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8화. 벼룩시장
미국의 벼룩시장 규모는 굉장히 큰 편이다.
고작 공원 하나 시장으로 만드는 수준이 아니라, 그 안에 가축들을 데리고 오고 음식도 만들 정도다 보니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하나의 축제로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그나저나......’
이 넓은 곳에서 가족들이 어디 있는지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뭐. 구경이나 하자는 생각으로 돌아다니면 되겠지.
“근데 필요한 게 있으려나?”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벼룩시장 안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마당에 놓는 장식물 같이 들고 다니기 힘든 것들이 보였다.
어차피 있어봤자 골칫덩어리들이다 보니 그냥 무시하고 더욱 안으로 들어갔다.
사람들이 많다 보니 가족들이 있는 곳을 찾기는 역시 힘들었다.
‘뭐라도 먹을까?’
삶은 달걀만 먹었다 보니 푸드트럭에서 흘러오는 냄새를 참지 못했다.
나는 인기가 가장 많은 푸드트럭을 향해 걸어갔다.
‘찹스테이크.....’
맛있겠네
그렇게 순서를 한참이나 기다리고 나서야 내 차례가 되었다.
“감자 넣어주시고 음료는 다이어트 콜라로.”
“네. 밥으로 아니면 빵으로?”
“밥으로. 아. 그리고 웨지감자를 더 추가할게요. 감자 위에는 꿀 있으면 뿌려주세요.”
“네.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잠시 후 종이 포장지 안에 향긋한 소고기와 달콤한 소스의 냄새가 풍겨왔다.
나는 계산을 한 뒤 근처로 나가 벤치에 가서 앉았다.
‘사람 많네.’
추운데도 옷을 껴입고 물품들을 돌아보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나는 장갑을 낀 손으로 슬그머니 마스크를 내려 음식을 먹었다.
사람이 많은 곳에는 이유가 있는지 조금 비싸기는 했지만 맛은 있었다.
“책이나 보러 갈까?”
책을 사면 내가 일을 한다고 생각할 것이니 그건 아무래도 무리일 것 같았다.
‘취미라.....’
결과적으로 생각해보면 내가 글에만 집중했다 보니 이런 일이 생긴 것이다.
물론 글을 쓰는 일을 좋아하지만 그래도 취미라는 것을 가져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글을 읽는다는 취미도 있기는 하지만 그건 결과적으로 일에 연관된 일이니까.
“찾아볼까?”
이곳처럼 자신의 취미를 뽐낼 수 있는 곳도 드무니까.
***
벼룩시장에 오면 별의별 게 다 있다.
그중에서는 자신이 부른 노래를 CD로 해서 판매하는 사람도 있었고, 자신이 만든 물품이나 음식을 판매하는 사람도 있었다.
방금 먹은 찹스테이크도 푸드트럭을 대여하여 판매한 것이었다.
그렇다 보니 벼룩시장은 자신의 취미를 남들한테 뽐낼 수 있는 핫플레이스였다.
‘조각이라.....’
길거리를 걷다가 나는 어느 지점에서 멈추었다.
동양인으로 보이는 중년 남성이 그 자리에서 조각칼을 들고 나무를 조각하고 있었다.
간단한 여자아이나 물건부터 시작해서, 동물 같은 어려운 것들까지 가득했다.
‘나도 아빠 닮아서 손재주가 좀 있는데......’
어린 시절 그림도 괜찮게 그리는 편이었고, 거기에 아빠 따라 나무를 몇 번 만져본 적은 있으니 나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근데 저런 건 만들어 놓으면 뒤처리가......’
사람들이 신기하다고 조각상을 구경하고 있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사는 사람들은 없었다.
만들어도 집안의 골칫거리가 될 수도 있으니 신중히 생각할 문제였다.
‘흐음.....’
남들의 취미를 봐도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을 것 같았다.
그렇게 구경을 하고 있을 때 저 멀리선가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제임스!”
“응? 월리?”
고개를 돌려보니 후줄근한 차림으로 손을 흔들고 있는 월리가 있었다.
무언가를 판매하는 게 아닌 구매하려고 왔는지 월리의 손에는 이미 무언가가 들려있었다.
월리의 앞으로 가니 신발 두 켤레가 들려있었다.
“신발 사러 왔냐?”
“응. 그리 좋은 건 아닌데 싸게 팔더라고. 너는 무슨 일이야?”
“그냥 둘러보고 있는 거지. 가족들도 찾을 겸. 너는 혼자 왔냐?”
“어, 부모님은 일 캐서린은 글.”
결국 월리는 나와 같이 다니기로 했다.
“근데 뭐 찾냐? 뭘 그리 두리번거려?”
“그냥...... 취미로 할 게 있나 하고.”
“취미?”
월리는 의아해하며 말했다.
“사냥해. 지금 사냥철이잖아?”
“싫어.”
월리는 멧돼지나 사슴 사냥을 자주 가는 편이다 보니 사냥을 추천했지만, 딱히 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체력적인 취미 말고, 그냥 집에서 조물딱거릴 수 있는 거면 좋겠는데..... 에이. 구경이나 하자.”
뭐. 취미로 삼을 건 없더라도 구경하는 재미가 있으니 말이다.
‘그나저나 조형이라.....’
이곳에 오니 자신의 창작활동을 판매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았다.
어느 할머니는 자신이 만든 봉제 인형을, 어느 청년은 자신이 만든 피규어를, 어느 남성은 3D펜으로 만든 조형물을 판매한다.
재밌어 보이기도 하면서도 만드는 건 굉장히 어려워 보였다.
그렇게 길을 걷고 있을 때 눈에 띄는 게 있었다.
“저건......”
A4용지를 공책처럼 뭉쳐 놓은 것이 보였다.
마치 책처럼 읽을 수 있게 만들어 놓았는데, 주위에 사람들이 가서 읽고 있었다.
‘뭐지?’
나는 월리를 데리고 그곳으로 향했다.
사람들은 우리가 온 것도 모르고 집중해서 책을 읽고 있었고, 책 주인인 남성.... 아니 선이 얇은 걸로 봐선 여성 같은데 마스크와 모자, 선글라스를 끼고 핸드폰을 하고 있었다.
판매하고 있는 것인지 사람들 손에 들려있는 공책에는 가격이 적힌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아..... 이거.....’
제목을 보고 알 수 있었다.
스스로 창작한 동인지 같은 것이었다.
팬픽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인터넷 소설을 자신이 직접 출판한 것일 수도 있었다.
혹은 만화일 수도 있었지만 무엇이 되었든 간에 사람들은 재미있는지 책에서 눈을 돌리지 않았다.
“봐도 되나요?”
끄덕.
내 말에 여성은 나를 슬쩍 본 다음에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핸드폰으로 시선을 돌렸다.
‘음......’
아무래도 만화인 것 같았다.
‘미국식 만화가 아니라 일본 만화 방식인가.....’
컬러가 아닌 흑백처리가 되어 있었고, 그림 방식도 미국식인 카툰은 아닌 것 같았다.
‘만화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데..... 이건 좀 야하네.’
소설 시장은 잘 알고 있지만 만화 시장은 모르는 편이었다 보니 이런 방식의 책이 뭐라 불리는지 몰랐다.
아무튼 간에 내용은 상당히 괜찮았다.
‘근데 이거..... 스토리가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데.....’
처음 보는 만화와 그림체였지만 스토리 하나만 보면 어디선가 본 느낌이 들었다.
물론 익숙한 건 아니었기에 다시 한번 책 표지를 확인했다.
‘아. 이거.....’
[늪지대의 희귀자]
그 제목을 보자마자 나는 어째서 익숙한 느낌이 들었는지 알게 되었다.
‘소설을 만화로 각색한 건가?’
다만, 소설의 내용을 전부 담는 건 무리였기 때문인지, 종이 페이지가 적은 소설이나 아니면 소설 내용 중 스토리 하나만을 그린 것 같았다.
‘만화가 그려지는 과정은 잘 모르겠지만..... 벼룩시장 특성상 이런 게 잘 팔리지는 않을 것 같고.....’
그 때문인지 인쇄를 많이 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이 내용..... 상당히 많이 각색되어 있네.’
[늪지대의 희귀자]는 야한 스토리가 아니다. 아니, 야한 내용이 하나도 없었다.
옆에 있던 월리의 얼굴이 붉어질 정도로 그림체가 너무 디테일했다.
‘내용은 뭐..... 원작이 있으니까 그러려니 하는데, 그림체가 진짜 좋네.’
사람들이 이곳에 몰려든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음?’
그렇게 책을 둘러보고 있는 와중에 익숙한 제목이 보였다.
[블랙 & 월드]라 적힌 제목을 보자 나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책을 들어 올렸다.
‘이것도 있었네......’
아이러니하게도 이곳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만화책이었는지, 다른 책들과 비교해서 상당히 많이 팔렸는지 부수가 텅텅 비어 있었다.
내 손에 들려있는 게 마지막 권인 것 같았다.
‘......음.’
책 내용을 보니 아무래도 마지막 부분에 가까운 에나가 케이한테 여우구슬을 주고 있는 장면인 것 같았다.
다만, 여기서 키스신 정도로 끝났던 원작하고는 달리 이 만화에서는 그 이상의 관계까지 이어졌다.
“재밌네요.”
그림체 때문인지 원작과 다른 내용임에도 재미가 있었다.
“이거 주세요.”
나는 가격표에 적혀 있던 대로 지폐를 꺼내 여성한테 내밀었다.
여성은 힐끗 나를 보더니 고개를 최대한 숙이며 잔돈을 나한테 주었다.
‘하긴, 조금 부끄럽긴 하겠네.’
그제야 어째서 얼굴을 꽁꽁 싸매고 있는지 이해가 되었다.
작품을 폄하할 생각은 없지만 그래도 그림체가 상당히 야하다 보니 부끄러운 거겠지.
“야. 제임스. 그걸 진짜 사냐?”
월리는 ‘이런 미친놈을 봤냐’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어.”
그러면서 월리한테 책을 내밀었다.
“.....뭐? 왜?”
“나는 책을 보는 걸 비밀로 해야 하니까, 당분간 가지고 있어 줘.”
“.....싫어. 진짜 싫어.”
월리는 진저리 난 듯 고개를 저었다.
“옷 사줄게.”
“언제까지 보관하고 있으면 되는데?”
“나 휴식 기간까지만 가지고 있어 줘.”
“알았어. 말 돌리기 없기다?”
“그래.”
온몸을 꽁꽁 감싸고 있던 여성은 선글라스 안에 숨겨둔 눈으로 우리를 빤히 바라봤지만, 우리는 그걸 눈치채지 못했다.
“제임.....스? 에이 설마 제임스 작가님이 이런 만화를 샀겠어?”
그냥 동명이인이겠지.
여성은 그럴 리가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
나는 구매한 만화책을 사진 찍은 다음, 오래간만에 SNS로 들어갔다.
『제임스 권(Dragon one)
【사진】
오래간만에 SNS 게시글을 올립니다.
벼룩시장에 왔는데 제 글 팬픽이 있어서 구매하였습니다!
내용은 상당히 야한데 그림체가 좋아서 재밌더라고요! 물론 내용 공개는 안 합니다!』
라고만 올렸다.
“그걸 굳이 올려야 해?”
SNS에 글을 올리자마자 댓글 개수가 계속 올라가기 시작했다.
댓글을 딱히 읽는 편이 아니었기에 나는 핸드폰을 집어넣었다.
“응. 뭔가 이런 건 올리고 싶더라고.”
내 작품을 좋아하기에 이렇게 각색하여 창작해준 것이 아닌가.
아무리 내용이 야하다고 해도 그래도 고마웠다.
“아. 저기 계시네.”
시장을 더 돌아다니다 보니 드디어 고모부가 운영하고 있는 상점이 보였다.
가판대에는 내가 오늘 아침에 먹은 유통기한 직전인 달걀들과 농사 장비들이 보였다.
역시나 가장 인기 있는 건 달걀이었는지, 달걀 말고는 아무것도 팔리지 않은 것 같았다.
“고모.”
“응? 용일이 왔니? 잠자고 있다고 하더니만 왔네?”
“한 달에 한 번 있는 벼룩시장이니까요. 놀러 온 거죠, 뭐.”
“월리도 왔네?”
“안녕하세요 아줌마.”
“어머? 머리카락이 많이 자랐네?”
“하하. 그렇죠, 뭐.”
“훨씬 보기 좋네.”
월리하고 인사를 나눈 고모는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근데 왜 여깄니?”
“네?”
“네 아빠 집에 갔는데?”
“.....벌써요?”
“그래. 우리도 슬슬 접고 갈 생각이었거든. 달걀도 거의 팔렸으니까.”
“아..... 그럼 고모부는요?”
“이사벨하고 같이 가축 구경 갔어. 정리하는 거나 도와주렴.”
“저도 도와드릴게요.”
월리와 나는 마무리를 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