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화. 드래곤 마스터 배우 (2)
스페인계 어머니와 미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티아는 어렸을 적부터 책을 많이 읽어왔다.
이는 부모님의 교육 방책 때문인데, 하루에 한 시간은 책을 읽는 것이었다.
저녁이든, 아침이든 간에 하루에 한 번 책을 읽어주는 것이 두뇌 활동에 좋다는 말에 그렇게 시작하게 되었다.
다만, 그 책에는 종류가 없었다.
동화책이어도 좋고, 소설책이든 일반 장르문학이든 상관없었다. 심지어 만화책도 상관없었다 보니 티아는 책에 대한 거부감이 많이 줄어들었다.
책을 싫어하는 아이들을 보면 대부분 어렸을 적부터 책을 읽는 방법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부모의 잘못된 교육도 한몫하지만, 체력이 넘치는 아이들이 자리에 얌전히 앉아 책을 읽는 경우는 굉장히 드물었다.
그걸 알고 있는 티아의 부모님은 무슨 책을 읽든 상관없으니, 그저 아이가 ‘글씨를 읽는다’는 것만 이루었으면 했고 티아는 부모님의 바람을 알았는지 어렸을 적부터 책을 좋아하게 되었다.
‘재밌어.’
티아의 꿈은 작가였다.
‘나도 언젠가 제임스 작가처럼 될 거야!’
이런 티아는 [나인 드래곤]의 최우수회원이 될 정도로 제임스 작가를 좋아했다.
이를 알고 있는 사람은 오직 가족뿐, 나이가 9살밖에 안 된 아이가 최우수회원을 달 정도로 활동을 열심히 할 거라고 생각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심지어 카페 회장도 알지 못하는 사실이었다.
‘글을 쓰자.’
제임스 작가님이 어떻게 책을 잘 쓰게 되었는지는 Live 방송과 SNS를 통해서 들었다.
하루에 한 시간씩 글을 쓰고 많은 책을 접해봐라.
티아의 하루 일과는 침대에서 일어나 책을 읽은 다음, 학교에 갔다 온 후 카페 활동을 열심히 한 뒤 자기 전에 한 시간 동안 글을 쓰는 것이다.
‘헤헤. 제임스 작가님은 이 글을 읽으면 좋아하실까?’
일주일에 두 번 SC라스틱과 빌에이든 미디어에 팬레터를 보낼 정도로 제임스 작가를 좋아하는 티아는 하루하루가 행복했다.
글이라는 것이 이렇게 즐거울지는 몰랐다.
특히 가장 좋아하는 건 제임스 작가님의 사상을 따라 하는 것이었다.
‘이런 스토리는 어떨까?’
하루에 한 시간은 글을 쓸 때도 있지만, 제임스 작가님이 적은 소설을 자신만의 방법으로 해석하여 다시 글을 쓸 때도 있었다.
그게 하루하루 모이다 보니 거대한 상자에 모일 정도로 양이 많아졌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어느 날 미션 컴퍼니에서 일하는 아빠가 식사 자리에서 뜻밖의 소리를 내뱉었다.
“[드래곤 마스터] 엘리시아 역할 캐스팅 때문에 아무래도 장시간 출장을 가야 할 것 같아.”
“그 정도예요?”
“인근에 있는 엔터테인먼트에 아역들 신상정보를 전부 실버 감독님한테 보여줬는데 아무래도 실망하셨나 봐. 조금 더 크게 돌아다녀야 할 것 같아.”
“어느 정도 걸릴 것 같으세요?”
“후우..... 그건 모르겠어. 미국에 없으면 유럽으로 가야 하니까, 유럽에 없으면 백인들이 있는 나라라면 어디라도 가야 해.”
“......오래 걸리겠네요. 그런데 엘리시아가 백인 아이인가요?”
“응. 작중에서 귀족으로 나오니까. 다른 캐릭터는 외모를 안 봐서 괜찮은데 엘리시아 역할은 뭐랄까..... 귀족스러운 아이거든. 그래서 고르기가 더 쉽지가 않네.”
“어머나......”
제임스 작가의 소설에 빠지게 된 원인 중 하나가 바로 그의 아빠 때문이었다.
미션 컴퍼니에서 일하시는 덕분에 제임스 작가의 작품에 쉽게 접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그래, 우리 티아처럼 머리카락이 금발이고, 티아처럼 여리여리해야 하고, 티아처럼 예뻐야 하고, 티아처럼.....?”
햄버거를 입 안 가득 집어넣던 티아는 아빠의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티아야. 너 혹시 연기 해볼레?”
“.....싫어요.”
“그러지 말고 한 번만 해보자. 응? 네가 좋아하는 작품이잖아.”
“작가님이 그랬어요. 소설과 영화는 같으면서도 다른 역할이라고, 나는 소설을 좋아하는 거지 그 소설 안에 주역이 되고 싶지는 않아요.”
9살짜리라고 믿을 수 없는 논리적인 말에 티아의 아빠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맞아요. 티아가 어떻게 연기를 해요? 소극적인 아이인데.....”
“아니아니 그러니까 그냥 재미 삼아 연기를 해보는 건.....?”
“싫어요.”
낯선 사람을 만나면 소극적으로 변하는 티아를 알고 있기 때문인지 아빠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그래도 아쉽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쩝...... 아쉽네. 티아라면 정말 잘 어울릴 텐데.”
“연기를 해본 아이도 아닌 데요 뭘. 그래도 아쉽긴 하겠네요. 그치 티아야?”
“......응?”
감자튀김을 오물오물 씹고 있던 티아는 그게 무슨 말이냐며 엄마를 바라봤다.
“제임스 작가님을 직접 만날 수 있는 기회잖니? 그리고 영화를 시작하면 작가님하고 대화도 많이 할 텐데 그러면 글에 대해 물어볼 수도 있는 거 아니니?”
“.....!”
다른 작품들과는 다르게 [드래곤 마스터] 같은 경우는 배우들하고 작가하고 소통을 해야 했다.
CG 연출이 과한 영화다 보니 배우들이 중간에 집중력이나 방향을 잃을 수 있기에 그걸 작가가 잡아줘야 했고, 시나리오 중간마다 틀어질 수 있기에 그때마다 제임스 작가와 함께 소통해야 했다.
“.....할래.”
“...뭐?”
티아의 말에 아빠는 좌절했다.
“젠장. 왜 딸을 빼앗긴 느낌이 나는 거지?”
“어머. 어차피 합격 못 할수도 있는데 뭐 어때요?”
연기도 처음하고, 소극적인 성격을 가진 아이가 남들 앞에서 연기를 한다는 것 자체를 생각해 본 적 없는 부모님들이기에 당연히 합격하지 못 할 거라 생각했다.
오히려 연기를 할 때 무서워서 울지나 않았으면 했다.
“하하하하....... 미쳐버리겠네.”
“당신이 권유한 거잖아요?”
“그건 그래도..... 이렇게 될 줄 누가 알았겠어?”
아빠의 한탄을 무시하며 티아는 슬며시 불끈 주먹을 쥐었다.
“.....아싸.”
그리고 티아의 연기는 실버 감독님의 눈에 들었다.
***
거대한 상자를 들고 온 남자는 나도 익히 알고 있는 남자다.
캐스팅 디렉터 밑에서 일했던 남자 중의 한 명이기에 이름은 모르지만 그래도 얼굴은 알고 있었다.
“이, 읽어주셨으면 해요......”
“음.....”
책 위에는 내 작품의 이름이 적혀 있었고, 그 책마다 어느 스토리 부분인지 적혀 있었다.
무엇보다.
‘왜 이리 많아?’
너무 많았다.
많아도 너무 많아서, 들고 있던 아빠로 보이는 남성이 힘들어서 낑낑거리고 있었다.
“내려놓으셔도 돼요.”
“아. 넵!”
나한테 보여주느라 엉거주춤한 자세로 있던 남성은 서둘러 내 앞에 상자를 내려놨다.
상자를 내려놓고 보니 그 양이 더 많아 보였다.
‘이걸 다 혼자서 쓴 건가?’
나는 가장 먼저 맨 위에 있는 책을 들어 올려 펼쳐봤다.
티아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조마조마한 얼굴로 내 답변을 기다렸다.
“음......”
[드래곤 마스터]라 적혀 있었고, 그 옆에는 [하스의 분노]라고 적혀 있었다.
아마도 엘리시아가 하스를 괴롭혔을 때를 자신만의 방법으로 적어 놓은 것 같았다.
‘역시 이런가.’
엘리시아가 자신의 드래곤 ‘록스’로 하스를 괴롭혔을 때, 하스는 유전적인 요소로 인해 반항하지 못하고 낑낑거린다.
본래는 로얀이 와서 록스의 머리를 향해 주먹을 내리치는 스토리였지만, 티아가 적은 스토리는 조금 달랐다.
겁을 먹고 도망가는 록스와는 달리, 티아의 소설에는 오히려 록스가 로얀을 위협한다.
거기서 끙끙거리던 하스가 록스를 공격하는 것으로, 서로의 유대를 확인하고 하스가 강해지는 방법으로 나아간다.
‘재미는 있네. 근데 너무 상상력이 어린아이 같아.’
유전적인 요소가 깊게 박혀있는 하스가 갑자기 각성한 것도 이해가 되질 않았고, 록스 또한 어린 드래곤인지라 인간의 아이보다 약한데 역으로 위협한다는 발상도 말이 되질 않았다.
어린아이기에 그저 단편적으로 생각한 거겠지만, 그 사실을 사실 그대로 말해 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재밌네.”
신선한 아이디어라서 재미가 없지는 않았다.
“저, 정말요?”
“응. 신선해.”
“다, 다행이다..... 헤헤.”
티아는 기쁘다는 듯 헤헤 웃었다.
“자. 그럼 티아를 위한 특별한 선물을 줘야 하는데..... 뭐가 가지고 싶니?”
내 책을 사랑하여 이렇게까지 많은 글을 적었는데, 나도 특별한 무언가를 선물해주고 싶었다.
물론 많아도 너무 많기는 했지만, 그만큼 내 글을 사랑해준다는 것이니 오히려 고마웠다.
“저..... 혹시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요......”
“응. 부담 없이 말해 보렴.”
“그, 글 쓰는 법을 가르쳐 주세요!”
“......흐음?”
티아는 당당하게 부탁했다.
***
미션 컴퍼니 측에서 준비한 소소한 파티가 시작되었다.
그저 서로의 안부를 묻는 그런 소소한 파티였지만, 앞으로 함께 작품을 만들어갈 사람들이다 보니 이런 식으로 친분을 쌓는 것이다.
하지만 배우들은 나한테 다가오지 못하고 있었다.
“작가님! 이것 보세요!”
“여기요! 이것도 드셔 보세요!”
“하하..... 그, 그래.....”
아이들에 둘러싸여 있는 제임스 작가한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힘들어..... 살려줘..... 거기 사람들 저 좀 구해주세요.....’
아이들 체력이 얼마나 좋은지, 아이들 대답에 하나하나 답해주고 놀아주다 보니 내 정신이 오락가락해질 정도였다.
나를 여기서 탈출시켜달라는 눈빛을 보냈지만, 배우분들은 오히려 그걸 좋아한다는 눈빛으로 이해했는지 하하 웃으며 그저 지켜볼 뿐이었다.
그런 나에게 구세주가 다가왔다.
“애들아. 제임스 작가님도 이제 쉬어야지.”
메디슨 누나가 다가와서 나를 구출해주었다.
역시 가족이다.
남들이 눈치채지 못한 내 마음을 눈치채고 나를 구출해주기 위해 온 것이다.
“에엑..... 저 작가님하고 더 대화하고 싶어요.”
“저도 작가님하고 더 놀고 싶어요.”
“저도요!”
애들 말에 메디슨은 싱긋 웃으며 말했다.
“작가님도 그러고 싶어 하겠지만, 아침부터 글 쓰느라 고생하셔서 많이 피곤하실 거야. 오늘만 인연이 아니니 이제 그만 작가님을 놔주는 건 어떻겠니?”
“......아쉬운데.”
“자자. 제임스 작가님도 이제 쉬게 해줘야지. 작가님이 병상에서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아직 몸이 편찮으시거든.”
그제야 아이들은 달라붙어 있던 내 몸에서 떨어졌다.
“다음에 봬요!”
“그때는 꼭 이야기해주세요!”
“다음 소설에 꼭 제 이름 넣어 주세요!”
“하하..... 그, 그래.”
아이들이 각자의 부모님한테 가고 나서야 나는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누나는 한숨을 쉬며 내 옷매무새를 만져주었다.
“왜 그냥 가만히 있어? 아이들 어리광 들어주면 한도 끝도 없을 텐데.”
“그래도 처음 만난 아이들한테 화를 낼 수도 없잖아. 전부 나를 좋아해서 그러는 건데.”
“두 번 좋아했다가 너 죽겠다.”
그렇게 옷매무새를 정리하고 있을 때.
다른 아이들 사이에 섞이지 못해 우물쭈물하고 있던 티아가 저 멀리서 여전히 나를 힐끔힐끔 바라보고 있었다.
아이들하고 놀고 있을 때도 티아의 뜨거운 눈빛이 느껴질 정도였다.
“아. 그러고 보니까 저 아이 부모님하고 이야기 해봤거든?”
누나도 그런 티아의 시선을 느꼈는지 아까 파티에서 부모님들하고 이야기했던 내용이 생각난 듯싶었다.
“응.”
“저 아이 [나인 드래곤] 최우수회원이라는데?”
“......”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