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화. 강연 (3)
강연은 예상보다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나에 관한 거, 특히나 글을 쓸 때 내가 생각하는 방향이나 노하우 같은 건 알려주었지만 대답하지 않은 것도 있었다.
[[리턴 패션 디자이너] 37화에 나오는 벤자민의 심리 묘사를 적을 때 느꼈던 감정을 알려주실 수 있으실까요?]
“노코멘트하겠습니다. 이것도 소설을 보는 하나의 재미니까요. 사람마다 당시 벤자민 심리를 읽을 때 느끼는 점이 다를 겁니다. 거기에 제가 느꼈던 느낌을 말하는 것으로 초를 치고 싶지 않아요. 소설의 재미를 위해 이해해주셨으면 합니다.”
나에 관한 이야기는 어느 정도 말해줄 수 있었지만 소설에 관한 내용에 대해서는 하나도 이야기해주지 않았다.
물론 이야기해주는 부분도 있지만, 그래도 내용의 어긋남을 방지하기 위해 웬만하면 말해주지 않았다.
그렇게 강연 시간이 거의 끝나갔고 나는 그들의 대답에 하나씩 대답해주며 마지막으로 말했다.
내 인생 좌우명까지는 아니지만, 항상 생각하고 있는 그런 것들을 말이다.
“제가 작가로서 좌우명이 뭔지 아시나요?”
물론 Live 방송에서도 나오지 않은 말이었기에 아무도 알고 있지 않았다.
“[작가는 빵 한 조각 먹는 거로도 만 글자를 쓸 줄 알아야 한다.] 하하. 이곳에 작가님들이 계시다 보니 이 말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말일지 아실 겁니다.”
그 말에 강당 여기저기서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솔직히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그 누가 저런 소설을 읽겠는가.
“제가 말하고자 하는 건 저는 자신이 선택한 직업이 좋다면, 저 말만큼 미치도록 파고 들어가라는 것입니다.”
나는 조금 진지한 이야기를 꺼내었다.
“이곳에 계신 분들 중에선 각자의 직업에서 성공하신 분들도 계시고, 아직 꿈을 찾지 못하고 사회에 나가는 것을 두려워하는 학생 그리고 아직 무엇이 되어야 할지 고민하시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이는 사람으로서 살아가면 당연한 거라고 생각합니다. 자아성찰이라고 해야 할까요? 자신이 무엇을 위해 태어났냐고 한 번쯤은 생각하게 되죠.”
나도 어린 시절에는 책을 좋아하지 않았다.
우연에 우연이 겹치지 않았더라면, 아니 애초에 아빠 사업이 망하지만 않았더라면 영원히 글에 접하지 않았으리라 생각된다.
언어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낸 계기가 작품이었고, 그로 인해 작품에 흥미를 가지며 글을 쓰게 되었다.
내 진짜 꿈을 이루지 못했지만, 그래도 작품을 창작한다는 기쁨이 있었다.
“무엇을 하고 싶어도 상관없습니다. 그걸 미래의 직업으로 삼든 아니면 그저 취미생활이든 상관없습니다. 제가 말하고자 하는 건 자신의 미래를 정하는 중요한 일일수록 선택은 자신이 해야 한다는 겁니다. 물론 조언 정도는 얻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일에 남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보다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하세요.”
짧다면 짧은 인생을 살아오며 느낀 점은 하나였다.
“어차피 이 인생은 남이 살아주는 게 아닙니다.”
부모님은 내 인생을 대신 살아주지 않는다. 다만, 내 인생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가기 위해 인도를 해줄 뿐이다.
“그 누구도 인생에 대한 정답을 알려주지 않습니다. 설령 부모님이라도 제 인생에 답을 알려주실 순 없습니다. 그저 부모님은 자신이 겪어왔던 어려움이라는 지식을 저희한테 물려줄 뿐. 자신의 인생에 대한 답은 아닙니다.”
아빠는 나한테 어중간한 각오로 돈을 벌 생각하지 말라고 했다.
남의 돈 떼먹는 게 가장 어렵다고 항상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다.
“무엇보다도 자신이 선택한 길이면 후회는 없지 않겠습니까? 하하. 남 탓이 세상에서 가장 나쁜 겁니다. 그러니 모두 자신이 선택한 길을 후회한다고 하더라도 상관없습니다. 나아가세요. 직진을 하든, 중간에 쉬어가든 자신이 선택한 길이면 그걸 믿고 나아가세요. 그리고 미친 듯이 사랑하고, 미친 듯이 악착같이 물고 늘어지세요. 그것이 저 제임스라는 작가의 인생철학입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있다면 미친 듯이 파고들어봐라.
자신의 인생은 오직 자신만의 것이며 누군가의 인생이 아니다. 조언은 조언일 뿐 현실을 살아가라.
그것이 내가 사람들한테 해주고 싶은 말이었다.
“이상 제임스였습니다. 허접한 강연이지만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말을 끝으로 강연장에서는 해일과 같은 박수 소리가 쏟아졌다.
***
제임스가 마지막으로 한 말은 Live 방송에서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었기에 알고 있는 사람들도 많았다.
하지만 제임스가 강연장에서 하는 말을 듣고 어딘가 울컥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사람들은 제임스 작가한테 들었던 말을 하나같이 SNS 혹은 기사로 올리기 시작했다.
[자신의 삶은 누군가가 살아주는 게 아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 세상에 그 말을 따라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미친 듯이 파고들고 악착같이 늘어져라, 자신이 정말로 좋아하는 것이라면 그럴 수 있을 것이다.]
[제임스 작가 ‘후회해도 상관없다. 어차피 내 인생인데 뭐가 중요한가?’]
제임스 작가의 이름이 들어간 파격적인 제목들이 올라오며, 2시간 동안 강연한 영상이 각자의 영상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팬들은 하나같이 그 영상을 확인하기 위해 사이트에 접속하였다.
-뭐랄까? 제임스 작가님다운 강연이네.
ㄴ너도 그렇게 느꼈냐? 나도 그렇게 느꼈는데.
ㄴ솔직히 진중한 느낌은 작가님하고 어울리지 않게는 하지. 그나저나 작가님 이렇게 안 봤는데 엄청 강심장이네.
-저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츄리닝을 입고 올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ㄴ가끔 운동선수들은 츄리닝만 입고 오지 않아? 직업정신 같은 느낌?
-강연이라고 했는데 별거 없네? 노하우 같은 것만 알려주시고..... 솔직히 조금 실망이 있기는 하네.
그렇게 내용은 점점 이어지고 마지막 부분으로 가게 되자, 제임스의 마지막 말을 듣게 되었다.
-당연한 말이긴 한데.....
-유명한 말이긴 한데..... 솔직히 저럴 수 있는 사람은 드물지.
-자신의 인생을 다 바쳐 좋아할 만한 것을 찾기도 여간 힘든 게 아니고, 찾는다고 해도 인생 전부를 바칠 정도로 미친 듯이 좋아하는 건 힘드니까.
-제임스 작가님이 책을 얼마나 좋아하시는지 알고 있기는 했지만..... 미친 듯이 좋아해서 가능했구나.
-매주마다 이상한 책들을 추천하기에 많이 읽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뭐랄까 다시 보게 되네.
-그나저나 제임스 작가님 목소리 진짜 좋으시다.
강연은 때아닌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이는 한국에까지 소식이 전달되었다.
전자책 시장이 커져간다는 한국이지만, 아직까지도 책을 보는 사람들은 많았다.
그렇다 보니 제임스 작가의 글이 서서히 퍼지기 시작했고, 수많은 팬을 만들어냈다.
배우 유성준도 마찬가지였다.
“키야.....”
유성준은 강연 영상을 보며 탄성을 내뱉었다.
최근 해외 영화들은 전부 한국에서 먼저 개봉을 시작한다. 이유는 한국이라는 작은 나라가 영화에 대한 관심이 높다는 점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중국과 일본보다도 한국에 [사막의 전갈] 영화가 먼저 개봉하였고 유성준은 누구보다 빠르게 영화를 관람했다.
제임스 작가 때문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마그누스 감독님을 존경하였기에 본 것이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서 스토리에 관심이 생겼고, 때마침 한국에서도 출판을 한다는 소식에 책을 찾아봤다.
그 이후로 유성준은 제임스 작가의 작품에 푹 빠져버렸다.
아직 한국에 출판되지 않은 [일곱 개의 죄악]이나 [드래곤 마스터 2부]까지 볼 정도로 그는 서서히 제임스의 마성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한국 제임스 팬카페인 [개천에서 용 한 마리]에 가입하고 있었고, 그곳에서 최우수회원이 되어 있었다.
“쩝. 나도 제임스 작가님 영화에 출연하고 싶은데..... 방법이 없나?”
작품 중에 동양인이 주연으로 등장하는 건 기껏해야 [블랙 & 월드] 정도였다.
다른 작품들도 엑스트라나 조연으로 나오기는 하지만, 이미 영화 캐스팅이 거의 끝나가는 시점에서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일곱 개의 죄악]과 [리턴 패션 디자이너]에서도 동양인은 등장하지 않다 보니, 장호식 감독님도 한국 내에서가 아닌 해외에서 배우들을 찾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리메이크라도 노려봐야 하나?’
유성준은 한류 스타라고 불릴 정도로 중국과 일본에서 인기가 많은 배우였지만, 장호식 감독님한테 가서 캐스팅해달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러던 그때였다.
“아. 슬슬 공모전도 하네?”
빌에이든 미디어 그리고 SC라스틱이 제임스 작가님을 위한 공모전을 연다고 한다.
웹툰, 일러스트, 코스프레, 피규어 마지막으로 소설.
‘해적판 소설인 줄 알았는데..... 하긴, 해적판은 심사하기 어려우니까.’
공모전을 한다는 사실은 이미 SNS로 인해 알고 있었지만, 해적판 소설이 아닌 일반 장르 소설이라는 건 처음 알게 되었다.
“소설이라.....”
유성준도 어릴 때 판타지 소설을 자주 읽었었다.
한때 너무 집중하느라 집안에서 쫓겨난 적도 있을 정도로 좋아했다 보니, 자작 글이 몇 개 있기도 했다.
다만, 유성준이 어렸을 때는 웹소설이라는 것이 없다 보니, 판타지나 무협 작가들이 생활고를 심하게 겪는다는 말이 많았고 결국에는 꿈을 돌려야만 했다.
미친 듯이 좋아했지만 현실이라는 벽이 결국에는 유성준을 다른 길로 끌어들였고, 수려한 외모를 가지고 있던 유성준은 결국 배우의 길을 가게 되었다.
“써볼까?”
유성준은 오래간만에 파일을 열었다.
***
강연을 끝내고 이리저리 인사를 나누다 보니 저녁이 되어 있었고, 우리는 선생님의 집으로 향했다.
헬리아가 저녁을 준비해 놓는다는 말에 같이 만찬을 즐기러 간 것이다.
“어머? 처음 보는 아이가 있네요? 친척이에요?”
“아뇨. 제 제자예요.”
“아, 안녕하세요. 티아라고 해요.”
“어머나..... 다이애나 어릴 때 보는 것 같네, 환영해요. 아줌마가 맛있는 음식을 준비해 놨단다?”
우리는 헬리아의 환영을 받으며 집 안으로 들어갔다.
집 안으로 들어가니 저번에 왔을 때처럼 칠면조 한 마리가 통으로 구워져 있었다.
‘이 집은 칠면조를 좋아하나......’
이상하게도 선생님은 안 드시던데.
그래도 헬리아의 요리 솜씨는 좋았기에 맛은 있었다.
“뭔가. 음식만 먹고 가는 것 같아서 죄송하네요. 아. 혹시 말라서 이거 가져왔어요. 선물이에요.”
음식을 어느 정도 먹자 나는 혹시 몰라 백화점에서 사 온 와인을 건넸다.
“어머. 고마워요. 잘 마실게요.”
다행이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았다.
티아가 있다 보니 술이 들어간 식사가 아니었기에 금방 끝이 났다.
“아. 루이 감독님은 언제 만날 수 있나요?”
“급한가?”
“다음 주에 시카고로 가야 하니까요.”
“시카고? 아아. 뉴베리 후보에 올랐었지?”
“그때까지 글에 좀 집중하고 싶어서요. 뭔가 실마리를 잡은 것 같기도 하고.”
“그럼 내일 점심쯤에 만나자고 해주겠네.”
“네.”
에드워드 선생님은 커피를 마시며 말했다.
“오늘은 자고 가게.”
“......네?”
“자고 가라고 했네.”
.....갑자기 왜 이러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