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화. 집으로
시간은 속수무책으로 흘러갔다.
휴식 기간이라고 하여 굉장히 느리게 흘러갈 줄 알았지만, 하루하루 생각과 고민의 연속이었다 보니 그 시간은 그 무엇보다도 빠르게 흘러갔다.
이번 휴식은 나한테 굉장히 유익했다.
‘아무것도 얻을 게 없으리라 여겼던 휴식.....인데.’
항상 집으로 올 때마다 무언가를 얻어가는 느낌을 받았다.
늘 고마웠고, 늘 좋은 곳이 바로 우리 집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LA에 가기 전 나는 SC라스틱과 빌에이든 미디어에 이번 휴식기 때 수정했던 내용을 보냈다.
“그럼 다음에 뵐게요.”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거.....”
안토니는 가기 전에 나한테 명함을 내밀었다.
다른 이들과는 다르게 안토니는 우리 집에 와서도 그리 휴식을 취하지 못했다.
프리랜서의 고충을 아는 사람은 프리랜서뿐이라고, 안토니는 우리 집에 와서도 아침부터 새벽까지 일만 하였다.
그래도 중간중간 휴식을 취하고 좋은 공기를 마셨기 때문인지 얼굴색은 전과 비교하면 훨씬 좋아졌다.
“다이애나를 통해서 저한테 연락하셔도 좋고, 아니면 이 번호로 개인적으로 저한테 연락하셔도 좋습니다. 작가님이 시나리오에 흥미가 많으신 것 같으니 흥미가 생기면 연락 부탁드립니다.”
“네. 감사합니다.”
나는 안토니의 명함을 받아 든 다음 다이애나를 바라봤다.
“오늘 [사막의 전갈] 영화 개봉 날인데 보러 가실 거예요?”
“네. 집에 도착하면 늦으니까 내일이나 영화관에 가서 볼 생각이에요. 그리고 블루스타게이트에도 연락을 취해봐야죠.”
1월 12일 월요일.
5일에 있던 시사회가 끝나고 드디어 영화가 개봉되었다.
관람 평가도 나쁘지 않았다 보니 딱히 수정을 거치지 않고 무사히 영화가 개봉되었다.
“북미 박스오피스 1억 달러 달성! 약속 지키실 거죠?”
[사막의 전갈]로 내 작품에 진입을 시작한 다이애나한테 2부의 의미는 다른 이들과 비교해서 남달랐다.
나는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죠.”
“아싸!”
아직 결정 나지 않은 일이었지만 다이애나는 내 말에 기쁜 듯이 웃음 지었다.
‘쓰기 싫은데.....’
그때 당시만 해도 내 위상을 잘 몰라서 이렇게 말했지만, 솔직히 1억 달러는 일주일 안에 채워질 것 같았다.
그래도 다이애나 앞에서 쓰기 싫다고 단언할 수는 없으니 내색하지 않았다.
“헤헤.”
상상만으로 행복한지 헤헤 웃는 다이애나를 보며 나는 피식 웃음 지었다.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내 손은 다이애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흠칫!
갑작스러운 내 행동에 다이애나는 마치 돌상처럼 굳어졌다.
“성장한다는 걸 무서워하지 마세요. 누구나 어른이 되니까요. 무섭고 두려우면 먼저 어른이 된 사람들한테 정답을 물어보세요. 해답이 되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마냥 두려워하는 것보단 좋을 테니까요.”
“네......”
“언제든지 연락하세요. 사회의 어른으로서 다이애나한테 조언은 무리더라도 복잡한 이야기 정도는 들어드릴 수 있으니까요.”
제임스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비행기를 타러 갔다.
다이애나는 자신의 머리를 천천히 만지며 제임스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한참 동안이나.
***
에밀라는 처음 받은 [블랙 & 월드 2부]를 봤을 때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일곱 개의 죄악]보다 더욱 완벽한 소설이었으니까 말이다.
무엇하나 놓칠 수 없는 그런 소설이었기에 그 놀라움은 더욱 커져갔다.
수정을 할 것도 없이 그냥 그대로 출판해도 될 것만 같은 소설이었지만, 에일리와 로건은 진행하지 않았다.
제임스 작가가 중간에 쓰러졌기에, 16일에 출판할 [일곱 개의 죄악]을 제외하면 그 어떠한 일도 진행하지 않았다.
굳이 더 추가하자면 goods 상품들 정도만 일을 더 진행하였다.
그 때문인지 빌에이든 미디어는 웬일로 조용했다.
항시 제임스 작가 때문에 날라오던 독촉장 메일도 날아오지 않게 되었고, 다른 작가들 케어할 시간도 생겼다 보니 아주 오래간만에 평화를 되찾았다.
물론 대표 입장에서는 이 평화는 그리 좋지 않지만 그래도 제임스 작가가 돌아올 것을 알고 있기에 꾹 참고 기다렸다.
-띠링~!
“응?”
그렇게 시사회가 끝난 다음 주 월요일이 되고, 오늘 있을 [사막의 전갈] 영화 개봉을 기다리고 있던 에밀라의 모니터 화면으로 메일 알림 하나가 울렸다.
“작가님?”
제임스 작가가 문자를 보낸 것이었다.
휴식 기간이 오늘까지임을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지금 메일을 보내 준 건 어딘가 이상했다.
에밀라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메일을 열어봤다.
“......쉬시라니까요. 에휴.”
메일에는 교정본이라고 적힌 [블랙 & 월드 2부] 파일이 있었다.
‘뭐..... 솔직히 기대도 안 했지만.’
생각은 그렇게 하면서도 에밀라는 기대감을 가지고 파일을 열어봤다.
‘월요일이라 바쁘기는 한데..... 제임스 작가님의 소설이라면 다른 것을 제쳐두고 할 가치가 있으니까.’
에밀라는 자기도 모르게 콧노래를 부르며 보내온 파일을 천천히 내렸다.
그리고 에밀라의 정신은 세상과 단절되었다.
***
‘앗!’
루시아한테도 제임스의 메일이 보내졌다.
새벽에 보낸 메일이었기에 오늘 출근하고 나서야 확인할 수 있었다.
파일은 총 두 개, [사막의 제국 2부]와 [괴도 레이븐 2권]이었다.
저번에 보내준 것과 똑같은 이름을 가지고 있었지만, 다른 점이 있다면 그 앞에 교정본이라 적혀 있는 정도였다.
‘작가님도 참......’
제임스 작가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번 휴식 때 아마 휴식만 취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휴식을 취할 때마다 글이 한층 진화되는 걸 봐왔기에 오히려 더 기대가 되었다.
“응? 뭐야?”
“제임스 작가님이 원고를 보내 주셨어요.”
“흐음.....”
스티븐은 이메일 창을 바라봤다.
“쉬시라니까 결국에는 이렇게 됐네.”
“헤헤. 팀장님도 어느 정도 알고 계셨잖아요.”
“뭐. 그렇긴 하지, 아무튼 간에 얼른 확인해보는 게 좋겠지. [괴도 레이븐]은 나한테 보내줘 내가 확인할게.”
“네!”
다른 이들보다도 [사막의 제국]에 애증이 있는 루시아였기에 기쁜 마음으로 [괴도 레이븐]을 스티븐한테 보내 주었다.
‘어디 보자.....’
루시아는 파일을 열고 전체적으로 스토리를 살피기 시작했다.
저번과는 사뭇 다른 스토리면서도 묘하게 똑같은 그런 스토리
스토리 자체에 수정한 부분이 있는 것 같았지만, 전체적으로 건들지는 않은 듯싶었다.
한 곳만 수정한 것이라면 그 부분만 읽으면 되었지만, 아무래도 여러 군데 수정하신 것 같으셨다.
그렇기에 처음부터 전체적으로 읽어 수정한 부분을 찾는 편이 좋았다.
‘저번 소설도 재밌었는데 좀 아쉽네......’
전에 주신 [사막의 제국 2부]도 재밌었기에 그 내용을 전면폐지하는 걸 아깝게 생각했다.
하지만 작가가 싫다는데 어떻게 하겠는가, 이 내용이 재미없다면 전 내용을 다시 생각해달라고 할 궁리라도 있겠지만 그런 가능성은 적었다.
‘이제 읽자.’
루시아는 파일을 천천히 읽어내렸다.
그리고 루시아의 정신은 세상과 단절되었다.
***
오래간만에 집으로 돌아온 제임스는 오자마자 머리를 긁적일 수밖에 없었다.
원래 있어야 했던 열흘보다 며칠은 더 빨리 돌아왔지만, 그래도 집에는 먼지가 가득했다.
‘청소부터 하자.’
쉬러 가는 건 좋지만, 집이라는 건 오래 비울수록 더러워지기 마련이다.
밥을 먹기 전에 간단하게 먼지를 제거할 생각이었다.
“재롱이는 없네.”
누나가 중간에 와서 재롱이를 데려갔는지 여과기는 제대로 돌아가고 있지만 안에 물고기는 없었다.
‘수초도 상당히 자랐네?’
음성 수초라고 해서 성장이 느리다고 들었는데 그건 또 아닌가 보다.
애초에 수초를 다듬지 않을 생각이었기에 그냥 키우기로 했다.
‘오? 새우가 알을 가졌네?’
고작 며칠 자리를 비웠다고 어항 내에서 많은 일이 벌어졌다.
먹이용 및 이끼 제거용으로 넣어두었던 새우들이 알을 품은 것이었다.
한참이나 새우들이 움직이는 모습을 보던 나는 이내 정신을 차렸다.
“.....요망한 것들.”
새우가 떠다니는 장면으로 물멍이 될 것이라 생각은 못 했는데, 한참 동안이나 보게 되었다.
아무튼 간에 일단 먼지부터 정리하기로 했다.
“시작하자.”
청소는 저번처럼 오래 걸리지 않았다.
저번에는 뭐 청소를 할 시간도 없이 바쁘게 움직였다면, 오늘은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되니까 말이다.
‘이번 주 일정이.... 어디 보자.’
원래라면 오늘 12일부터 13일까지 미션 월드로 가야 했지만, 내 휴식으로 인해 시간이 미루어져서 14일과 15일에 가기로 하였다. 또한 금요일에는 책 두 편이 출판된다.
‘문 앞에 택배 왔다고 적혀 있던 쪽지.... 그건 그럼 책일 확률이 높겠네.’
내가 며칠 동안 휴식을 간다는 것을 알고 있던 한스 할아버지는 내 문 앞에 택배가 왔다고 쪽지를 붙여놓으셨다.
아마 [드래곤 마스터 2부]와 [일곱 개의 죄악]일 테지.
‘그 두 개도 이벤트를 진행하려나?’
[드래곤 마스터 2부]는 양장본으로 애초부터 낼 생각이지만, [일곱 개의 죄악]은 잘 모르겠다.
거기에 [리턴 패션 디자이너]도 이벤트 생각하고 있지 시행을 하지 않고 있다 보니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뭐. 이번에 물어보면 되지.’
SC라스틱 보다 일 처리가 느리기는 했지만 굳이 신경쓸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그렇게 청소를 계속 진행하다 보니 한 시간 정도가 흐르자 집이 말끔해졌다.
“후우.....”
청소가 끝난 집을 뿌듯한 표정으로 바라본 뒤 시원한 아이스티 한 잔을 타고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와 동시에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띠리리리리리링~♪
“아. 누나네.”
발신인을 바라보니 메디슨 누나한테서 전화가 왔다.
-야. 집에 왔냐?
“응. 지금 청소 끝내고 소파에 누워있어.”
-조금 더 있다 오지 그랬어.
“휴식은 충분히 취했어. 오히려 아무것도 안 하니까 몸이 근질근질하더라고. 집에서도 딱히 할 것도 없어서 그냥 왔어.”
-바로 글 쓸 거야?
“아니. 오늘은 집에 오느라 피로가 좀 쌓여서 좀 쉬려고.”
-잘됐네. 그럼 오늘 저녁 먹으러 갈게, 재롱이도 데려가야 하니까.
“잘 있어?”
-응. 건강해. 하루에 한 번씩 물 갈아줬으니까, 아무튼 간에 오늘 맛있는 것 좀 먹자 나 고기 먹고 싶어.
왜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이렇게 고기를 좋아하는 걸까.
“해산물 어때?”
-고기.
“알았어.”
먹고 싶다는데 사줘야지 뭐.
“근데 이야기할 거라도 있어?”
-응. 네가 휴식하는 동안에 여러 일이 있었으니까, 근데 딱히 그렇게 신경 쓸 건 아니니까 그냥 알고만 있으면 돼.
“뭔데?”
-뭐어..... [리턴 패션 디자이너] 넷 마이너스 측에서 제작에 대한 이야기하고, 내일 모래 있을 미팅 건 정도?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쩝..... 만나긴 해야겠네. 알았어. 몇 시 정도에 오는데?”
-집에 들렀다 가야 하니까 좀 걸릴 거야.
“알았어. 정확한 시간 정해지면 다시 연락줘.”
-오냐.
누나와의 전화가 끊나고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다시 바빠지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