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화. 티아 (2)
티아가 가져온 공책은 많았지만, 전부 다 재밌는 건 아니었다.
처음 나한테 건낸 책은 자신이 생각해도 가장 재밌다고 생각했던 책인 것 같았고, 그 이후 책들은 자신의 판단하에 재미가 별로인 것들을 모아두어 품평을 맡기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티아의 글은 재밌었지만 어딘가 이상했다.
‘주인공이 전부 공주네.’
어린아이답다고 해야 할까?
주인공은 전부 다 공주를 모티브로 했고, 세계관은 판타지가 많았다.
무엇보다도 공주의 성격은 티아와 정반대였다.
‘이런 걸 걸크러쉬라고 하던가?’
아무래도 자신과 정반대인 성격을 가진 주인공을 망상하여 책에 쓴 것 같았다.
딱히 상관은 없지만, 망상을 주제로 잡으면 그날의 기분에 글이 오르락내리락할 수 있었다.
실제 티아의 글은 어느 순간 기분이 고조되거나, 다운되는 기분이 잘 표현되어 있었다.
“음.....”
이걸 어떤 식으로 설명해야 할까?
나도 누군가를 가르쳐 주는 게 처음이고, 무엇보다도 나도 독학으로 올라왔다 보니 딱히 뭐라 해줄 말이 없었다.
‘남들은 글을 어떤 식으로 가르쳐 주지?’
티아의 공책을 받아든 상태로 일단 고민에 빠졌다.
결국 나는 한 가지 숙제를 티아한테 주기로 했다.
“티아야. 혹시 하루에 한 시간씩 글 쓰니?”
“네! 맞아요!”
‘역시 그랬구나.’
하긴,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많은 글들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럼 먼저 시놉시스 쓰는 법을 가르쳐줄게.”
나는 처음부터 글 쓰는 법을 가르쳐주기 시작했다.
***
티아는 그날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우리 집으로 놀러 왔다.
집안에 누나가 없고 나 혼자만 있었지만, 티아의 부모님은 나를 믿었는지 순수히 보내주었다.
나는 티아한테 글 쓰는 법을 될 수 있는 한 많이 알려주었다.
[드래곤 마스터]도 최종 미팅이 남아 있다 보니, 티아 또한 아직 일이 없었고 거기에 방학이다 보니 할 것도 없었기에 우리 집에 와도 상관없었다.
‘뭔가..... 밥까지 먹고 가는데, 이건 좀 문제 있지 않나?’
어차피 아이다 보니 많이 먹지도 않고, 나한테 열정적으로 무언가를 배우려는 태도가 좋기에 그냥 내버려 두었다.
그렇게 수요일이 되자 아침부터 누나가 전화를 걸었다.
-내일 뉴욕으로 가야 하니까 준비하고 있어. 나도 갈 거야.
뉴욕 맨해튼으로 가야 한다는 말에 나는 벌써부터 한숨을 내쉬었다.
티아를 가르치는 재미 때문에 깜빡하고 있던 줄리어드 스쿨 강연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약속은 약속이니까.’
LA에서 뉴욕까지 너무 멀다 보니 비행기를 타고 내일 아침 일찍 출발해야 한다.
항상 가던 SPA에 머물 생각이긴 하지만, 너무 멀다 보니 가고 싶지가 않았다.
그렇게 아침밥을 먹고 아리아나의 주도하에 운동을 하고 오니 예상대로 티아가 1층에 도착해 있었다.
“여. 왔어?”
“안녕하세요! 작가님!”
“끌..... 왔나?”
“한스 할아버지도 건강해 보이시네요.”
내가 나가 있는 일이 가끔 있다 보니, 티아가 밖에서 기다릴 때가 있었다.
그렇다 해도 만난 지 며칠 되지 않은 아이한테 열쇠를 주는 건 아니다 싶었는데, 그걸 한스 할아버지가 해결해주었다.
내가 나가 있으면 티아는 시큐리티 실에서 한스 할아버지와 함께 있었다.
물론 아직 어색하긴 하지만, 한스 할아버지는 자상하게 웃으며 내가 왔을 때 보이지 않았던 달콤한 다과를 건네고 있었다.
‘내가 왔을 땐 안 줬으면서......’
그렇다고 딱히 삐지는 건 아니지만.
“택배 온 거 있어요?”
할아버지는 한쪽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빌에이든 미디어와 SC라스틱이 보낸 상자가 하나씩 있었다.
뭐. 별건 아니고, 각 나라마다 출판을 시작한 내 책들을 보내준 거거나, 아니면 굿즈를 보내준 거겠지.
티아는 우리 집에 올 때마다 출판사가 보내준 굿즈를 보며 항상 부럽다는 표정을 지을 정도로, 출판사가 보내주는 굿즈는 희귀한 것들투성이였다.
“아. 저 그리고 내일부터 며칠간 없을 거예요.”
“자네 누나한테 들었네. 뉴욕에 간다고?”
“네. 에휴..... 강연을 하러 가는데 제가 잘 할 수 있을지가 걱정이네요.”
“강연? 자네가?”
“예. 뭐..... 제의가 왔으니까요. 한 번 해볼까 하는데 솔직히 잘 모르겠네요.”
우리들의 말을 듣고 있던 티아는 동그란 눈을 말똥말똥 뜨며 고개를 갸웃했다.
“그럼 저 내일부터 못 오는 거예요?”
“응? 그렇지? 아마 목요일부터 주말까지 뉴욕에 있을 확률이 높으니까. 다음 주 월요일부터 오면 될 거야.”
그 말에 티아는 금세 시무룩해졌다.
“같이.... 가면 안 돼요?”
“.....같이?”
그 말에 머리를 긁적이며 곤란하다는 얼굴을 하였다.
‘부모님이 허락해 줄 리가 없잖아?’
아직 어린아이, 그것도 10살도 안 된 여자아이다.
잠깐만 눈을 떼도 불안해서 숨이 막힐 정도로 사랑스러운 아이가 그 멀리 있는 뉴욕까지 간다고 하면 그 어떤 부모님이라도 입에 거품을 물면서라도 막으리라.
‘상관은 없는데.....’
어차피 누나도 같이 갈 테니, 무슨 일 있으면 맡기면 된다.
‘근데 누나는 왜 가는 거지?’
내 핑계 대고 외근 가는 것 같지는 않았는데? 딱히 계약서를 작성하는 것도 아니고.
가면 무슨 볼일이 있는 건가?
“부모님이 허락해주시면..... 뭐. 같이 가자.”
어차피 허락해 줄 리가 없으니 나는 말을 얼버무렸다.
근데 제임스는 모르는 게 있었다.
이렇게 소극적이고 자신의 의견을 잘 꺼내지 못하는 아이가, 집에서만큼은 자신의 의견을 잘 꺼내며 그 고집은 부모님조차 말리지 못한다는 걸 말이다.
***
티아한테 주는 숙제는 일기장을 써오라는 것이다.
무엇이든 간에 글을 적는 것보단, 그 글을 압축하기에 일기장보다 좋은 게 없다고 생각했다.
책을 읽고 감상평을 적는 독후감보다는, 일상적인 자신의 글을 적으며 그 일상을 소설로 풀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시도해 본 것이다.
이는 내가 적으려는 소설과도 마찬가지다 보니, 나도 일기장을 적기 시작했다.
‘일기장에도 종류가 있지.’
아이들이 적는 몇 글자 안 되는 그림 일기장부터, 평범한 일기장 등 글자 수가 무한히 늘어날 수 있었다.
그렇게 되면 내용을 함축시키지 못하리라 생각하여 티아한테는 그림 일기장보다 글자 수를 더 적을 수 있는 어린이용 일기장을 주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한 사람의 인생을 압축시키는 건 이렇게나 어렵구나.....’
나는 수업이 뜯겨나간 일기장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에 반해 티아는 일기장을 잘 적네.’
익숙한 것인지, 아니면 어리기 때문인지 티아는 내가 내준 숙제를 곧잘 해왔다.
『아침에 씻고 내려가니 아빠가 햄버거를 사 왔는데 맛이 없었다. 그래도 아빠의 기대감 때문에 꾹 참고 먹은 다음 얼른 방으로 올라가 책을 읽었다. [사막의 제국]을 121번째 읽은 뒤 [나인 드래곤]에 감상문을 올렸다. 점심이 되고 아빠가 마카롱을 사 왔지만 나는 안 먹는다고 하고 엄마는 다이어트 한다고 거부했다. 결국 아빠는 구석에서 홀로 마카롱을 전부 먹었다. 제임스 작가님 집으로 찾아가 글 쓰는 법을 배우고 집으로 돌아와 저녁을 먹었다. 아빠가 사 오는 음식들보다 엄마가 해주는 음식이 더 맛있다. 하지만 아빠는 싫다는 투를 냈고 엄마한테 맞았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티아의 엄마는 비록 후보군이었지만 배구선수였다고 한다.
‘내용이 엄청..... 간단해.’
티아의 일기장을 보면 일단 내용 전체가 한눈에 보인다.
짧은 글이었지만 단번에 이해가 될 정도였다.
자신한테 일어난 중요한 일들을 짧게 일기장에 적었다.
‘나라면 이 일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졌는지 스토리부터 생각했을 거야.’
일기를 적는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유치해 보이긴 했지만, 이는 에드월 홈즈가 자주 사용하던 방식으로 유명했다.
당시 에드월의 글 쓰는 법을 궁금해했던 사람들이 많았는데, 한 방송사에서 에드월과 인터뷰에서 물어봤는데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일기장을 써라. 자신의 스토리를 적지도 못하면서 머릿속에 있는 스토리부터 적을 생각을 하는가?]
실제 이 인터뷰 때문에 미국 전역에 일기장을 적는 소동이 일어났었다고 한다.
그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제임스와 에드월의 글이 정반대 성향을 뛰는 것일 수도 있었다.
하루에 한 시간 동안 자신의 망상을 글로 적은 제임스와 하루에 한 시간 자신을 기록한 에드월이기에.
“응. 잘 썼네.”
나는 일기장을 티아한테 돌려주었다.
“오늘은 뭘 할 거예요?”
“시놉시스는 적어왔니?”
“네. 여깄어요!”
티아는 컴맹은 아니다. 오히려 키보드 타자 속도도 가족 중에서 가장 빠르다.
하지만 소설을 적는 건 손으로 적는 편이 더 좋은지 공책을 내밀었다.
“음......”
첫날에 티아가 보여주었던 공책들의 시놉시스를 적으라고 숙제를 내주었다.
하루에 다 할 수는 없을 정도의 분량이니 천천히 하라고 했지만, 티아는 고작 3일 만에 한 스토리의 시놉시스를 적어왔다.
‘처음에 봤던 황도 12궁 공주들의 이야기인가......’
제목은 아직 미정이지만 가장 재밌었던 이야기였다.
다만, 그때 가져왔을 때도 마무리가 되지 않았고 분량도 1권 좀 아쉬울 정도였다.
“전체적인 시놉시스가 아니라, 1권 시놉시스만 적은 거니?”
“네에!”
“음. 재밌네. 그럼 이대로 적어보자. 적어본 다음에 출판까지 목표로 하자.”
그 말에 티아의 눈동자가 동그래졌다.
“추, 출판이요?”
“응. 어차피 본업 때문에 연재가 빠르게 흐르진 않을 것 같지만, 그래도 스토리만 보면 충분히 재밌으니까. 웹소설로 적어보는 것도 재밌을 것 같긴 한데.....”
다만, 웹소설을 쓰면 댓글을 보게 될 텐데 그 때문에 티아가 상처 입을 것 같았다.
그러니 나는 출판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하지만 티아는 갑작스러운 내 말에 몸이 굳어졌다.
“무서워?”
“아, 아뇨..... 소, 소설 작가는 제 꿈이었으니까요! 그, 근데 너무 갑작스러워서요.....”
“하긴, 그럴 만도 하지.”
나는 시놉시스가 적힌 공책을 거실 탁자에 내려놓고 말했다.
“목표라고 했지 출판하자는 말은 아니야. 너도 작가를 꿈꾸는 거면 그 시작은 빠른 게 좋아.”
나도 빨리 책을 투고했다면 어떨까 하고 항상 생각한다.
그렇기에 나는 티아가 기회가 있을 때 놓치지 않았으면 했다.
하지만 이건 순전히 내 생각일 뿐, 티아의 생각도 들어봐야 한다.
그도 그럴 것이 티아는 [드래곤 마스터] 배우였기 때문에, 앞으로 글 쓸 시간이 많이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천천히 생각해보도록 해. 정 안 되면 웹소설도 방법이 있으니까.”
그리 추천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글 세상에 가장 빠르게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이기도 했다.
“네에.....”
티아는 고민 가득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
다음 날.
LA 공항에서 비행기 편을 기다리는 내 옆에는 캐리어를 끌고 있는 누나와 함께, 자그마한 가방을 등에 메고 있는 티아가 있었다.
‘.....허락했다고?’
그렇게 우리는 뉴욕으로 출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