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시골촌놈인 줄 알았는데 천재작가였다-192화 (191/216)

192화. 릴레이 소설

에드월의 글은 쾌락으로 인도하는 글이며, 제임스의 글은 나락으로 인도하는 글이라고 사람들은 항상 그렇게 말한다.

그렇다면 그 둘이 합쳐진다면 어떻게 될까?

깔끔한 여운을 주는 건 솔직히 제임스로서 많이 힘들었다.

왜냐하면 기나긴 여운조차도 소설을 읽는 하나의 재미로 생각하는 제임스였기에, 항상 뒷마무리를 의미심장하게 하여 사람들의 궁금증을 유발시켰다.

그렇기에 [리턴 패션 디자이너]를 보는 사람들은 심적으로 우울할 정도의 충격을 받지만, 제임스는 오히려 독자들의 마음을 알고 더욱 두들겨 패기 위해 작중 주인공을 더욱더 굴렸다.

아무튼 간에 너무 극과 극인 성격이라 서로 맞지 않으리라 사람들은 생각했다.

애초에 제임스가 그런 글을 왜 적겠는가?

지금 적고 있는 글만으로 충분히 잘 먹고 잘살고 있으며, 미국에서 가장 인지도 있는 작가로 유명한 그였다.

괜한 모험으로 자신의 커리어에 오점을 남길만한 짓을 하지 않으리라고 독자들은 생각했고, 무엇보다도 어울리지 않았다.

“어떠.....세요?”

제임스는 긴장이 가득한 기색으로 선생님과 루이 감독님을 바라봤지만, 그 둘은 제임스의 말을 듣지 못했는지 시선을 노트북에서 때지 못했다.

제임스 특유의 악마 같은 강렬함이 소설 속에 잘 스며들어 있었다.

뜨거운 물에 들어가는 달콤한 설탕마냥, 이 달콤함을 맛보고 싶으면 어서 팔팔 끓는 뜨거운 물을 들이켜라고 속삭이는 것 같았다.

욕망을 참지 못하고 팔팔 끓는 뜨거운 물을 마시자, 느껴지는 건 괴로움이 아닌 환희.

시원하다는 느낌과는 반대로 혓바닥과 목구멍조차 녹여버릴 것만 같은 단맛이 모든 괴로움을 잊게 해주었다.

‘이 녀석......’

‘이 소설......’

루이와 에드워드는 서로 다른 시선으로 소설을 바라봤다.

‘인간의 본질을.....’

‘인생의 의도를.....’

각자 바라보는 시선은 달랐지만 생각하는 건 똑같았다.

인간의 평범한 일생.

태어나고, 성장하고, 죽는다.

어쩌면 간단하게 표현할 수 있는 일생을 제임스는 이 한 권의 소설에 담고자 했고, 그 의도는 그 둘이 화들짝 놀랄 정도로 대단했다.

잠시 후 가장 먼저 입을 연 건 에드워드 선생님이셨다.

“.....인간의 본질을 너무 잘 표현했더구나. 선의, 악의, 욕망, 개념 등을 너무 잘 표현해서 읽을 때마다 내가 인간인 걸 후회하게 될 정도였다.

“.....그 정도였나요?”

“후우.....”

선생님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만일 이게 에드월의 글이었다면 ‘인간이 살아가면서 볼 수 있는 기쁨’을 표현했겠지. 그런데 이 글은 ‘인간이 살아가면서 버텨야 하는 고통’을 표현하는 글이구나. 물론 재미는 있다. 네가 지금까지 만든 작품들 중에서 나 같은 늙은이들이 가장 재밌게 읽을 수 있는 글일 것이다.”

그 말에 루이 감독님 또한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여셨다.

“그래도 힘든 상황을 마주하고, 꿋꿋이 버티며 살아가는 일생을 보며 이게 인생의 의도가 아닌가 생각이 들더군. 사람들은 그래도 비현실적인 것을 망상하며 글을 적는데, 너무 현실적이라 오히려 소름이 돋더군.”

“잔인한 글이다. 하지만 재미는 있다......”

선생님은 잠깐 말을 흩트리더니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다만..... 굳이 그렇게 마무리를 해야겠느냐?”

“......”

새롭게 시도한 소설이지만 제임스의 버릇은 어딜 가지 못했는지 이 글에 잘 드러났다.

희망을 주는 척하면서 결국엔 절망으로 끝을 매겼다.

다만, 다른 소설들과는 다르게 그 마무리는 절망의 끝. 더 이상 이어지지 않은 완벽한 완결이었다.

이는, 제임스가 이 한 권을 완결 낼 때 가장 좋은 방법이 뭐일까 하고 한참을 생각했는데, 결국에 이런 식으로 수정한 것이다.

“그래. 다 이해하네. 뭐. 그래..... 견딜 수 없는 절망 때문에 다리 위에서 떨어져서 죽는 것까지 다 이해하네. 근데 자네 이거..... 글을 쓴 의도부터가 대체 뭔가? 브록스라는 아이 때문에 새로운 글을 쓰려고 했던 거 아닌가?”

“네...... 맞죠.”

“그럼 브록스라는 아이가 죽어서, 작중에서도 주인공을 죽인 건가? 아니, 애초에 주인공이 브록스인가?”

“.....”

브록스의 가치를 내가 정하고 싶지 않기에 작중의 주인공 즉, 실제 주인공인 브록스 아빠의 일생에서 벗어나기로 하였다.

다만, 브록스 아빠의 일생에 영감받은 건 맞기에 그 내용 중 일부는 가져갔다.

“마무리를 희망으로 하면..... 뭐랄까 깔끔하지 않을 것 같아서요.”

“쯧. 희망도 여러 가지 방법이 있는데 굳이 이런 식으로 해야 했나? 뭐. 이게 더 재밌다고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래도 브록스라는 아이를 보고 글을 썼으면 절망보다는 마지막에 희망을 줬으면 하네.”

“......”

그 말에 루이 감독님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애초에 제목 자체도 [인피니티 라이프] 아닌가? 무한한 삶이라고 말했으면서 이렇게 절망 어리게 끝나는 건 아닌 것 같네.”

에드워드 선생님과 루이 감독님의 말에 나는 진지하게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

이후 루이 감독님과 짧게 남아 대화를 하고, 다시 에드워드 선생님 집으로 돌아왔다.

선생님은 루이 감독님과 조금 더 대화하겠다고 남겠다고 하셨다.

집으로 돌아오자 다이애나와 티아가 거실에 있었는데, 두 명 다 공책 한 권을 잡고 뭐라 뭐라 적으며 재밌게 놀고 있었다.

“뭐해?”

“아! 작가님!”

그 둘은 우리가 오자 읽고 있던 공책을 잠시 내려두었다.

나는 겉 외투를 벗어 소파에 잠시 내려놓고, 공책을 들어 올렸다.

“뭐 하고 있었어?”

그 말에 티아는 부끄러운 듯 우물쭈물하다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소설을..... 적고 있었어여.”

“소설?”

“네에.....”

다이애나는 해맑게 웃으며 공책을 가리켰다.

“릴레이 소설을 쓰고 있었어요. 소설 내용은 그냥 ‘일상’으로 하고, 작중 주인공을 평범한 여자로 한 다음에 스토리를 정하고, 거기에 맞는 대화를 서로 유추하며 적는 식으로요.”

“호오? 그래요? 한 번 봐도 될까요?”

“헤헤. 부끄럽네요.”

다이애나의 허락이 떨어지자 나는 공책을 열어보았다.

첫 장에는 설정이 있었는데, 상당히 자세했다.

장소는 학교, 나이는 14살, 여성의 외모는 금발에 푸른 눈을 가지고 있지만 평범함에 속함, 사랑하는 남자가 있는데 그 남자는 문학 소년.

다음 장을 넘겨보니 설명도 없이 대화가 잔뜩 있었다.

“흠.....”

필체가 다른 걸 봐선, 다이애나가 남자의 역할을 티아가 여자의 역할을 한 듯싶었다.

근데 생각보다 내용이 재밌었다.

‘다이애나도 글을 잘 쓰는 편이라 들었지.’

작가로서 생각은 없기에 글을 안 쓰는 것일 뿐, 어렸을 때부터 많은 장르 소설을 읽었기에 잘 쓴다고 선생님한테 들은 적이 있었다.

그렇기 때문인지 여자는 티아의 성격에 맞는 순수함이 가득했고, 남자는 그런 순수함을 이용해 먹으려는 의도가 가득했다.

솔직히 이 소설 완성되면 재미는 있겠지만 티아가 실망할 것 같았다.

“재밌네요.”

솔직한 심정을 말하자 티아와 다이애나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났다.

“루이 감독님이 뭐라세요?”

“별말 없으셨어요. 그냥 뭐..... [일곱 개의 죄악]에 관해서 물으셨을 뿐이니까요.”

“헤에..... 예전에 루이 감독님 집에 가본 적이 있는데, 그때 이후로 트라우마가 생겨서 가본 적이 없어요. 지금은 조금 나아졌다는데 그때는 정말 잔인한 인형도 많았거든요.”

“.....집에 그런걸 들여놓아도 허락해주는 가족분들이 정말 대단하시네요.”

나는 들고 있던 공책을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다음 주는 시카고로 간 뒤에, 곧바로 몬태나로 갈 거예요. 이번에도 오시겠어요?”

“음..... 그랬으면 좋겠는데 무리일 것 같아요. 2월 1일부터 방학이 끝나거든요.”

“그래요? 아쉽네요.”

그 말에 다이애나는 정말 아쉽다는 얼굴을 하였고, 티아는 부럽다는 얼굴을 하였다.

“.....저도 작가님 본가 가보고 싶어요.”

“몬태나? 에이, 거기는 정말 부모님이 허락 안 해주실 거야.”

미국은 여름 방학이 길고 겨울방학이 짧은 경우가 많다.

그렇다 보니 티아도 슬슬 방학이 끝날 시기라 가지 못할 것이다.

“허락 받으면 가도 돼요?”

“학교는?”

“며칠 빠진다고 인생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들었어요.”

“......”

이게 어린아이 입에서 나올 수 있는 말인가?

물론 하루 이틀 빠진다고 인생에 큰 영향을 주지 않겠지만, 그래도 개학을 하면 학교에 가는 건 학생으로서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기에 티아의 말에 나는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학교를 가야지.”

“어차피 [드래곤 마스터] 제작에 들어가면 학교를 빠질 일이 더 많을 거예요. 선행학습으로 지금부터 빠져도 좋다고 생각해요.”

“......”

“무엇보다 학교 교육이 저한테 좋은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차라리 작가님 곁에서 글을 보는 게 저한테 더 좋은 교육이 될 거예요. 부모님도 그렇게 생각하실 거고요.”

“그래..... 네 마음대로 해.”

그 말에 티아는 작은 주먹을 꽉 쥐었다.

“누나가 올 때까지 조금 더 쉬고 있자.”

“그, 그럼 작가님도 릴레이 소설 해보시는 건 어떠세요?”

“음.....”

잠시 공책을 바라보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스토리는 내가 정해도 될까요?”

“물론이죠!”

나는 글이 적혀 있지 않은 부분을 들어 올린 뒤, 잠시 고민했다.

‘[인피니티 라이프] 마지막 부분을 적어볼까?’

물론 실제 내용을 적으면 티아가 실망할 수 있었기에, 조금 과장되게 정했다.

주인공 이름은 대충 ‘C’로 한 뒤, 스토리를 정했다.

창녀의 자식으로 버려졌던 스토리에서 그냥 태어났을 때부터 버림받았던 고아로 스토리를 변경하였고.

남자에서 여자로 바뀌었다.

대략적인 스토리가 정해졌고, 나는 마지막 부분을 적었다.

“......너무 본격적인 스토리 아니에요?”

“하려면 본격적으로 해야죠.”

“그래도 너무..... 슬프지 않아요? 이거 작가님 신작 스토리죠? 그렇죠?”

다이애나는 스토리를 보자마자 이게 신작 스토리라는 것을 눈치챈 듯했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에이. 제가 신작 쓸 시간이 어딨어요? 다음 주에 해외 미팅도 있는데, 하하. 그냥 지금 당장 생각해본 거예요.”

그럼에도 다이애나는 의심이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지만, 반대로 티아의 눈은 초롱초롱해졌다.

“언니! 그럼 작가님하고 저하고 해도 돼요?”

“응. 그래.”

“아싸....”

티아는 또다시 주먹을 불끈 쥐었다.

스토리가 주어졌지만, 이번에는 대화를 하는 형식이 아니었다.

“그럼 티아가 대화를 적어줘. 내가 문장을 적을게.”

“네에!”

티아가 기뻐하는 모습에 나는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그렇게 시작된 릴레이 소설에 나는 서서히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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