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7화. 2부
제임스의 공모전을 기다리는 건 셀리나뿐만 아니라 아주 잠깐의 인연을 가진 시골 소녀도 있었다.
다나는 어렸을 적부터 만화를 굉장히 좋아했다.
시작은 일본 만화인 고무 열매를 먹은 해적들의 이야기를 담은 만화였지만, 이후 미국의 카툰부터 시작해서 한국의 웹툰까지 모든 만화를 섭력했다.
‘나도 이렇게 그릴 수 있을까?’
가장 좋아하는 걸 직업으로 삼고 싶은 건 어느 인간이나 똑같았다.
다나는 어느 순간부터 만화가라는 직업을 가지고 싶어 하게 되었고, 이후 본격적으로 만화에 관한 정보를 공부하며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림에 재능이 있었는지 그림을 상당히 잘 그렸지만, 스토리 측면에서 항상 부족하다는 평을 받았다.
이후 인터넷에 웹툰을 올리는 식으로 만화가의 꿈을 이루려 하였지만 쉽사리 진행되지 않았다.
당연했다.
‘만화는 그림이 전부가 아니구나.’
이후 다나는 잠시 그림을 내버려 두고 스토리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다.
만화를 많이 읽는 것도 있지만, 만화 말고도 소설과 영화 등을 보며 스토리에 대한 사각지대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중에서 역시라고 해야 할까? 가장 많이 읽은 건 제임스 작가의 소설이었다.
미국에서 현존하는 작가들 중에서 스토리와 세계관이 최고라 칭해지는 작가다 보니 배울 점이 많았다.
자연스럽게 팬이 되고, 다나는 서서히 제임스의 굿즈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러던 와중 특이한 그림을 발견했다.
“......리암 톰슨?”
일러스트레이터로 이름 높은 리암이 그린 그림들을 본 순간 다나의 마음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평소 제임스 작가의 팬이라 칭하며, 그의 작품들을 전부 자신만의 방식으로 일러스트를 만들었던 리암의 실력은 너무도 아름다웠다.
하나의 작품이라고 생각될 정도였고, 사람들은 그의 작품을 돈 주고 사겠다는 말까지 꺼냈다.
SC라스틱의 허락을 받은 리암은 일정한 금액을 주고 몇 가지 그림들을 판매하며 그 돈들은 대부분 자기가 팬질하는 데 쓰겠다고 말했다.
‘나도 이렇게 그릴 수 있을까?’
제임스 작가님의 스토리와 리암 톰슨의 그림 실력을 합친 만화가 있으면 얼마나 재밌을까.
자기가 생각하고도 어이가 없던 다나는 피식 웃음 지었지만, 이내 진지해졌다.
‘인터넷만으로 내 실력을 확인하는 건 너무 어려워.’
무엇보다도 슬슬 집안의 눈치도 보인다.
이제 어느 정도 수익을 볼 때가 왔다.
‘벼룩시장에 만화를 그려 판매해보자.’
다만, 그냥 평범한 스토리면 끌리지 않다 보니 조금 야릇하게 만화를 그려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예상대로 인기는 많았지만, 내용 때문인지 그렇게까지 많이 팔라지는 않았다.
그렇게 사람들이 곁눈질로만 만화를 보던 와중 신기한 남자가 찾아왔다.
‘제임스?’
몸을 꽁꽁 감싼 자신보다는 아니지만, 그래도 얼굴을 상당히 감싼 동양인과 친구로 보이는 흑인이 다가왔다.
‘제임스라는 이름이 흔하니까.....’
제임스 작가가 몬태나주에 산다는 건 알지만, 몬태나 주가 좀 넓은가?
무엇보다도 미국계 동양인들 중에서 제임스라는 이름은 상당히 흔한 편이었기에 그냥 그러려니 했다.
‘진짜 제임스일 줄이야.....’
서서히 제임스의 얼굴이 미국 전역에 퍼지며, 그를 아는 사람들이 하나둘 정보를 공유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전에 왔던 사람이 제임스라는 걸 알게 되었고 서서히 다나는 아쉬움을 품었다.
‘공모전에 나가자.’
그가 제임스라는 것을 알게 된 직후 공모전을 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제대로 된 만화나 웹툰을 그리지 않고 방황하던 자신을 한 단계 성장시킬 수 있는 공모전에 나가자고 생각했다.
***
예전에 이러한 투표를 한 적이 있었다.
제임스도 모르는 그저 [나인 드래곤]에서 은밀히 진행되었던 투표였지만, 이 투표는 곧 공개되었고 서서히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제임스의 팬을 자처하는 가장 아름다운 여자는?]
조금은 어처구니없는 투표였다.
그중에는 최강의 우승 후보인 올리비아를 비롯하여 수많은 할리우드 스타들이 있었지만, 그중에서는 조금 특별한 연예인도 있었다.
2년 전 Miss USA 우승자이면서도, 돌연 은퇴를 선언한 모델이자 최근에는 생활고 때문에 패션모델로 다시 활동하고 있는 베시 베흐나흐였다.
딱히 TV Show에 참여하지는 않지만, SNS를 통해 꾸준히 활동하고 있는 그녀의 화려한 외모와 섹시한 몸매는 팬 카페에 가입한 여러 남자들의 가슴을 뛰게 만들었다.
또한 베시한테는 특이한 전적이 하나 있었다.
[최초로 열린 팬사인회에서 첫 사인을 받은 행운의 여자.]
가끔 SNS 게시글에 dragon two 와 그 옆에 ‘1’이라는 숫자가 적힌 게시글을 보여줄 때가 있는데 그때마다 사람들은 부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참고로 저 ‘1’은 제임스도 모른다.
그냥 볼펜을 실수로 휘두른 것인데 숫자 1처럼 남았지만, 그러한 사정을 모르는 베시는 처음으로 서서 특별한 취급을 받았다는 사실만으로 기뻐했다.
‘공모전.....’
베시는 계속해서 글을 쓰고 있지만, 출판사로부터 원고가 통과되질 못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질 나쁘거나,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신생 출판사에 원고를 전달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런 베시한테 중요한 순간이 왔다.
‘웹소설로 진행한다는데...... 내가 할 수 있을까?’
책이나 웹이나 똑같은 장르 소설이지만, 웹소설에는 웹소설만의 장단점이 있다고 배웠다.
쓰는 법이 미묘하게 다르고, 시간을 잘 맞춰야 한다고 들었다.
과연 그게 자신한테 가능할지 알지 못했다.
그렇게 한참이나 곰곰이 고민하고 있을 때 베시의 핸드폰이 소리를 내며 올렸다.
‘SNS에 누가 게시글을 올렸나?’
궁금증이 가득한 얼굴로 핸드폰을 열어본 베시는 이내 눈을 크게 뜨며 당황하였다.
제임스 작가님이 정말, 저어어어엉말로 오래간만에 SNS에 게시글을 올린 것이다.
하지만 그런 건 신경 쓰지 않을 정도로 SNS에 올라온 게시글은 충격이었다.
‘제자가 될 수 있다고?’
제자라고 딱히 적혀 있지 않았지만, 그래도 제임스 작가님한테 조언을 끊임없이 요구할 수 있다면 그게 제자가 아니고 뭐란 말인가.
‘무조건 참가해야 해!’
[나인 드래곤] 카페에서 [제임스의 팬을 자처하는 가장 아름다운 여자] 2위에 랭킹된 베시는 공모전에 대한 참가 의사를 밝혔다.
참고로 투표 1위는 올리비아였다.
***
콜린은 [잃어버린 악의]를 낸 후에도 계속해서 글을 쓰고 있었다.
이유는 모른다.
그냥 옛날부터 글을 썼기 때문인지 지금 이 순간에도 글을 쓰는 게 행복했다.
자신의 망상, 상처, 과거를 글로 표현하고, 세계를 구축하는 것이 너무도 재밌었다.
세상에서 즐기는 자는 이길 수 없다고, 콜린은 이미 여러 차례 출판사한테 전달한 원고가 몇 번이나 까였지만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즐겁게 글을 썼다.
[잃어버린 악의]로 받은 선인세로 지금까지 자신 때문에 고생한 가족들과 레스토랑에서 식사까지 하였다.
물론 엄마가 자체적으로 식당을 운영하고 계셨지만 그래도 행복했다.
“공모전?”
“응. 제임스 작가님이 하신다고 하시더라고.”
몇주 전 누나인 아리야로부터 제임스 작가님이 SC라스틱과 빌에이든 미디어와 협의를 하여 공모전을 연다는 소식을 받았다.
“근데 웹소설로 진행된다고 하더라고.”
“.......”
“이번에 컴퓨터도 바꿨으니까 한 번 도전해보는 게 어때?”
“......딱히.”
그렇게 좋을 거라고 느끼지 않았다.
무언가와 경쟁한다는 것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고, 그냥 편안히 글 쓰고 싶을 때 쓰고, 쓰고 싶지 않을 때는 쉬는 지금의 삶에 만족했다.
[잃어버린 악의]도 상당히 잘 팔리고 있었는지 나름 수입이 있었고, 앞으로도 그냥 이런 식으로 글을 쓰면 살아갈까 했다.
제임스 작가님한테는 고마움이 있기는 했지만, 자신은 여기까지가 한계라고 여겼다.
-그럼 이제 내가 움직여도 돼?
“.......!”
누나한테서 공모전을 들은 그날 밤.
지금까지 조용해야 했던 또 하나의 자신이 목소리를 내었다.
“어, 어째서......”
완치되지 않았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조용해야 할 그 녀석이 또다시 목소리를 낼 줄은 몰랐다.
콜린은 당황하며 서둘러 방 안으로 들어가 문을 잠그고 이불을 뒤집어썼다.
하지만 다음으로 들려오는 그 녀석의 목소리는 콜린의 예상과는 많이 달랐다.
-네가 병신 짓을 하니까 나왔지.
“.....내가?”
-그래 병신아. 언제까지 자신을 숨길 거야? 나는 또 하나의 너라고? 너도 알고 있잖아?
“.......”
-네 마음에 솔직해져. 안 그러면 또 과거로 돌아갈 테니까.
콜린은 소리의 말에 조용히 입을 닫았다.
***
제임스가 지금까지 인연을 만들었던 이들이 하나둘 기지개를 켜며 공모전을 준비하고 있을 때, 정작 그 제임스는 방안에서 컴퓨터를 켜고 멍하니 있었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아무것도 하기 싫다.
지금도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지만, 격렬히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정확히는 [사막의 전갈 2부]에 관한 연재였지만, 정말 하고 싶지 않았다.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은 새하얀 파일이 제임스의 지금 신경을 대변해주고 있었다.
“아니 진짜 내가 왜 그딴 공약을 한 거지? 대체 왜? 아니 왜? 1억 달러? 고작 1억 달러!!!!!”
고작이라는 말이 나오면 안 되었지만, [사막의 전갈]이 북미 박스 오피스에서 1억 달러를 달성하는 건 5일이면 충분했다.
거기에 세계로 퍼져나간 수익까지 합한다면 두 배는 훌쩍 넘었을 것이다.
“.....아니 진짜 그때는 몰랐다니까? 내가 그렇게 인지도 있었는지? 아니 있다고 해도 이게 말이 돼? 고작 몇 작품 내지 않았는데? 이게?”
어이가 없어서 횡설수설 말을 내뱉었다.
하지만 아무리 소리치고 중얼거려도 한 번 약속했던 건 바꿀 수 없었다.
“.....그때는 내가 나를 몰랐었으니 다시 내기하자고 하면 독자님들이 이해해주실까?”
내가 생각하고도 어이가 없었다.
농담이 아니라 지금 내 인지도라면, 누군가 나를 납치해서 지하 감옥에 가둬 영원히 글만 쓰게 할 수도 있었다.
장난 같지만 내 팬들이라면 진짜 할 수 있을 것 같았기에 심각했다.
“......쓰자.”
그래, 써야지.
써야 하는데......
“하아..... 용일아 왜 그러냐? 그래도 스토리는 이미 알고 있잖아?”
테러조직 수장 ‘에이’의 이야기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걸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런데 마치 피카소의 그림에 물감을 묻히려는 것처럼 내 손은 도저히 키보드 위에 올라가지 않았다.
‘애초에 너무 오래전에 썼다고!’
다른 글들과 다르게 그때 느꼈던 영감이 전혀 없었다.
특히, 지금 [사막의 전갈]을 읽으면 오히려 부족하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다른 소설들은 애초부터 몇 부를 생각하면서 글을 썼어. 하지만, [사막의 전갈]은 1권을 완결로 생각하며 글을 썼어. 2부는..... 망할 가능성이 커.’
한층 진화된 지금의 솜씨라도 망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은 도저히 서지 않았다.
“하아.....”
그렇다고 약속을 깰 수는 없는 법.
“마른오징어도 쥐어짜면 액기스...... 아니 그 말을 내가 왜 했지?”
오후에 했던 말이 후회되었다.
내가 왜 그런 말을 했지.
“일단 써보자.”
나는 천천히 키보드를 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