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화. 출산
이야기를 들어보니 에드워드 선생님은 에드월 홈즈의 유품을 가지고 있다고 하셨다.
평생 동안 자식이 없었던 에드월 홈즈는 그의 자산을 전부 평소 그가 신경 쓰고 있던 아프리카 기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부하였고, 나머지 물품 중 그가 소중히 했던 것들만 에드워드 선생님께 맡겼다고 한다.
물론 에드워드 선생님 말고도, 마그누스 감독님과 그 외 여러 친한 친구들이 에드월 홈즈의 유품을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그 중 일기장은 에드워드 선생님에게만 있었다.
“어렸을 적부터 그분의 일기를 읽은 적이 많습니다. 에드월 님은 무언가 일이 끝날 때, 혹은 무언가 일을 시작하시기 전에 자신의 생각을 일기로 적었습니다.”
“일기.....”
“그중에서.... 정확히 에드월 님이 29살 때 겪었던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이야기가 제임스 작가님의 이야기와 굉장히 흡사하군요.”
“혹시......”
“하하. 이야기해드리겠습니다. 어차피 자려면 시간이 한참 남았으니까요.”
안토니는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어렸을 적에 읽었던 거라 부분부분 까먹은 것도 많습니다. 기억나는 대로만 알려드리겠습니다.”
“예.”
“우선..... 에드월 님이 처음 기절했을 때 요상한 꿈을 꾸었다고 합니다. 마치 자신이 소설 속에 들어가 신처럼 세계를 마음대로 주무르게 되었다고 하더군요.”
나와 비슷했다.
다만, 내가 주인공에 빙의된 것과는 미묘한 차이가 있었다.
“자유자재로 만들어지는 세계에서 자신이 생각하는 최고의 세계를 만들어 글로 옮겼다. 그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그 부분은..... 저와 똑같네요.”
“이것뿐이 아니죠. ‘분명 그날은 완벽한 세계를 창조하였다고 자부했는데, 다음 날이 되자 그 완벽한 세계에 흠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전에 있던 완벽한 세계가 더 뛰어났다.’라고 말이죠.”
“......”
이 부분 역시 나와 완전히 똑같았다.
“에드월 님의 일기가 이때부터 살짝 이상해졌던 기억이 납니다. 다른 때보다 뭐랄까..... 글에 점점 미쳐가는 게 보인다고 해야 할까요?”
안토니는 그때부터 에드월이 글에 과도하게 집착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일기가 넘어갈 때마다 에드월의 정신 상태는 점점 온전하지 못한 듯 보였고, 결국에는 서서히 사라져갔다고 한다.
“처음에는 글자 수가 많았던 일기가 나중이 되자 몇 줄 되지 않더군요. 에드월 님은 이 현상을 스스로 ‘악몽의 실현’이라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잠만 자면 계속되는 꿈과 만족하지 못하는 스토리가 스스로를 괴롭힌다고 하더군요. 저희 아버지는 그 상황을 가까이에서 지켜보셨습니다..... 에드월님이 계속해서 망가지는 모습에 강제로 글에서 떼어내게 하려고 했다고 합니다.”
아무리 술을 먹여도, 아무리 영화를 보게 해도,.
에드월은 결국 책에서 시선을 멀리 두지 못했고, 광적으로 책에 집중했기에 집착만 더욱 심해졌다고 한다.
“저는 이 부분이 신기해서 제가 중학교 때인가? 아버지한테 에드월 님 말고도 이런 증상을 겪은 사람을 본 적이 있냐고 물은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요?”
“없다고 하시더군요. 보통 과로로 쓰러지면 오히려 일에 집중하기 힘든 게 보통 사람이라고 합니다. 물론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해 광적으로 집착하는 사람이 있다고는 하지만요.”
“음.....”
“현재 제임스 작가님의 상황은 에드월 님과 똑같아 보입니다. 아마 제 이야기가 해법은 되지 않았을 겁니다. 다만..... 심각하다는 것 정도는 인지하셨을 거라 봅니다.”
“하아..... 네. 그러네요.”
“하하 우선 글에서 멀어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운동처럼 글이 생각날 겨를이 없는 활동을 하시든가 아니면 아예 글을 쓰지 말든가 말이죠. 무엇이든 최대한 멀어지는 걸 권장 드립니다.”
“.....그래야죠.”
나는 안토니의 말에 힘없이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글자 하나 보지 못한다라..... 그게 과연 가능할까?
“음...... 한 번 과거를 생각하니 그걸 계기로 추억이 계속 떠오르는군요. 하하! 선명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흐릿하게 떠오릅니다.”
“하긴 무언가의 이야기가 시발점이 될 때가 있죠.”
과거의 기억이 시발점이 되면서 그에 관련된 여러 가지 추억이 떠오를 때가 있었다.
“무언가의 작은 시발점..... 예. 어떨 때는 하나의 작은 사건이 큰 사건을 불러일으킬 때가 있지요. 그러니 작가님. 너무 골머리 썩지 마셨으면 합니다. 혹시 압니까? 이번 휴식기에 그 악몽을 떨쳐낼 작은 사건이 올지 말입니다.”
‘작은 사건이 큰 사건을 만든다라......’
아직은 잘 모르겠다.
***
나한테 글은 마약과 같았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지식을 탐할 수 있으며, 과거를 탐색하고, 생각을 읽으며,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재밌는 책을 보면 그날은 심장이 두근거리고 행복해진다.
재미없는 책을 보면 작가의 생각을 읽으며 작가는 과연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 아니면 무엇이 되고 싶었는지 알아내려 노력한다.
책은 좋다.
재미있는 책, 재미없는 책.
나는 그런 것에 신경 쓰지 않고 ‘하나의 장르’라는 그 자체가 그냥 좋았다.
마약이 쾌락을 준다면 나는 책에서 그 쾌락을 얻는다.
‘글에서 멀어져라......’
과하다 싶을 정도로 책에서 멀어지기로 마음먹었다.
이것이 정답이 아닐 수도 있지만 그래도 상관없었다.
극복해내야 했다.
지금까지의 행복을 잠시 내려놓고, 이번 휴식에서 또 다른 행복을 찾아보자고 생각했다.
‘글 말고 그럼 뭐를 해야 하지?’
나는 핸드폰을 들어 사람들이 가장 즐기는 취미를 확인했다.
‘위험하고, 힘든 건 제외하자. 극복하다가 죽을 순 없잖아.’
절벽 등반이나, 바다에 근접해 있어야만 할 수 있는 취미들은 제외했다.
‘흐음..... 낚시는 가끔 하지만, 이건 더 잡생각이 많이 드니 넘어가고.....’
집중할 수 있는 취미로 생각해보려 했지만, 나하고 어울리는 게 딱히 없는 것 같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책을 읽고 싶었다.
미치도록 책을 읽고 싶었다.
“아..... 젠장.”
그렇게 침대에 누워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다시 한번 나한테 물었다. 네가 원하는 건 이런 것인지. 아니, 이게 맞는 것인지.
-삐리리리리리리~♪
그런데 갑자기 전화가 울렸다.
‘에일리?’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어기적 일어나 핸드폰을 귀에 가져갔다.
“무슨 일이야?”
-야! 고향에 왔으면 누나한테 먼저 전화해야지!
“동갑인데 무슨 누나야? 그보다 지금 잘 있어? 병원이라며?”
-응. 튼실한 여자아이야.
“......응?”
방금 뭐라고?
내 귀가 이상해진 건가?
“버, 벌써 낳은 거야? 이렇게 빨리?”
-응. 나도 놀랐지 뭐야! 히히히히히!
전화 너머의 에일리 목소리는 이상할 정도로 활기찼다.
-인터뷰 필요하잖아? 집으로 와.
“......집이라니? 지금 병원 아니야?”
-저녁에 집으로 돌아왔어. 인터뷰해줄 테니까 맛있는 거 사 올 거지? 보양식 같은... 소고기. 그래 소고기가 좋겠다.
에일리의 목소리는 과거와 똑같았다.
애를 낳은 지 얼마 안 된 사람이 맞는 건가...?
출산은 힘든 일이라고 들었는데 벌써 이렇게 기운이 좋다고?
“오늘은 늦었으니까 내일 찾아갈게. 축하해 에일리. 고생했어. 마트에서 소고기 잔뜩 사갈게.”
-기대하고 있을게!
“근데 아이가 생각보다 빨리 나왔네?”
-응. 나도 이렇게 될 줄은 몰랐어. 1월 중순이 출산예정일이라고 했는데, 갑자기 배가 엄청 아프길래 바로 수술 들어갔지.
“잠깐만 그럼......”
-아. 참고로 제왕절개는 미리 내가 요청한 거야. 애초부터 할 생각이었는데 시기가 빨라진 거지.
이야기를 들어보니 에일리는 2주 동안 아무한테도 이야기하지 않고 병원에 있었다고 한다.
물론 부모님은 이 사실을 알고 있었으며, 월리처럼 친한 친구들은 그저 병원에서 출산을 준비하기 위해 입원했다는 것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고 한다.
‘아무튼 둘 다 건강하다니 다행이네.’
제왕절개는 회복이 자연분만보다 오래 걸린다고 들었는데 에일리의 목소리가 밝은 걸 보니 다행이었다.
“그럼 내일 오후에 갈게. 내일 오전은 할 일이 있거든.”
-알았어. 집 위치는 알지?
“하하 당연하지. 참. 인터뷰는..... 할 수 있어? 안 힘들겠어?”
-당연하지! 나도 너 덕에 맛있는 거 먹고 좋지 뭐. 그것 때문에 부르는 거니까 부담 갖지 말고 와!
“OK”
에일리하고의 전화를 끊은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잠에 빠져들었다.
***
오늘도 어제처럼 똑같은 꿈을 꾸었다.
다만, 그 정도가 그리 심하지 않은 걸 보면 확실히 글에서 멀어지는 건 좋은 방법이긴 한 것 같았다.
그런데 하나 걱정이 있었다.
‘글에 멀어질수록..... 글을 잘 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사라지네.....’
어렸을 적부터 하루에 한 시간씩 글을 쓰던 생활이 익숙해졌다 보니, 글을 하루라도 쓰지 않으면 약간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에휴. 몸이나 움직이자.’
나는 잠에서 일어나자마자 아리아나가 보내준 스트레칭 영상을 따라 했다.
물론 영상으로 찍는 것도 잊지 않았다.
‘스트레칭하는 것만으로 의자에 앉았을 때 오는 뻐근함이 사라지는 게 신기하네.’
그렇게 운동을 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거실로 내려가니 이미 식사 준비가 끝나 있었다.
“뭐냐? 오늘은 빨리 일어났네?”
“하하. 그럼 제가 맨날 늦게 일어나겠어요? 어? 그보다 닭죽이네요?”
“폐계 끓이고 남은 국물에 죽 끓여봤다. 날도 추우니 먹고 싶어지더라고.”
엄마의 말에 나는 당당하게 식탁에 앉아있는 팡이를 쓰다듬으며 자리에 앉았다.
곧이어 다른 사람들이 전부 내려왔고 식탁에 앉아 식사를 시작했다.
“입맛에 맞으십니까?”
“예. 맛있군요. Chicken Rice Soup는 처음 먹어보는데 제 입맛에 딱입니다.”
“저도 맛있어요!”
다이애나와 안토니 또한 입맛에 맞는 듯했다.
‘예전에 칠면조 먹었을 때도 며칠 동안 닭죽만 먹었는데.....’
큰놈답게 국물도 진국이라 정말 물릴 정도로 배터지게 먹었었다.
그 이후로는 안 먹었지만 말이다.
“저는 오후에 나갔다 올게요.”
“오후에?”
“네. 에일리가 아이를 낳고 집으로 돌아왔다고 하네요?”
그 말에 엄마와 아빠는 눈을 동그랗게 뜨셨다.
“어머나......”
“벌써 그렇게 됐다고?”
“그러게나 말이에요. 그래서 그런데 이럴 때 무슨 축하선물을 가져가야 할지 모르겠어요.”
이런 건 나보다 부모님들이 더 잘 알겠지.
“음.... 내가 보온병에 소고기 미역국 담아 줄 테니까 가서 먹여. 산모들한테 미역은 정말 좋으니까. 그나저나 아들이라니? 딸이라니?”
“딸이라고 하더라고요.”
“에일리를 닮은 딸이라니 예쁘겠는걸? 갈 때 영양 많은 식재료도 좀 사가고, 아이가 입을 옷이나 가지고 놀 장난감 같은 것도 사가면 좋지. 그런 건 본인 돈으로 사려면 아까워서 잘 안 사게 되거든.”
“네. 그럴게요.”
역시 엄마는 너무도 잘 알고 계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