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화. 악의 (2)
[잃어버린 악의]의 내용은 뭔가 요상했다.
‘인간한테 양심이 없는 세상..... 그러면서도 인간한테 악의라는 게 없는 세상인가.’
이런 세상이 되면 가장 먼저 뭐가 벌어질까?
양심이라는 건 개념상 인간의 마지막 보루라고 생각한다.
범죄를 저지를 때, 음식을 먹을 때, 결심을 할 때 이 양심이라는 것이 있기에 사람은 주춤한다.
물론 이 세상에 살아가며 이 양심이라는 것이 출타한 악마 같은 이들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평범한 사람들이라면 양심이 있을 것이다.
‘사이코패스들의 세상인가?’
거기에 악의도 없었다.
다른 사람을 해치려고 하는 또는 무엇이 잘못되기를 바라는 나쁜 마음을 악의라고 하는데, 양심이라는 것이 이를 가까스로 막는다.
그런데 그 양심조차 없다.
‘사람이 사람한테 총을 쏴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고 너무도 당연하게도 느끼는 세상인가? 그 행동에 악의나 선의 따위도 없어, 그냥 일상생활처럼 자연스러운 분위기라.....’
이곳 주인공 또한 원래 그러했다.
이 세상의 주민들처럼 남들과 똑같이 행동했던 주인공은 어느 날의 계기로 바뀌게 된다.
‘금서?’
금서의 정체는 ‘성경’이었다.
세상이 금지시킨 금서를 우연찮게 읽은 주인공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심한 의심을 가지게 된다.
‘천사와 악마가 섞인 듯한 감정 묘사..... 조현병이라서 가능한 건가? 디테일이 상당한데?’
글에 대해 전문적으로 배우지 못한 콜린이다 보니 상황적 설명이나, 소설 배경에 대한 묘사력은 부족했다.
다만, 조현병을 아직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인지 대화 속 비문에 적힌 디테일은 마치 현실 세계와 비슷할 정도의 디테일이 있었다.
농담을 조금 섞어서 말하면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내용도 상당히 흥미롭네. 영화 이퀼이브리덤을 떠오르네.’
모든 감정이 통제된 세상 속의 이야기를 풀어낸 영화다.
그 유명한 ‘건 카타(Gun Kata)’라는 무술이 나오기에 탄탄한 매니아층 또한 존재하는 영화였다.
처음에는 많은 비판이 있었지만, 시간이 흐르며 매니아층에서 상당히 유명세를 가지게 되었고 이후 최소 비용으로 최대 효과를 낸 영화로 유명해진다.
‘내용 자체는 흥미로웠지.’
약을 먹고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는 세계 속에서, 실수로 먹지 않게 된 약으로 인해 이 세상이 얼마나 안 좋은지 알게 된 주인공이 세상을 박살 내는 내용이다.
한국에서는 쪼렙은 고인물을 이길 수 없다는 영상으로 유명한데, 그만큼 화려한 건 카타(Gun Kata)가 눈을 즐겁게 했다.
물론 병맛 액션으로 유명하기에 안 좋은 의미로 오마주되기도 했지만 말이다.
‘영화하고 다른 점이 있다면, 여기 있는 주인공은 현실 속을 살아간다는 거네.’
이퀼이브리덤 주인공은 세계관 최강자다.
보통 최강자가 아니다. 아까 말했듯이 웬만한 실력자들도 쪼렙으로 만들 수 있는 고이다 못해 썩어버린 녀석이다.
날아오는 총알도 피해버리고, 나름 중간보스 역할인 녀석을 1초 안에 쓰러트리는 최강자라면, 반대로 [잃어버린 악의] 속에 있는 주인공은 너무도 약했다.
그저 평범한 남자. 그 세계에서 나름 평범한 축에 속하는 가족의 일원이었다.
‘문제는 이거네.’
그곳에서 성 활동이라는 것은 마치 짐승들과 같았다.
여자는 강간당해도 아무렇지 않고, 강간당한 여자는 아이를 낳아도 그 중요성을 모른다.
마치 기계처럼 여자라는 존재는 아이를 낳기만 하는 존재, 남자라는 존재를 돈을 벌어오기만 하는 존재로 표현된다.
사랑 따위 존재하지 않기에 일정 기간 아이를 키우면, 더 이상 아이를 키우지 않고 짐승처럼 아이를 방치하기도 한다.
아이를 방치해도 미안한 양심을 느끼지 못했고, 강간을 해도 악의가 없기에 나쁜 짓인지 모른다.
아이를 낳아도 키우는 여자는 그저 본능일 뿐, 낳자마자 아이를 키우기 싫어 죽이는 여자와 남자까지 있다고 표현되어 있었다.
‘살짝 소름 돋기는 하네.’
그래도 픽션이라는 것을 알고, 전문적인 작가가 쓴 것이 아니고 다듬어지지 않은 소설이라 그런지 그렇게까지 소름 돋지는 않았다.
다만, 이걸 내가 썼다면 어떤 방식으로 풀어나갔을까 하는 궁금증도 생겼다.
‘숨어 지내네......’
주인공은 성경을 읽고 처음에는 불경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죽었음에도 주변 이들의 아무렇지도 않은 반응에 주인공은 점점 더 성경에 의존하게 되었다.
사랑 따위 없다. 그저 태어나서 짐승으로서 번식을 하고 낳은 개체라고 표현되는 인간들일 뿐.
그 사랑조차도 애초에 정신을 차린 자신만이 그런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폭발하는 계기가..... 가족의 죽음인가.’
다른 가족들과 다르게, 주인공의 가족들은 상당히 오랫동안 아이를 기른다고 표현되어 있다.
이는 세계관에서도 상당히 특이한 경우라고 적혀 있었다.
물론, 갑작스러운 조잡한 설정이지만 이렇게라도 하지만 내용이 제대로 전개되지 않으리라 생각한 것 같았다.
주인공의 폭발하는 계기는 학교에 다니던 자신의 여동생이 상급생들한테 강간을 당하고 총에 맞아 사망한 사건부터였다.
마치 자신의 일을 업적이라고 떠들어대는 상급생들을 죽여버린 주인공은 이날, 자신의 감정에 처음으로 ‘악의와 양심’이 생긴다.
아니 애초부터 성경을 읽었을 때 생겼던 악의를 그제야 깨달은 것일 수도 있었다.
‘마무리는..... 성경을 복사하고 사람들한테 알리는 장면인가.’
주인공은 죽는다.
성경은 애초부터 금서로 분류되어 있다.
작은 실수로 주인공이 금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알려지게 되었고, 그로 인해 주인공의 가족들은 정부로부터 살해당한다.
주인공은 도망가면서도 성경을 지켰고, 성경을 몰래 복사하며 세상에 퍼트리다 결국 정부로부터 죽임당한다.
‘사람들한테 많이 알리지는 못했지만......’
콜린의 책은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작은 행동이라도 실천하는 사람이 있기에 이러한 양심 있는 세상이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잃어버린 죄악]의 마지막 내용은 이랬다.
‘너는 절망이 아닌 희망으로 책을 이었네.....’
주인공이 사망한 직후, 성경을 조금이라도 읽은 자들은 정부로부터 가차 없는 죽임을 당한다.
그렇게까지 많은 사람들한테 알려지지 않았지만, 정부는 성경을 읽지도 않은 사람들이라도 관계가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들은 죽였고 그 범위는 마을 정도였다.
마을 하나? 도시에 핵을 떨어트려도 양심을 느낄 수 없는 세계인데 그게 무슨 상관인가?
마을이 파괴되고, 사라지고, 그곳에 마을이라는 것이 있었다는 느낌조차 안 들게 풀뿌리 하나 남기지 않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곳에 새로운 마을을 다시 만들어, 강제로 사람들을 이주시키며 ‘성경’이라는 것이 없던 과거의 마을로 만들어 처음부터 다시 시작시킨다.
그렇게 20년 후.
어떤 여자아이가 길을 가다 파헤쳐져 있는 대지로부터 성경의 일부분을 찾는 것으로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작은 희망인가......”
콜린은 절망과 함께 작은 희망을 남겼다.
그 여자아이가 그 성경의 일부분을 읽고 어느 반응을 할지 몰랐다.
다만, 그 여자아이가 발견한 성경의 일부분은 주인공이 이건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며 뜯어내 무심결에 땅에 묻었던 ‘내용을 알 수 없는 성경의 일부’였다.
그렇기에 그걸 발견한 게 희망으로 이어지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작은 희망인 건 분명했다.
“흠.....”
나는 한참 동안이나 [잃어버린 악의]를 붙잡고 생각에 잠겼다.
그렇게 생각에 잠겨있는 제임스의 산통을 깨버리는 존재가 있었다.
-삐리리리리리리리~♪
핸드폰 소리가 울리자 들고 있던 책을 내려놓고 발신인을 확인했다.
“하아......”
한숨을 내쉰 나는 전화를 받았다.
-햄버거 먹으러 가자! 햄버거!
“.....그래 이것아.”
-나! 맥플러리 먹을 거야! 용돈 받았어! 히히!
“잘났다 이것아.”
넌 언제나 똑같아서 좋겠다.
***
뭐. 솔직히 이사벨이 맥플러리를 왜 저렇게 좋아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자주 먹지 못해서 인 건 알고 있었다.
다른 음식점들과 다르게 맥플러리를 파는 햄버거집은 한 곳밖에 없기도 했고, 거기에 옆 마을에 있다 보니 너무 멀어 배달이 되지 않았다.
이사벨이 초등학생일 때는 나와 월리가 자주 데려다줬지만, 이후에는 내가 군대를 가게 되어 혼자서 다녀야 했는데 맥플러리 하나 먹겠다고 옆 마을까지 가는 건 힘들었을 것이다.
그렇다 보니 내 입에서 햄버거 먹으러 가자는 말을 이사벨은 항시 기다렸을 것이다.
“그게 그렇게 맛있냐?”
“응!”
“.....티아야. 감기 걸리지 않게 조금만 먹어.”
“네!”
이사벨이 먹으니 티아도 덩달아 먹고 싶었는지 같이 먹게 되었다.
나는 따뜻한 아메리카노에 베이컨을 가득 넣은 햄버거를 먹으며 행복한 듯이 맥플러리를 먹고 있는 이사벨을 바라봤다.
“그거 먹는 게 그렇게 행복하냐?”
“응! 내 인생의 유일한 낙이야!”
“.....너의 소확행 기준은 정말 소박하구나.”
단순하긴 하지만 자신만의 행복한 기준을 아는 사람은 솔직히 조금 부럽다고 느낀다.
작은 행복이라도, 그 행복을 누리는 것만으로 스트레스를 해소시킬 수 있지 않은가.
“Sohwaghaeng이 뭐야?”
“있어. 한국말인데 그냥 그러려니 해.”
“욕은 아니지?”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
“그럼 안심!”
그러면서 맥플러리가 담긴 컵을 싹싹 긁어먹은 뒤 다른 맛을 들어 올렸다.
“티아야 너는 이사벨처럼 빨리 먹지 마. 그러다 머리 아파진다.”
“네에.”
이사벨의 먹는 속도에 따라가려고 허둥지둥 먹던 티아는 내 말에 다시 천천히 먹었다.
“먹고 싶으면 더 먹어, 오빠가 사줄 테니까.”
“진짜지? 아싸!”
“애초부터 사주려 했어.”
그게 얼마나 한다고.
아무튼 간에 우리는 음식을 먹었다.
기내식 아침을 거르고 와서 그런지 나도 햄버거를 맛있게 먹었다.
“그나저나 티아는 이제 뭐 하고 싶어?”
“작가님이 글 쓰는 공간을 구경하고 싶어요!”
“.....딱히 그런 건 없는데, 음. 일단 월리네 집이나 구경 갈래? 거기도 작가 놈 한 명 있거든.”
놈이 아니라 년이지만 무슨 상관이겠는가.
어차피 지금쯤이면 골골대며 죽어가고 있을 텐데.
“밥 먹고 갈 건데 같이 갈래?”
“네! 근데 그, 그 작가놈.....이라고 하신 분은 무슨 소설 쓰세요?”
“웹소설인데, 빌에이든 미디어에서 연재하고 있어. 참고로 티아가 읽을 수 없는 소설이니까 관심 가지지 마.”
“네에.”
그 말에 맥플러리를 퍼먹고 있던 이사벨 숟가락이 갑자기 멈추었다.
“캐서린 언니가 가장 먼저 말한 줄 알았는데..... 소식 못 들었어?”
“무슨 소식? 캐서린 결혼해?”
“아니, 그게 아니라.....”
이사벨은 잠시 주저하더니 말했다.
“캐서린 언니 소설 영화로 만들어진다던데?”
“......”
그 야설이?
***
캐서린 소설이 영화화한다고 하자 나는 궁금증에 에밀라한테 전화를 해봤다.
캐서린이 적은 소설을 영화의 주제로 하고 싶다는 연락이 빌에이든 미디어 측을 통해 공식으로 받게 되었다고 한다.
물론 영화의 주제, 즉 소설 내용 저작권 중 일부를 원한다는 것으로, 캐서린의 소설을 영화로 만든다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그래서 대답은?”
“3일 전에 캐서린 언니한테 들었는데 그 이후로는 몰라. 오빠를 기다리고 있는 거 아니야?”
“어차피 저작권 구매 정도일 텐데 나를 기다려봤자지.”
만약에 캐서린의 소설을 주제로 영화로 만들어진다라......
‘무조건 보러 가야지.’
야설이라 보러 가는 게 아니라, 그저 순수한 마음으로 친구 여동생 소설이 잘 됐으면 하는 마음에 보러 간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