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시골촌놈인 줄 알았는데 천재작가였다-193화 (192/216)

193화. 릴레이 소설 (3)

『C는 흔들리는 몸을 부여잡고 멍하니 다리를 바라보았다.

육중한 다리와는 다르게 C의 몸은 지금까지 짊어졌던 무게를 버티지 못하였고, 임신한 아이의 유산으로 인해 그녀의 정신은 얇은 얼음막처럼 부서졌다.

그 누구도 아이의 죽음을 애도하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그녀한테 아이가 있는 것조차 알지 못하였다.

고아로 태어나, 사랑했던 소꿉친구와 결혼을 하며 앞으로의 행복이 그녀의 앞길에 놓여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남편은 교통사고로 사망하고, 아이를 가진 그녀는 어떻게든 이 험난한 사회 속에서 견디려 하였다.

오직 아이만을 위해, 아이만을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견뎌왔지만 그 아이조차도 유산이 되었다.

아이를 유산한 이유가 자신의 과로 때문이었기에, 더욱더 큰 죄책감이 그녀의 육신을 허물어지게 하였다.

그녀는 어두운 밤하늘에 가려진 강물을 바라보았다.

밤에 오면 어두워서 뛰어내릴 두려움이라도 없으리라 생각했지만, 애석하게도 밤하늘에 떠오른 달과 별이 이곳에 뛰어내리면 죽으리란 것을 알려주었다.』

“......”

“......”

내가 적은 글을 본 티아와 다이애나는 할 말을 잃었다.

“보통 릴레이 소설이라고 하면 즐거움, 행복 그런 걸 위주로 적는데..... 작가님? 이거 정말 작가님 신작 아니에요?”

“크, 크흠.”

적다 보니 조금 본격적으로 된 것 같기도 하다.

“무엇보다 티아한테 대체 뭘 보여주려는 거예요! 너무 슬프잖아요!”

짧게나마 적혀 있는 글자에 C라는 여성이 지금까지 겪었던 고충이 모두 스며들어 있었다.

평소 얌전한 다이애나가 버럭 소리를 지를 정도로 내용은 잔혹했다.

“도움이 필요하시면 그냥 필요하다고 말씀해주시지..... 티아야. 언니가 대신할까?”

티아는 다이애나의 말에 고개를 저으며 볼펜을 들어 올렸다.

『“이제 그만 죽자......”』

“......티아야?”

자극적인 대사에 다이애나는 티아를 바라봤다.

“훌쩍......”

티아는 눈을 소매로 비비고 있었다.

“음..... 그럼 계속해도 될까?”

“훌쩍..... 크흥! 네, 네! 계, 계속해주세요!”

티아 또한 C의 스토리에 감정이 이입되었는지 눈물을 꾹 참는 것 같았다.

그래도 눈물이 그렁그렁 달려 있었으며, 눈물이 나오려 할 때마다 계속해서 소매로 닦아 눈물을 감추려는 것 같았다.

『온몸이 두려움으로 가득 찼지만 그녀는 멈추지 않았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라는 어둠이 생긴다지만, 어둠이 생기면 빛이 생기지 않는 것처럼 그녀가 가진 어둠에는 희망이라는 빛이 하나도 없었다.

오히려 더욱 어두워지는 나락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는 그녀는 얼른 자신한테 주어진 삶을 끝내고 싶었다.

언젠가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자살을 하면 지옥으로 간다고.

하지만 현실보다 더한 지옥이 있을까?

사랑하는 이도 죽고, 미래를 함께하자고 약속한 이도 죽고, 버팀목이 되는 이도 더 이상 내 곁에 없는데?

그녀는 떨리는 몸으로 다리의 난간을 향해 천천히 올라갔다.

마지막의 마지막, 가족과 함께 죽지 못한 자신을 자책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녀는 이 ‘죽음’이라는 경험을 최대한으로 뇌리에 집어넣었다.

작은 속삭임 같은 바람이라도 불면 떨어질 것 같은 그녀의 몸은 애처롭게 서 있을 뿐이었다.

수확하지 못해 홀로 남은 벼처럼, 허무하게 말라버리는 풀숲의 이슬처럼.

그녀의 몸은 서서히 허물어졌다.』

“......훌쩍.”

글을 읽는 다이애나 또한 서서히 눈물을 흘렸다.

손글씨지만, 아니 손으로 쓴 글씨였기에 오히려 더욱 집중이 되었다.

제임스의 잔혹한 필력이 아이들이 사용하는 작은 공책에 적혀 하나의 세상이 만들어지자, 다이애나는 절로 그 잔혹한 필력에 빨려 들어갔다.

이는 티아도 마찬가지였다.

다이애나는 하다못해 나이라도 많았지만, 티아의 나이는 아직 어렸다.

[리턴 패션 디자이너]도 너무 슬퍼서 한 번에 몰아보기 위해 꾹 참고 있던 티아였다.

짧게나마 적힌 ‘좌절만 있는 소설’을 티아는 버틸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손에서 볼펜을 놓지 않았다.

“티아 차례야.”

“......네.”

티아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글씨를 끄적였다.

『-저, 저기요? 거기서 뭐 하시는..... 아악! 저, 저기요! 거기서 대체 뭐하시는 거예..... 저기요!』

티아가 적은 글을 보자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제3자.....?’

멀리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표현하는 방식을 사용하였다.

그렇다면 제3자를 등장시켰다는 것이다.

‘희망을 주려는 건가?’

티아는 C라는 여자를 살리기 위해 새로운 희망을 주고자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문장을 내가 적는 이상, 그건 제대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녀의 정신은 이미 부서진 비스킷 조각처럼 되돌릴 수 없는 수준이었다.

누군가 저 멀리서 큰소리로 외치고 있다는 것은 인지하였지만, 이제 그만 자신의 삶을 끝내고 싶다는 욕망이 강했다.

그래도 죽기 직전 들은 마지막의 목소리가 남자가 아닌 배 속에 있던 아이의 목소리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수명을 다해 죽어가는 내 옆에서 올곧게 성장한 아이가 세상의 풍파를 이겨낼 것 같은 곧은 목소리로 마지막 사랑을 속삭이는 걸 듣고 싶었는데.

그 생각을 마지막으로 그녀의 몸은 점점 앞으로 기울어지기 시작하더니, 깊은 심연의 절망 안으로 떨어졌다.

-풍덩.

영원할 것 같은 짧은 시간이 흐르고 C의 몸은 서서히 고통에 잠식되었다.

이제..... 끝이다.』

“아..... 진짜.”

다이애나는 내가 적은 글을 보자 휴지로 눈물을 닦아내며 짜증을 내었다.

저 글을 읽고 있는 자신도 짜증 나지만, 저 글을 보고 어린아이한테 소설을 적으라고 하는 제임스 작가님이 처음으로 잔혹하다고 느껴졌다.

지금이라도 티아가 꼭 쥐고 있는 펜을 뺏어서 자신이 대신 적는 게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티아의 정서에 좋지 않은 글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티아는 꾹 참고 또다시 팬을 끄적였다.

『“저기요? 괘, 괜찮으세요?”

“.....어?”

“헤헤. 제, 제가 근처에 없었으면 크, 큰일 날 뻔했어요!”

C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자신의 몸을 바라봤다.

산산조각 날 것 같은 높이에서 강물이 뛰어들었는데, 몸이 너무도 멀쩡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은 아직 다리 위에 있었다.

“어, 어째서......?”

“제, 제가 초능력자거든요! 헤헤.”』

“......”

티아가 적은 문단을 읽은 나는 잠시 정신이 멍해졌다.

대화와 문장 두 개 다 적혀 있는 글이었지만 그보다 더욱 심각한 게 있었다.

‘......이게 뭐지?’

솔직히 방금 내가 적은 글로 인해서 이 소설은 마무리가 된다.

이미 높은 다리 위에서 강물을 향해 뛰어내렸고, 물에 빠지며 자신의 마지막을 잠식하는 순간을 적었다.

즉, 이 소설은 끝이 났어야 하는 게 정상이고 거기서 끝나야지만 가장 완벽했다.

“.....흐음.”

하지만 티아는 여기에 초능력자라는 어처구니없는 설정을 추가하였다.

막장이라면 막장이지만, 어린아이인 티아의 상상력으로 ‘C’라는 존재를 구하기 위해선 선 넘은 내용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렇다 해도 초능력자라니.....’

나는 피식 웃음을 터트리며 마저 글을 적었다.

『C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 남자를 바라봤다.

어딘가 바보 같아 보이는 그 남자는 말을 심하게 더듬어 듣는 이로 하여금 약간의 혐오감까지 들게 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인가.

C는 더 이상 살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그저 꿈을 꿨다, 우연이다, 환각을 봤다고 치부하며 다시 다리 위로 올랐다.

꿈을 꿨기 때문인지 난간 위로 올라가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

뒤에서 남자의 다급한 소리가 들려왔지만, C는 무시하며 다시 다리 밑으로 뛰어내렸다.』

내 글이 끝나자 티아는 다시 글을 적었다.

『“그, 그러지 마세요! 주, 죽는다는 건 안 좋은 거예요!”

C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몸을 바라봤다.

분명히 강물을 향해 뛰어내렸는데, 자신은 또다시 그 남자 앞에 있었다.

또다시 난간으로 뛰어올라 뛰어내렸지만, 또다시 그 남자 앞에 서 있었다.

몇 번이고 반복해봐도 시간은 계속 흐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건 꿈이 아닌 현실이었다.

그리고 알 수 있었다. 그 남자가 초능력자라는 것을.

“주, 죽는 건 아, 아, 아, 안 좋으, 은 거예요! 헤헤.”

무엇보다 남자는 아까보다도 더욱 심하게 말을 더듬었다.

“더, 더 이상 뛰, 뛰어, 내, 내리지, 마, 마세요.”』

“흐음.....”

티아는 아무래도 이 남자한테 하나의 특성을 준 것 같았다.

‘초능력이라는 걸 사용할 때마다 말더듬이가 심해지는 걸 보니, 능력을 사용할 때마다 지적 수준을 잃는 건가?’

아니면 다른 부작용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대화로부터 티아가 남성의 설정을 정한 이상, 나는 그걸 따르긴 해야 했다.

『남성의 모습은 점점 어려지기 시작했다.

물론 성인의 모습에 갓난아기의 모습으로 어려진 건 아니었다. 기껏해야 초등학생 정도일까?

남성이 이내 C의 앞에 털썩 기절하며 쓰러졌다.』

티아는 곧바로 대화를 적었다.

『“......이게 대체 뭐야.”

어쩔 수 없는 구원을 받았다.

원치 않는 구원이다.

하지만 지금 머릿속에 있는 놀라움 때문에 자살할 생각이 들지 않았다. 지금은 오직 정체를 알 수 없는 이 남자한테 시선이 쏠려 있었다.』

“.....호오.”

절망만이 가득했던 소설에 처음으로 ‘희망’적인 말이 들려왔다.

C의 뇌리에 유일하게 ‘자살’이 아닌 ‘놀라움’이 깃들어 있게 되었다.

‘비록 방법은 어이없지만......’

초능력자라는 어처구니없는 설정이 등장한 이후부터, 애초부터 C의 미래는 희망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흐음.”

티아가 적은 문단과 대화 속에서 C는 더 이상 자살을 할 수 없었다.

‘재밌네.’

어처구니없지만 그래도 이 릴레이 소설의 승자는 결국 티아였다.

나는 피식 웃으며 나머지 문단을 적었다.

『C는 더 이상 자살을 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남자가 기절한 순간 그냥 모든 것을 포기하고 다시 자살을 하려 할 수 있었지만, 그보다 눈앞에 있는 남자가 자신 때문에 무언가를 희생했다는 것을 눈치챘다.

C는 어쩔 수 없이 어려진 남자를 데리고 자신의 집으로 향했다.』

“헤헤.”

내가 적은 글을 보자 그제야 티아는 안도하는 얼굴을 하며 웃음 지었다.

“초능력자라는 어처구니없는 방법이 쓰이긴 했는데, 그래도 C를 살렸네?”

“.....언젠가 아빠한테 들은 적이 있어요. 희망과 절망은 동시에 찾아온다고요. 너, 너무 절망만 왔으니 희망을 주고 싶었어요.”

‘희망이라.....’

에드워드 선생님과 루이 감독님도 그렇게 말하긴 했지.

‘[인피니티 라이프]도 마무리를 바꿀 수 있는 가능성도 존재할까?’

나는 멍하니 공책에 적혀 있는 내용을 봤다.

“티아야.”

“네?”

“이거 공동 저자로 내볼래? 솔직히 내용 자체도 나쁘지 않아. 과도한 무리수가 있기는 하지만 그 부분은 조금 다듬으면 괜찮아질 것 같기도 하니까. 어떻게 할래?”

그 말에 티아의 얼굴에 경악이 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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