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6화. 소설의 근본
글을 다시 쓰려고 한다.
이건 그 누구한테도 말하지 않았다.
고작 며칠 쉬지도 않았는데 글을 다시 쓴다고 말한다면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컴퓨터 의자에 앉은 나는 지금까지 적었던 글들을 펼쳤다.
LA에 있는 집과는 달리 모니터가 하나다 보니 전부 펼쳐놓고 읽을 수는 없어 하나하나씩 글을 읽어갔다.
“확실히.....”
부족하다.
완벽한 세계가 아니었다. 아니 반대로 말하면 완벽한 세계는 맞았다.
이보다 완벽한 스토리는 존재하지 않을 테니까.
‘뭐가 부족한 걸까.....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디테일을 더 추가하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하지만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다.
완벽하다고 생각했던 스토리.
‘이 스토리를 더 업그레이드시킬 순 없을까?’
항상 꿈에서 내가 더 완벽한 세계를 만들려고 해도, 어차피 만족하는 건 한순간이었다.
그날 완벽했던 것이 다음날이 되면 만족스럽지 못하고, 다음날 완벽했다고 생각한 걸 전 것과 비교해봐도 그리 뛰어나지 않았다.
즉, 나는 어차피 한계가 있는 세계를 구축하고 그 안에서 놀아나고 있던 것이었다.
그렇기에 더 괴로웠던 거지만 지금은 달랐다.
‘이 상황에서 벗어나려면 그보다 더 완벽한 스토리를 만들어야 해.’
나는 이미 이 상황에서 벗어나려면 어떤 식으로 발버둥 쳐야 하는지 알고 있었을 수도 있었다.
다만, 결과를 어떻게 해야 벗어나는 건지 어떠한 방식으로 벗어나야 하는지는 모르고 있었다.
“빨리 깨달아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나는 피식 웃음 지으며 글을 읽기 시작했다.
***
한 번 읽었던 글들이라 내용을 전부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계속해서 글을 읽었다.
과장을 더해서 수백 번은 더 읽은 것 같았다, 그럼에도 나는 글을 읽는 걸 멈추지 않았다.
“끄응.....”
이미 완벽한 스토리다.
더 나은 스토리를 적기 위해서는 평소보다도 더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아무리 내 몸과 정신이 다음 시대로 성장할 발판이 만들어졌다고 해도, 그건 어중간한 노력으로 될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아무리 글을 읽어봐도 어떤 식으로 스토리를 다시 재구축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어렵네.....”
뭐. 오늘 하루에 전부 될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으니 딱히 조급해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상당한 시간을 투자했는데 아무런 진전도 없을 줄은 몰랐다.
하다못해 어느 스토리로 뻗어 갈지 정할 줄은 알았지만 그조차도 하지 못했다.
“휴우.....”
창문을 바라보니 이미 새벽이었다.
지금 시간에 나가는 건 위험하다 보니 그냥 마당에 나가 커피나 한잔하기로 했다.
‘차가운 공기를 마시면 뭔가 달라질 수도 있으니까.’
나는 부엌으로 내려가 커피를 타려고 했지만, 그냥 눈앞에 코코아가 있었기에 코코아를 탄 뒤에 뒷문으로 나갔다.
뒷마당에는 쉴 수 있는 정자가 있었고, 그 옆에 커피를 마실 수 있게 탁자와 의자들도 놓여 있었다.
보통 앞마당에서 하면 남의 시선이 신경 쓰이기에 뒷마당을 꾸며 놓고 노는 편이 많았다.
‘닭장도 깔끔하네.’
뒷마당에 울타리도 높게 쳐놓은 상태였기에 닭을 키우는 건 무리가 없을 것이다.
‘울타리를 저렇게 쳐놔도 들어올 녀석들은 들어오지만......’
큰 동물만 안 들어오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가축을 해칠 수 있는 녀석들은 충분히 들어온다.
특히 하늘을 나는 매나 독수리 같은 경우에는 막을 방법이 없기에, 뒷마당에 닭들이 은신할 수 있는 공간을 많이 만들어야 할 것이다.
제일 짜증 나는 녀석들은 라쿤이다.
땅을 파서 들어오기도 하고, 울타리를 넘어서 들어오기도 하는 녀석들이다 보니 골치 아팠다.
“휴우.....”
그렇게 밤하늘의 별들을 바라보며 코코아를 들어 올렸다.
‘생각이 정리되질 않네.....’
차가운 공기를 마신다고 해도 무언가 생각나지 않는다.
그렇게 멍하니 고개를 들고 하늘을 바라보고 있을 때 누군가 내 곁으로 다가왔다.
“작가님 안 주무시고 뭐 하세요?”
“응?”
들려오는 소리를 따라 뒤쪽을 바라보니, 그곳에는 잠옷을 입은 다이애나가 있었다.
“아. 잠을 설쳐서 나왔는데 작가님이 계셔서요.”
“그런가요? 저와 똑같네요. 하하. 코코아 마시겠어요?”
“아. 넵! 그러면 저야 좋죠!”
다 마신 내 코코아도 더 채울 겸 집 안으로 들어가 다이애나 것까지 가지고 왔다.
코코아를 호로록 마신 다이애나는 내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
“근데 잠을 설쳐서 나오신 게 맞으세요?”
아무래도 내 상태가 잠을 못 자서 나오지 못한 것하고는 거리가 있었나 보다.
“하하. 뭐 겸사겸사.....”
“흐음? 글 보시다가 나오신 거 아니시죠?”
“당연히.... 아니죠.”
나는 말문을 흩트렸다.
다이애나의 말대로 글을 보고 있다고 나왔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다이애나. 이번에는 왜 오신 거예요?”
지금까지 단둘이 대화를 할 시간이 없었다 보니, 나는 말도 돌릴 겸 다이애나의 이야기를 듣고자 했다.
생각해보면 다이애나가 굳이 이곳에 올 필요는 없었다.
휴식을 취한다고 하면 뉴욕에 있는 SPA에 가는 게 더 좋을 것이고, 굳이 남의 집까지 올 필요는 없었다.
물론 다이애나의 마음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번에 오는 건 조금 억지가 있었다.
“그냥요.”
하지만 다이애나의 대답은 내가 생각한 모든 예상을 빗나가게 하였다.
“그냥 오고 싶었어요. 이런 분위기가 너무 좋았거든요. 깨끗한 공기도 좋고, 보이는 광경도 좋고..... 그냥 이곳에 오면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 들어서요.”
“그게 이유인가요?”
“네. 더 필요한가요?”
“하하 충분하죠. 그래도 아직 고등학생이시니까요. 뉴욕에서 여기까지 멀기도 하고..... 너무 무리하시는 게 아닌가 싶어서요.”
다이애나는 고개를 저었다.
“여기는 무리해서라도 오고 싶은 곳이에요. 여러 가지 이유로 말이죠.”
“.....그렇게 생각해주시니 고맙네요.”
그렇게 말이 끝나고 우리는 또 한동안 말이 없었다.
아름다운 별을 한참동안이나 바라봤기 때문일까? 나는 절로 입이 열렸다.
“다이애나는 성장한다는 게 무슨 느낌일 것 같나요?”
그 말에 다이애나의 눈동자는 휘둥그레졌다.
“네?”
“그냥..... 요즘 글을 안 봐서 그런지 그런 느낌이 들더라고요. 성장이라는 게 뭘까. 하하.... 그냥 직업병 같은 건가 봐요.”
“성장.....”
그 말을 곱씹은 다이애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모르겠어요. 뭐.... 사람의 시간은 돌릴 수 없다고 해서, 1초마다 성장을 거듭하는 건 아니잖아요? 육체적인 성장이라면 모를까 정신적인 성장이라면 아무래도 무언가 계기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나한테는 그 계기가 찾아왔다.
다만, 그 성장이라는 것이 내가 인식해서가 아닌 자연스러워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저도 언젠가는 성장하겠죠? 어린이 되고..... 사회를 나가고..... 저도 곧 어른이 되니까요.”
육체적이든, 정신적이든 다이애나도 언젠가 성장을 할 것이다.
‘불안하구나.’
다이애나가 어째서 이곳에 왔는지 나는 잠시 생각을 가져갔다.
방금 한 말도 맞을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는 곧 있으면 성인이 될 시기에 다이애나는 사회라는 현실을 마주할 용기가 필요했던 것이다.
잠깐의 외도라고 생각해도 좋았고, 그저 할아버지한테 투정 부리는 거라고 생각해도 좋았다.
“성장하겠죠. 그 누구나. 성장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으니까요.”
“......”
내 말에 다이애나는 그저 말없이 하늘을 바라봤다.
***
다이애나가 들어가고도 나는 끝까지 뒷마당에 앉아있었다.
‘슬슬 졸리네.....’
오늘은 글을 봤다. 그렇기에 그 악몽의 정도가 어제보다 몇 배는 심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거부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 또한 내 성장의 발판이라는 것을 의심치 않으니.
-그릉그릉그릉~
슬슬 자자는 생각으로 뒷문을 열고 다시 집으로 들어갔을 때 팡이가 다가와 다리에 머리를 비볐다.
고요한 저녁 시간이다 보니 팡이의 콧소리가 더욱 선명하게 들렸다.
“네가 나한테 이렇게까지 다리를 비비는 이유는 뭐......”
간식 달라는 거겠지.
애가 자라면서 점점 더 요물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았다.
필요할 때만 인간한테 오고, 그 외에는 오질 않으니 원.
그래도 귀여워서 줄 수밖에 없었으니 요물이 아니겠는가.
“간식 달라고?”
-그릉? 그릉그릉~
달라는 걸까 아니면 아니라는 걸까?
아마 전자가 맞을 테니 나는 찬장에서 통조림을 꺼내 엄마가 깨끗이 씻어 놓은 그릇에 적당히 덜어주었다.
통조림에서 흘러나오는 고소한 생선 기름의 냄새를 맡았기 때문일까?
팡이는 더욱 열렬히 내 다리에 자신의 머리를 부딪쳤다.
“먹어.”
-냐양?
그런데 팡이의 목표는 애초에 간식이 아니었나 보다.
눈앞에 먹을 것이 있음에도 팡이는 자신을 쓰다듬으라는 듯 내 허벅지까지 올라올 정도로 쑤욱 몸을 일으켰다.
그러면서 자신을 쓰다듬으라는 듯 가만히 있는 손에 자신의 콧등을 비볐다.
“놀아달라는 건가?”
-냥?
짐승의 목소리를 듣지는 못하기에 무얼 원하는지 유추하는 게 쉽지 않았다.
나는 엄마가 숨겨놓은 고양이 장난감을 들어 올렸다.
고양이들이 쉽게 볼 수 있는 곳에 장난감을 놓으면 금방 질려 하기에 항상 숨겨놓았다.
-냐아아앙!
하지만 이것도 아니란다.
냥아치 새끼도 아니고 장난감을 들자마자 성질을 부리며 탁 쳐버린다.
-냥! 냥! 냥!
그러면서 소파에 훌쩍 올라가더니 얼른 앉으라고 성질을 부린다.
왤까.
‘주인은 난데.’
마치 지가 이 집의 주인인 것 마냥 행동하는 모습에 나는 피식 웃음 지으며 소파에 앉았다.
-그릉~ 그릉~
그제야 마음에 들었다는 듯이 내 무릎 위로 올라와 식빵을 굽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내 손에 계속 콧등을 비비며 얼른 자신을 쓰다듬으라고 재촉까지 했다.
‘사람들이 이러니 고양이에 뻑가지.’
나는 피식 웃으며 팡이 궁댕이를 토닥여주었다.
뭐랄까..... 이거면 충분했다.
지금까지 있었던 불안과 생각이 모두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힐링이라는 건가? 아니, 소확행이 더 맞는 말인가?’
군대에 있을 때 들었던 소박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는 말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새벽에 별이 반짝이는 밤을 보며 귀여운 고양이의 털을 쓰다듬는다.
그릉그릉 귀를 간질이는 고양이의 간드러지는 울음소리가 귓가를 행복하게 하니, 평범하지만 행복했다.
“......그래. 평범하네.”
누구나 평범하게 느낄 수 있는 소소한 행복이 느껴지자 나는 알 수 있었다.
내가 글을 너무 어렵게 생각했구나.
평범했던 그 시절, 나는 글을 쓰는 게 무엇보다 즐거웠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아니었다.
‘글을 쓰는 데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어.’
알게 모르게 글을 쓰는 데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남들의 시선을 받고, 주목을 받는다는 게 알게 모르게 나의 몸을 압박하고 있었다.
‘소설의 근본은 내 생각을 다른 사람한테 보여주는 것이 아닌 느끼게 하는 것......’
그저 그뿐인 것을 너무 어렵게 생각하고 있던 것이 아닐까?
“팡이야.”
-냐앙?
“고맙다. 살다 살다 고양이한테 도움받을 날이 올 줄은 몰랐네.”
-야아아옹.
그 말에 ‘내가 뭐 어때서!’라고 소리 지르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