까..... 휴우. 미친놈 취급하실 수 있는데 오늘 아침에 이런 일이 있었어요.”

나는 오늘 아침에 악마한테 사로잡힌 것 같은 기이한 현상에 대해 이야기해줬다.

안토니는 이 이야기를 의심 없이 끝까지 경청해주었다.

“변하는 세계관, 지배당한 몸.....”

“우습죠? 제가 생각해도 이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하하..... 그래서 최대한 글에서 멀어져 볼까 해요.”

그 말에 안토니는 고개를 저었다.

“딱히 우습거나 그렇지는 않습니다.”

“예?”

“에드월 님이 적었던 일기에 비슷한 내용이 적혀 있었으니까요.”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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