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화. 발매
최우수회원이 어린아이일 거라고 생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올리비아한테 들었다시피, 카페를 설립할 당시에는 [사막의 전갈]밖에 없었다 보니 어린아이가 읽을 수 없는 등급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카페 설립 당시 회원이 아닌, 콜린처럼 미친 듯이 카페 활동을 해왔다는 것이다.
‘저 나이부터?’
그게 가능하다고?
놀란 눈으로 티아를 바라보자, 티아는 화들짝 놀라며 아빠의 등 뒤로 숨었다.
저렇게 순수한 아이가 최우수회원이라고 하니 얼마나 내 작품을 좋아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들어줄 거야?”
“글 쓰는 법 가르쳐 달라는 거?”
“응. 물어보니까 너희 집하고 걸어서 10~20분 정도 걸린다고 하더라.”
“.....가깝네?”
“그래서 어떻게 할 거야?”
“음......”
솔직히 말해서 상관없었다.
캐서린도 나한테 글 쓰는 법을 가르쳐 달라고 한 적이 있었지만, 나는 그저 품평과 주의만 줬을 뿐 특별한 걸 가르쳐주지는 않았다.
이유야 많지만 가장 중요한 건 캐서린이 글로 돈을 벌려고 하는 중이었기에, 나한테 물들어 글의 방향성을 잃을까 봐서였다.
하지만 티아처럼 어린 나이라면 해당되지 않았다. 글을 쓰는 걸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하고 계속되는 성장 속에서 자신만의 글을 나로 인해 찾을 수도 있을 테니까.
무엇보다 받은 선물의 답례를 하기로 하였으니 나쁘진 않으리라.
“제자를 들여보는 건 어떻냐고 권유를 받기도 했잖아? 티아는 제자라고 하기엔 너무 어리지만 조금 조언 정도로 해주는 게 어때?”
“하긴, 요즘 글이 좀 막혔는데 그래 보는 것도 좋긴 하겠네.”
일상물을 적으려면 아무래도 나한테 색다른 경험이 필요할 것이라 생각했다.
“다른 아이들도 티아가 글을 가르쳐달라는 걸 들었으니까. 지금 말하면 부러워할 거야. 그러니까 누나가 개인적으로 내 번호 좀 알려주고 와줘.”
“알았어. 연락은 언제 하라고 할까?”
“언제든지 하라고 해. 어차피 요즘 시간 널널하니까.”
누나는 이내 티아한테 다가가 내 전화번호를 주고 왔다.
티아는 누나가 내민 전화번호가 적힌 쪽지를 보자 환한 미소를 지으며 나한테 손을 흔들었고, 나도 그에 응답하듯 손을 흔들어주었다.
그렇게 파티는 잔잔하게 흘러갔다.
***
집에 갈 때 운전은 누나가 하다 보니 이번에는 술을 조금 마셨다.
물론 샴페인 같은 도수가 낮은 술들이 대부분이었기에 취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파티에서 많은 양의 음식을 먹지도 못했고 무엇보다 아이들과 놀아주느라 체력이 많이 소비되어 음식이 먹고 싶어졌다.
누나도 주변인들과 대화하느라 많은 양의 음식을 먹지 못해서, 오래간만에 집에서 요리해 먹기로 했다.
물론 나가서 먹는 게 더 편하지만, 누나의 다이어트를 위해 집에서 먹기로 했다.
“......나는 좀 다른 거 먹으면 안 돼?”
“안 돼.”
“......”
그렇게 마련된 저녁 식단은 곡물빵과 닭가슴살 그리고 샐러드, 그뿐이었다.
100번 양보해서 누나는 닭가슴살을 먹고 나한테는 소고기를 구워주기는 했지만, 기름도 없는 부위였다 보니 전혀 맛있어 보이지 않았다.
나는 한숨을 쉬며 맥주를 가져와 그 옆에 놓았다.
“그래서 이번에 쓰려는 소설이 그렇게 안 써진다고?”
“응. 아무래도 좀 어렵네.”
잔잔한 일상물이다.
굴곡은 많지만 그래도 사람의 인생을 책으로 표현하는 게 생각보다 어려웠다.
“제목은 정해졌어?”
“그것도 아직.”
보통 나는 제목을 대충 지은 다음에 내용을 적어가는 식으로 글을 적지만, 이번 소설은 그러지 못했다.
처음 진행해보는 소설이다 보니 아예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도 막막했다.
주인공의 어린 시절부터 시작해야 할지, 아니면 회상신을 넣어야 할지 그 무엇도 정하지 못했기에 아직까지 아무것도 진행된 게 없었다.
“아. 그나저나 내일 두 편이나 나오네.”
“뭐. [드래곤 마스터 2부] 같은 경우는 양장본 이벤트를 또 진행한다고 하는데, 이번에도 1만 권 하려나?”
그럼 또 손가락을 풀어놔야 하는데.
“아. 이벤트하니까 생각났네. 지금 전화해도 받으려나?”
“누구한테 하게?”
“에일리한테.”
“밥 먹고 하는 게 좋지 않아?”
“.....이미 다 먹었어.”
누나는 이번 주말까지 집에 있다 보니, 누나가 잠을 자면 24시 식당으로 가서 밥을 먹을 생각이었다.
다이어트하지 않는 나로선 이 음식을 먹는 건 지옥이나 다름없었다.
아무튼 에일리한테 전화를 거니 연결음이 얼마 지나지 않아 전화를 받았다.
-제임스? 무슨 일이야? 또 인터뷰 필요해?
“인터뷰는 아니고 혹시 아직도 디자이너 공부를 하나 해서.”
-하고는 있는데, 아무래도 앤을 돌보느라 많이 못 하고 있기는 하지? 근데 왜?
“[리턴 패션 디자이너] 이벤트를 하려고 하거든 그거에 대해서 부탁 좀 하려고.”
-이벤트? 나한테?
“응. [리턴 패션 디자이너 1권]에 등장하는 옷을 디자인해볼까 생각 중인데 네가 해주면 어떨까 싶거든.”
에일리한테 부탁하려는 의도는 친구여서가 아니라 그녀를 모티브로 책을 썼기 때문이다.
거기에 디자이너를 꿈꾸고 있으니 에일리한테도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앤 때문에 바쁘면 다른 사람한테 부탁하고.”
-아니! 할게! 이 기회를 놓칠 수는 없지! 무조건 해야지!
“근데 가능하겠어? 앤 돌보느라 바쁘지 않아?”
-기간에 따라 다르기는 한데..... 베이비시터한테 잠시 맡기든가 아니면 엄마한테 잠깐 부탁해야지 뭐. 언제까지 해야 하는데?
“일단 [리턴 패션 디자이너] 1권 읽어봐봐. 거기에 나오는 칼리아가 가장 좋아하는 드레스가 있거든?”
-아. 당연히 봤지.
“응? 봤다고?”
-어. 저번에 인터뷰하고 나서 봤어. 확실히 태교에 좋은 소설은 아닌 것 같더라. 그날 읽고 며칠 동안 눈물 쏙 뺀 것 같아.
“네가 읽었을 줄은 몰랐는데, 책 싫어하잖아?”
-글씨가 많은 책을 좋아하지는 않는데, 웹소설이었나? 아무튼 그건 읽기 쉽더라고.
웹소설을 읽기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반대로 웹소설이기에 더욱 집중되는 사람들도 있다.
책은 두껍다 보니, 책을 보자마자 머리가 아파 와 글씨에 제대로 집중하지 못하는 사람이 바로 에일리였다.
웹소설 같은 경우는 한 화씩 나누어져 있다 보니 글씨 수가 정해져 있어 한 스토리를 보다 더 집중적으로 읽을 수 있다 보니 에일리한테는 편할 것이다.
-근데 칼리아가 가장 좋아하는 드레스..... 그거 입고 죽지 않아?
“......”
그렇긴 하다.
그거 입고 테러를 당해 죽으니까 말이다.
“근데 1권에는 딱히 옷에 관한 건 나오지 않아서 말이야.”
-하지만 네가 말한 건 오히려 2권에 어울리지 않아? 일단 2권 초반 내용이 그 드레스잖아.
“그건..... 그렇지? 흠. 그럼 2권하고 동시에 이벤트를 진행하는 편이 좋으려나..... 그런데 이건 출판사 의견을 물어봐야 할 것 같은데?”
-차라리 다른 건 어때? 뭐 좀 새로운 거 없어? 그때 당시 루시가 입고 있던 옷이라든가?
“그것도 좋기는 한데..... 뭔가 피날레가 생각나지는 않네. 무엇보다 칼리아가 죽었을 때 옷을 아이들한테 입히기는 하려나?”
-그럼 어떻게 하게?
“일단 출판사와 대화는 해봐야겠는데..... 에이 아니다. 그냥 진행 시켜.”
-그래도 돼?
“응. 어차피 1권은 발매된 지 좀 됐고, 2권도 현재 연재 중이니까 상관없겠지. 2권 발매할 때 또 옷 이벤트를 하게 될 텐데 그때는 좀 다른 걸로 하면 될 거야.”
아직 2권을 진행하지 않았으니까 그래도 되겠지.
내용이야 내가 추가하면 되니까.
-그럼 그렇게 할게. 디자인 도안 보낼 테니까 문자로 메일 좀 보내줘.
“응. 알겠어.”
-그런데..... 가장 중요한 금액은?
“섭섭하지 않게 줄 테니까 걱정하지 마. 하하.”
-히히. 기대하고 있을게.
그렇게 전화가 끊기고 나는 문자로 메일을 보내주었다.
“이번 주까지만 쉬고 [리턴 패션 디자이너]도 연재를 시작해야지.”
핸드폰을 내려놓고 나는 퍽퍽한 소고기를 들어 올렸다.
***
다음 날 새벽이 되자마자 여러 기사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제임스 작가의 대결? 아니, 출판사의 대결!]
[악마의 숨결은 과연 어디로 향할 것인가?]
[아동문학의 진수 SC라스틱! ‘이번 시대 최고의 작품은 <드래곤 마스터>다! 1부에서 증명되었다시피 우리가 이길 것이다.’]
[빌에이든 미디어 ‘<일곱 개의 죄악> 시리즈를 한 번도 읽어보지 못한 모 기업의 대머리가 불쌍하다. 아동용 소설을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제임스 작가의 별명에 가장 걸맞는 소설일 것이다.’]
금요일 동시에 시작되는 출판 대결.
솔직히 [일곱 개의 죄악 : 【질투】]가 조금 더 우세하다는 평이 많았다.
이유야 많지만 가장 명확한 이유는 추리 소설이기 때문이다.
추리 소설 같은 경우 인기가 많은 나라에서나 인기가 있었고, 내용이 현실적이지 않으면 인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반대로 인기 있는 추리 소설 같은 경우는 빠져드는 맛이 차원이 달랐다.
사람들은 제임스의 성향과 가장 잘 어울리는 소설을 추리 소설이라고 생각하기에 그 기대감은 다른 소설들과 차원이 달랐다.
사람들은 언제나처럼 서점으로 가서 서 있었다.
‘굳이 판매량을 비교해야 하나?’
책을 사기 위해 새벽부터 줄을 서 있던 베시는 핸드폰에서 흘러나오는 뉴스를 보며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과거 Miss USA 수상 경력이라는 특별한 경험이 있는 베시는 또 다른 특별한 경험이 있었다.
그건 바로 제임스 작가 사인회 첫 손님이라는 점이다.
브루클린 북페스티벌에서 전날부터 서 있었던 베시는 모델계에서 일찍 은퇴하여 작가 지망생이 되었다.
다만, 작가의 일이 쉽지 않다 보니, 금전적인 문제로 다시 모델로 복귀하여 취미 삼아 글을 쓰며 작가의 꿈을 아직도 마음에 품고 있었다.
‘그래도 기대되긴 하네.’
제임스 작가의 추리 소설.
다른 소설들과 다르게 이번 소설은 그 어떤 소문도 없었다.
카페에서도 이번 소설이 무슨 소설인지는 알려지지 않았고, 그저 작가님 피셜로 주인공이 조현병 환자라는 것 정도만 알려져 있었다.
“하아.....”
아직 겨울이라 새벽부터 줄을 서 있는 건 역시 힘들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새벽부터 나왔음에도 줄이 길었으니까.
‘많이 뽑아냈다고 해도......’
각 서점마다 사람들이 이렇게 줄 서 있는데 그게 무슨 소용일까.
특히, 오늘 같은 경우는 두 책이 동시에 나오다 보니 더욱 사람들이 많았다.
‘오늘 살 수는 있을까?’
베시는 추위에 손을 호호 불며 서점이 열기를 기다렸다.
‘제임스 작가님 소설이 나오는 날은 조금 일찍 열어주지.....’
이렇게 융통성이 없어서야.
하지만 이건 베시뿐만 아니라 모두의 생각이었다.
모두 추위에 덜덜 떨며 서점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을 때, 드디어 태양이 떠오르고 서점의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다만, 손님이 들어오기 전에 서점 사장님이 먼저 밖으로 나와 문에 무언가를 붙였다.
「책 한 권씩만 구매 가능. 사재기 금지.」
이러한 표지는 이곳뿐만 아니라 미국 전역에 있는 서점에 붙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