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화. 데이트 (2)
우리 엄마는 술을 잘 마시지 않는다.
가족 중에 술을 가장 잘 마셨지만, 정말 특별한 날이 아니면 술을 잘 마시지 않았다.
기껏해야 한 두잔 정도 마시면 더 이상 마시기 싫다고 술잔을 내려놓으셨고, 그 때문인지 오직 아빠만이 엄마의 술 주량을 알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아빠가 엄마에 맞춰 술 마시다가 병원 간 적이 있었다고 했던가?’
아무튼 러시아인 뺨칠 정도로 술을 잘 마시는 엄마 때문인지 나 또한 술을 상당히 잘 마셨다.
‘올리비아는 술을 잘 마시던가?’
생각보다 잘 마시는 편이었던 걸로 기억난다.
저번에 우리 집에서 소소한 파티를 하였을 때 와인과 양주를 상당히 많이 마셨음에도 그리 취하지 않았던 것 같았다.
‘그래도 지금 저 모습은.....’
-탁탁!
팔꿈치에 소주 뒤에를 탁탁 치는 모습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질적이었다.
여신이 이슬을 마시기 위해 신성한 의식을 치르는 장면은 친숙하면서도 익숙하지 않은 장면이었다.
‘군대 동기들이나 저렇게 마셨던 걸로 기억하는데.’
어째서 저렇게 마시냐고 물어봤는데, 누군가는 독소를 뺀다고 하고, 누군가는 그냥 이러면 소주가 부드러워진다고 하였다.
“한국 술을 자주 마시나 보네요?”
“이곳에 오면 마시는 편이에요. 이곳 사장님이 Soju를 마실 때는 신성한 의식을 치룬 뒤에 마셔야지 더 맛있다고 가르쳐주셨거든요.”
“......”
뭐랄까. 한국인이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외국인을 타락시키는 것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재미는 있었지만 그걸 진지하게 받아든 올리비아가 귀엽기도 했다.
“한 잔 드릴까요?”
“네. 한 잔 주세요.”
“후!”
올리비아는 소주잔을 입으로 분 다음 나한테 내밀었다.
‘저건 또 어디서 배운 거야.’
소주잔을 받아들자, 올리비아는 소주병을 기울여 술을 따라주었다.
“저도 드릴게요.”
“여기요.”
졸졸졸졸
술을 받아들고 올리비아의 잔에 따르는 것과 동시에 우리가 있던 방문이 열리며 음식들이 차례대로 들어왔다.
“그럼 맛있게 드세요.”
종업원은 마스크를 벗고 있는 우리 둘의 얼굴을 알쏭달쏭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밖으로 나갔다.
가스레인지 위에서 부글부글 끓고 있는 음식들에 시선이 가서 마스크를 벗고 있었다는 사실을 깜빡했다.
“너무 많은 거 아니에요?”
“오늘은 치팅데이라 괜찮아요.”
“아니 그게 아니라..... 네. 그러네요.”
누나도 다이어트를 할 때마다 치팅데이에는 음식에 1,000달러를 꼴아박아도 아깝지 않다고 말했기에, 올리비아가 오늘 많이 먹는 것도 이해가 되었다만.
‘원래 치팅데이라는 게 제각각인가?’
알다가도 모르겠네.
아무튼간에 올리비아는 보글보글 끓고 있는 곱도리탕을 접시에 덜어 나한테 주었다.
“여기요.”
“아. 감사합니다. 근데 곱도리탕은 처음 보네요.”
“네? 모르셨어요?”
“알고는 있었는데 먹어 본 적은 없어요. 애초에 전 한국에 체류한 기간이 그리 길지도 않으니까요.”
집에서 닭볶음탕은 폐계를 받을 때마다 가끔 해 먹지만, 그 안에 곱창을 넣어 해 먹지는 않는다.
곱창 자체가 구하기 힘든 것도 있었지만, 엄마가 냄새난다고 손질하시길 싫어하셨기 때문이다.
“그래도 곱창볶음은 자주 먹었어요. 동기 중에 좋아하는 녀석이 있었으니까요.”
오래간만에 입에 소주가 들어가서 그런지 약간 그때가 그립기까지 했다.
물론 그때로 돌아갈 생각은 죽었다 깨어나도 없지만 말이다.
‘맛있네.’
그렇게 입에 술이 들어가고 음식까지 맛있다 보니 올리비아와 이야기는 점점 길어졌다.
“[사막의 전갈 2부]를 집필 중이신데 막히셨다고요?”
“네. 그것 때문에 누나가 올리비아한테 부탁한 것 같아요. 고향에 가서도 그것 때문에 한참 끙끙거렸으니까요.”
“[사막의 전갈 2부]는 정말 중요해요. 작가님 팬들이라면 오랜 꿈이나 다름없으니까요.”
“그 정도인가요?”
“작가님의 서사의 시작이라고 하면..... 호호. 너무 과한가요? 아무튼 저희한테는 그런 느낌이에요. 물론 지금 출판하시는 작품들이 더 재밌더라도 말이죠.”
“처음이라는 게 중요하긴 하죠. 그리고 그 처음이 성공할수록 2부라는 건 실패할 가능성이 높으니까요.”
“사람들은 2부에 관한 성공이 높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다만, 사람들의 기대감이 너무 높기에 잘 만들어진 2부더라도 실패라는 단어를 쓰기도 하죠. 소포모어 징크스라고 하죠.”
“1, 2부가 전부 성공한 작품은 흔치 않으니까요.”
소포모어 징크스는 작품에 국한되지 않고, 기업, 스포츠, 디자인 등 여러 가지 분야에서도 존재한다.
기대감이라는 건 좋다. 하지만 그 기대감이 너무 높으면 독으로 작동된다.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그림을 더욱 완벽하게 만들라는 의미 같아요. 한 장면도 소홀히 대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렇기에 내가 처음에 등장하는 에단과 로즐리의 연애 장면에 집착했던 것이다.
한 장면이라도 독자분들이 더욱 집중하고 감동할 수 있게 적고 싶었다.
“저도 있어요. 실패한 2부가.”
“......그런가요?”
“네. 많아요. 그중에서 [Bloody Week]이라는 TV Show가 생각나네요. 2년 전에 시즌 1이 완결 나고 시즌 2가 완전히 망해서 시즌 3까지 질질 끌다 끝이 났죠. 그리고 제가 참여한 최초의 스릴러 TV Show이기도 하죠.”
러브 코미디, 하이틴 같은 드라마에 자주 등장하는 올리비아였기에, 사람들의 기대감은 더욱 높았을 것이다.
그렇게 시즌 1은 사람들의 기대감을 충분히 충족시켜 주었지만, 시즌 2는 그러지 못했고 결국 감독이 예상했던 시즌 5까지 가야 할 작품은 시즌 3에서 멈추었다고 한다.
“저도 처음 도전한 작품이기에 애착이 컸어요. 그래서 시즌 2를 진행할 때 전력을 다했죠. 물론 처참히 망했어요.”
“......힘드셨겠네요.”
“아뇨? 힘들기보다는..... 그냥 아무 생각도 들지 않더라고요. 뭐, 욕은 제가 먹은 게 아니라 시나리오 작가님이 모두 뒤집어써서라고 하면 너무 잔인할까요? 그때는 그냥 쉬고 싶다는 느낌이 강했거든요.”
올리비아는 소주를 입안에 탈탈 털어넣으며 말했다.
“술아 다네요.”
“그러게요. 오늘따라 왜 이리 술이 달지?”
서로의 과거를 말해주기 때문일까, 오늘따라 술이 설탕물처럼 달았다.
“그런데 무슨 내용을 적으시는데 고민이세요?”
“제가 연애 경험이 없거든요. 그 때문에 고민한 것뿐인데..... 아무래도 오늘 올리비아 덕분에 어떻게든 쓸 수 있을 것 같네요.”
“연....애? 작가님 설마 지금까지 연애 경험이 없었나요?”
“그렇죠? 딱히 흥미도 없었고.”
물론 거짓말이다.
그 누구보다도 흥미진진했지만 그걸 올리비아한테 말하기 힘들었다.
“헤에.....”
살짝 술이 들어갔기 때문인지 올리비아는 손을 턱에 받치고 재밌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 맞다 저도 금요일에 공모전에 참여할 거예요.”
“금요일? 설마.....”
“후훗. 코스프레죠. 오늘을 위해서 덴마크에 있는 장인분한테 옷 의뢰를 맡겼거든요.”
“설마 드라이어드.....”
“당연히 아니죠! 그럼 대회를 위해 열심히 준비한 사람들한테 실례니까요!”
“......”
아니, 내가 이런 말을 할 처지는 아니다만, 올리비아 외모면 무엇을 하든 간에 모든 걸 씹어먹을 것 같은데.
솔직히 지금 같이 술 마시는 것만으로 가슴이 벌렁거릴 정도였다.
무슨 여자가 이렇게 술 마시는데도 좋은 향기를 풍기는 건지 원.
“그럼 무슨......”
“[드래곤 마스터] 엘프 교수 엘라니아로 해 볼까 해요.”
“엘라니아? 아.....”
여러 종족이 있는 [드래곤 마스터] 세계관 속에서 현재 등장한 유일한 이종족인 엘라니아는 사역마라는 교과를 가르친다.
“일러스트가 그렇게 많지 않을 텐데요.”
“그래도 인기가 많으니까요. 한번 해보고 싶어서요. 저 말고도 다른 연예인들도 이번 코스프레 대회에 참여한다고 해요.”
“하긴 제가 아는 아이도 참여한다고 하죠. 소설도 참여한다고 했는데 지금 결과가 어떻게 됐을지 모르겠네요.”
“아이요?”
“제자예요.”
“제자도 들이셨어요?”
“뭐.....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어요. 티아인데 나중에 소개해드릴게요. 그보다 올리비아.”
“네.”
“[블랙 & 월드] 제작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나요?”
최근에 아예 관심을 끊고 살고 있었다 보니,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몰랐다.
“네.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어요. 감독님이 엘라씨의 연기를 마음에 들어 하거든요. 근데 엘라씨가 애초부터 작가님하고 어느 정도 친분이 있다고 알려져서 아직도 논란이 많아요. 빨리 개봉되었으면 해요.”
“어쩔 수 없죠 뭐. 감당해야죠.”
“그래도 연기력을 보면 쏙 들어갈 거예요. 스타일도 주인공하고 잘 어울리고, 조금 아쉽긴 하지만 저는 드라이어드 역할에 만족해요.”
“2부에서는 중요한 역도 많으니 분량도 늘어나실 거예요. 아. 소주 한 병 더 시킬까요?”
“김치전도 하나 더 시키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이야기하면서 조금씩 먹다 보니 금방 사라진 것 같아요.”
나는 초인종을 눌러 종업원을 불렀다.
***
비교적 이른 오후 식당에서 나온 우리의 다음 행선지는 딱히 없었다.
그냥 내가 몰랐던 장소를 구경하며 주변을 돌아다니는 정도였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그렇게 디저트도 먹고, 카페도 돌아다니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흘러 매니저가 올리비아를 데리러 왔다.
“그럼 다음에 뵐게요.”
“네. 올리비아 오늘은 고마웠어요. 바쁘신데 민폐를 끼쳐서 죄송스럽네요.”
“그런 말 하지 마세요. 오늘은 제가 요청한 거기도 하니까요.”
“.....네?”
“후훗. 다음에 뵐게요, 작가님. 다음에는 조금 더 재밌는 이야기를 하면서 시간을 보냈으면 해요.”
그 말을 마지막으로 올리비아는 매니저가 가져온 차를 끌고 집으로 향했다.
“......내가 잘못 들은 거겠지.”
의미심장한 마지막 말을 뒤로하며 나도 집으로 돌아갔다.
올리비아의 마지막 말이 계속해서 머리에 남았지만, 그냥..... 오늘 있었던 여운을 느끼며 이른 잠을 자고 싶었다.
***
그날 저녁 한 장의 사진이 기사와 함께 올라왔다.
『[올리비아와 함께 있는 그 남자, 유명 작가 J씨?]』
자극적인 기사 제목과 평소 유명한 연예계 기자로 알려져 있는 기자의 기사였기에 사람들은 하나둘 사이트 안으로 들어갔다.
-허.....?
-저 사람 제임스 작가 아닌가? 아니, 애초에 저렇게 옷 입는 사람은 제임스 작가님밖에 없잖아?
-둘 다 얼굴을 가리고 있는데 너무 성급한 판단 아니야? 작가님들 중에서 J라는 이니셜이 들어간 사람은 많다고?
-애초에 올리비아인 건 어떻게 알았는데? 그냥 마스크 쓴 것밖에 안 보이는데.
-에이. 우리 형은 저럴 사람이 아니라 괜찮아.
ㄴ맞아 글하고 결혼한다고 선언했어. 무엇보다 올리비아라니, 형 선은 넘지 마.
-이 새끼들 웃기네? 제임스 작가님이 글하고 결혼한다고 선언한 적 없는데 왜 작가님 미래 가지고 이래라 저래라임? 오히려 제임스 작가님이 아깝지!
둘 다 얼굴이 가려져 있다 보니 아직 사람들이 확신하지 못한 듯했지만, 이후 올라오는 댓글들이 이 기사의 진실을 알려주었다.
-LA에 있는 모 백화점에서 일하는데 두 분 본 적 있음. 얼굴은 못 봤는데 목소리가 올리비아하고 똑같던데?
-K-Corn Dog 파는 데에서 아르바이트하는데, 저 옷차림을 한 여성이 와서 5개 사갔어. 옆에 있는 남자가 화들짝 놀라더라. 혼자 다 먹었나 봐.
계속해서 올라오는 댓글들 중 기사에 대못을 박는 댓글 하나가 올라왔다.
-김할머니 대창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하는데 나 저 둘 봤음. 둘 다 마스크 까고 술 마시더라. 둘이서 Soju 10병 이상 마셨어.
ㄴ......!
ㄴ......!
ㄴ......!
ㄴ......!
ㄴ......!