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화. 드래곤 마스터 배우
제임스는 아역을 정하는 데 딱히 규칙을 정하지 않았다.
그 아이 외모가 어떻든 상관없다는 입장을 내세웠다.
다만, 캐릭터 원작의 인종은 지켜달라고 부탁했다.
로얀은 원작에서 검은색 머리카락을 하고 있는 백인이었고, 그의 친구 베일은 갈색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는 흑인이었다.
머리카락을 염색할 수 있기에 상관없지만, 그래도 원작에 표현되어 있는 인종만큼은 그대로 가져가고 싶었다.
이는 논란을 잠재우고 싶었기 때문도 있지만, 원작의 재미를 그대로 느끼게 하기 위함도 있었다.
딱히 까다로움 조건은 아니었기에 미션 컴퍼니와 실버 블루노아는 미국 전역을 뒤져 아역들을 섭외했다.
어울릴 것 같은 아이들한테 오디션 제의를 보고, 그중에서 가장 역할에 맞을 것 같은 아이들을 골랐다.
아이들의 나이는 10~13살 사이, 키는 상관없었기에 그 나이대에서 아이를 캐스팅했다.
원작에서 아카데미로 입학하는 나이는 딱히 정해지지 않았고, 드래곤에게 선택받은 아이만 갈 수 있다는 설정이 있다 보니 대부분 저 나이대에 입학한다.
그렇기에 현실에서도 그와 비슷한 나이대의 아역들을 캐스팅했고, 그중에서도 [드래곤 마스터]를 좋아하는 아이들 위주로 골랐다.
‘좋아하는 작품일수록 더욱 집중할 테니까.’
어쩌면 번개 흉터 마법사처럼 기나긴 시리즈로 갈 수 있는 작품이었다.
그렇기에 이 작품에 더욱 집중해주고 사랑해 줄 수 있는 아이들 위주로 캐스팅했다.
하나씩 조건이 추가되다 보니 점점 머리가 아파왔지만 결국 아이들 캐스팅이 완료됐다.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제임스 권입니다.”
나는 미션 컴퍼니에 도착하자마자 노아 회장과 함께 이번 작품을 책임질 감독을 만났다.
CG의 마법사라 불리는 실버 블루노아는 희미하게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편하게 실버라고 부르게.”
“감사합니다. 실버.”
4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실버는 이름에 맞게 머리카락을 은색으로 염색하는 걸 즐겨한다고 들었다.
이는 하나의 루틴으로, 영화 제작이 시작되면 은색으로 물들이고 끝나면 다시 검은색으로 물들인다고 한다.
각 감독님들마다 성공을 위해 지키는 루틴이라는 것이 있었다.
“우선 스태프들 소개부터 해야겠네.”
“부탁하겠네 실버.”
“하하.”
노아 회장은 다시 회장실로 향했고, 나는 실버와 함께 회의실로 향했다.
회의실에는 이번 작품을 함께할 스태프들이 있었고, 나는 그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마지막으로 나는 실버와 나이가 비슷해 보이는 사람 앞에 멈춰 섰다.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로난이라고 합니다.”
“아..... 그.....?”
“그 라고 하면 뭔지 모르겠지만, 아마 생각하시는 게 맞을 겁니다.”
“.....실례했습니다. 반갑습니다, 제임스라고 합니다.”
“예. 로난이라고 편히 불러주셨으면 합니다.”
로난.
그는 이번 작품 에드워드 선생님 대신이라고 할까, 아무튼 추천인으로 올라 캐스팅된 스태프였다.
당연히 에드워드 선생님의 제자였고, 제임스 또한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다만, 로난의 얼굴을 실물로 보는 건 처음이었다.
미디어나 매스컴에 나오는 걸 싫어하다 보니, 예전부터 자신의 이름만 크레딧에 남길 뿐이었다.
그의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강물이 흐른다]와 [해산 탈출]이라는 영화가 있었는데, 극도로 다른 분위기를 뿜어내는 두 작품의 음악을 너무 자연스럽게 연출하여 기억에 있었다.
[강물이 흐른다]는 잔잔한 로맨스 작품으로 원작이 무려 에드월 홈즈(아르메 랜디)의 작품이었는데, 달달한 BGM은 아직까지도 사람들이 많이 들을 정도였다.
그에 반면 [해산 탈출]은 그저 독립 영화였지만 적은 예산으로 만들어진 것치고는 음악 때문에 영화 관람에 더욱 집중된다고 들었다.
특히 마지막 부분인 해산이 폭발하려는 순간에 흘러나온 BGM은 아직까지도 잊지 못하고 있었다.
“뛰어난 작품에는 뛰어난 음악과 분위기가 필요하다고 선생님한테 항시 들었습니다. 선생님이 저보고 하라는 것을 보면 필시 이번 작품도 대단한 작품일 거라 생각합니다.”
“예에......”
“그래서 제의를 받자마자 작가님의 책을 모두 구매하여 읽어봤습니다. 제 아들놈이 작가님의 소설을 가지고 있더군요.”
슬쩍 로난이 앉아 있던 책상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드래곤 마스터] 1부가 있었는데, 책 여기저기에 여러 포스트잇과 종이가 끼워져 있었다.
“전 이 작품을 보고 어째서 선생님이 저를 보낸 건지 알게 되었습니다. 무척이나 흥미로운 세계더군요. 굉장히 기대가 큽니다.”
뭐랄까.
이야기할 때마다 규칙적으로 생활하는 안드로이드와 대화하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목소리 안에서 흘러나오는 감탄과 존경에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느꼈다.
“아. 이건 선물입니다. 이번에 아역 캐스팅 때문에 많이 고생하셨다고 들어서요. 하하.”
나는 백화점에서 사 온 선물을 모두한테 나누어주었다.
다른 작품들과는 다르게 이번 작품은 오디션이 아닌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캐스팅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많은 고생이 있었다고 한다.
그렇기에 아이들 선물뿐만 아니라 스태프들 선물도 준비하였다.
선물이라고 해봤자 처음 만나는 사람들한테 뭘 줘야 할지 몰라서 조금 가격이 나가는 와인을 준비하였다.
“하하. 잘 마시겠습니다.”
실버는 받은 선물이 마음에 들었는지 미소 지었다.
우리는 거기서 조금 더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차피 나중에 또 미팅이 있었고, 오늘은 배우들과 만나 소소한 파티가 있다 보니 이야기는 그리 길지 않았다.
“슬슬 배우들을 만나러 갈까요?”
“예. 그럴까요?”
실버의 말에 스태프들은 전부 자리에서 일어났다.
***
배우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가서 나는 한 명씩 인사를 나누었다.
이번 소설은 그간의 소설들과는 달리 배우가 저어어어어엉말 많이 필요했다.
생각나는 것만 해도, 교장, 교감, 주인공 아빠, 아카데미 주연 1, 2, 3, 교사, 주인공 친구 1, 2, 3에 설정도 엄청 많았다.
조연도 많았고 주연도 많았지만 단역도 많았다.
지금까지의 영화들 중 현재로서 가장 많은 배우가 나오는 영화가 될 것이라 생각했고, 배우들이 있는 곳에 도착하니 정말로 많았다.
그들과 일일이 인사하는 것도 한참이나 걸릴 정도로 말이다.
‘인간뿐만 아니지.’
각 성격마다 필요한 드래곤들도 있었다.
물론 드래곤들의 움직임은 배우가 아니지만, 그래도 생생한 행동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사람이 직접 연기를 해야 했는데, 그린 슈트를 입고 CG 작업을 해야 하다 보니 더욱 많아졌다.
그렇기에 사람이 정말 많이 필요했다.
‘휴우..... 손이 얼얼하네.’
너무 많은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었기 때문인지 손이 살짝 얼얼했다.
아무튼 어른들하고는 전부 인사를 나누었고, 이제는 이 작품의 핵심들과 인사를 나눌 차례가 되었다.
“아, 안녕하세요.....!”
검은 머리카락의 백인 꼬마는 내가 다가오자 눈을 크게 뜨며 인사를 건넸다.
“아. 네가 카이니?”
“네, 네! 맞아요! 패, 팬이에요!”
“하하. 고맙워. 내 소설을 좋아해 줘서.”
“뭐, 뭘요! 작가님의 소설은 무척이나 재밌는걸요!”
내 작품을 사랑하는 아이들을 데려왔다고 들었기에, 카이가 얼마나 내 책을 사랑하는지 알 수 있었다.
“아. 이건 선물이란다.”
나는 서점에서 구매한 책을 카이한테 내밀었다.
내 책은 아니었지만, 저 나이대에 읽으면 좋을 것 같은 책이었다.
“가, 감사합니다! 그, 근데 저는 드릴 게 없는데.....”
“하하 괜찮아. 그냥 내 개인적인 선물이야.”
“.....넵! 꼭 보답할게요!”
“아니 그냥 선물이야.”
“보답할게요! 보답하게 해주세요! 꼭요!”
“......그래.”
예전에 다이애나한테 보았던 광신도 같은 카이의 눈빛에 흠칫 놀랐다.
나는 다음으로 베일 역할을 맡은 흑인 아이한테 다가갔다.
“네가 안드레구나.”
“네! 반갑습니다, 작가님!”
“그래, 반갑다. 자. 선물이야.”
나는 카이와 같은 선물을 안드레한테 내밀었다.
“자손 대대로 간직할게요! 꼭이요!”
“아니 안 그래도 돼. 그냥 서점에서 사 온 책.....”
“꼭이요!”
“그, 그래..... 네 마음대로 하렴.”
“헤헤헤헤.”
안드레는 선물 받은 책을 꽉 끌어안으며 중얼거렸다.
“작가님의 소설은 전부 읽어봤어요. [드래곤 마스터]같은 경우는 이미 100번 넘게 읽어서 책이 너덜너덜해졌고, [사막의 제국] 같은 경우는 몇 페이지에 무슨 글자가 있는지까지 다 알고 있어요. [리턴 패션 디자이너] 같은 경우는 이미 책을 구매해서 페이지마다 벤자민이 무슨 생각을 할지 독후감을 적어놨고, [블랙 & 월드] 같은 경우는 이미 굿즈를 전부 구매해서 방안에 장식한 다음 하루에 한 번 인사를 하며 작가님의 영원한 안위와 함께......”
“......”
뭔가...... 위험하다.
이 아이들은 브록스의 순수함과는 다른 무언가가 있다고 내 본능이 말한다.
마치 광신도를 보는 듯한 느낌에 나는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렸다.
“하하..... 그, 그래. 열심히 하렴. 앞으로도 내 소설을 좋아해 주렴.”
“네!”
뭐. 내 소설을 좋아하는 아이들 위주로 데려왔으니까 그럴 수도 있긴 하지.
조금 무섭네.
나는 마지막으로 작품에서 중요한 핵심인 엘리시아 역할을 맡을 여자아이한테 다가갔다.
“네가 티아구나?”
“......안녕하세여.....”
다른 작품은 몰라도, 엘리시아의 역할만큼은 조금 더 깐깐하게 골라졌다.
작중에서 엘리시아도 카이와 같은 백인이지만, 그녀는 카이의 라이벌 역할이기도 했다.
카이를 상처입히면서도 같이 성장할 수 있는 그런 역할이기에, 엘리시아의 역할인 아이는 마치 귀족가의 영애처럼 보여야만 했다.
머리카락 색도 백금발이어야 했고, 상당히 길어야 했으며, 행동 하나하나에 자신감과 품위가 가득해야 했다.
‘번개 흉터 마법사의 말42 역할 같은 느낌이지.’
오만한 귀족 역할이지만 그 배역은 아마 다른 배역들보다 힘들었을 것이다.
혈통 유지로 인해 머리카락을 함부로 염색하는 것도, 피부가 타는 걸 방지해 해변에서 노는 것도 금지당했다.
거기에 마른 몸을 유지해야 해서 마음껏 먹지도 못했는데, 그런 역할임에도 영화 출연 시간은 총 31분밖에 안 되었기에 더욱 안타까운 느낌이었다.
다만, [드래곤 마스터]에선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보니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안녕 티아? 이건 선물이란다.”
이곳에 온 아이들 중에서 가장 부끄러움이 많아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카이와 안드레는 12살, 13살인 것에 반면 티아는 9살이라고 한다.
10살도 안 된 아이였지만 실버의 말에 따르면 소녀의 연기에 반해 1살 아래지만 캐스팅했다고 한다.
티아는 내가 들고 있는 책을 멀뚱멀뚱 쳐다보더니 이내 부끄러운 듯 말했다.
“저, 저도 선물이 있어요.....”
“선물?”
“네에..... 그, 근데.... 보고 나서 웃지 말아 주세요.”
“.....?”
티아의 말에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직접 만든 인형을 주려는 걸까?’
뭐. 아이가 만든 것인데 인형이 못생기면 어떤 건가.
오히려 그런 선물을 열심히 만들었을 아이가 귀여웠기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럼 나도 특별한 선물을 줄게. 우리 교환하자.”
“네! 자, 잠시만요!”
그러면서 저기서 좀 떨어져 있는 부모님한테 달려갔다.
그러자 아빠로 보이는 사람이 상자 하나를 가져왔다.
‘......상자?’
상자 안에는 공책이 가득했다.
‘......해적판?’
거기에는 내 소설의 제목이 적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