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시골촌놈인 줄 알았는데 천재작가였다-184화 (183/216)

184화. 티아

1일 이용권을 끊어서 헬스장에 가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누나도 회원 등록을 해놓은 상태였다.

비록 일요일이지만 아리아나는 출근한 상태였고, 아리아나는 PT 등록도 하지 않은 누나의 운동을 친절하게 봐주었다.

트레이너와 회원의 관계가 아닌, 마치 친한 친구의 동생 같은 느낌이었기에 보다 더 정확하게 알려주는 것 같았다.

누나도 체력은 상당히 있었는지, 힘든 운동을 끝까지 따라 했고, 덩달아 나도 그거에 맞게 진행 속도를 올려야 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이루어졌지만, 그래도 하다 보니 시간은 금세 지나갔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곧장 컴퓨터를 켜고 지금까지 쓰고 있던 브록스의 이야기를 다시 적을 준비를 하였다.

“누나는 어떻게 할래?”

집중하려는 찰나, 운동을 끝나고 돌아와 소파에 퍼질러 누워있는 누나를 바라봤다.

“나는 저녁에나 가야지 뭐.”

“차라리 이 빌딩에 사는 게 어때? 운동도 회원권 등록까지 해놨잖아?”

“음..... 근데 전 집 보증금 기간이 남아서 말이야. 어차피 너희 집 올 때마다 헬스장 갈 생각이라서 회원 등록은 해놨는데, 아무래도 사는 건 안 될 것 같은데?”

“.....”

그렇게 말하면 또 할 말이 없지.

아무튼 간에 누나는 저녁에 간다고 하고 다시 소파에 퍼질러 누워있었다.

“그나저나. 연락이 없네?”

“누구?”

“티아 말이야.”

연락을 준다고 했는데 아직까지도 연락이 없었다.

“그때 봤을 때 티아는 낯을 많이 가리는 것 같던데? 차라리 네가 먼저 연락을 해보는 건 어때?”

“음..... 근데 나 연락처 모르는데?”

“내가 알고 있기는 해. 티아 아버지가 미션 컴퍼니 직원이니까.”

티아가 주말쯤에 연락을 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연락을 하지 않자 살짝 궁금해지긴 했다.

무엇보다 지금 쓰려는 브록스 이야기도 잘 써지고 있지 않았고, [리턴 패션 디자이너] 같은 경우도 어느 정도 글을 계속 쓰고 있어서 시간이 조금 비었다.

그렇다 보니 색다른 경험이 필요한 지금, 티아와 연락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시간도 시간이니 오지는 못할 것 같고, 일단 연락만 좀 해놔 볼까?”

티아의 성격상 아무래도 직접 연락을 기다리는 건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았다.

아예 안 할 가능성도 있었다 보니, 주말이기는 하지만 연락을 해보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자.”

누나는 핸드폰을 잠시 뒤지더니 나한테 연락처를 알려주었다.

잠시 망설인 나는 누나 폰에 적힌 번호에 전화를 걸었다.

***

티아는 제임스 작가의 많은 팬들 중에서, 개인 번호를 가지고 있는 몇 안 되는 팬이었다.

굳이 있다고 하면 올리비아, 캐서린, 이사벨 정도?

그렇다 보니 처음 제임스 작가의 번호를 얻었을 때만 해도 하늘로 날아갈 것처럼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티아의 고질적인 성격이 발목을 잡았다.

연기를 할 때와는 다른 내성적인 성격 때문인지 티아는 결국 전화번호를 보며 낑낑거리기만 할 뿐, 막상 전화를 하지 못하였다.

“엄마가 대신해줄까?”

보다 못한 엄마가 대신해주겠다는 말도 했지만, 티아는 고개를 저었다.

제임스 작가님 왈, 중요한 선택을 할 때 남의 의견보다는 자신의 의견을 우선시하라.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신의 의견을 존중하며, 남 탓하지 말고 자신을 질책해라.

[사막의 전갈]에 쓰여 있는 명언 중 하나로 티아는 이 중요한 일은 자신이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말은 쉽지만 결국 전화를 걸지 못하고 일요일이 찾아왔다.

“Korean Chicken이 먹고 싶다고? 갑자기?”

“응! 먹고 싶어!”

여느 때와 같이 Live 방송을 보고 있던 티아는 제임스 작가가 먹고 있는 치킨을 보고 먹고 싶다고 아빠를 졸랐다.

일요일이라 쉬고 있던 아빠는 평소 좋아하는 음식이 딱히 없고, 그냥 주는 대로 다 잘 먹던 티아가 무언가를 먹고 싶다는 말에 기뻐하며 근처에 있던 한국식 치킨을 사 왔다.

제임스 작가의 방송 때문인지 식당에는 사람들이 많아서 사 오는 데 시간이 걸렸지만, 그래도 처음 먹어보는 Korean Chicken의 맛에 가족들은 만족하였다.

살짝 매콤하긴 했지만 그래도 늦은 점심이다 보니 굉장히 맛있었다.

그렇게 치킨을 먹고 있는데 갑자기 아빠의 핸드폰이 울렸다.

“......누구지?”

처음 보는 번호였기에 그냥 무시하려고 했지만, 왠지 모르게 느낌이 그 전화를 받으라고 하였다.

미국에서는 처음 보는 번호를 웬만하면 무시하는 편이 좋았지만, 그래도 한 번 받아봤다.

“누구예요?”

“쉬잇!”

전화를 받은 아빠의 얼굴이 굳어지자, 엄마는 무슨 일인가 물었지만 아빠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전화에 집중했다.

잠시 진중한 표정으로 전화를 받고 있던 아빠는 이내 입 전체에 양념을 묻힌 채 치킨을 먹고 있던 티아를 보며 말했다.

“제임스 작가님.....이신데, 너하고 전화를 하고 싶다는데?”

“.....!”

티아는 닭가슴살을 들고 있는 상태로 몸을 멈추었다.

***

이번 소설을 적는 데 나는 누군가의 도움을 받고자 했다.

그게 계기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고, 영감이라고 불러도 되었다.

무엇이든 간에 새로 도전하는 글의 세계에 조금이라도 특별함을 주고 싶었다.

뭐. 변명이라고 하면 변명이라 할 수 있겠지만 아무튼 간에 무언가의 깨달음이라도 얻고 싶어 발버둥 치는 것 같았다.

“아, 안녕하세요!”

“.....그래. 오랜만이네? 오는데 힘들진 않았니?”

“네, 네! 아빠가 데려다줬어요!”

“그래.”

전화를 받자마자 티아는 기다렸다는 듯이 우리 집으로 찾아왔다.

애초부터 내 전화를 기다리고 있던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곧 있으면 저녁인데 우리 집으로 올 줄은 몰랐다.

그냥 편안히 오고 싶을 때 오라고 했는데 바로 올 줄이야.

“어머? 티아 왔니?”

누나는 어느새 깔끔한 옷을 입고 왔다.

츄리닝만 입고 있던 누나도 설마 올 줄은 몰랐는지 당황스러워했지만, 이내 서둘러 옷을 갈아입었다.

“아, 안녕하세요!”

“전에 봤지?”

“네! 파티장에서 봤어요!”

티아는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누나와 인사하며 힐끔힐끔 내방을 둘러보았다.

브록스처럼 작가의 집을 처음 본 것인지 눈을 떼지 못했다.

‘그나저나 뭘 해야 하지?’

오라고는 했지만 막상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애초에 바로 올지도 몰랐기에, 무엇을 먼저 가르쳐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애초에 나도 글을 배운 적이 없고.....’

나는 누군가한테 배우지 않고 독학으로 이 자리까지 올라왔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잠시 내 집을 둘러보던 티아는 주섬주섬 매고 있던 책가방을 내린 다음, 그 안에서 공책 한 권을 꺼내 들었다.

“저, 저기..... 이거 봐주셨으면 해요.”

“응? 아. 응.”

잠시 생각에 빠져 있던 나는 티아가 내민 공책을 받아들었다.

제목은 적혀 있지 않았지만, 저번에 나한테 선물한 팬픽이 아니라 스스로가 적어본 책인 듯싶었다.

공책을 넘겨보니, 그곳에는 생각보다 정자로 되어 있는 글자들이 빼곡히 쓰여있었다.

‘글씨가 예쁘네.’

어린아이치고 글씨가 예뻤다.

과거 내 글씨체가 잠시 떠올랐지만, 이내 기억 속 어딘가로 소각시켜버리고 티아가 적은 글을 읽어봤다.

“.....별의 공주?”

“네, 네!”

제목은 공책 앞부분에 적혀 있었다.

“읽어봐도 되니?”

“그, 그럼요!”

공책 자체는 그리 두껍지 않았으나, 글자를 꽉꽉 채워놨다 보니 읽는 데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나는 집을 두리번거리고 있는 티아한테 일단 아까 먹다 남은 한국식 디저트 몇 가지하고, 다이어트 콜라를 가지고 왔다.

“읽는 데 시간이 걸릴 것 같으니까, 구경하면서 이거 먹고 있어.”

“네, 네에!”

소파에 티아를 앉힌 다음, 누나한테 티아를 부탁하고 나는 공책을 읽어봤다.

***

수많은 별들로 이루어진 우주에, 12개의 별들은 찬란하게 빛을 뿜어내었다.

그 빛에 생명들이 몰려들어 나라를 만들고, 왕국이 만들어지며 사람들의 얼굴에는 미소가 그려졌다.

사람들은 12개의 별을 황도의 별이라 칭하며, 각자의 별마다 수호신을 세워 그들을 섬겼다.

그리고 그들의 힘을 직접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12명의 여성들을 공주라 칭하며, 그녀들만 있으면 평화가 지속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평화는 지속되지 않았다.

넓은 우주에는 선이 있다면, 악도 있는 법.

별이 찬란하게 빛나는 건, 어둠이 있기에 가능하다는 듯이 별들을 향해 악의 손길이 뻗어져 왔다.

‘음..... 솔직히 말해서, 캐서린이 적었던 것보다 재밌는데?’

지금 제임스의 생각을 캐서린이 들었다면 굉장히 실망할 테지만, 이건 농담이 아니었다.

캐서린은 지금까지 책을 쓴 적이 많지 않았고, 처음 썼던 작품을 그대로 가지고 가고 싶어서 내용을 리메이크하다 보니 조금 진부해지는 경우가 있었다.

다만, 티아의 글은 좀 달랐다.

‘뭐랄까..... 읽으면 읽을수록......’

어째서 9살짜리 아이의 글에서 노련미가 느껴지는 것일까?

‘물론 오타부터 시작해서 수정할 부분은 많지만, 세계관 자체는 굉장히 재밌네.’

황도 12궁의 별자리를 수호신으로 정하고, 그 수호신들과 직접적으로 링크될 수 있는 공주들의 활약이 돋보인다.

내용을 조금 더 수정하여 장르를 아동문학으로 한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출판해도 될 정도의 퀄리티였다.

지금까지 나한테 글의 피드백을 문의한 사람들 중에서 티아의 글이 가장 재밌다는 사실에 한편으론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게 재능이라는 건가?’

물론 아직 고쳐야 할 부분이 많지만 말이다.

나는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필기구 정리함에서 붉은색 볼펜을 꺼내 공책에 그저 동그라미만 쳐주었다.

딱히 뭐라 상세 내용을 적지 않고, 예전에 캐서린한테 해주었던 것처럼 그저 동그라미만 쳐준 뒤 그것들을 다시 생각해보라는 것이었다.

공책 가득 적혀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책 자체가 얇다 보니 금세 진행되었다.

“자.”

끝이 나자 나는 티아한테 공책을 내밀었다.

그러자 티아는 동글동글한 눈으로 공책을 바라보더니, 슬며시 손을 뻗어 공책을 받았다.

“다시 생각했으면 좋은 부분들을 동그라미 쳐놨어. 다만, 무조건 내 말이 맞다는 건 아니니까 스스로 판단해봐.”

“......”

티아는 멍하니 공책을 받아들더니 한참 동안이나 말이 없었다.

‘좋아하는 건가?’

얼굴에 표정 변화가 많은 아이였지만, 이번 표정은 조금 이상했다.

기뻐하는 표정이라고 보기에는 마치 무언가를 더 원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티아는 잠시 우물쭈물 망설이더니, 받은 공책을 들고 온 가방에 넣었다.

그러더니.

“이, 이것도 부탁드려도 될까요.....?”

또 다른 공책을 꺼내었다.

‘.....또 있어?’

나는 당황하며 티아가 준 책을 받은 다음 펼쳐봤다.

아까와는 다른 내용으로, 전 소설은 주인공이 공주였다면 이번 소설은 주인공이 왕자였다.

나는 잠시 내용을 살펴본 다음 티아의 가방을 슬쩍 바라봤다.

“혹시 또 있니?”

“네, 네! 여기요!”

티아는 가방을 나한테 내밀었다.

그곳에는 10권이 넘는 공책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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