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화. 기자회견
블루스타게이트는 이름 높은 호텔을 빌렸다.
호텔 옥상에서 이루어지는 파티는 내가 영화 속에서나 보던 파티와 똑같았다.
아름다운 하늘을 배경 삼아 잔잔한 음악과 함께 이루어지는 파티에서 나는 그저 평범한 옷을 입고 있었다.
“......”
나는 분명 소소한 파티라고 들었기에 그리 옷에 신경 쓰지 않았다.
저번에 미션 컴퍼니에 갈 때 입었던 옷을 그대로 입고 나왔다.
‘소소한 파티라며?’
호텔에서 소소한 파티를 즐긴 적도 많았기에 이번에도 그냥 그러려니 했다.
그냥 깔끔하게 입고 가면 충분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누나?”
“음..... 나도 이건 예상 못 했는데?”
무엇보다도 파티를 하러 왔는데 기자들이 이렇게나 많을 줄은 몰랐다.
기자들 또한 파티를 즐기려고 왔는지 카메라를 가지고 있었지만 복장이 전부 깔끔했다.
‘기자회견을 하고 파티를 하자는 건가?’
아무래도 그런 것 같았다.
사전에 이러한 정보를 듣지 못했는지 누나는 어두워진 얼굴로 누군가와 통화를 하기 위해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그렇게 잠시 호텔 옥상 구석에 있을 때 누군가 우리 앞으로 다가왔다.
“작가님! 오래간만이에요!”
“아. 에밀라?”
파티 드레스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깔끔한 정장을 입고 온 에밀라는 헤헤 웃으며 우리한테 다가왔다.
“에밀라, 이게 어떻게 된 거예요? 왜 이렇게 기자들이 많은 거예요?”
“마그누스 감독님이 갑작스럽게 기자들을 호출해서 이렇게 된 거예요. 아무래도 시사회 때 작가님이 오지 않아서.....”
‘삐졌구나.’
이제야 이해가 되었다.
“거기에 작가님이 이번 영화에 대해 아무런 품평도 하지 않는다는 말에 기자들이 안달 났거든요. 그것 때문인지 예상했던 것보다 많은 사람들이 몰린 것 같아요.”
“.....음.”
“지금이라도 물릴까요?”
“.....그럴 수야 없죠.”
이렇게 많은 기자들을 어떻게 물린단 말인가.
거기에 마그누스 감독님의 화를 조금이라도 풀어드리려면 인터뷰를 하는 편이 좋았다.
누나도 핸드폰 통화를 마치고 내 옆으로 다가왔다.
“아무래도 한스 대표도 갑작스럽게 벌어질 일이라 당황한 것 같아. 마그누스 감독님도 생각지도 못한 기자들의 수에 당황하신 것 같으시고.”
“......할 수 없지 뭐. 파티가 시작되기 전에 몇 분 정도 인터뷰를 하는 게 좋겠지.”
“사전에 질이 좋지 못한 기자들은 배제시켜 놨다니까 괜찮을 거야.”
루이나 누나가 웬만하면 인터뷰를 하지 말라고 했지만, 이번에는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무례한 질문을 한 경험이 있는 기자들은 전부 사전에 배제시켜 놨다고 하니 그나마 안심이 되었다.
시간이 지나자 슬슬 사람들이 파티장에 도착하기 시작했다.
파티의 시작은 오후 4시다 보니, 우리가 비교적 일찍 도착했기 때문이다.
마그누스 감독님을 포함한 스태프, 배우들이 도착하고 나자 우리는 블루스타게이트가 급하게 만들어 놓은 호텔 회견장으로 내려갔다.
***
태어나서 처음으로 인터뷰를 하지만, 그래도 이와 비슷한 건 해 본 적이 많았다.
Live 방송도 있었고, SNS로 진행한 Q&A도 있었다 보니 긴장감이 엄청 심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그 생각은 곧 바뀌었다.
-찰칵! 찰칵! 찰칵! 찰칵! 찰칵! 찰칵! 찰칵!
눈앞에 태양이라도 떠오른 것처럼 눈을 뜨지 못할 정도의 밝은 빛에 나는 주눅 들었다.
갑작스러운 회견임에도 기자들은 굉장히 많이 모여 있었다.
“뭐하나? 얼른 오게.”
“아.... 네.”
나는 뒤늦게 배우들이 앉아있는 의자 중에 남아있는 자리에 가서 앉았다.
내 옆에는 라울이 앉아있었는데, 그래도 아는 사람이 옆에 있어서 그런지 편안했다.
‘머리카락이 조금 잘랐네.’
[사막의 전갈]에서 아내의 여동생을 구하기 위해 머리카락을 전부 밀어버리는 씬이 있었는데, 라울은 자신의 실제 머리카락을 밀어버렸다.
그 때문에 리얼리티는 살아났지만, 라울의 잘생긴 외모가 가려져서 조금은 안타까웠다.
“아. 작가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하하. 오랜만입니다.”
라울은 내가 다가오자 웃음을 지었다.
우리는 기자회견이 끝나고 파티에서 이야기하자는 말을 한 뒤 기자들을 바라봤다.
사진을 어느 정도 찍었는지, 기자 한 명이 마이크를 들고 자리에서 이러나 우리를 바라봤다.
[ABA 연예계 기자 조던입니다. 반갑습니다, 제임스 작가님.]
그 말에 나는 내 앞에 있는 마이크를 들어 올렸다.
“반가워요, 조던.”
ABA 연예계 기자라면 나도 인연이 있는 사람이 있었다.
제인든이라는 기자인데 아무래도 거리가 거리다 보니 못 온 것 같았다.
이번 기회에 얼굴이나 볼 줄 알았는데 무리였나 보다.
[이번 영화 보셨나요?]
“물론 봤어요. 개봉일에는 집에 오느라 보지 못했지만요.”
[전갈이라는 제목하고 어울리지 않는 추격신이라 실망하는 사람들도 많던데, 그거에 대해서 제임스 작가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음.... 아실 분도 아시겠지만, [사막의 전갈]은 애초부터 그 제목이 아니었어요.”
내 말에 어느 기자들은 알고 있었는지 고개를 끄덕였고, 처음 듣는 소식에 내 말을 서둘러 수첩에 적는 기자들도 있었다.
“[사막의 전쟁]이죠. 그렇다고 [사막의 전갈]이라는 제목이 마음에 안 드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본래 역할에 맞는 제목이 있었다 보니 제목하고 맞다, 맞지 않다는 제가 판단할 문제가 아닌 것 같네요.”
[답변 감사드립니다. 개인적으로 이번 영화에 점수를 매긴다면 몇 점을 주고 싶습니까?]
“하하. 10점 만점 중에 9.99점을 드리고 싶네요.”
[나머지 0.01점은 왜 부족한가요?]
“배우들의 연기와 스태프들의 노력이 전부 들어갔지만 제 노력은 들어간 것 같지 않아서요. 0.01점은 저의 자책점이라고 판단해주세요.”
[하하. 네. 답변 감사합니다.]
조던이 자리에 앉자, 그다음 옆에 있던 젊은 여성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CCB 연예부 기자 조헨나라고 해요. 반가워요, 작가님.]
“네. 반가워요, 조헨나.”
[할리우드 스타 배우 올리비아와의 스캔들이 있었는데 기분이 어땠나요?]
크리스마스에 있었던 스캔들을 이야기하는 듯싶었다.
그때 올리비아가 SNS에 게시글을 올려 그 사실을 부정했었다.
“하하. 최고의 스타와 스캔들은 기분 좋지만, 애석하게도 저와 올리비아는 그저 아무런 관계도 아니에요. 굳이 관계라고 하자면 비즈니스 관계라고 해야 할까요?”
올리비아가 [블랠 & 월드] 드라이어드 역할로 캐스팅되었다는 소식은 이미 널리 퍼져 있었기에 비즈니스라는 관계도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거기에 더 추가한다면 봉사 활동 동료 관계도 맞는 말이겠네요.”
[답변 감사해요. 아. 그리고 루이 파놀라나 감독님이 제임스 작가님의 새로운 신작 [일곱 개의 죄악]을 연출해 보고 싶다고 아침에 개인 SNS에 올리셨는데 알고 계신가요?]
‘.....루이 파놀라나?’
그 말에 기자회견을 지켜보고 있던 한스와 에밀라의 눈이 빛났다.
“......음. 저야 좋습니다. 제 작품을 한계의 한계까지 끌어올릴 수 있는 명감독님이시니까요. 하지만 이건 지금 이야기할 게 아닌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일곱 개의 죄악]은 아직 발매된 지 하루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너무 성급한 게 아닌가 싶네요.”
[네. 답변 감사드립니다.]
내 말이 충분한 답변이 되었는지 조헨나는 만족하며 자리에 앉았다.
그로부터 인터뷰는 계속해서 진행되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결국에는 시간상 마지막 기자만 인터뷰하고 끝을 내기로 했다.
[ACC 연예부 기자 프랑이라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프랑. 시간상 프랑의 질문을 받고 회견을 끝내야 할 것 같네요. 하하.”
[운이 좋네요.]
프랑이라 불린 흑인 남성은 하하 웃으며 마지막 질문을 하였다.
[작가님 브록스라는 아이한테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으신 말이 있으신가요?]
“......”
프랑의 말에 나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잠시 시간이 흐르고 나는 마이크를 들어 올렸다.
“이미..... 남기고 왔습니다. 그러니 제가 무슨 말을 하였는지는 밝히지 않겠습니다.”
[그렇군요..... 크흠! 네. 알겠습니다. 그럼 마지막으로 작가님은 목표가 어디까지이신가요?]
프랑의 말에 나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하지만 이내 입꼬리를 위로 올리며 말했다.
“목표를 정한 적은 없습니다. 작가란 항상 도전해야 한다고 마그누스 감독님께 들었습니다. 정상을 차지하고 싶지도 않고요. 저는 그저 계속 도전하겠습니다. 그게 어디까지라도.... 제 목표입니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기자회견은 마무리되었다.
***
기자회견이 끝난 뒤 파티가 시작되고 아까 인터뷰를 진행했던 기자들과 함께 파티가 시작되었다.
파티가 시작되자 나한테 가장 먼저 다가온 사람은 마그누스 감독님이었다.
“오랜만에 뵙는구만.”
“하하. 아까는 경황이 없어서 제대로 인사를 못 했네요.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흐음?”
마그누스 감독님은 나를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자네 무슨 일 있었나?”
“예?”
“흠..... 아니 그냥.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뭔가 후련해 보이는군.”
제임스의 웃는 얼굴에 마그누스는 순간적으로 누군가의 얼굴과 겹쳐 보였다.
하지만 이내 착각이라 생각하며 고개를 흔들고 다시 제임스를 바라봤다.
“그래서 휴식은 잘 취했나?”
“네에..... 오래간만에 고향으로 가서 그런지 푹 쉬다 돌아왔어요.”
“깨달은 게 있나 보군?”
“휴식은 적절하게 필요하다는 것 정도? 하하.”
“맞네. 저번에도 말했지만 휴식은 정말 필요하지. 너무 앞서 갈 생각하지 말고 글 쓰다가 휴식도 자주 취하게나.”
“네. 앞으로 그래야죠. 근데 오늘 너무 갑작스럽게 기자회견을 연 거 아니에요? 미리 말씀 좀 해주시지 그랬어요. 떨려서 혼났어요.”
“쯧. 그러게 시사회 때 오지 말라고 했나? 기자들이 자네하고 인터뷰하고 싶다고 얼마나 안달 냈는지는 아나? 아주 극성이야 극성.”
“하하..... 다음부터는 조심할게요. 그래도 오늘은 정말 많이 떨렸는걸요? 다음부터는 말씀 좀 해주세요.”
“내가 내린 벌일세.”
“하하.”
어차피 지나간 일이었기에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았다.
마그누스 감독님과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다가 문득 2부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지금 기세로만 보자면 열흘.... 아니 일주일이면 1억 달러를 경신할 것 같네. 이렇게 빠르게 경신될 줄은 몰랐지만..... 아무튼 2부는 어떻게 할 건가?”
“다음 주부터 [리턴 패션 디자이너] 연재를 시작하면서 미리 적어놔야죠.”
아 쓰기 싫네.
“2부도 맡아 주실 거죠?”
“끌끌...... 의뢰를 맡으면 해야지. 그보다 자네 손님이 왔군?”
“네?”
마그누스 감독님의 말에 뒤를 돌아보니, 삭발된 머리로 기분 좋은 미소를 짓고 있는 라울이 샴페인 두 잔을 들고 서 있었다.
“안녕하세요, 감독님. 지금 2부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 것 같은데 저도 이야기에 끼어들어도 될까요?”
그리고 그와 함께 2부의 핵심이 될 ‘코미디언 배우’가 웃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