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시골촌놈인 줄 알았는데 천재작가였다-167화 (166/216)

167화. 소설의 근본 (2)

나는 성장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고로 준비를 끝냈다.

성장은 언제부터 시작하는지 그 누구도 알 수 없기에, 누구나 성장할 준비를 하고 있기 마련이다.

성장이라는 기회를 잃지 않도록.

“해보자.”

슬슬 아침 해가 떠오를 시간이었지만 나는 망설이지 않았다.

스토리의 재구축.

힘들 것이다. 아니 힘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100% 완벽한 글을 110%라는 더욱 완벽한 글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건 디테일이다.

완벽 그 이상. 그게 지금의 글이었다.

수정이 전혀 필요하지 않은 이 글을 130% 아니 150%까지 끌어올리려면 내가 성장할 수밖에 없었고, 그렇기에 스토리를 재구축해야 했다.

그러면서도 내용은 가져가야 하니..... 이보다 어려운 일은 없겠지.

“시작하자.”

-투두두둑!

나는 정말로 오래간만에 손가락을 풀었다.

마치 신자가 신의 몸을 만지기 위해 손을 푸는 것처럼 경건해 보이기까지 한 행동이었다.

***

SC라스틱은 빌에이든 미디어와 마찬가지로 제임스 작가한테 보내져 오는 엄청난 팬들의 선물로 인해 창고가 서서히 차기 시작했다.

다만, 빌에이든 미디어와 달리 자본력이 어느 정도 있는 SC라스틱은 창고를 대여하여 작가한테 온 선물들을 보관했다.

거기에 제임스 작가가 SNS로 팬들의 사랑은 충분히 알았으니 팬레터와 선물은 더 이상 보내지 말고, 값비싼 물건은 다시 되돌려 보내겠다고 말한 뒤부터 그 양은 현저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물론 아직까지 팬레터를 보내오는 아이들이 있기는 하지만 과거에 비하면 새 발의 피였다.

“슬슬..... 보내긴 해야 할 것 같은데.....”

스티븐은 가득히 차 있는 상자들을 보며 식은땀을 흘렸다.

제임스 작가의 SNS를 보고 일단 값비싼 선물들은 전부 돌려보낸 뒤였지만, 그 수는 빌에이든 미디어보다 많지 않았다.

아이 팬이 많은 SC라스틱 특성상 대부분 정성이 가득 담긴 팬레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부피가 작은 편지들만으로 창고 하나가 가득 찰 정도였다.

“작가님한테 일단 연락을 드릴까요?”

루시아의 말에 스티븐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작가님하고 한 번 상의를 해보는 게 좋을 것 같기는 한데..... 상의한다고 해도 이 많은 걸 어떻게 처리하실 생각이실지 모르겠네.”

“빌에이든 미디어 측은 이미 처리했으니 그와 똑같이 처리하지 않으실까요?”

“반대로 생각하면 빌에이든 미디어 측의 팬 선물도 그대로 가지고 계시다는 거겠지. 우리 측과 그쪽의 부피를 합치면..... 상당할 텐데 말이야.”

“그래도 일단 연락은 드려야겠네요.”

“지금 하지 말고 휴식 기간이 끝나면 연락 드려야지.”

루시아는 그 말에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작가님이 쓰러지셨다는 소식에 정말 화들짝 놀랐어요..... 그래도 지금은 괜찮아지셔서 다행이에요.”

스티븐은 턱을 쓰다듬으며 루시아의 말에 곱씹었다.

“루시아.”

“네?”

“작가님이 보내준 소설에서 무언가 이상한 점 못 느꼈어?”

“네! 무척이나 재밌는 소설이었어요! 딱히 수정을 안 하고 그냥 출판해도 될 정도로 재밌는 소설이에요!”

“흐음......”

지금까지 받아왔던 소설들 중에서 유독 이번에 받은 [사막의 제국 2부]와 [괴도 레이븐 2권]의 내용은 누군가와 굉장히 닮았다고 생각했다.

“에드월 홈즈.....의 냄새가 풍겼단 말이지.....”

“에드워드 선생님 때문에 가끔 그렇게 불리기도 하잖아요.”

“아니아니..... 내 말은 그게 아니라. 흠..... 루시아.”

“네!”

“너 에드월 홈즈의 글이 언제 절정에 올랐는지 알아?”

“절정이요?”

“그래.”

여러 가지의 필명으로 자신의 정체를 드러낸 에드월 홈즈는 항시 사람들한테 논란이 있었다.

과연 어느 필명으로 적었을 때 소설이 가장 재밌었는가 말이다.

자신의 실력에 조금이라도 의심이 들면 과감히 필명을 바꾸었던 에드월 홈즈였기에 사람들은 항상 논쟁을 벌여왔다.

루시아는 스티븐이 무얼 말하는지 단번에 눈치채고 해맑게 웃는 얼굴로 말했다.

“저는 개인적으로 아르메 랜디요!”

심장이 두근거리고, 몇 날 며칠 동안 잠을 못 이루게 하였던 자극적인 달콤한 로맨스 소설을 적을 때 에드월 홈즈가 사용하던 필명이었다.

“음.... 그리고 아틀란티스 원주민일 때요.”

아틀란티스 원주민은 에드월 홈즈가 마지막에 사용하였던 필명이었다.

평소 사람의 이름으로 필명을 사용하던 것과 다르게 마지막의 필명은 마치 자신의 운명을 암시하는 듯한 그런 필명이었다.

“어느 필명으로 적은 소설이 가장 재밌는가로 논쟁은 가장 많이 하지만, 아틀란티스 원주민이라는 필명을 걸고 쓴 소설들은 항상 빠져있지.”

“솔직히 뭐라 폄하할 수 없는 완벽한 소설이니까요.”

“그래..... 그렇지. 완벽한 소설, 너무도 완벽해서 오히려 무서운 그런 소설.....”

스티븐은 잠깐 말을 흩트렸다.

“이번 소설에서 왠지 아틀란티스 원주민의 시절에 적었던 소설의 냄새가 풍겨.”

그 말에 루시아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자, 잠깐만요! 그럼 지금 작가님의 목숨이 위험하다는 건가요?”

“예끼. 누가 그렇데? 그리고 냄새만 풍긴다고 했지 똑같다는 말은 안 했어.”

“그, 그래도요!”

아틀란티스 원주민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출판한 책은 총 5권이다.

그중 하나는 노벨문학상을 수상받을 정도로 세상에 큰 영향을 끼친 소설이었다.

하지만 에드월 홈즈는 노벨문학상을 받지 못했다.

1년 전에 후보들을 결정하고 그 뒤에 노벨상을 받는 형식상, 후보에서도 에드월 홈즈는 살아있지 못했으니까.

에드월 홈즈는 죽어서야 그 상을 받을 수 있었다.

“끄응..... 아무래도 이번 휴식기 동안 작가님의 심경이 어떻게 변할지가 관건이겠네.”

“네에.....”

“일단 작가님 휴식기까지 글하고 창고에 대해선 연락드리지 말자. 우리는 [드래곤 마스터 2부] 출판을 집중하자.”

“네.”

“일단 정리는 최대한 해놓자.”

“히잉..... 많아도 너무 많아요.”

불평을 해도 막내 사원인 루시아가 뭘 할 수 있겠는가.

그렇게 면장갑을 끼고 창고를 정리하고 있을 때 갑자기 스티븐의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또로로로로로~♪

갑자기 울린 전화 소리에 스티븐은 장갑을 낀 상태로 핸드폰을 꺼내 발신인을 바라봤다.

“누구세요?”

“쉿!”

스티븐은 루시아와 이곳에 있는 직원들한테 잠시만 조용히 해달라고 한 뒤 핸드폰을 들어 올렸다.

“안녕하십니까 대표님.”

-스티븐. 창고 정리는 잘 돼가고 있나요?

“네. 거의 끝나갑니다.”

-하하. 수고하시네요.

“근데 어쩐 일로 전화 주셨는지.....”

-도서관협회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예?”

-뉴베리상 후보에 작가님 소설이 올라왔다고 하더군요.

“.....!”

그 말에 스티븐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

“끄응.....”

나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침대에서 잤네?’

기억이 어중간하게 끊겨 있었다.

분명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을 미친 듯이 쓴 것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그 이후에 힘들고 지쳐서 눈을 감았던 기억이 났다.

‘아..... 나 또 기절했구나.’

정신이 슬며시 돌아오자 나는 또다시 실수를 범했음을 인지했다.

너무 푹 자서 그런지 몸이 생각보다 엄청 가벼웠다.

‘잠이 보약이네..... 근데 얼마나 잔 거지?’

이렇게 몸이 가벼울 정도면 오랫동안 잔 것 같은데?

‘하아.....’

나는 한숨을 내쉬며 슬쩍 시간을 바라봤다.

“.....응?”

새벽하고 날짜가 전혀 바뀌지 않았다.

물론 아침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늦게까지 잔 건 아니었다.

“자, 잠깐만.....”

글을 수정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그러니 잠을 많이 잤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또 아니었다.

기껏해야 3~4시간 정도 잤다는 것인데 몸이 이렇게 가볍다고?

“......!”

나는 나도 모르게 컴퓨터를 바라봤다.

컴퓨터에는 파일 3개가 새벽에 치열했던 사투를 보여주는 것 같이 어지러이 떠올라 있었다.

“아.”

파일을 보자마자 어제 있었던 일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정신없이 글을 썼지만 그 상황에 느꼈던 감각들이 몸을 비비며 느껴진다.

글을 썼다. 단지 그뿐이었다.

“확인은..... 아니, 확인은 하지 말자.”

글의 내용들이 떠오르며 나는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보내는 건 안 되지. 암.’

나는 파일들을 보며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파일을 가장 안전한 클라우드에 저장하고 혹시 몰라 가지고 온 USB에도 저장했다.

휴식을 취하라고 고향에 왔는데 거기서 또 글을 썼다고 하면 뭐라 한 소리 들을지 몰랐다.

‘그나저나 다들 나가셨나?’

너무 깊게 잠들어서 그런지 엄마가 나를 깨우는 노크 소리도 듣지 못했다.

뭐. 엄마 성격상 그냥 내가 자고 있으면 자는 대로 내버려 두니까 뭐라 할 말은 없지만 말이다.

‘일단 좀 씻자.’

나는 세면대에서 얼굴을 대충 씻고, 까치집이 된 머리카락을 가라앉힌 다음 1층으로 내려왔다.

‘아무도 없네.’

소파에서 퍼질러 자고 있는 뱃(?)살 괴물만이 집에 존재했다.

-냐앙.

“너 때문에 글 잘 썼다.”

물컹물컹~

나는 팡이 뱃살을 콕콕 찌르며 웃음 지었다.

“다들 벼룩시장 갔나 보네.”

팡이만 버젓이 내버려 두고 다들 벼룩시장에 간 것 같았다.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부엌으로 향했다.

“오.”

식탁에는 보자기로 감싸져 있는 음식들이 있었다.

아무래도 내가 일어나지 않고 아침까지 푹 자고 있으니 음식을 남겨두신 모양이었다.

보자기를 거둬보니 그곳에는 달걀이 가득했다.

“.....달걀?”

달걀 요리가 대부분이라는 게 맞겠지.

“.....또 고모부네 집에서 달걀이 남았나 보네.”

가끔 양계장에서 보관하고 있는 달걀이 오래되거나 그러면 나눠주는데, 그 양이 상당해서 이렇게 달걀 요리를 만들어 한 번에 해치울 때가 있었다.

‘뭐 달걀은 좋아하니까. 그나저나 팡이 밥은 줬나?’

팡이 밥그릇을 보니, 밥그릇 위에 삶은 달걀 찌꺼기들이 잔뜩 묻어있었다.

나는 안심하며 삶은 달걀 하나를 똑 까서 입안으로 집어넣었다.

‘오늘부터 글을 다시 쓸까......’

어제 에일리하고 했던 인터뷰가 떠올랐다.

[리턴 패션 디자이너] 2권을 연재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감지하였지만, 지금의 나는 휴식을 취하고 있으니 굳이 쓰지 않아도 되었다.

‘일단 해결된 일들은 전부 했으니까 조금 천천히 생각하자.’

꿀꺽.

나는 또다시 삶은 달걀을 들어 올렸다.

‘벼룩시장..... 가고 싶었는데.....’

남들이 필요 없는 건 우리한테도 필요 없긴 하지만, 그래도 가보면 신기한 물품들이 많다 보니 재밌었다.

“밥 다 먹고 가볼까?”

어차피 고모부네하고 합하며 우리 집에서 필요 없는 물품을 판매하고 있을 것이다.

다이애나나 안토니도 도와주고 있을 게 뻔하니, 밥을 다 먹고 가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이후 삶은 달걀을 5개 정도 입에 털어 넣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팡이야 갔다 올게.”

-냥 양 냐앙(올 때 츄르)~

팡이의 울음소리를 들은 나는 피식 웃음 지으며 밖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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